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별, 갬성(STARGAM). ASA(아시아항공우주국) 최고의 탐사 대원 기동과 엔지니어 승연은 그 곳에 닿을 수 있는 유일한 우주선 ‘인천스텔라’를 타고 우주로 향한다. 한편, 지구에 남은 기동의 딸 규진은 우주에 있는 아빠에게 닿기 위해 새로운 방법을 찾게 된다. 지상 최고의 C급 영화를 만드는 백승기 감독과 손이용 배우는 네 번째 영화 <인천스텔라>를 통해 지구를 떠나 우주까지 자신들의 세계를 확장시켰다. 어디로 튈지, 어디까지 갈지 몰라 더 흥미로운 두 사람의 영화와 대화.
<인천스텔라>는 개봉 전 제24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45초 만에 매진을 기록한 걸로 화제가 되었습니다. 기분 좋은 출발이었을 것 같아요.
백승기 코로나19 영향으로 좌석수가 적어서 경쟁이 치열했던 탓도 있지만, 어쨌든 그분들이 모두 제 영화를 선택해줬다는 거니까 너무 감사하죠. 사실 저도 이 영화가 첫 선을 보이는 자리라, 지인들 보여주고 싶어서 예매에 도전했었는데 광탈 했어요. 당황스럽긴 했는데, 기분은 좋았어요.
<숫호구>, <시발, 놈: 인류의 시작>, <오늘도 평화로운>에 이은 네 번째 작품이에요. <인천스텔라>는 어떤 생각으로 출발한 영화인가요?
백승기 중고나라에서 당한 사기를 복수하는 <오늘도 평화로운>을 제외하고는 모두 크게 보면 비슷한 얘기를 하는 영화를 만들어왔어요. 제 나름으론 ‘우리 존재 3부작’이라고 부르는데요, 모두 인간에 대한 고찰을 하는 걸로 기획했던 작품이에요. 첫 영화 <숫호구>는 정신과 육체 중 어떤 게 진짜 인간을 만드는 것인 지에 대한 고민이었고, 두 번째 <시발, 놈: 인류의 시작>은 인간은 타고난 존재인지 환경에 의해 만들어지는 존재인지를 묻는 영화였어요. 그리고 이번 <인천스텔라>는 인간의 존재 가치가 얼마나 크고 대단한지에 대해 얘기하는 영화고요. SF 영화, 우주 영화로 불리지만 사실 이건 우리 존재에 관한 얘기거든요. 이번 영화를 통해 인간을 주제로 하는 이야기의 종지부를 찍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제목이 <인천스텔라>입니다. 당연히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인터스텔라>를 떠올릴 수 밖에 없는데요.
백승기 7년 전에 <시발, 놈: 인류의 시작> 촬영을 위해서 네팔에 갔었어요. 그때 손이용 배우와 같이 숙소 옥상에서 별을 보면서 술을 마시다 나온 얘기로 즉석에서 기획한 영화예요. 그 후에 둘이 참고 삼으려고 우주 영화가 개봉할 때마다 보러 다녔는데, <인터스텔라>를 보고 주저앉았어요. 우리가 생각한 내용과 너무 똑 같은 거예요. 망했다 싶었죠. 그러곤 어떻게든 바꿔보려고 노력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처음 생각했던 게 너무 좋은 거예요. 그래서 그냥 만들기로 했어요. 제목은 따라 했다고 욕먹을 바엔 아예 비슷하게 만들어서 정면돌파 하자는 마음으로 지은 거고요. 그런데 제 기억이 왜곡된 걸 수도 있는데요, 그때 숙소에서 얘기할 때 옆에 외국인 한 명이 있었거든요. 우리 얘기를 엿듣는 느낌이었는데, 설마 그 분이…
이건 기획할 때에 같이 있던 손이용 배우가 증명해줘야 할 것 같은데요.
손이용 제가 원래 감독님 뻥칠 때 말을 안 해요.(웃음) 시나리오를 네팔에서 구상한 건 맞아요. 그리고 사실 그때 더 많이 참고했던 영화는 조디 포스터가 나온 <콘택트>였어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이 영화를 본다면, 뭐라고 할까요?
백승기 서프라이즈!
늘 초저예산으로 영화를 만드는데, 이번에는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어쨌든 우주가 나와야 하잖아요. 그럼에도 후반부 CG의 퀄리티가 좋아서 놀랐어요.
손이용 영화제에서 본 분들이 많이 그렇게 얘기하더라고요. 의외였다고요.
백승기 이전 작품들은 투자받기가 어려워서 대부분 사비로 만들었어요. 이번에도 원래는 사비로 만들려고 했어요. 우주신은 방에서 불 꺼놓고 찍으려고 했고요. 그런데 인천영상위원회에서 제가 그동안 인천을 배경으로 영화를 찍어온 걸 알고 지원금을 주셨어요. 그거랑 사비랑 합치니까 6천만원 정도 되더라고요. 그걸로 촬영 감독도 섭외하고, 촬영 스튜디오도 빌리고, 와이어로 배우도 띄워 보고, CG 작업도 했어요. 한국영화에서 10억 미만을 저예산으로 보니까, 이번에도 큰 돈은 아니지만 어쨌든 가진 것 안에서 최대한의 효과를 내려고 영혼을 갈아 넣었어요.
CG 퀄리티와는 별개로 터무니없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진짜라 말하는 방식은 전작과 동일합니다. 중고 자동차를 우주선이라 하고, 중력 계산을 할 땐 일반 계산기를 두드립니다. 황당할 정도의 설정이 결국 이야기 안에서 설득력을 가지기 위해서 신경 쓴 부분이 있다면요?
백승기 마르셀 뒤샹이 남성용 변기를 사서 <샘>이라 이름 붙이고 전시에 출품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미술에 대한 모독이라고 말했잖아요. 그 때 뒤샹은 작품 자체보다 ‘고정관념을 탈피하자’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게 제가 영화를 바라보는 태도예요. 저는 돈도 기술도 없는 상태에서 영화를 시작했어요. 그러다 보니 주변의 소품을 활용할 수 밖에 없었고, 그것들을 영화 안에서는 진짜라 우기기 시작한 거죠. ‘우리는 완벽히 잘 만들지 못할 거다. 그럴 거면 세상에서 제일 못 만들어 보자’라는 마인드예요. 내가 갖고 있는 ‘없음’이라는 것에 대해서 부끄러워하는 대신 재미있는 이야기로 우겨보는 걸 택한 거죠. 그래서 이번에도 제게는 꽤 큰 돈을 투자 받았음에도 저만의 기조를 유지하기 위해서 그런 설정들을 넣었어요. 다만 너무 그런 것만 가득하면 몰입이 안 되니까 영화적인 요소는 최대한 기본에 충실해서 완성도를 높이려고 했고요.
터무니없는 설정을 납득시키기 위해서는 이를 표현하는 배우의 연기도 큰 몫을 차지합니다. SF 영화는 대규모 세트장에서도 현타를 맞는 배우들이 많은데요, 손이용 배우는 4인용 차량에서 운전대를 잡으며 우주를 비행하는 연기를 해야 했어요.
손이용 다 갖춰진 세트장에서 연기했던 배우들은 현타 올 여유가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저희는 그럴 여유가 없었어요. 스튜디오 대관료가 비쌌거든요.(웃음) 저도 처음에는 SF 영화를 보면서 상대 배역도 없고 허공을 보면서 연기하는 게 어렵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심지어 저는 그린 스크린에서 절절하게 우는 신도 있었거든요. 그런데 막상 해보니까 예상보다 어렵지 않더라고요. 제가 잘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아무것도 없다 보니 다른 데에 시선이나 생각이 안 쏠렸고, 그래서 온전히 제가 만들어내는 것에만 집중할 수 있었어요.
백승기 감독과 손이용 배우는 필모그래피가 동일해요. 백승기 감독의 영화의 주연 배우는 늘 손이용 배우고, 손이용 배우는 백승기 감독의 영화에만 출연하는데요,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백승기 포장을 하자면 손이용 배우가 제 영화를 가장 잘 이해하기 때문이에요. 기획 단계부터 대화가 잘 통하기 때문에 현장에서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알아서 잘 해내는 배우기도 하고요. 그리고 현실적인 이유를 생각해보면 손이용 배우도 저 말고 다른 감독이 불러주지 않고, 저도 셀럽이라 불리는 배우들이 아직까지 제 영화에 출연하기 버거워 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어요. 언젠가 다른 기회가 생길 것에 대비해 둘 다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습니다.
손이용 저도 손절 타이밍 보고 있고요.(웃음) 감독님 얘기가 다 맞아요. 둘이 가장 잘 통하는 것도 있고, 현실적인 이유도 작용을 하고요.
백승기 감독은 꾸준히 자신의 영화를 B급도 아닌 C급이라 칭해요. 직접 만든 영화사 꾸러기 스튜디오 역시 ‘대한민국 최고의 C급 무비 전문’을 표방하고요.
백승기 처음에는 우리는 B급 영화도 만들기 힘든 조건이다. 그러니까 어차피 못 만들 거 과감하게 C급으로 더 막 만들자는 마음으로 붙인 이름이에요. 그런데 영화를 만들다 보니 ‘C급’을 다른 의미로 해석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영화를 카메라(Camera)로 코믹(Comic)하게 찍어서 컴퓨터(Computer)로 편집해 영화관(Cinema)에 내걸거든요. 그리고 이 모든 작업에서 창의성(Creative)를 중시하고요. 영화를 만드는 과정과 태도 안에 모두 ‘C’가 들어가더라고요. 지금은 그런 의미에서 C급 무비를 표방하고 있습니다. 수직적인 의미의 C급이 아니라, 수평적으로 확장된 개념으로요.
마지막으로 두 사람의 네 번째 영화 <인천스텔라>가 관객들에게 어떻게 비춰지고 기억되길 바라나요?
백승기 우주영화라고 <인터스텔라>같은 걸 기대하고 오셨다가 화가 잔뜩 나서 가시는 분이 있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하는데.. 어쨌든 세상에는 다양한 영화들이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시도도 필요하다. 귀엽게 봐달라’고 말하고 싶네요. 그런데 사실 이렇게 말하기엔 너무 열심히 만들었어요.(웃음) 재미있게 봐주면 좋겠지만, 그냥 이런 영화가 있었다는 걸 기억해주는 것만으로도 좋을 것 같아요.
손이용 사실 영화를 어떻게 보면 좋을 지에 대한 기대감은 가지지 않는 편이에요. 저는 연기로 제 역할을 다 하려는 것뿐이고, 제 손을 떠난 뒤로는 관객들이 마음껏 즐기는 영역이라고 생각해요. 굳이 바람이 있다면, 영화다운 것에 대한 규율이나 제한을 두지 않고 봤으면 하는 거죠. 굉장히 완성도 높게 만들어진 대작들도 있지만, 한 편에서는 내 삶과 밀접하고 더 소통하기 쉬운 언어로 제작되는 독립영화들도 있거든요. 저는 상업영화에서 오히려 시도할 수 없는 것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에 있어서 나름의 자부심이 있어요. 이런 지점을 관객과도 나눌 수 있다면 더없이 좋을 것 같아요.
백승기 최근 유튜브에 영화 예고편을 올렸는데 기대한다는 반응들 사이에 어떤 분이 ‘이게 영화야 방구야’라는 댓글을 남겼더라고요. 그분에게 영화는 이래야 한다는 정의가 있는 거잖아요. 그게 아니면 방구가 되어버리는 건데, 저는 영화와 방구 사이가 존재한다고 믿거든요. 그 사이에 정말 다양한 것들이 있다는 걸 알아주길 바라요.
손이용 방구도 나쁘지 않은데.
백승기 그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