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유태오 잔나비 최정훈 마리끌레르 영화제 레토 GV 인터뷰

GV 시작 전 두 사람의 기념 촬영

 

최정훈 안녕하세요. 밴드 잔나비의 최정훈입니다. 반갑습니다.

유태오 안녕하세요. 영화 <레토>에서 빅토르 최 역을 맡은 유태오입니다.

최정훈 GV 섭외 전화를 받고 나서 고민을 많이 했어요. 제가 뭘 할 수 있을까 싶었거든요. 그러다 <레토>를 너무 재미있게 봤고, 이를 통해서 배우님의 빅팬이 되었으니 그런 얘기를 제가 아는 음악 지식들과 함께 풀어보면 좋겠다 싶어서 나오게 되었어요. 좀 떨리지만 영광입니다.

유태오 제가 콰야라는 미술작가를 굉장히 좋아하거든요. 그런데 잔나비 음반 중 <전설>의 커버가 콰야의 그림이더라고요. 그걸 알곤 우리가 감수성이 맞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최정훈 신기하네요. 저는 우선 음악 질문부터 하고 싶어요. <레토>에 1960~70년대 록음악이 굉장히 많이 나오잖아요. 토킹 헤즈나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음악이요. 그런데 그 음악들은 사실 저나 태오님의 세대에서는 주로 접하기 힘들었던 음악이잖아요.

유태오 그렇죠. 심지어 저는 록 음악을 많이 안 들었어요. 사실 어릴 땐 힙합을 듣고 자랐거든요. 하하. 나중에 연기 공부 하면서 음악 세계가 넓어졌어요. 2년 동안 미친 듯이 아바의 음악에 빠졌다가, 후에 프랭크 시나트라 류의 재즈로 넘어갔고, 그러다 동유럽 집시 음악이나 남미 음악도 들었어요. 그리고 늦었지만 <레토>로 인해 록 음악까지 좋아하게 됐죠.

최정훈 록 음악이 마지막 종착역 같은 건가요?

유태오 네.

최정훈 저 같은 록 덕후 입장에서는 음악 영화, 특히 록 스타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에서는 배우가 무대에서 록 스타 애티튜드를 얼마만큼 잘 흉내내느냐를 유의 깊게 보거든요. 그런 부분에서 고민이 있었을 것 같아요.

유태오 저는 빅토르 최를 자유분방한 록 스타로 보는 것보다 인간적인 면에 집중했어요. 그는 유럽에서 자란 한국계 러시아인이잖아요. 거기에서 힌트를 얻었어요. 제가 유럽에서 살면서 느꼈던 이방인의 감정, 멜랑꼴리함을 떠올리며 이 캐릭터를 해석한 거죠. 그걸 또 감독님이 좋아하셨고요.

최정훈 멋지네요. 그래서 제가 영화를 보고 태오님에게 빠진 것 같아요.

 

배우 유태오 잔나비 최정훈 마리끌레르 영화제 레토 GV 인터뷰

첫 만남이지만 유려하게 대화가 흘러갔던 배우 유태오와 뮤지션 최정훈의 GV 현장

 

유태오 저도 정훈님에 대해 궁금한 게 있어요. 제가 이 영화를 찍으면서 약 200명 정도의 엑스트라 앞에서 하지도 못하는 언어로 퍼포밍을 해야 했거든요. 물론 나중에 더빙으로 빅토르 최 목소리 대역을 입혔지만 현장에서는 정말 노래를 불러야 했어요. 실제로 엑스트라분들을 설득할 수 없으니 모르는 척하고 미친놈이 되어버려야 했던 거죠. 상상 속으로는 ‘나는 천재다’라는 설정을 갖고, 계속 제 세상 안에 있었던 거예요. 이를 위해 내가 최고라고 느꼈던 과거 어떤 순간의 감정을 끄집어 냈어요. 그런데 정훈님은 실제 록 뮤지션이잖아요. 그럼 무대에 올랐을 때 현실 속에서 있는 그대로의 곡을 전달하는 건가요? 아니면 제가 캐릭터를 준비하듯이 자신만의 세상 안에서 내면으로 빠져들어서 퍼포밍을 하나요?

최정훈 제가 그동안 음악 활동 하면서 가장 받아보고 싶었던 질문이에요. 저 같은 경우는 음악, 특히 퍼포밍을 할 때는 하나의 방을 만들어 둬요. 그리고 그 안을 꾸미죠. ‘나는 음악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광대 혹은 재주꾼이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다 내려놓고 공연을 해요.

유태오 제가 역할을 준비할 때도 비슷한 것 같아요.

최정훈 네. 그래서 좀 전의 이야기에 공감을 했어요. 앞에 있는 사람들을 설득해야 하는데 설득이 안될 땐 일단 먼저 자신에게 설득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몰입한다는 거잖아요. 그게 영화에서도 느껴졌어요. 특히 빅토르 최가 처음 무대에 올라갔던 장면이 인상 깊었는데요. 처음에 빅토르 최가 낯선 모습을 보이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무대에서 시야가 넓어진다는 게 느껴졌거든요. 그런 것들은 의도를 한 건가요? 혹은 영화의 흐름상 자연스럽게 갔던 걸까요?

유태오 그 순간을 다시 생각해보면 말씀한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그 곡을 준비한 것 같아요. 제가 제 공간 안에 있었던 거죠. 방으로 표현하셨는데 실제로 메소드 액팅 차원 안에서도 그런 기술이 있거든요. private exercise(프라이빗 액서사이즈)라고 내 개인적인 공간 안에 머무는 방식이 있어요. 무대에서 소리, 향기, 온도. 시각적으로도 내가 어렸을 때 편안했던 공간을 떠올렸죠. 후반에는 마이크라는 캐릭터가 나와서 기타 솔로도 쳐 주잖아요. 이전 신에서는 둘이 싸웠으니까 좀 얄밉게 째려 보기도 하는데 이후에는 이 사람과 교감을 찾는 거예요. 파트너에게 에너지를 집중하면서 왔다 갔다 하는데 관객들이 누구에게 반응하는지를 보면서 어쩔 수 없이 같이 가야겠다는 걸 깨닫죠. ‘마이크가 고맙게도 나를 띄워줬구나’라는 걸 느끼는 맥락이었거든요. 그 장면을 제대로 보신 것 같아요.

 

배우 유태오 잔나비 최정훈 마리끌레르 영화제 레토 GV 인터뷰

질문을 하는 배우 유태오

 

최정훈 이야기를 듣고 보니 다시 보면 그 장면이 훨씬 새롭게 보일 것 같아요. 중간 중간 뮤직비디오처럼 연출된 장면들이 나오는데요. 어느 하나 손꼽을 수 없을 정도로 너무 좋았는데, 그 부분들에 대해서도 묻고 싶어요. 최애 장면은 어떤 곡이었는지.

유태오 기분에 따라 달라요. 어떤 날은 ‘패신저(Passenger)’ 였는데, 오늘은 ‘싸이코 킬러(Psycho Killer)’에요.

최정훈 많은 관객들이 ‘싸이코 킬러’ 신에서 뮤직비디오 같은 연출이 더해졌을 때 낯설었다는 말을 했어요. 저도 처음에 그랬고요. 그런데 끝나고 보니 그 장면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어요. 나중에는 영화를 한 번 더 보게 만드는 요소가 되어준 것 같아요. ‘싸이코 킬러’는 뉴 웨이브 그룹인 토킹 헤즈의 곡인데요. 제가 알고 있던 그 곡의 이미지는 냉소적인, 제목 그대로 싸이코 킬러의 심리를 묘사한 형태였어요. 그런데 소련의 사회 체제에 대한 빅토르 최의 반항이 섞인 표정과 섞이니까 제가 알고 있던 곡과는 180도 달라지는 느낌이더라고요. 그 뿐만 아니라 모든 곡들이 그랬어요. 루 리드의 ‘퍼펙트 데이(Perfect Day)’도 알던 것과는 완전 다르게 해석되는 느낌이라 좋았습니다. ‘패신저’도 너무 좋았고요.

유태오 감사합니다. 처음에 러시아어로 된 시나리오랑 번역본 두 개를 받았는데요, 둘다 ‘모든 이들과 갑자기 노래를 부른다’라는 설명 외엔 아무런 묘사가 없는 거예요.(웃음) 그래서 저도 그 장면이 그렇게 나올 줄 몰랐어요. 현장에 가서 닥치는 대로 뭔가 해결책을 계속 찾았어야 했어요.

최정훈 촬영장에서 즉흥적으로요?

유태오 네. 물론 감독님이 어떤 식으로 될 거라며 설명을 잘 해주셨죠. 모든 팀이 감독님 상상력 하나만 믿고 따라간 것 같아요. 돌이켜 보니 정말 대단한 분이라는 생각이에요. 어떻게 이렇게 절묘하게, 균형감 있게, 그리고 유쾌하게 그려냈을까. 흑백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힙하고 트렌디하게 만들 수 있었는지 모르겠어요. 어떻게 보면 과정을 믿는 사람인 것 같아요. 어떤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순간에 창작의 힘을 믿고 맡기는 주의인 거죠. ‘함께 하는 똑똑한 아티스트들과, 우리의 에너지를 믿고 창조적으로 해내자’ 이런 느낌이었던 것 같아요.

최정훈 보통 그런 상황이 되면 촬영장에서 얼굴을 붉힐 일도 생길 것 같은데. 제가 알고 있는 현장을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을까 싶어서요.

유태오 그런데 정말 화낼 만한 일이 없었어요. 모든 소통을 러시아어로 하니까, 저는 그냥 결과만 전해 듣고 그대로 따라가는 거죠. 어디로 올라가자고 하면 그냥 올라 가는 거고. 내려가자 하면 또 따라 내려 가는 거고. 참고로 ‘패신저’ 신은 콜타임이 새벽 2시였어요. 그런데 원하는 그림이 안 나오는 바람에 오후 4시에 다시 촬영을 시작해야 했어요. 항상 그런 식이었어요. 그런데 누구도 짜증이나 화를 내지 않았어요. 배우들은 앉아서 보드카나 한 잔 마시고. 저는 멍 때리다 대사 한 번 더 보고. 그냥 믿고 맡겼던 것 같아요.

최정훈 그 전까지는 빅토르 최가 약간 절제하는 사람처럼 보였는데, ‘패신저’ 장면에서 무언가가 폭발하는 게 보였어요. 그런데 그걸 그렇게 오랜 시간 찍었을 거라고는 상상을 못했네요.

유태오 뮤직비디오도 그렇게 밤새 찍어 보신 적 있어요?

최정훈 뮤직비디오에 출연을 딱 한 번 했는데요.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지루하더라고요.

유태오 영화라는 환경 자체가 그런 것 같아요. 실제로 하기 전까지 연습과 준비와 기다리는 시간들이 많을 수밖에 없는. 순수하게 연기만 하는 시간은 10%인 것 같아요. 저는 연기는 공짜로 하고 기다리는 시간에 페이 받는 거예요.(웃음) 갑자기 궁금해진 게 있는데 혹시 연기해볼 생각도 있어요?

최정훈 제가 연기를 하면 아마 관객의 8~90%는 뭐라고 말하는지를 못 알아 들을 거예요. 구강 구조가 좁아서 말이 새요.(웃음) 그리고 눈을 한 곳에 잘 못 둬요.

유태오 아까 같이 사진 찍었잖아요. 서로 바라보고 무표정으로 사진 찍는 건 너무 잘 하던데요?

 

배우 유태오 잔나비 최정훈 마리끌레르 영화제 레토 GV 인터뷰

첫 GV임에도 능숙하게 대화를 이끈 뮤지션 최정훈

 

최정훈 (웃음) 반대로 음악을 만들어서 사운드 클라우드에 올리고 있는데, 본격적으로 음악을 하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나요?

유태오 한 번도 없었어요. 제 정체성을 배우로 보거든요. 그리고 배우로서 어떤 자리까지 가려면 연기에 더 집중하는 에너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어떤 풍선을 물로 꽉 채운다면, 그리고 그 물이 나의 창조적인 에너지라면 연기할 때 한 번에 확 다 부어버리고 싶은 거죠. 중간 중간 이런 저런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최대한 그 가득 찬 에너지를 계속 잡고 있으려고 노력해요. 다만 그동안 제 손이 참지를 못해서 해왔던 작업들이 있어요. 시를 짓거나, 곡을 쓰는 것들요. 그런 걸 할 당시에는 너무 오랫동안 연기를 안하고 있을 때였어요. 오디션도 많이 떨어지고 어떤 제안도 들어오지 않았었기 때문에 속이 너무 터질 까봐 에너지를 조금 쓴 거죠. 잔나비의 음악적 정체성은 어떻게 만들어진 건가요? 예전에 했던 음악을 많이 들어보진 못했지만, 이전에 비해 음악의 장르나 정체성에 변동이 있었다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정훈님은 남이 바라보는 시각과 달리 자기만의 해석으로, 멜로디로 풀어내고 그래서 잔나비 하면 떠오르는 정체성이 뚜렷하잖아요. 잔나비다운 그룹도 없고요. 그렇게 정체성이 변화해서 확고하게 자리잡기까지의 과정과 계기가 궁금했어요.

최정훈 스물 세 살까지는 그야말로 슈퍼스타가 되고 싶었어요. 슈퍼스타가 되려면? <슈퍼스타 K>에 나가야죠. 그래서 나간 거예요. 그런데 잘 안됐죠. 계속해서 뭔가 히트를 치고 싶다는 마음에 당시 유행하던 마룬 파이브나 콜드 플레이의 음악을 흉내 냈어요. 그러다 한 순간 머리를 맞은 것처럼 어떤 생각이 들더라고요. 히트를 쳐 보지도 못한 애들이 뭘 안다고 히트곡을 만들려고 하는 걸까. 이럴 바에는 우리가 하고 싶은 걸 하자. 내 음악 나도 좀 듣자. 당시에는 제가 쓴 음악을 제가 못 들었거든요.(웃음) 여러분들도 아마 초창기 음악 들어보시면 낯가리실 거예요. 아무튼 그런 생각으로 지금에 이르렀어요. 태오님은 연기를 하거나 음악이나 시 등 다른 분야에 관심을 가질 때 어떤 호기심으로 접근하나요?

유태오 그날 그날 느낀 것에 대해 이것 저것 찾아 보는 게 시작이에요. 예를 들어, 제가 기존 한국 배우들과 비교해 봤을 때 몸이 좀 큰 편이거든요. 그럼 스크린에서 파워 있게 그려졌는데, 신체적 조건도 비슷했던, 롤모델이라 생각했던 배우들을 떠올려 보는 거죠. 톰 하디나 하비에르 바르뎀 같은 배우. 그럼 그런 생각이 드는 순간에 구글에서 그 배우의 키나 몸무게 같은 걸 찾아보는 거예요. 그런 기본적인 정보부터 시작해서 그가 스크린을 통해서 에너지를 어떻게 전달했는지에 대한 궁금증까지 이어지는 거죠. 거의 파고드는 거죠. 타고난 성향인지는 모르겠는데, 가끔 ‘다른 사람들은 왜 이렇게까지 생각하지 않지?’라는 의문이 들 때가 있어요.

최정훈 그런데 저도 공감해요. 저는 제 아웃풋에 대해서 굉장히 고민이 많아서 그런 맥락에서 많이 찾아보는 편이거든요. 내가 정말 해내고 싶었던 걸 한 사람? 프레디 머큐리. 그럼 프레디 머큐리 나이를 검색해 보는 거죠. 저도 그가 했던 라이브 에이드와 같은 공연을 해보고 싶다고 생각이 들면, 그럼 라이브 에이드는 몇 년도에 한 것인지 검색해 보는 식인 거죠.

유태오 맞아요.(웃음) 그리고 내가 그 나이 대에 비슷한 것을 해냈는지 비교해 보는 거예요.

최정훈 네. 비교해 보니 아직 조금 남았다. 이런 식으로 생각 하는 거죠. 그런데 저는 거기까지가 다에요. 거기에서 더 깊숙하게 파고드는 건 열 번에 한 번 정도예요. 그래서 그런 면이 참 부러워요.

유태오 부러워하지 마세요. 잠이 부족해요. 제가 원해서 그러는 게 아니기 때문에.(웃음) 궁금해지면 그 생각을 버리질 못해요. 끝까지 가야겠더라고요.

최정훈 그게 부러워요. 잠을 줄여서라도 궁금한 것에 대해 파고들어보고 싶거든요.

유태오 해보세요. 그럼 잠이 왜 안 오는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생기겠죠? 그럼 멜라토닌이 부족하다는 정보가 나와요. 그때부터 관련 영양제들을 찾고, 라벤더 좋아하게 되고.

최정훈 끝이 없겠네요.(웃음) 이제 마무리 인사를 해야 할 것 같네요. 그래도 저 오늘 나름 괜찮았던 것 같아요. 그렇죠? 여러분 만나서 너무 반가웠습니다. 지금까지 잔나비의 최정훈이었습니다.

유태오 여기 관객 중에서 영화를 자주 보신 분들이 많이 계신데요. 이렇게 끊임없는 사랑을 계속 주셔서 너무 감사하고요. <레토>의 마니아 층이 생겨서 너무 뿌듯해요. 러시아에 가서 열심히 했던 보람이 느껴지네요.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 드립니다. 유태오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