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11월,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라고 외치며 자신을 불태운 열사이자 한국 노동운동의 시발점을 만든 혁명가 전태일. 홍준표 감독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기록 속 몇 줄의 수식을 지워봤다. 그리고 남은 것은, 사람 전태일. 이를 시작으로 애니메이션 <태일이>가 탄생했다.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전태일’이 아닌 ‘태일이’라는 호칭을 쓴다. 그들에게 태일이는 든든한 가장이 되고 싶었던, 근사한 재단사가 되고 싶었던, 동료들과 행복하게 일하고 싶었던 평범한 청년이었다. 목숨을 내놓을 만큼 강경했던 열사의 이면에는 모두가 행복하게 일하는 회사를 꿈꾸던 동료이자 노동자 태일이가 있었다.
애니메이션 <태일이>이는 제목 그대로 ‘전태일’이란 인물을 그린 작품입니다. 이 인물을 선택한 이유부터 묻고 싶습니다. 선택은 아니었어요. 명필름에서 전태일 열사를 이야기하는 작품을 만드는데 맡아줄 수 있느냐는 제안을 받았거든요. 그러니까 어느 날 전태일이라는 인물이 저의 애니메이션에 훅 들어온 셈이죠. 처음에는 어려웠어요. 같은 시대를 산 것도 아니고, 열사라는 호칭을 가진 인물이라 가볍게 접근할 수 없었으니까요. 애니메이션으로 표현이 가능할지도 의문이었고요. 일단 많이 찾아봤어요. 그런데 그 과정에서 시각을 달리하게 되더라고요. 열사라는 단어를 배제하고 들여다보니 생각보다 어려운 인물이 아니었어요. 대단한 일을 홀로 해낸 영웅이라기보다 상식적이지 않은 상황에 의문을 가진 평범한 청년이었던 거예요. 이렇게 접근하면 생각보다 무겁고 어렵지 않게 이야기를 풀 수 있겠다 싶었고, 그 지점을 중심으로 <태일이>를 만들었어요.
그래서 작품 속 태일이가 친근한 외형을 지닌 걸까요? 전태일이라는 인물을 애니메이션으로 디자인하면서 중요하게 생각한 점은 무엇이었나요? 디자인이 여러 차례 바뀌었어요. 처음에는 시대극이기도 하고 실존 인물을 다루는 거라 실제 전태일과 닮게 그렸어요. 그런데 계속 보다 보니까 단순히 상징적인 형태의 일러스트 느낌이 드는 거예요. 그 모습으로 1시간이 넘는 이야기를 끌고 가긴 어려울 것 같아서 방향을 바꿨어요. 그 과정에서 중요하게 생각한 건 주변 인물과 밸런스가 잘 맞는, 과하게 튀지 않는 모습이었어요. 애초에 영웅 이미지를 탈피하려고 했으니까, 홀로 두드러지기보다 보편적인 청년의 이미지를 담으려고 했죠.
인물 외에 공간이나 소품, 거리 풍경은 당시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기 위해 세세한 검증을 거쳤다고 들었어요. 전태일이라는 인물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뿐이지, 없던 이야기를 만드는 건 아니니까요. 작은 것 하나도 허구로 만들어낼 수 없었어요. 제일 신경을 많이 쓴 건 당시 평화시장과 공장 안의 풍경이에요. 저는 그 모습을 경험하지 못했고 자료로만 봤잖아요. 평화시장에 답사도 여러 번 갔지만, 그때의 느낌은 아닐 테고요. 정확히 조사하고 제대로 표현하지 않으면 당시 그곳에 계셨던 분들은 다 알 것 같았어요. 잘못 그리지 않아야겠다는 마음이 컸어요. 그래서 일정 부분은 세트를 만들어 실제 인물이 연기해보는 가이드 촬영도 했어요. 특히 한미사 공장 신은 작은 공간에서 여러 명이 일하는 곳이라 그 안에서 디자인으로 가늠해서 동선을 짜는 게 쉽지 않거든요. 가이드 촬영을 한 덕분에 당시 공장의 구조와 분위기를 잘 살릴 수 있었어요.
여러 이유로 애니메이션으로 구현하는 과정이 어려웠을 거라고 짐작돼요. 기본적으로 따스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어차피 뒤로 갈수록 힘든 모습을 많이 보여줄 수밖에 없는 이야기라 그 무게를 좀 덜어내고, 힘들지만 다 같이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도 보여주려고 했거든요. 그런데 전체 숏에서 푸릇한 모습이 없는 거예요. 산에 나무가 없고, 공원도 있을 리 만무하고, 가로수도 드물던 시절이었잖아요. 심지어 주요 배경은 공장이고요. 쨍한 형광등 조명보다는 부드러운 백열등이나 남포등 같은 조명을 활용해 따뜻한 분위기를 만들긴 했는데, 그럼에도 식물 없이 가야 한다는 게 생각보다 어렵더라고요. 초록 식물이 그리웠습니다.(웃음)
지금으로부터 50여 년 전, 노동자들의 이야기입니다. 지금과 많이 다를 거라고 예상했는데, 의외로 겹쳐지는 지점이 하나 있었어요. 근로기준법이 존재한다는 사실이요. 취재하면서 근무 환경이 놀랍긴 했지만, 그건 예상한 부분이었거든요. 그런데 새삼 놀랐던 건 근로기준법의 존재였어요. 심지어 내용도 지금 있어야 할 것들이 고스란히 다 있더라고요. 조금씩 세부 사항만 더 추가한 거지 큰 뼈대는 그대로예요. 그런데도 상당히 많은 부분이 지켜지지 않고 있었던 거죠.
보면서 하루 근무시간(법정근로시간)이 8시간으로 (명시)돼 있다는 태일이의 말에 놀랐어요. 실제로 한미사 노동자들은 그에 훨씬 웃도는 시간 동안 일을 한 거잖아요. 그 외에 급여 관련 내용, 다쳤을 때 회사에서 보상해주는 부분, 생리 관련 휴가도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어요. 그랬기 때문에 태일이가 자신들의 현재 상황을 이해하기 힘들었고, 상식 밖이라고 느꼈을 거예요. 노동자라면 누구에게나 필요할 수밖에 없는 이 법의 존재를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었을 거고요.
태일이가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게 된, 가장 결정적인 장면은 언제라고 생각하나요? 같이 일하는 재봉사인 ‘영미’가 쓰러졌을 때요.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신이 태일이가 쓰러진 영미를 업고 달리는 장면이에요. 그때가 태일이에게 큰 전환점이 된 순간이었을 거예요. 그때까지는 일 열심히 하고, 주변 사람 잘 챙기는 좋은 사람으로 살았다면, 그 이후로 자신과 동료들이 억울한 일을 겪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됐고, 그래서 움직임이 시작된 거라고 생각해요. 아픈 동료가 보호받지 못하는 상황을 마주하고 안 되겠다 싶었던 거죠.
후반부 분신 장면에 대해서 묻고 싶습니다. 전태일이라는 인물을 말할 때 누구나 가장 먼저 떠올리는 장면일 텐데, <태일이>에서는 굉장히 짧게 그려져요. 고민이 많았어요. 분신 장면은 마지막까지도 어떻게 해야 할지 잘 결론이 안 났어요. 그런데 처음부터 달라지지 않았던 한 가지는 그날을 강조하고 싶지 않았다는 생각이었어요. 이 이야기에서 태일이가 몸에 불을 붙이는 건 그렇게 중요한 일이 아니었어요. 그런 순간이 있었던 것이고, 오히려 어떤 마음으로 거기까지 왔을지 관객들이 같이 느끼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렇지만 아예 안 그릴 순 없어서 당시 평화시장 사람들이 놀랐을 감정을 전달하기 위한 장치로만 짧게 담았어요.
목소리 연기에 참여한 배우들의 면면이 쟁쟁해요. 태일 역의 장동윤 배우부터 염혜란, 권해효, 진선규, 박철민 배우까지. 어마어마하죠. 이 분들과 함께해 너무 좋았습니다. 장동윤 배우는 제가 디자인한 태일이 캐릭터와 실제로 닮아서 신기하고 반가웠어요.
목소리 연기에 대한 어떤 디렉션이 있었는지도 궁금해요. 보통 애니메이션에서 더빙이라고 하면 이미 완성된 그림에 목소리를 맞추는 형태가 많아요. 그런데 대단한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들이라 이들의 연기를 더 잘 살리고 싶었어요. 일부러 그림이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먼저 연기를 자유롭게 해달라고 부탁했어요. 배우들의 연기에 그림을 맞춘 거죠. 그래서 훨씬 더 자연스러운 결과물을 만들 수 있었어요.
지금은 많이 바뀌었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겠지만, 그럼에도 노동자가 존재하는 한 전태일 열사의 이야기는 누군가를 생각하고 행동하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그가 바랐던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상식적으로 흘러가는 모습이지 않을까요.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일 텐데 일하면서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지, 왜 이런 게 잘 지켜지지 않지’ 하는 마음이 든다는 건, 억울한 일이 생겼다는 거잖아요. 모두가 상식적으로 법을 지키고 행동하면 세상이 아름다울 것 같은데 말이죠. 아마 전태일 열사도 같은 마음이었을 것 같아요. 그래서 목소리를 높였을 테고요. 저는 <태일이>를 통해서 대단한 운동을 벌이겠다는 마음은 없어요. 그저 상식을 지키자. 이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어요.
만약 전태일 열사가 살아 있다면, <태일이>를 보고 어떤 감상을 남겼을까요? 뿌듯하시겠죠. 그런데 한편으론 서운할 것 같아요. 50여 년이 흘렀는데 여전히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잖아요. 새로운 세상이 열렸으면 참 좋았을 텐데, 아쉬운 마음이 들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