제로 웨이스트를 위해서는 알루미늄을 제조할 때 독성 물질을 배출하므로 참치 캔은 안 되고, 비닐은 썩는 데 수백 년이 걸리므로 비닐 포장한 어묵도 안 되고, 플라스틱을 세척할 때마다 바다에 미세 플라스틱이 쌓이므로 페트병에 담긴 오렌지 주스도 안 된다. 시도하기도 전에 지친다면 영쩜일의 숨통을 터놓고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는 것,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환경 보호 제로 웨이스트 친환경

 

며칠 후에 나는 은령의 교실을 찾아가 그 종교에 대해 알고 싶고 그와 관련된 단서들을 모으고 싶다고 말하며 그런 일을 가끔 도와줄 수 있는지 물었다. 교실 문턱에선 은령은 잠시 고개를 기울이고 생각해보더니 수업이 끝나고 자율 학습을 시작하기 전까지 15분 정도 시간을 낼 수 있다고 대답했다. 나는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고맙다고 말했다. _우다영, <당신이 있던 풍경의 신과 잠들지 않는 거인> 중에서

어린 시절 친구인 은령과 나는 중학교에서 다시 만난다. 나는 동급생인 은령에게 세상을 떠받치고 있는 거인에 관한 연구를 함께 하자고 제안하고, 은령은 15분 정도 가능하다고 답한다. 좋다거나 싫다는 게 아니라 15분, 예스도 노도 아닌 15분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이 말은 대체 무슨 의미일까? 어쩌면 예스보다 더 강한 예스일 수도 있다. 시간이 없지만 애써 만든 자투리 시간이라도 내어보겠다는 노력. 아니면 그 반대로 쉬는 시간의 몇 분 정도라면 별생각 없이 할애할 수 있다는 오만은 아닐까. 소설에서 은령이 죽기 전 나에게 편지를 남겨 신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 사실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그 15분은 노력에 가까워 보인다. 은령은 편지에서 내가 한 말이 자기가 윤리적 선택을 할 때마다 떠올라 마치 신처럼 작용했다고, 자신을 가장 윤리적인 길로 이끌었다고 고백한다. 그렇게 은령이 자기 마음속에서 작용하는 신을 만나게 된 걸 15분의 기적이라고 해도 좋을까?

15분이라는 시간은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석이 가능하다. 조금 소심하고 살짝 삐딱한 나 같은 사람은 “싫으면 싫다고 하지 고작 15분이 뭐람” 하며 투덜댔을지 모르겠지만, 우다영의 인물은 자신에게 주어진 15분에 만족할 줄 안다. 은령이 마음속에서 작용하는 신을 만난 건, 또 내가 은령의 대답을 통해 신에 대한 대답을 듣게 된 건 15분을 충분하다고 느끼는 이들이 받을 수 있는 선물이 아니었을까?

나는 이런저런 시도를 하는 것을 좋아한다. 불굴의 의지로 다시 일어서는 데는 선수인데 잘 넘어진다. 그 이유를 생각해보면 목표를 지나치게 높게 잡은 탓이 크다. 높은 목표를 바라보니 성과는 좋다. 결국 원하던 지점에 도달하게 된다. 하지만 과정의 사사로운 기쁨과 쉬어 가는 행복을 놓치는 일이 잦다. 만약에 <당신이 있던 풍경의 신과 잠들지 않는 거인> 속 화자가 내게 제안했다면, 그리고 내게 남은 시간이 15분뿐이었다면 아마 나는 상대의 제안을 정중하게 거절했을 것이다. 연구하는 데는 15분으로 불충분하니 15분이라는 시간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쓰레기 줄이기를 처음 시도했을 때, 나는 하루 종일 쓰레기를 배출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제로 웨이스트와 관련된 시도들을 모조리 실행에 옮겼다. 일회용품은 절대로 사용해서는 안 되고, 재활용 쓰레기는 모두 다 닦아서 지침에 어긋나지 않게 배출해야 했다. 혼자라도 고군분투하면 쓰레기 제로에 도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대한민국은 일회용품 사용을 규제하지 않는 사회이니 개인적인 실천에 한계가 있다는 걸 인정하지 못했다. 비닐봉지 사용을 아예 금지한 나라도 있고(르완다는 입국 수속 시에 가방 속에 비닐봉지가 있는지 검사하고, 있으면 압수한다), 분리수거를 염두에 두고 상품을 만드는 회사도 있다(일본에서는 라벨을 쉽게 뗄 수 있도록 고려해 음료수 병을 만든다). 결국 뭔가를 살 때마다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알루미늄을 제조할 때 독성 물질을 배출하므로 참치 캔은 안 되고, 비닐은 썩는 데 수백 년이 걸리므로 비닐 포장한 어묵도 안 되고, 플라스틱을 세척할 때마다 바다에 미세 플라스틱이 쌓이므로 페트병에 담긴 오렌지 주스도 안 되었다. 이런 식으로 상품을 고르다 슈퍼에서 아무것도 사지 못하고 나오는 날도 있었다.

스스로 만들어낸 금지 사항을 지키다가 지쳐버렸다. 내가 만든 규칙에 스스로 갇혀버리고 만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나를 구제해준 건 제로 웨이스트의 제2 라운드인 ‘줄이기(reduce)’다. 지난달에 소개한 ‘거절하기’가 환경에 유해한 물질을 아예 허용하지 않는 단단한 지침이라면 그에 비해 ‘줄이기’는 조금 타협적이다. 나는 이 실천의 방식을 ‘영쩜일 웨이스트’라고 이름 붙였다. 영과 영쩜일의 차이는 제법 크다. 제로 웨이스트 라이프를 지향하다 겪게 되는 피로감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 지치지 않고 지속할 수 있다.

방법은 간단하다. 완전히 그만두지 않고 분량을 줄이는 것이다. 언제나, 늘, 꼭 그렇게 하지 않고 할 수 있는 데까지 하는 것이다. 비닐 포장한 제품은 사지 않지만 좋아하는 라면에 한에서는 허용한다거나 고기를 먹지 않지만 육개장에 든 소고기 정도는 괜찮다는 식으로 영쩜일 정도의 틈새를 마련해주니 숨통이 트였다. 스스로 수칙을 만들고 지키는 재미도 생겨서 전처럼 쓰레기를 줄이기 위한 쇼핑이 스트레스가 아니라 더 나은 포장 상태를 현명하게 감별해내는 즐거운 선택이 되었다.

나는 요즘 ‘번들 포장 제품 사지 않기’를 실천 중이다. 마트에서 파는 식재료의 포장은 상당수가 ‘비닐 other 류’에 속해 재활용되지 않는다. 그런데 번들은 이중으로 포장되어 있어 환경을 두 배나 더 오염시킨다. 돈을 더 내더라도 낱개로 사는 게 환경을 지키는 길이다.

라면 4~5봉지가 든 번들은 분명 낱개로 살 때보다 싸다. 그렇게 해서 소비자들은 라면을 더 많이 구매하게 되고 기업에서는 싸게 팔아도 공급량이 늘어나 이윤을 더 남길 수 있게 된다. 이러한 기업의 전략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싼 것에 현혹되지 않으면 된다. 가격을 낮췄지만 비닐을 하나 더 가져가야 한다면, 두 배 분량이 된 비닐의 처리 비용을 내가 떠안은 셈이니 가격이 싸진 것이 아니다. 상품을 살 때 가격뿐 아니라 그것을 버릴 때까지, 쓰레기통에 들어갔다가 처리되고 분해되어 땅과 바다, 하늘로 무사히 되돌아가기까지 전 과정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번들 포장 물건은 낱개로 파는 물건보다 분명 비싸다.

비닐류 사용을 줄이기로 한 이들은 ‘가격을 낮추면 더 많이 소비한다’는 이 세계의 원리에서 살짝 벗어난 셈이다. 나는 이런 실천에 꽤 매력적인 요소가 있다고 느낀다. 휘말리지 않는 데서 오는 쾌감이랄까. 벗어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한순간이 아니라 그 이후까지 고려하는 쇼핑을 하게 된다면 일상에서도 좀 더 신중해져 더 먼 미래까지 내다보게 된다.

큰 마트에서는 라면을 한 봉지씩 팔지 않기 때문에 라면은 동네 슈퍼에서 하나씩 산다. 하나 더 얹어주는 이벤트를 하는 품목은 얹어주는 상품을 묶는 데 포장재를 사용하므로 사지 않는다. 두 개가 필요하면 두 개를 따로 산다. 물건을 고르는 기준이 바뀐 것이다. 내게로 왔던 것들이 완전히 자연으로 되돌아가는 시간, 제로 웨이스트 실천가들의 시야는 더 넓고 더 멀리 확대된다.

요즘에는 물건을 고를 때 고려하는 게 하나 더 늘었는데, 그 물건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다. 이를테면 알루미늄 캔은 재활용 비율이 높지만 캔을 만드는 과정에서 유독성 물질이 배출된다. 만일 어떤 제품을 생산하는 데 불공정한 거래가 이루어져 노동자들이 착취당하고 있다면, 무자비한 동물실험의 결과 만들어진 개발품이라면 그것 또한 상품을 구매할 때 고려할 요소다. 이런 쇼핑 습관은 삶을 통째로 바꿔놓는다. 나는 요즘 어깨가 가볍다. 불필요한 것들을 내 삶에 들이지 않고 내보내지 않는 단순한 습관이 삶을 가볍고 경쾌하게 만들어주었다.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하는 데도 마음의 컨트롤이 필요하다. 습관은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으니까. 나를 잘 달래가면서 조금씩 양을 늘리다 보면 자연스레 목표에 가까워질 것이다. 내 수준에 맞는 실천 방법을 찾아 도전해보자. 이제까지 포장재 사용에 신경 쓰지 않고 먹고 싶은 것을 장바구니에 넣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면 ‘과대 포장 제품 피하기’처럼 실천하기 쉬운 단계부터 슬슬 시작해보는 건 어떨까. 커피의 맛과 향에 예민한 커피 마니아라면 자기가 선호하는 브랜드의 커피가 어떻게 생산되는지를 알아보고 전체 생산과정을 고려해 커피를 선택하는 지적인 미식가가 되자.

그러니 언제나 영쩜일(0.1)의 여지는 남겨두자. 이것저것 따져보고 사는 것이 원칙이지만 피곤한 날에는 포장재 정도를 고려해서 산다. 평소 채소류는 포장이 안된 것으로 고르지만 좋아하는 간식은 예외로 친다. 업무에 밀려 끼니를 챙기기 어려운 날엔 레토르트식품이나 패스트푸드도 먹는다. 가끔 그런 날을 허용하는 건 제로 웨이스트 번아웃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작은 틈이다. 이런 작은 틈은 오히려 실천을 지속하게 해주고, 자신에게 금지한 것, 비닐 포장한 음식을 먹고 싶다는 욕망이 너무 커지지 않게 해준다. 가끔은 먹을 수 있으니까 하고 생각하면 금지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된다.

지금 지구가 처한 위기, 전 세계가 처한 기후 위기는 욕심을 늘릴 줄만 알고 그 욕심을 제어할 수 없게 되어 생긴 결과다. 적당한 데서 멈추자. 가야 할 땐 가고, 보폭을 조절해 속도를 낼 땐 내다가 가끔은 멈춰 서자. 또 뒤로 물러서야 할 땐 물러설 줄 아는 지혜도 필요하다.

나는 텀블러와 장바구니를 갖고 다녔지만 일회용 티슈는 사용했다. 축농증 환자라서 더더욱 휴지 없는 삶을 상상해본 적이 없을 손수건 사용하기를 시작하면서 단지 내 상상력이 부족했다는 사실을 너무 늦지 않게 깨달았다. 휴지 줄이기의 첫 단계는 손수건 사용하기였다. 집 밖에서 휴지를 쓰지 않는 것이다. 사각으로 반듯하게 접힌 냅킨은 사양하고 주머니 속 손수건을 꺼내 쓴다. 두 번째 단계는 집에서도 손수건을 사용하는 거다. 방마다 한 장씩 두고 코를 풀 때나 입에 묻은 것을 닦을 때 사용한다.

바깥에서도 집 안에서도 손수건을 사용하게 되면서 일회용 휴지 사용량이 절반 이상 줄었다. 그래도 급하게 뭔가 닦거나 치워야 할 때는 요긴하게 사용했다. 그 요긴함이 필요성이 아니라 편리성일 뿐이라는 걸 깨달은 건 못 입게 된 면 티셔츠를 잘라 일회용 휴지를 대체하기 시작한 후다. 버리는 티셔츠나 오래 쓴 행주를 일회용 휴지 대신 쓰고 있다. 적당한 크기로 잘라 에코백에 잔뜩 넣어 다니며 휴지가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쓰면 휴지를 쓸 때 못지않게 편리하다. EM 용액을 뿌려서 닦으면 항균 작용을 한다고 하니 휴지보다 더 위생적이다. 조금 불편한 부분은 번거롭게 세탁해야 하는 점인데, 과탄산수소나트륨을 섞은 물에 담가놓으면 때가 쏙 빠진다. 이렇게 집에서 사용하는 휴지의 나머지 절반을 서서히 줄여갔다. 화장실용 휴지 정도만 남겨두었다.

어떻게 휴지를 안 써? 난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아, 하고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휴지 사용을 포기할 수 없다면 사용량을 반으로 줄여보자. 손에 돌돌 말아 넉넉하게 뜯어 쓰는 습관이라도 없애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화장실 휴지 사용량을 절반으로 줄일 수 있다. 그것도 불편하다면 한 칸씩 줄여가는 것도 썩 괜찮은 방법이다.

‘아니, 나 시간 없어’라고 말하지 않고 남은 시간을 내어준 15분은 단지 15분에 그치지 않는다. 한 칸을 줄일 수 있다면 두 칸을, 2분의 1을 줄일 수 있다면 3분의 2를 줄일 수 있게 되고,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휴지 없는 삶을 누릴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 화장실에서도 일회용 화장지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럼 어떻게 하느냐고? 샤워기를 이용해서 물로 씻는다. 일종의 수동식 비데랄까? 이렇게 일회용 휴지와 완전히 작별했다.

연인과 헤어진 다음 날을 떠올려보자. 하루아침에 마음이 접히지는 않는다. 처음에는 잠도 잘 오지 않고 밥 먹다가도 눈물이 나다가 차차 익숙해져서 가끔 떠오를 때마다 괴롭다. 그러다 결국엔 완전히 잊는다. 어느 날 문득 아, 내가 이제 그 사람을 그리워하지 않는구나, 하고 깨닫게 된다. 그/그녀가 다시 내게 온다고 해도 이젠 내가 거절하겠구나. 그런 때가 온다. 이제 네(휴지)가 없는 삶에 드디어 익숙해졌어. 이대로 좋아, 편하고 깔끔하고 부드러워.

 

*영쩜일 웨이스트를 위해
달라져야 할 쇼핑의 기준

1 비닐 포장을 한 번 더 한 번들
포장 제품 사지 않기

2 만드는 과정에서 유독성 물질을
배출하는 알루미늄 캔은 사지 않기

3 무자비한 동물실험을 거친
제품 사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