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 안희수 감독이 ‘스스로 바라보는 나’와 ‘보여지는 나’의 차이에 대해 탐구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7명의 참여자에게 던진 질문이다. 감독은 이 질문에 답하는 참여자들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고, 이후 각 참여자가 시도하고 싶어하는 컨셉트를 기반으로 한 번 더 촬영을 진행했다. 감독과 충분한 대화를 나누며 컨셉트를 정한 참여자들은 2차 촬영에서 분홍색 소품들을 한껏 사용했고, 평소 도전하지 않던 스타일의 옷을 입었고, 몸에 대한 집착을 버리기 위해 나체로 자연 속에 섰다. 약 1년 동안 이어진 프로젝트에 함께하며, 참여자들은 ‘진짜 나’에 대해 고민한다. 그 고민의 과정이 다큐멘터리 <걸 위드 더 카메라>에 담겨 있다.
1월 20일에 개봉한 다큐멘터리 <걸 위드 더 카메라>를 통해 사진을 촬영하는 작업을 했는데, 오늘은 반대로 카메라 앞에 섰다. 나와 프로젝트에 함께한 참여자들은 모델 못지않게 잘해줬는데, 정작 내가 사진가를 답답하게 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 앞섰다. 쉽지 않았지만 재미있게 촬영했다.
좋은 경험으로 남기를 바란다. <걸 위드 더 카메라>를 극장에서 선보인 소감은 어떤가? 신기하다. <걸 위드 더 카메라>가 극장에서 개봉할 거라곤 상상조차 못 했기 때문이다. 창작자로서 다른 이들의 의견을 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인 만큼 기대하는 마음도 있다.
이번 작품이 2020년에 열린 제46회 서울독립영화제의 ‘새로운 선택’ 부문에 선정되며 일찍이 관객을 만난 적 있다. 서울독립영화제에 다녀와서 여러 후기를 찾아봤는데, 관객들이 작품을 보고 다양한 생각을 한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극장 개봉 이후 관객과의 대화(GV)에도 참여할 예정이다.
<걸 위드 더 카메라>가 대학 졸업 작품이라고 들었다. 언제부터 직접 작품을 만들겠다는 생각을 했는지 궁금하다. 예전부터 영화를 참 좋아했지만, 대학 진학 이후에도 영화감독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진 않았다. ‘그토록 영화를 좋아하면서 왜 직접 만들 생각은 하지 않느냐’는 대학 동기의 질문을 계기로 영화 제작과 관련한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수업을 통해 첫 작품으로 어머니와 딸의 관계를 다룬 단편영화를 만들었고, 그 이후 <걸 위드 더 카메라>가 탄생했다.
<걸 위드 더 카메라>는 ‘보여지는 나’와 ‘스스로 바라보는 나’의 차이를 탐구하는 작품이다. 이 주제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계기가 있나? 대학에 다니면서 주변 친구들이 ‘보여지는 나’에 굉장히 신경 쓴다는 걸 느꼈다. 요즘은 누구나 SNS 계정을 하나씩은 갖고 있고, 온라인상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이러한 사회적 분위기가 사람들에게 자연스레 영향을 끼치는 듯하다. ‘인스타그램에서 본 것처럼 해야 하나?’, ‘이렇게 해야 사진이 더 잘 나오나?’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 영향이 그다지 건강하게 느껴지진 않더라. 자아와 몸은 일종의 패키지인데, 내가 내 모습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얼마나 마음이 힘들겠나.
패키지라는 표현을 듣고 나니 ‘진짜 나를 찾아 나선 7인의 여정을 담은 셀프 언박싱 프로젝트’라는 <걸 위드 더 카메라>의 소개 글이 떠오른다. 배급사에서 홍보 측면을 고려해 잘 만들어준 문장이다.(웃음) 요즘 무언가를 언박싱하는 브이로그를 재미있게 보는 사람이 많다. 자기 자신을 언박싱하는 건 그보다 더 흥미로울 거라고 생각한다.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걸 위드 더 카메라> 참여자들의 열정에 포커스를 맞춰 이번 다큐멘터리를 감상하길 바란다.
프로젝트 참여자를 꾸리는 것이 중요했을 듯하다. 주제에 대한 고민을 나눠야 하니 말이다. 7명을 염두에 두지도, ‘이런 참여자가 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하지도 않았다. 프로젝트 시작 전 제작 발표회를 할 때, <걸위드 더 카메라>의 주제에 대해 같이 고민하고 싶은 사람의 지원을 기다린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친구의 친구, 얼굴만 아는 정도의 지인 등이 선뜻 함께해주었다.
프로젝트 진행자이자 다큐멘터리 감독으로서 무엇에 중점을 두며 연출했나? 참여자에게 그 무엇도 강요하지 않으려고 다짐했다. 내 의견을 이야기하고 싶어도 ‘조금 더 기다리자’라고 계속 되뇌었다. 프로젝트 안에서 참여자들을 자유롭게 놓아주고 싶었다.
<걸 위드 더 카메라>는 화면에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라는 문장이 나타나며 시작된다. 스스로 바라본본인의 모습에는 단편적인 인상으론 알 수 없는 저마다의 서사가 담기기 마련이다. 그래서 참여자들이 자신에대해 어떤 생각을 하는지 궁금했다. 이런 접근 방식이<걸 위드 더 카메라> 프로젝트에 적합하다고 느꼈다.
이 질문에 답하는 참여자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고, 몇 달 후 그들과 또 한 번 촬영을 했다. 1차와 2차, 각 각 어떤 목적을 갖고 진행했나? 1차 촬영에서는 참여자들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포착하고 싶었다. 참여자의집으로 찾아가 편안한 분위기에서 사진을 찍었고, 그들이 이야기하는 중간중간 예고 없이 셔터를 누르기도 했다. 반면 2차 촬영의 목적은 참여자가 시도하고자 하는 컨셉트를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1차 촬영을 마친 뒤 참여자와 만나 함께 2차 촬영을 준비했다. 그때 참여자가 사진을 통해 어떤 모습으로 보이고 싶은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 정말 많은 대화를 나눴다. 이 과정을 거치며 긴 머리를 단발로 자르거나 코에 피어싱을 한 친구도 있다.
1차 촬영에서 2차 촬영으로 넘어가기까지 적잖은 시간이 걸렸을 듯하다. 2차 촬영 컨셉트를 정한 이후에도 참여자들이 내게 종종 연락해 고민되는 지점에 대해 털어놓았다. 꾸준한 논의를 거치며 프로젝트를 진행해나갔는데, 그 과정을 <걸 위드 더 카메라> 안에 더 집요하게 담아내지 못한 게 개인적으로 아쉽다.
다큐멘터리에 그 과정을 담아내면서 캠코더의 흔들림과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음 등을 남겨두었더라. 참여자와 내가 이야기하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촬영한 결과다. 참여자들은 나와의 대화에 집중하다가도 종종 캠코더를 의식했다. 심지어 편집을 맡은 나조차도 캠코더를 세팅하면서 내 모습이 화면에 어떻게 비치는지 살펴봤더라. 그 장면들이 흥미롭게 느껴져서 일부러 삭제하지 않았다.
두 차례 촬영을 마친 뒤, 참여자들은 각자 제일 마음에 드는 한 장의 사진을 골랐다. 그 선택이 자연스러운 모습의 1차일 때도, 원하는 컨셉트를 시도한 2차일 때도 있었다. 이를 지켜보면서 <걸 위드 더 카메라> 프로젝트에서 중요한 건 결과가 아닌 과정이라는 생각을 했다. 보통 우리는 수많은 이미지 중 멋있고 예쁘다는 느낌이 드는 것을 선택한다. 그래서 참여자들도 당연히 본인이 잘 나온 사진을 더 좋아할 거라 짐작했는데, 예상과 달리 사진의 촬영 과정을 떠올리면서 고르더라. ‘촬영을 진행하면서 이런 생각을 했고, 그래서 이 사진이 더 좋다’라고 말하는 식이었다. 그게 이번 프로젝트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참여자들이 결정을내린 이후, 엔딩 크레디트와 함께 등장하는 마지막 장면이 인상 깊었다. 한 참여자가 노래방에서 마시따 밴드의 ‘돌멩이’를 부른다. 참여자와 같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가 촬영한 장면이다. 그땐 이 영상을 <걸 위드 더 카메라>에 넣겠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나중에 다시 봤더니 ‘나는 자유로운 새처럼 마음껏 하늘을 날고 싶어’라는 가사가 이 프로젝트와 잘 어울린다고 느꼈다. 영상 한쪽에 엔딩 크레디트를 넣기 좋은 공간이 있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웃음)
다큐멘터리의 시작부터 끝까지,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이미지가 범람하는 시대에 조금이라도 시간을 가지며 자신을 들여다보자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걸 위드 더 카메라>의 참여자들이 이 메시지의 첫 수신자인 셈이다. 3개월이 지나도록 촬영의 결과물을 보여주지 않은 참여자도 있었다.
요즘에는 스마트폰 등을 활용해 쉽게 사진을 찍고 지울 수 있다. 그게 이미지에 대한 집착을 더 키우는듯하다. 그런 것 같다. 촬영 후 일정한 시간이 지나야 사진을 확인할 수 있는 필름 카메라 애플리케이션이 있는데, 그 기다림을 참지 못해 스마트폰에 설정된 날짜와 시간을 바꾸는 이들도 있더라. 때로는 필름 카메라 특유의 강제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걸 위드 더 카메라>의 참여자들은 모두 20대 초·중반이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고민이 비슷한 나이대의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건 아니라고 느꼈다. <걸 위드 더 카메라>를 본 한 중년 관객이 내게 “참여자들의 모든 여정이 아름다웠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생각보다 다양한 연령의 사람들이 ‘보여지는 나’와 ‘스스로 바라본 나’에 대해 고민하는 것 같다. <걸 위드 더 카메라>를 통해 그 고민의 무게를 덜어줄 용기를 심어주고 싶다. 우리 모두 비슷한 고민을 안고 살아가고 있으니 이미지 안에 자신을 지나치게 옭아매지 않으면 좋겠다. 더 많은 사람이 자아와 몸의 화해를 향해 한 발짝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자칫하면 무겁게 여겨질 수 있는 이야기다. 하지만 <걸 위드 더 카메라>를 보고 나니 그다지 어렵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그 말이 내게는 아주 큰 칭찬이다. <걸 위드 더 카메라>를 통해 앞으로 내가 무엇을 해나가야 할지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무거운 주제일지라도 유쾌하게 풀어내고 싶다. 그래야 관객들이 보다 친근하게 작품에 접근할 수 있을 테고, 그 안에 담긴 이야기도 더 널리 전해질 수 있을 것 같다.
그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떠올린 다음 주제는 무엇인가? 환경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다만 아이디어만 구상해둔 상태라 이게 차기작이 될지는 잘 모르겠다. 다큐멘터리와 영화, 극장과 그 이외의 다양한 채널 등 영역을 한정 짓지 않고 우리가 꼭 생각해봐야 하는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