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작가 고수리

작가 고수리 (@suri.see)

 

고수리는 에세이를 쓰는 작가이자 글쓰기를 가르치는 교수, 다섯 살 쌍둥이 형제의 엄마다. 에세이를 비롯해 각종 콘텐츠 구성과 카피라이팅, 큐레이팅 등 다양한 글 작업을 하는 프리워커로 일하고 있다.

 

작가님의 평일 하루 일과는 어떠한가요? 저는 아침을 일찍 시작하는 편이에요. 하절기에는 5시, 동절기에는 6시쯤 해의 시간에 맞춰 일어납니다. 가족들이 모두 집을 나선 9시 반 무렵이 되면 집 정리부터 자잘한 업무를 처리해요. 아침 겸 점심을 챙겨 먹고 11시쯤 집을 나서는데 일부러 2~30분쯤 걸을 수 있는 카페에 가서 작업을 하는 편이에요. 5시 이후로는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10시쯤 잠들기 때문에 평균적으로 4~5시간 작업할 수 있죠. 운동이나 대학 수업, 글쓰기 강의가 있는 날에는 이 시간을 쪼개어 쓰고 있기 때문에 작업할 수 있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아요. 시간이 부족한 엄마 작가이다 보니, 틈틈이 작업하고 몸을 움직이는 습관이 배어 있어요.

평일과는 다른 주말만의 루틴도 있나요? 주말에는 무조건 작업 스위치를 끕니다. 글도 쓰지 않고 SNS도 하지 않아요. 만일 주말에 꼭 해야 하는 일이 있다면 새벽에 일어나 미리 해두고, 해가 떠있는 시간에는 가족들과 보내고 있어요. 가족은 제게 가장 중요한 존재예요. 인생의 코어랄까요. 가족들과 즐겁고 행복해야만 모든 일을 건강히 해낼 수 있죠. 주말엔 늦잠도 자고, 가족들과 이불 속에서 게으른 아침을 보내다 도시락과 캠핑 장비를 챙겨 집 근처 공원으로 나들이를 갑니다. 어둑해질 때 즈음 흙투성이가 된 채로 짐을 끌고 돌아와요. 그런 날엔 아이들이 피곤해서 일찍 잠들어버리기 때문에 저녁엔 남편과 맥주를 마시며 넷플릭스로 영화나 드라마를 보곤 합니다. 완벽한 주말이죠.

 

 

에세이 작가 고수리

@suri.see

 

하루 중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시간은 언제인가요? 아침이요. 오랫동안 아침 리추얼을 이어왔어요. 시간에 쫓겨 마음의 여유가 없을 때에도 아침을 활용해 충전하고 있어요. 단, 생산성이나 합리성을 따지지 않고 자유롭게 읽고 쓰는 아침이어야 해요. 깜깜할 때 일어나 영감이 될 만한 책을 골라 아무 페이지나 펼쳐 읽다가 마음을 움직이는 문장을 만나면 옮겨 적고 곧바로 짧은 글을 쓰기도 하는 거죠. 저만의 아침 리추얼은 마음을 돌볼 수 있는 시간인자, 영감의 원천, 글쓰기의 동력입니다.

나의 주말에 빠질 수 없는 아이템이 있다면? 주말엔 주로 가족과 함께 자연에 둘러싸여 휴식을 취해요. 많이 걷고 뛰어야 하기 때문에 청바지와 운동화가 꼭 필요하죠. 어려서부터 시골에서 뛰어놀며 자라서인지 몰라도 자연에서 노는 걸 좋아해요. 벌레도 무서워하지 않고, 흙바닥도 개의치 않고, 맨발로 바닷가를 걷는 일도 좋아하죠. 가끔씩 주변에서 아들 둘을 키우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일지 걱정하는데, 저는 남자아이 둘과 단순하고 씩씩하게 노는 게 너무 재밌어요. 글을 쓸 때의 저와는 또 다른 면이죠. 아이 같은 구석이 있는 것 같아요. 할머니가 되어서도 내면의 천진난만함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다가오는 연말에 차분히 읽어보기 좋은 책이 있다면 추천해 주세요. 필리프 들레름(Philippe Delerm)의 <크루아상 사러 가는 아침>을 추천하고 싶어요. 작지만 보편적인 행복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에세이인데요. 겨울 아침 새벽 거리에서 갓 구운 크루아상 먹기, 맥주 첫 모금의 느낌, 바닷가에서 책 읽기처럼 소소하고 평범한 순간의 단상들이 담겨있어요. 연말에는 왠지 거창하고 특별해야 할 것 같잖아요. <크루아상 사러 가는 아침>처럼 사소하고 별거 아닌, 우리의 평일 같은 행복들을 모아보았으면 좋겠어요. 새해에도 그런 마음가짐으로 살았으면 하고요.

건강하게 글 쓰는 일을 지속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루틴이요. 꾸준함이라고도 할 수 있겠죠. 천천히 그러나 확실한 걸음으로 오래 쓰고 싶어요. 글쓰기는 삶을 언어로 꺼내 쓰는 일이에요. 작가가 살아가는 대로 쓰게 되죠. 그래서 더욱 글쓰기에만 매몰되지 않으려 노력해요. 건강한 몸과 마음, 현실의 일상, 그리고 글 쓰는 일 사이의 균형을 잡아가며 나만의 안전한 루틴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버지니아 울프는 “시간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한 사람의 얼굴을 바꿔놓듯이 습관은 인생의 얼굴을 점차적으로 바꿔놓는다.”고 말했어요. 10년 뒤에는 제 인생의 얼굴이 다정하고도 단단하기를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