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신진 감독의 새로운 시선
아시아 신진 감독들의 새로운 시선과 목소리를 한 번에 확인하고 싶다면 부산국제영화제의 뉴 커런츠 부문을 주목하자. 뉴 커런츠는 아시아 감독의 첫 번째 혹은 두 번째 장편영화를 소개하는 부산국제영화제의 대표적인 경쟁 부문으로, 아시아 영화의 최신 경향을 가늠할 수 있는 바로미터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반짝이는 신예 감독들이 이 부문을 통해 자신의 영화 세계 시작을 알려왔고 덕분에 우리는 누군가의 빛나는 시작과 출발의 순간을 함께할 수 있었다. 올해는 11편의 영화가 관객들과 만난다.
먼저 일본의 가타야마 신조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실종>이다. 가타야마 신조는 레오 카락스, 미셸 공드리, 봉준호 감독이 참여한 옴니버스 영화 <도쿄!>(2008)에서 봉준호 감독이 연출한 단편 <흔들리는 도쿄>의 조감독이었고 이후 <마더>(2009)의 조연출로 일한 적이 있다. <실종>을 통해 그는 자신만의 스릴러 세계 포문을 열고자 한다. 매년 힘 있는 영화들의 등장으로 세계 영화계를 깜짝 놀라게 하는 중국 영화들 가운데 올해 부산국제영화제가 주목하는 신예는 왕얼저우 감독이다. 그의 <안녕, 내 고향>은 여성 삼대의 이야기를 시적인 영상과 내레이션으로 엮은 서정성 짙은 작품이다.
인도 영화 두 편도 소개한다. 나테쉬 헤지의 <페드로>는 비전문 배우들과 작업한 실험적인 작품이다. 인도 서부 지역 숲속에서 남들 눈에 잘 띄지 않은 채 살아가는 전기 수리공 페드로가 겪는 곤경에 관한 이야기다. 라즈딥 폴, 사르미사 마이티 두 감독이 공동 연출한 <시간의 집>은 세 여성이 사는 집에 의사가 감금되고 그가 마치 시간과 공간의 늪에 빠지기라도 한 듯한 일을 겪는다는 내용의 서스펜스물이다. 특히 이 영화는 1906년에 설립돼 지금까지 영화 제작과 배급을 해오고 있는 인도의 유서 깊은 오로라 필름 프로덕션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기대감을 높인다. 이란 영화도 두 편이다. <감독은 부재중>은 제목 그대로 외국에 체류 중인 연극 연출가가 영상 통화로 단원들의 연기를 지도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소동을 다룬다.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단 한 번도 컷을 나누지 않고 전개된다는 점을 눈여겨보자. 메흐디 호세인반드 아알리푸르의 <소행성>은 엄마와 다섯 형제와 함께 사막 한가운데의 누추한 집에서 살아가는 열두 살 소년 에브라힘의 이야기다. 가난에 맞서는 꿋꿋한 소년의 드라마가 잔잔한 감동으로 이어지는 이 작품은 제38회 파지르 국제영화제에서 최고의 아시아 영화상을 받았다.
여성 서사의 강세도 두드러진다. 카자흐스탄의 샤리파 우라즈바예바는 데뷔작 <마리암>(2019)에 이어 두 번째 장편 <붉은 석류>에서도 다시 한 번 주체적인 여성의 자기 선택 순간을 그린다. 가부장 사회의 성차별과 내부 모순을 통찰력 있게 그린 작품으로는 다음 두 편의 영화를 들 수 있겠다. 아시아영화펀드 지원으로 데뷔작 <번식기>(2014)를 만든 베트남의 킴퀴 부이 감독이 <기억의 땅>으로 돌아왔다. 영화는 죽음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는 각기 다른 세 개의 시공간을 그려나간다. 단편 <건강한 우리 마을>(2019)로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단편경쟁에 초청된 적 있는 인도네시아의 레가스 바 누테자 감독의 장편 데뷔작 <복사기>도 그러하다. 취해 있는 자신의 사진이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온라인 세상을 떠돌면서 예기치 못한 일을 겪게 되는 한 여성의 이야기다.
올해 뉴 커런츠 부문에 소개되는 한국 영화는 두 편이다. 김세인 감독의 장편 데뷔작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는 서로에게 가차 없고, 서로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모녀의 이야기다. 박강 감독의 미스터리 공포영화 <세이레>는 아기가 태어난 후 부정 타는 것을 막기 위해 21일간 아기 옆에 타인이 가까이 가는 걸 금지한다는 한국의 민속신앙 삼칠일(세이레)에서 소재를 가져왔다. 이처럼 다양한 국가에서 온 11편의 영화가 각기 다른 방법과 시선으로 자기만의 영화 세계를 열어젖혔다. 이 새로운 영화의 흐름에 기꺼이 몸을 맡겨봐도 좋겠다. writer 정지혜(영화평론가)
중국 영화의 목소리
부산국제영화제가 새롭게 떠오르는 중국의 신진 감독들을 조명하는 특별전을 마련했다. 장이머우, 첸카이거, 왕샤오솨이, 지아장커 등 거장 감독들의 뒤를 이을 신세대 중국 감독들의 대표작을 통해 중국 영화의 새로운 흐름을 살펴본다. 더불어 신세대 감독들이 자신만의 메시지와 독특한 미감을 바탕으로 어떤 영화적 성취를 이뤄냈는지 조명한다.
2010년대와 2020년대에 유수의 국제영화제에서 중국 감독들의 데뷔작이 소개되면서 지속적으로 화제를 일으켰다. 이번 특별전에는 다이오이난부터 웨이슈준에 이르기까지 감독 7명의 대표작 7편을 상영한다. 이 감독들은 이전 세대와 구별되는 세계관과 영화 미학을 가졌지만, 공통 관심사가 존재한다. 자본화의 물결을 따라 급속도로 변화하는 현대 중국에서 생존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개개인을 독특한 영화 언어로 그려낸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자신의 고향에 대한 애착과 이를 입증하는 영화적 헌사다. 예를 들어 지아장커는 줄곧 자신의 고향 산시성을 배경으로 작업해왔고, 최근 다큐멘터리 <먼바다까지 헤엄쳐 가기>(2020)까지 일관되게 현대화된 산시성과 격동의 세월을 겪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신진 감독들 역시 중국과 자신의 고향(뿌리)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하는지 살펴보는 것도 중국 영화 연구에서 주요 논점이 될 수 있다.
먼저 디아오이난 감독의 <백일염화>(2014)는 1999년 살인 사건을 조사하다 중상을 입은 전직 형사가 5년 후 다시 발생한 살인 사건을 파헤치는 이야기로, 제64회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황금곰상과 은곰상 남자연기상(리아오판)을 수상했다. 이 스릴러에는 검열 문제로 중국 상업 영화에서는 볼 수 없는 장면이 담겨 있다. 감독은 중국풍 누아르에서 사랑도 용서도 없는 비열한 거리를 창조해낸다.
누아르를 선호하는 디아오이난 감독이 장르영화 안에서 중국 사회의 참혹한 현실과 몰락하는 개인의 모습을 담아낸다면, 비간 감독과 구샤오강 감독은 중국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 위해 예술영화의 유산을 계승하는 한편 새롭게 재해석한다. 두 감독의 작품은 독특한 중국 영화이자 2010년대 세계 영화사에서 가장 문제적인 데뷔작으로 꼽을 만하다. 시골 마을 카일리를 배경으로 한 비간 감독의 데뷔작 <카일리 블루스>(2015)는 현실과 과거 기억의 경계를 오가며 관객을 몽환 속으로 이끈다. 제68회 로카르노 국제영화제에서 신인감독상을 수상한 이 작품은 중국의 새로운 세대가 등장했음을 선언했다고 할 수 있다. 비간 감독이 시적인 대사와 롱테이크를 선보인다면, 구샤오강은 데뷔작 <푸춘산의 삶>(2019)에서 허우샤오시엔의 걸작 <비정성시>(1989)에 견줄 만한 높은 완성도를 보여준다. <푸춘산의 삶>은 70세 생일에 뇌졸중으로 쓰러진 노모와 네 형제의 삶을 푸양의 모습과 함께 담아낸다. 제72회 칸 국제영화제의 비평가 주간에 초청된 후 <카이에 뒤 시네마>가 선정한 베스트 10에 올라 시네필의 많은 지지를 받았다.
리뤼준 감독의 <미래로 걸어가다>(2017) 또한 부산에서 만날 수 있다. 리뤼준 감독은 데뷔작 <늙은 당나귀>(2010)를 부산국제영화제의 뉴 커런츠 부문에 출품했다. 어느 농촌 마을에 불어온 개발 광풍에 휘말려 희생자로 전락하는 노인의 이야기 <늙은 당나귀>, 실크로드 사막을 횡단하는 소년들의 이야기 <리버 로드>(2014) 등을 연출했으며, <미래로 걸어가다>(2017)로 제70회 칸 국제영화제의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되었다. 이주노동자의 딸 ‘야오팅’(양쯔산)은 부모님을 편히 모시기 위해 대도시로 이주한다. 돈을 벌기 위해 보수가 높은 생체실험에 참여하지만, 참혹한 결과가 기다릴 뿐이다.
이 외에도 2020년대에 만든 주요 작품이 있다. 제 49회 로테르담 국제영화제에서 타이거상을 수상한 정루신위안 감독의 <그녀 방의 구름>(2020)은 한 소녀의 인생과 심정을 영상 에세이처럼 써나간다.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영화아카데미(AFA)의 제1회 졸업생 출신인 송팡 감독은 다큐멘터리와 극영화의 경계를 넘나드는 자전적 영화 <시선의 기억>(2012)으로 로카르노 국제영화제에서 수상했고, <평정>(2020)이 제70회 베를린 국제영화제 포럼 부문에 초청되어 CICAE 예술영화상을 수상했다. 최신작으로는 올해 칸 국제영화제 감독 주간에서 상영된 웨이슈준 감독의 <융안 마을 이야기>(2021)가 소개된다. 웨이슈준은 부산국제영화제와 인연이 많은 감독으로 데뷔작인 로드무비 <세상의 끝>(2016)을 비롯해 국경 마을에 사는 조선족 소년 이야기 <연변소년>(2018), 예술영화를 꿈꾸지만 현실과 이상의 모순에 붙잡혀 있는 인물들의 <질주>(2020)가 모두 상영된 바 있다.
이번 특별전은 상영 후 온라인으로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하고 국내외 필진이 참여한 책자를 발간해 중국 영화의 흐름을 알릴 예정이다. writer 전종혁(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