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브리엘라 허스트는 평생 동안 두려움과 이를 극복하는 방법에 관한 목록을 작성했다. 그가 ‘소원 수첩’이라고 부르는 이 목록에는 근래 주로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해 해야 할 일이 빼곡히 적혀 있다. 그의 이런 고민은 실제로 행동해야만 해소할 수 있다. 우루과이 출신 미국인 여성 디자이너인 그는 2015년부터 럭셔리 상품과 지속 가능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뉴욕 지사 책임자로 부임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알린 그는 이후 지금까지 끌로에(Chloé)가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하는 데 큰 몫을 했다. 2021년 10월의 어느 일요일, 자신의 사무실에서 우리를 맞이한 그는 파리 지사에서 막 시작한 친환경 운동에 대해 이야기했다. 섬세하면서도 강단 있어 보이는 이 남미 출신 여성은 기후 문제에 대해 이야기할 때만큼은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만큼 호소력 짙은 목소리로 인터뷰에 응했다. 그는 인터뷰 후반에 이렇게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2020년 말부터 끌로에의 수석 아트 디렉터로 활동하고 있어요. 조만간 창립 70주년을 맞는 끌로에, 기성복의 대가인 이 브랜드를 위해 앞으로 어떤 활동을 할 계획인가요? 끌로에가 지향하는 미감은 매우 자연스러워요. 저는 이 아름다움에 대해 말하고 이해하며 그것을 무척 사랑해요. 무엇보다 끌로에는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 즉 지속 가능성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필요한 모든 자원을 적극적으로 제공합니다.
탄소발자국을 줄이면서 패션 회사를 탄탄하게 유지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요? 현재로서는 성공적인 모범 사례를 찾기가 매우 어려워요. 다른 분야에 비해 기성복 브랜드가 특히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아직 완벽한 단계는 아니니까요. 언젠가 우리 회사가 그걸 증명할 날이 올지도 모르죠. 우리가 다 함께 실천할 수 있는 공식 매뉴얼이 만들어진다면 어느 브랜드가 가장 먼저 그 해결책을 찾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이 길은 그저 제 사명인 동시에 제 삶에 동기를 부여해 매일 아침 저를 일어나 움직이게 하죠. 제가 가진 능력을 뛰어넘어 더 발전하는 계기를 마련해줄 인생 최대의 미션인 셈이죠.
“저도 제가 좀 과하다는 걸 잘 알아요.
환경문제만큼은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신경을 쓰는 것도 사실이고요.
지구상에서 손에 꼽을 만큼
공해를 많이 일으키는 산업 분야 중 하나인
패션계에 종사하기 때문에 더욱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 같아요.”
끌로에는 컬렉션마다 환경오염을 줄이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나요? 첫 단계는 직물 소재를 검토하는 일이었어요. 어떤 소재가 환경에 가장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내는 일에 열중했죠. 그 결과, 아마(리넨) 소재가 면보다 더 낫다는 걸 알아냈어요. 아마 에는 인간이 섭취할 수 있는 영양 성분이 들어 있어서 씨는 식용으로도 사용해요. 다른 작물에 비해 물을 덜 주고 제초제와 살충제를 덜 써도 잘 자라고요. 목화솜을 얻으려면 다량의 살충제를 써야 하기 때문에 곤충의 생존에 위협이 될 수 있어요. 곤충이 없는 세상에서는 인간도 생존할 수 없는 법이죠.
끌로에를 선호하는 소비자는 자신의 옷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고 싶어 하나요? 솔직히 선의의 목적으로 옷을 구입하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은 개인적 욕망을 채우기 위해 물건을 구입하고 아름다워지기 위해 돈을 쓰죠. 하지만 이제는 옷 제조 공정에 대해 묻는 소비자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어요. 그들은 우리에게 공정에 대해 묻고 우리가 경제적 투명성을 지향하는지 알고 싶어 해요. 어떤 물건을 소비하면서 죄책감을 느끼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들이죠. 앞으로 환경을 존중하지 않는 방식으로 생산한 제품을 쓸수록 죄책감을 느끼는 세상이 펼쳐질 것 같아요. 이런 의미에서 소비자가 제품이 만들어지는 모든 과정을 알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제조 과정을 더욱 투명하게 한다는 건 어떤 뜻이죠? 끌로에 직원들은 저마다 책임감을 느끼며 일하고 있어요. 요즘 우리는 ‘라이프 사이클’을 분석하는 전문 독립 기관인 콴티스(Quantis)와 협업하고 있어요. 콴티스의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친환경 운동화 모델인 ‘나마(Nama)’를 만들었어요. 일반적인 제조 과정에 필요한 물 사용량의 80%까지 절감하고, 이전 모델보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35% 줄이면서 제품을 생산하고 있죠. 공장에서 대량으로 생산하는 운동화와 끌로에의 친환경 운동화는 이런 면에서 확실히 제조 과정이 다르다고 할 수 있어요. 끌로에는 한 가지 모델을 대량생산해서 매주 수천 켤레를 판매하는 회사와는 완전히 다른 길을 추구합니다.
진정한 럭셔리라면 대중에게 뭔가 다른 걸 보여줘야죠. 환경운동을 뛰어넘어 제조 과정의 인간적인 측면까지 신경을 쓰시죠? 컬렉션에 기여한 장인들을 일일이 언급했다고 들었어요. 환경운동과 사회운동은 분리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최근 파리에서 선보인 2022 S/S 끌로에 컬렉션이 특히 만족스러운 무대였어요. NGO 단체 7곳이 참여했는데, 많은 인력을 동원했죠. 무대 세트는 아프리카의 벽돌공 여성들이 만든 진흙 벽돌로 장식했어요. 건축 기술을 배우는 여성을 돕는 세네갈 비정부기구에 소속된 분들이죠. 또 신발은 오션 솔(Ocean Sole)이라는 케냐 단체와 협업해 제작했습니다. 바닷가에 버려진 통 샌들을 재활용해 만든 리사이클링 제품을 무대에 올렸는데, 그 결과는 말 그대로 ‘대박’이었어요. 여러 사람이 함께 참여해 이룬 공동 작업의 결실이기에 저는 감히 그렇게 말하고 싶어요.
끊임없이 새로운 무언가를 추구해야 하는 패션 분야에서 과연 지속 가능한 컨셉트가 현실적으로 가능할까요? 그런 이유로 패션 분야가 지금까지 질타를 받은 게 사실이에요. 하지만 우리가 다시 생각해봐야 하는 건 경제 시스템이에요. 산업혁명으로 지구온난화가 초래되었기 때문에 앞으로 자본주의를 대체하기 위해 순환 경제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어요. 결국 우리가 사용해야 할 것은 천연자원으로 귀결될 겁니다. 그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에요.
환경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사람들은 제게 매우 과감하다고 말하지만, 사실 저는 기후 불안을 호소하고 있는 거예요. 인류에게, 그리고 미래의 후손들에게 지구온난화가 가져올 파장에 대해 극도의 공포를 느끼기 때문이에요. 요즘 이 주제를 다룬 공상과학소설을 읽고 있어요. 킴 스탠리 로빈슨(Kim Stanley Robinson)의 <미래부(The Ministry for the Future)>란 작품이죠. 제 머릿속을 맴도는 생각들이 이 책 첫 문단에 현실로 나타납니다. 아침에 발코니에서 자던 사람들이 죽는 에피소드인데, 아침 기온이 38℃를 웃도는 세상이 된 거예요. 전 사우나를 하면서도 어쩌면 미래에 이렇게 더운 세상에서 살게 되는 건 아닐까 종종 상상해요.
그런 불안감을 맨 처음 느낀 때가 언제였나요? 2017년에 아프리카를 여행하면서 현지 주민들이 기후 문제로 엄청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실상을 직접 목격한 때였던 것 같아요. 그 장면이 큰 충격으로 다가온 거죠. 제가 방금 언급한 소설 내용이 그곳에서는 이미 현실이었어요. 그만큼 가뭄이 심해 꼬박 8시간을 걸어야 겨우 물을 구할 수 있었거든요. 고작 진흙탕 물 2리터를 얻기 위해 그런 고생을 하는데, 그 소량의 물조차 여럿이 나눠 써야 하는 열악한 상황이었어요. 과거에는 패션계 종사자 중 누구도 지구온난화에 대해 언급하고 싶어 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어요. 끔찍한 현실을 고발해야 할 때가 온 거죠. 전문가들이 앞으로 10년 안에 대서양에 쓰나미가 일어날 거라고 예고하잖아요! 그나마 몇몇 단체가 솔선수범해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어 다행이에요. 영국 농민 이자벨라 트리(Isabella Tree)는 경작지를 야생 상태로 되돌리는 프로젝트를 실행에 옮겼고, 결과는 성공적이었죠. 또 우리가 친환경 기업 메르 나튀르(Mère Nature)에 신념을 펼칠 기회를 충분히 준다면 분명 대자연을 정화하는 힘을 발휘할 거라고 저는 확신해요.
어릴 때 우루과이의 목장에서 살았다고 들었는데, 혹시 자연에 대한 이런 깊은 관심이 유년기의 영향인가요? 맞아요. 어릴 적 제게 자연은 유치원 같은 곳이었어요. 제 머릿속은 문명과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 닿아 있었어요. 생각하는 방식 자체가 도시와 달랐으니까요. 그때 저는 산업화 이전 시대처럼 살았어요. 우리 집안은 2백 년째 대대로 목축업을 가업으로 이어받아 생활했어요. 소들이 들판에서 자유롭게 풀을 뜯어 먹으며 자랐으니 당연히 유기농 소고기를 생산하는 곳이었죠. 우리 목장은 토지를 무분별하게 개발하지 않고 땅이 스스로 재생될 때까지 기다렸어요. 요즘 사람들이 말하는 재생 농업을 예전부터 고수해온 거죠. 이런 환경에서 나고 자랐으니 당연한 거겠죠. 제 생각에 목장만큼 순환 경제를 올바로 실행하는 곳은 그 어디에도 없는 것 같아요. 부모님은 당신에게 어떤 가치를 심어주고 싶어 하셨나요? 우리 집안이 5대째 가업을 이을 수 있었던 건 바로 자연을 소중히 여기는 신념 덕분이었어요. 모든 것을 재활용하려 했고 낭비하는 법이 없었죠. 심지어 아버지는 빈 물감 통도 그냥 버리지 않고 말에게 물을 주는 물통으로 쓰셨어요. 집에서 가장 가까운 가게에 가려면 차로 2시간 30분을 가야 했죠. 화장실도 집 밖에 있었어요. 어머니는 평생 화장실이 실내에 있는 집에서 사신 적이 없어요. 현대인의 삶과 공통분모 없는 생활을 하고 계시죠.
“어느 브랜드가 가장 먼저 탄소발자국을
줄이면서 패션 회사를 탄탄하게 유지하는지,
그 해결책을 찾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이 길은 그저 제 사명인 동시에 제 삶에 동기를 부여해
매일 아침 저를 일어나 움직이게 하죠.”
본인의 옷장 안에는 무엇이 있는지 말해주시겠어요? 패션 디자이너의 옷장치고는 아주 소박해요. 저는 항상 양보다 질을 선택하는 편이에요. 어머니의 작은 옷장은 평생 모은 맞춤복으로 채워져 있죠. 어머니는 해마다 새 옷을 사지 않고 세일 기간에만 필요한 옷을 사셨어요. 어머니는 재봉사에게 질 좋은 옷을 맞춰 입는 걸 좋아하셨죠. 좋은 스웨터 한 벌이 값싼 기성복 열 벌보다 훨씬 더 낫다고 생각하셨으니까요. 금방 해지고 늘어나는 싸구려 옷보다는 돈을 더 주더라도 오래가는 옷을 선호하셨어요. 지구를 구하기 위해 개인적으로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요? 세 아이를 낳았으니 이미 지구에 큰 죄를 지은 셈이에요. 이 세상을 오염시키는 주범인 인간을 더 태어나게 했으니 잘못을 저지른 거죠. 하지만 그렇게 말하기에는 아이들이 너무나 사랑스러운걸요…. 저는 아이들에게 행동의 도덕성을 가르치려고 노력해요. 아이들이 미래 세대에 물려줄 세상에 대해 분명한 세계관을 가질 수 있도록 말이에요. 그렇게 함으로써 아이들이 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 책임감을 가져야 해요. 확실히 요즘 젊은이들은 기성세대와 완전히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어요. 브랜드를 바라보는 시선도 그렇고 사회학적 성(性)을 다루는 젠더 이론이나 인종문제를 보는 시각이 어른들과 많이 다르더라고요. 오히려 아이들의 시선이 더 인간적이고 차이를 겸허히 받아들이며 인정할 줄 아는 것 같아 내심 뿌듯해요. 그래서 한 줄기 희망의 빛이 보이는 것 같아 가슴이 벅차고 눈물이 날 때도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