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에 간 이유
뜨거운 여름을 더 뜨겁게 보내기 위해 양양에 갔을 때다. 그 시절 양양은 죽도 해변과 몇 안 되는 음식점이 전부라 따로 왔다고 해도 머무는 내내 동선이 겹칠 수밖에 없었다. 유독 여러 번 마주친 한 사람과 끈적한 시선을 주고받았다. 다시 만났을 땐 서로의 이름과 나이, 하는 일 정도만 확인한 뒤 무리에서 빠져나왔다. 아이스크림을 사 먹자는 핑계로 주변을 돌고 돌다 겨우 모래사장에 자리 잡았는데, 우리의 목적은 단 하나.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몸이 빠르게 달아올랐다. 움직임이 격해질수록 우리 몸이 모래에 파묻힌다는 사실도 몰랐다. 모래 알갱이가 붙은 그의 ‘그것’이 내 안으로 들어온 순간, 여름 여행지의 로망은 보기 좋게 깨졌다. 뭔가 크게 잘못됐다는 생각에 우리는 허둥지둥했고 그의 몸에 붙어 있던 모래마저 내 얼굴에 떨어졌다. 몸의 모든 구멍으로 모래가 들어왔고, 그 여름이 끝날 때까지 다시 바다에 들어갈 수 없었다. K(32세, 회사원)
산티아고 순롓길이 맺어준 사랑
한 예능 프로그램을 본 후 무작정 산티아고 순롓길로 향한 적이 있다. 당시 나와 비슷한 사람이 많았는지 한국인을 위한 게스트하우스는 빈 자리가 거의 없을 정도였다. 그래도 낯선 사람들을 만나 새로운 인연을 쌓는 재미가 있었다. 밤이 되면 다 함께 술을 마시며 시간을 보내곤 했는데, 그중 한 사람에게 마음이 이끌렸다. 외모가 마음에 든 건 물론이고 취미와 관심사도 비슷해 다른 사람들이 모두 잠자리에 든 이후에도 오래도록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남은 여정을 단둘이 함께하기로 했다. 낮에는 순롓길을 쉼 없이 걸었고, 밤에는 지치지 않고 섹스를 했다. 예약해둔 게스트하우스를 모조리 취소하고 2인실이 마련된 숙소를 알아봐야 했지만, 오히려 다행이었다. 그 노력 덕분에 연인이 되어 지금까지도 사랑을 나누고 있으니까. S(33세, 공무원)
잊고 싶은 제주 여행
두 달 정도 썸을 타던 친구가 있었다. 어느 여름, 그가 내게 여행을 가자고 했다. “서울을 떠나 멀리 가보자. 제주도는 어때?” 설레는 마음을 품고 바로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처음엔 여느 여행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함께 자연을 감상했고, 인스타그램을 장악한 맛집들을 찾아갔고, 해안도로를 드라이브했다. 사건은 성산일출봉이 한눈에 보이는 숙소에서 발생했다. 한 공간에 단둘이 마주앉아 있다 보니 분위기가 무르익은 것. 결국 우린 뜨겁게 관계를 하고 말았다. 우리 사이에선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상황이었지만, 낯선 풍경을 바라보며 하는 섹스는 짜릿한 쾌락을 안겨주었다. 다음 날 아침, 내 옆에 알몸으로 누워 있는 그의 모습을 보니 ‘아차’ 싶었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남은 일정을 이어가려고 했는데, 분위기는 이미 한껏 어색해진 이후였다. J(26세, 대학원생)
발리에서의 마지막 밤
수년째 연애 중인 우리에게 1년에 한 번 떠나는 해외여행은 권태기를 없애는 비결이다. 둘 다 해양 스포츠를 좋아해 아름다운 바다가 있는 나라로 자주 향하는 편이다. 최근에 간 발리는 강렬한 기억을 남긴 여행지다. 우린 그곳에 머무르는 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해변에서 보냈다. 틈틈이 서핑이나 스쿠버다이빙을 했고, 가만히 앉아 햇빛을 쬐며 여유도 즐겼다. 숙소도 바다 근처로 잡았는데, 개별 수영장이 있어 늦은 밤에도 둘이서 마음껏 물놀이를 할 수 있었다. 귀국을 하루 앞둔 날, 우린 쿠타 비치의 아름다운 노을을 본 후 숙소로 돌아왔다. 선베드에 누워 뭘 하며 여행을 마무리하면 좋을지 생각하다가 서로의 몸을 부둥켜 안았다. 그렇게 밤새, 아침이 오는 줄도 모르고 여러 번 사랑을 나눴다. 그날 아침에야 알았다. 발리는 일몰뿐 아니라 일출도 참 매력적이라는 걸. S(30세, 자영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