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더 또렷한 시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여성, 외적 변화에 스스로를 가두지 않는 여성,
죽음을 맞는 순간까지 꿈을 좇아 일하고 싶은 여성. 같은 시대에 살고 있지만 다른 시간을 지나온 세대별 여성들의 이야기가 교차할 때,
우리는 서로의 용기가 된다. 나이 따위는 우리의 삶에 어떤 걸림돌도 되지 않는다는 듯.

 

10대 | 강나리 · 임금비

“10대 여성은 순수하게 아름다워야 한다는 사회적 시선을 ‘찢어발기고’ 싶어요.”

강나리 임금비

강나리 니트 카디건 트렁크 프로젝트(Trunk Project), 하이탑 슈즈 나이키(Nike)
임금비 빅칼라 니트 트렁크 프로젝트(Trunk Project), 운동화 나이키(Nike)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문제아 취급을 받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이들이 진짜 문제아인지, 혹시 문제아를 규정하는 세상 자체가 문제는 아닌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문제없는 스튜디오’에는 10대의 ‘문제없는 문제아’들이 모여 있다. 청소년의 관점으로 발견할 수 있는 문제들을 알리는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서다. “청소년이 처한 여러 어려움이 세상에 잘 드러나지 않아요. 문제없는 스튜디오의 청소년들은 10대의 다양한 정체성을 주제로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아요.”(강나리) 강나리 에디터는 성 소수자 청소년의 산부인과 브이로그 제작과 트위터 채널 운영을, 임금비 에디터는 청소년 비건 브이로그와 청소년의 성을 소재로 한 영상 제작을 함께 했다.

사회를 바라보는 두 청소년의 시각은 일상에서 형성되었다. “인간이 왜 소와 돼지를 먹는지 의문을 갖기 시작하면서 비윤리적 축산과 도축 과정에 대해 알게 되었어요. 그 이후 비건을 지 향하고 있어요.”(임금비) 비건에 대한 관심은 자 연스레 환경과 기후 위기, 동물권, 소수자 인권 으로 확장되었다. 이들의 시선에 포착된 사회문 제 안에는 일맥상통하는 논리가 있다. “인간이 비인간과 자연에, 남성이 여성에게, 비퀴어가 퀴 어에게, 나이 든 사람이 어린 사람에게 행하는 폭력엔 비슷한 지점이 있어요. ‘내가 알 수 없고 공 감하지 못하는 너의 존재는 무의미하니 난 너를 지배할 수 있다’는 관점이에요. 이런 생각을 마주 하면서 ‘소수’ 이슈들이 어떻게 내 삶을 교차하고 차별과 특권이 생기는지 살피게 되었어요.(강나리) 문제없는 스튜디오에서 자신과 뜻을 함께하 는 청소년들과 교류하며, 두 청소년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오늘날 사회가 다루는 10대의 목소리는 모든 청소년을 대변하지 않는다. 미디어에 등장하 는 10대는 대부분 중·고등학생이고,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 투표할 수 있는 사람은 선거일을 기 준으로 ‘만 18세 이상’이어야 한다. “나이가 어리거나 학교를 다니지 않는 청소년에게도 발언권이 주어지고, 사람들이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면 좋겠어요. 사회가 미성숙하다고 여기는 청소 년은 시민이 아닌지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강나리)

한국 사회에서 10대에게 부여하는 가장 큰 업무는 학업이다. 대학 입시를 준비해야 하니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미룰 수밖에 없다. “도전했다가 실패하더라도 10대는 다른 세대에 비해 앞으로 더 많은 가능성을 품고 있어요. 하지만 그 도전은 학업이라는 틀 안에 한정되어 있어요. 공부를 잘하지 못하거나 소위 모범생과 거리가 먼 청소년이 무언가를 시도하면 그걸 왜 하느냐는 반응을 보이는 현실이 안타까워요.”(임금비)

인문계 여자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강나리 에디터는 치마를 무릎까지 내려오게 입어야 하고, 화장을 할 수 없고, 화려한 귀고리를 빼야 한다는 식의 교칙을 자주 접한다. 여성 청소년의 신체 권리를 유예하는 말들을 들을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한다. “10대 여성은 순수하게 아름다워야 한다는 사회적 시선을 ‘찢어발기고’ 싶어요.”(강나리) 차별 없는, 모두를 포용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세대로서 10대 여성의 삶은 가치를 지닌다. “성 평등을 추구하면서도 성 갈등이 심한 시기예요. 성 평등이 주요 담론이 되는 사회를 지향하며 행동하고, 성 갈등 해소책을 슬기롭게 찾아가는 것이 청소년의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임금비)

 

20대 | 김지현 · 강화원 · 김지영

“다정한 결기를 가진 할머니가 되고 싶어요.”

김지현 · 강화원 · 김지영

김지현 재킷코스(Cos), 니트 앤아더스토리즈(& Other Stories), 하이탑 슈즈 컨버스(Converse), 팬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강화원 니트 아페쎄(A.P.C.), 핀턱 팬츠와 클로그 모두 아르켓(Arket).
김지영 니트집업 에이치엔엠(H&M), 와이드 데님 팬츠 아르켓(Arket), 로퍼 앤아더스토리즈(& Other Stories).

 

“다정한 결기를 가진 할머니가 되고 싶어요. 그땐 기차를 타고 국경을 넘을 수 있지 않을까요?”(김지영) “결기가 다정하다니. 쉽지 않겠는데.”(강화원) “그러니까 할머니만 할 수 있는 거지.”(김지현) 프리랜서 김지영, 교육협동조합에서 일하는 싱어송라이터 강화원, 훌라 댄스 강사 김지현은 퍼커션을 연주하고 노래를 부르며 몸소 ‘평화를 하는’ 퍼포먼스 팀 ‘레츠피스(Let’s Peace)’의 20대 단원이다. ‘서울역을 국제 역으로’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한반도의 평화 체제 구축을 외치며 기후 위기, 노동권, 동물권 등 개인과 세상의 평화를 위해 능동적으로 행동하는 20대 여성들이다.

스무 살이 되었을 땐 어른을 유예하고 싶었어요. 나의 따뜻했던 시절이 끝났다 싶었죠. 대학에 가지 않았으니 새로운 미래도 보이지 않고 크게 기대되지도 않았고요.”(김지현) 20대가 된다는 것은 설렘과 해방감을 만끽하는 동시에, 대학에 가지 않은 청년의 불안감과 성인으로 지녀야 할 책임감을 마주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두려운 마음이 들 때면 20대를 살아낸 여성 선배들을 응시했다. 대학에 가지 않고 커리어를 쌓은 여성, 아이를 낳고 꾸준히 자기 일을 해나가는 여성, 나를 낳고 키운 엄마라는 여성. 좋아하는 여성들이 자꾸만 늘어났고, 그들이 살아서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용기와 힘을 얻었다.

세상이 20대 여성을 중심으로 변하고 있다는 걸 느낄 때면 짜릿하고 통쾌했다. 20대 여성에게 씌워진 ‘긴 생머리의 여릿여릿한 여대생’ 따위의 고정관념을 신나고 즐겁게 깨부수고 있다고 생각했다. “2019년에 ‘낙태죄 헌법 불일치’ 판결이 나던 날, 광장에서 모르는 여성들과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를 떼창 한 적이 있어요. ‘이건 이상한 거야’라고 언어를 축적하고, 함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여성이 이렇게 많다는 사실에 벅차올랐죠. 그 느슨한 연대감이 소중했고요.”(강화원)

평화와 멀어지는 사회의 모습이나 정세를 볼 때면 답답한 마음에 좌절하기도 했다. “차별 의식이 담긴 말을 들으면, 처음에는 화가 나서 말도 잘 못 했어요. 그런데 이제는 그냥 웃긴다고 생각해요. 바꿔야 할 역사가 아주 길다는 걸 이젠 알거든요. 우리는 그냥 하던 대로 유쾌하고 앙큼하게 나아가면 될 것 같아요.”(김지현) 무력감을 이겨낼 면역력은 어디에서 얻느냐고 묻자, 김지현 단원은 ‘약자의 입장에서 목소리를 내는 친구들’이라고 답했다. 당장 내 일이 아닐 수 있는 낙태죄 폐지나 동물권 같은 문제에 관심을 두는 친구들이 있기에, 내가 약자의 입장에 서더라도 함께 고쳐줄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고 말이다.

나이가 들어 할머니가 되었을 때 어떤 세상이 도래하길 바라냐고 묻자, 잠시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 강화원 단원이 ‘그때까지 지구가 살아 있었으면 좋겠다’고 입을 떼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김지현 단원은 그때도 다퉈야 할 일이 많겠지만, 지금의 문제는 해결되고 더 나은 새로운 일들로 투쟁하고 싶다고 말했다. 내가 틀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할머니(강화원), 결기와 다정함을 공유할 친구들이 있는 할머니(김지영), 새로운 것에 무뎌지지 않고 여전히 춤추는 할머니(김지현)가 되고 싶다는 소망을 전했다.

정말로 우리가 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작은 의구심이 들었을 때, 김지영 단원이 말했다. “혼자만 할머니가 되고 싶지는 않아요. 무사히 할머니가 되기 위해선 모두가 잘 존재할 수 있는 순간들을 쌓아가야 하지 않을까요? 서로의 이야기에 진심으로 귀 기울이고 궁금해하는 순간이 늘어났으면 해요. 누군가는 할머니가 되고, 누군가는 할아버지가 되고, 할머니나 할아버지로 불리기 싫은 존재들도 잘 살아갈 수 있도록요.”

 

 

30대 | 옥상달빛 (김윤주 · 박세진)

“나이를 벽으로 두지 않으려는 노력은 멈추지 않으려고 해요.
지금이라서 더 좋은 것을 찾기도 하고요.”

옥상달빛 김윤주 박세진

김윤주 니트 레이바이매치스패션(Raey by MATCHESFASHION), 오버핏 팬츠 프랭키샵바이매치스패션(The Frankie Shop by MATCHESFASHION), 스니커즈 컨버스(Converse).
박세진 트렌치코트 아르켓(Arket), 터틀넥과 팬츠 자라(Zara), 스니커즈 컨버스(Converse).

 

“30대 중반이 넘어서면서 어느 정도 나이에 맞게 말하고 행동해야 하나 싶을 때가 있어요. 물건 하나를 살 때도 ‘이제는 나이가 있으니 제대로 된 걸 사는 게 낫지’ 하고, 무슨 말을 할 때도 ‘주책없이 굴지 말아야지’ 싶은 거죠. 생각보다 소소한 것에서 나이를 신경 쓰게 돼요. 나이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직업을 가졌는데도 말이에요. 그런데 이런 생각에서 벗어나야 할 것 같아요. 사실 ‘나이에 맞게 산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 말이잖아요. 탈색하면 하는 거고, 짝이 맞지 않는 양말을 신으면 신는 거죠. 생각은 그런데, 마음속 어딘가에서 올라오는 그러면 안 된다는 생각을 막는 게 쉽진 않아요.”(김윤주) “우리 둘 다 태생적으로 엄청나게 자유로운 성향의 사람은 아니라 그런 것 같아요. 그럼에도 나이를 벽으로 두지 않으려는 노력은 멈추지 않으려고 해요. 지금이라서 더 좋은 것을 찾기도 하고요.”(박세진)

뮤지션 옥상달빛의 김윤주와 박세진에게 30대는 ‘비로소 어른이 되는 나이’였다. 법적으로 규정하는 성인이 아니라 스스로 어른이라 자각하는 시기. 한동안은 더 이상 실수나 방황이 용인되지 않는다, 그러니 어른스럽게 행동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자유롭기 어려웠다. 뮤지션이라는 정체성과 별개로 두 사람을 ‘30대 여성’으로 바라보는 이들에게 결혼에 대한 압박(박세진)과 출산에 대한 압박(김윤주)도 심심찮게 받았다. 나이 앞에서 멈칫하게 되는 순간을 지나 그저 나로서 지금을 즐기게 만든 건 결국 ‘음악 하는 나’다.

“음악 하는 사람으로서는 나이 드는 게 되게 좋더라고요. 음악으로 시간을 쌓아온 사람이 만들어내는 깊이라는 게 있잖아요. 앞으로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축적해야겠지만, 확실히 이전보다 시선이 넓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요. 20대에는 당장 눈앞에 있는, 우리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면 이제는 주변으로, 더 넓게는 사회로 자연스럽게 시선이 퍼지고 있어요. 이런 변화를 감지하는 게 즐겁고, 우리가 앞으로 계속 쌓아갈 것들이 기대돼요.”(김윤주) “10년 이상 음악을 해오면서 이제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걸 좋아하는지, 어떤 게 잘 어울리는지 알게 되면서 나름의 명확성이 생겼어요. 계속 새로운 걸 찾고 시도하는 일만 게을리하지 않는다면 40대, 50대가 되어도 설레며 음악 할 수 있을 것 같아요.”(박세진)

더 넓은 시각으로 노래하는 두 사람은 이제 더 많은 여성들이 나이 밖으로 나오기를 희망한다. “각자의 사연이 있을 거예요. 30대를 살아내면서 어떤 사람은 행복했고, 어떤 사람은 슬펐고, 어떤 사람은 별 거 없었을 수도 있어요. 각설하고, 다 괜찮다는 말을 해주고 싶어요. 나를 붙잡는 것들에 연연하지 말자. 우리에겐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많다. 새로운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그러니 멈추지 말자. 다 괜찮으니까.”(박세진)

 

 

40대 | 임선애

“중년에 진입하는 것은 위기가 아니라 터닝포인트가 될 수 있다,
그러니 자신을 믿어도 좋다고요.”

임선애

블라우스 셀프포트레이트(Self Portrait), 이어링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서른아홉에서 마흔으로 넘어가던 시기, 임선애 감독은 스토리보드 작가에서 연출자로 방향을 선회해 데뷔작이 된 영화 <69세>의 시나리오를 쓰고 있었다. 대체 이게 영화로 만들어질 수 있을지 가늠하지 못한 채로. “운전에 비유하자면 비보호 좌회전 길 앞에서 대기 중인 느낌이 들었어요. 명확한 신호 없이 스스로 앞과 뒤, 옆을 잘 살피면서 움직일 타이밍을 보고 있는 거죠. 불안감도 있었지만 좌회전을 하면 어떤 길이 나올지 설렘이 더 컸던 것 같아요.”

마흔이라는 나이는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일에서 자아를 찾기에 이미 늦었다고 규정될 때가 많다. 아이를 키우는 기혼 여성이라면 더욱 그렇다. 늦은 시간에 밖에 있는 것만으로도 ‘집에 가기 싫구나’ 혹은 ‘빨리 들어가’라는 말을 듣는 사회에서 새로운 영역에서 나의 작품을 완성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임선애 감독은 첫 영화를 내놓기에 마흔셋의 나이가 딱 적당했다고 답했다. “<내가 누군지도 모른 채 마흔이 되었다>라는 책이 있어요. 저는 마흔을 지나서 보긴 했는데(웃음) 내용이 굉장히 흥미롭고 새로워요. 이 책에선 마흔을 중간 항로라 부르고, 이는 ‘지금까지의 내 삶과 역할을 빼고 나면 나는 대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때 비로소 시작된다고 말해요. ‘자기감’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말하자면 마흔은 진짜 나를 찾는 기회라는 거죠. 그 말에 무릎을 탁 쳤어요. 생각해보니 제가 그랬더라고요. 마흔 즈음에 그때까지 하던 일들에서 벗어나 다른 길을 찾았어요. 그래서 어떻게 됐느냐고요? 지금 제 인생에서 가장 좋은 시기를 지나는 중이에요. 다른 분들도 이 나이를 조금 더 설레는 마음으로 받아들이면 좋겠어요. 중년에 진입하는 것은 위기가 아니라 터닝 포인트가 될 수 있다, 그러니 자신을 믿어도 좋다고요.”

그렇게 막 새롭게 시작한 그에게 나이 드는 것은 ‘늙는 것’이 아니라 ‘자라는 것’이다. “제가 하필 <69세>라는 나이가 숫자로 박혀 있는 제목의 영화를 만들고 나서 저보다 연배가 높은 분들의 칼럼이나 감상평을 많이 봤어요. 그 글들을 보면서 ‘나이 듦’에 대해 사유하는 시간이 생겼는데, 그러면서 도달한 결론이 나이를 숫자로 셈하는 건 무의미하다는 거였어요. 나무를 볼 때 ‘나이가 들었네’라고 표현하기보다는 ‘잘 자랐네, 잘 자라고 있구나’ 이렇게 느끼잖아요. 나무가 죽거나 벌목되면 비로소 단면에서 그 나이가 드러나듯이 저도 나무처럼 나이 듦에 연연하기보다는 그냥 잘 자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어요. 그렇다고 거대하거나 거창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마음을 갖는 건 아니에요. 나무가 가진 본질적인 아름다움이 있잖아요. 저도 딱 그만큼만 아름다웠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커갈수록 누군가에게 조금의 그늘을 내어줄 수 있는 사람이 고 싶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또 하나의 바람이 있다면, 잘 존재하는 것이다. ‘존재함으로 존재함’이라는 표현을 생각해봤어요. 어느 나이나 그렇겠지만, 어쨌든 지금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스스로에게 힘이 되는 지점이 있거든요. 더군다나 코로나19 시대잖아요. 40대 여성 중 하나로 살았던 삶이 먼 미래의 누군가에게 살필 의미가 있는 기록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러니까 아직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존재 가치가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50대 | 길해연

“외적으로 아름답고 젊어 보이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면 나이 드는 건 부끄럽거나 노여워할 일은 아닌 것 같아요.”

길해연

블라우스 레하(Leha), 팬츠와 네크리스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스물셋, 친구들과 10년만 해보자는 생각으로 극단을 만들었다. 그땐 10년도 까마득했으니까. 그리고 서른셋이 될 때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여전히 가난하고 똑같이 힘들었다. 더 치열하게 다음 10년을 달렸다. 뜨겁게 불타올랐다 절망하고, 그래도 해보자는 마음을 오가며 30여 년의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50대 후반이 된 배우 길해연과 그의 친구들은 이제 각자의 길을 걷고 있다. 여전히 연극을 사랑하는 마음을 간직한 채, 보다 겸허하고 자애로운 모습으로.

“40대까지만 해도 의욕에 차 있었어요. 여전히 투쟁적이었고요. 제가 지금 50대에서도 후반에 들어가요. 이쯤 되니 천천히 움직이면서 눈에 보이는 게 많아지는 것 같아요. 걸음이 빠르면 옆을 그냥 지나치기 쉽잖아요. 지금은 옆을 자주 보게 돼요. 그러면서 풍경도 새로 보이고, 사람들에 대한 인식도 새로워지고. 나이가 든다는 건 몰랐던 걸 알아가는 순간의 연속이지 않나 싶어요. 나이 들면 고집이 는다고 하는데, 저는 거꾸로 ‘이건 이거잖아’라며 확신하던 것들이 없어지고 있어요. ‘내 생각은 이런데 그래도 뭐가 또 있지 않을까?’ 싶은 거죠. ‘앎’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나이가 들면서 알아간다, 그거 되게 멋진 일인 것 같아요.”

다만 아쉬운 것은 50대 여성을 향한 시선이다. “어떤 자리에서 ‘여기 여자는 나밖에 없네?’라고 하니까, 누가 ‘누님, 아직도 본인을 여자라고 생각하는구나’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내가 나이 들면 남자가 되니?’라며 웃고 말았는데, 애초에 한 사람이 아니라 여성으로 보는 데다, 나이가 들었으니 여성도 아니라는 잘못된 인식이 있는 거죠.” 잘못된 사례는 아니지만, 배우로서 작품에 임할 때도 자신을 ‘나이 든 여성’으로 바라보는 시선은 존재한다. “액션 연기를 할 일이 있어서 무척 신났거든요. 그런데 짜놓은 액션을 보니 저는 다 바닥에서 하는 거예요. 내 나이를 알곤 으레 힘들 거라 짐작한 거죠. 물론 저를 위한 배려이긴 하죠. 제가 나서서 다른 방법을 제안했어요. 그랬더니 액션 팀 사람들이 신나 하는 거예요. 저도 즐거웠고요. 감독님이 너무 잘해서 안 되겠다고 해서 결국 다시 바닥으로 내려갔지만요.(웃음) 다른 감독님도 그런 적이 있어요. 연극할 때 검 쓰는 걸 보고, ‘선배님을 위해서 검 쓰는 장면을 꼭 만들게요’라더니, 감감무소식이야.”(웃음)

지금 당장 나이 든 여성에 대한 편견의 시선을 거둘 순 없다. 길해연 배우는 그러니 더더욱 스스로 편견 없이 자신의 나이를 수긍하고, 나이 듦을 긍정하자고 말한다. ‘다 끝난 거 아니야?’라며 두려워하는 부류가 있고, 편해서 오히려 더 좋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어요. 완경 해서 편하다는 친구들이 의외로 많아요. 아주 속 시원하고 자유로운 느낌이라고요. 반대로 여성성이 사라지는 데 집착하면서 슬퍼하는 친구도 있어요. 가만 보면 지금까지 일하는 친구들이 주로 변화에 편안히 수긍하는 것 같아요. 성별을 떠나 하나의 존재가 되어갈 수 있다고 깨닫는 거죠. 외적으로 아름답고 젊어 보이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면 나이 드는 건 부끄럽거나 노여워할 일은 아닌 것 같아요. 가끔 선배님들이 ‘너도 금방이야’ 하고 겁을 주는데요.(웃음) 맞아요. 나한테도 곧 닥칠 일이에요. 그래서 저는 흐르는 것을 붙잡고 억지로 버틸 마음은 없어요. 오히려 궁금해요. 더 나이 들면 인생을 사는 게 어떻게 되려나, 이런 마음인 거죠.”

 

 

60대 | 윤여순

“죽기 직전까지 스스로 보람을 느끼는 일을 하면서 살고 싶어요.”

윤여순

드레이프 드레스 마시모 두띠(MassimoDutti), 네크리스과 슈즈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대기업 최초의 여성 임원으로 꼽히는 윤여순 전 LG아트센터 대표. 그는 40대에 교육공학 박사 학위를 받은 후 1995년에 LG인화원의 제안을 받아 부장으로 입사했다. “뜻하지 않은 기회였어요. 처음엔 두려웠죠. 회사에 여성이 거의 없고, 있더라도 결혼하면 알아서 퇴사하던 시대였거든요. 마흔 살 넘은 여자가 남성이 대다수인 조직에서 어떻게 살아남을까 싶더라고요.” 입사 후 ‘얼마나 잘하나’ 하는 시선을 많이 받았다. 그는 남성뿐 아니라 여성 직원들의 시선도 의식했다. “제 말과 행동이 여성 후배들에게 어떤 기준이 될 것 같더라고요. 그들에게 큰 책임감을 느꼈죠. 외로웠지만, 그 덕분에 성장할 수 있었어요.” 그는 20년 가까이 근무한 뒤 LG아트센터의 대표를 맡았고, 60세에 퇴임했다.

퇴임 이후의 삶은 예상과 달랐다. 그는 현재 인적자원(HR) 분야에서 일한 경험을 살려 기업인을 대상으로 코칭과 리더십 관련 강의를 하고 있다. “사회가 고령화되면서 인식이 많이 바뀌었어요. 60대도 여전히 일할 수 있고, 누군가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전 지금 꽤 맹렬히 일하고 있어요.” 60대의 그가 얻은 건 새로운 일만이 아니다. 바쁘게 흘러가는 일상에도 여유가 묻어난다. “60여 년간 살아온 연륜이 붙으니까 마음이 훨씬 안정적이에요. 어떤 일을 하더라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윤여순 전 대표는 다양한 세대의 회사원이 겪는 고충을 잘 안다. 흔히 ‘꼰대’라고 불리는 기업의 임원들은 MZ세대를 어려워하고 그들을 가까이할 수 없는 존재로 여기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MZ세대의 가치를 알고 있다. “MZ세대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는 존중과 인정이에요. MZ세대가 추구하는 재미나 공정성을 비롯한 가치가 옳다고 보고, 그들이 지닌 창의력이 신통하다고 느껴요. 제가 직장 생활을 할 때와 달리 주어진 일만 열심히 해내는 게 아니라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거죠.” 대화를 시도한다면, 세대 간 거리가 좁혀지며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최근 경제활동을 하는 여성이 이전보다 많아졌고, 그중에는 일찍이 기업의 높은 자리에 오르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윤여순 전 대표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한다. “조직 내 여성의 지위가 향상되는 건 반드시 이뤄져야 하는 현상이에요. 이런 사례가 늘어나면 다른 조직들도 발맞춰 나아갈 수 있을 테고요. 하지만 아직도 조직 간 편차가 커요. 제가 회사에 다닐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곳도 있고요. 앞으로 더 많은 여성이 성별에 따른 차별에서 벗어나 능력에 걸맞은 지위에 오를 수 있기를 기대해요.”

60대 여성이 지닌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며, 윤여순 전 대표는 김형석 교수의 말을 떠올렸다. “60세부터 75세까지가 인생의 황금기라고 해요. 제가 실제로 나이 들어보니 나쁘지 않더라고요. 생각지도 못했던 멋과 재미가 있어요. 나이 듦을 그냥 받아들이고 즐기기를 바랍니다.”

할머니가 되면 모든 일을 내려놓고 삶의 기본 요소만 충족하며 살아갈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제2의 인생을 맞은 윤여순 전 대표는 끝까지 나답게 살고자 한다. “죽기 직전까지 스스로 보람을 느끼는 일을 하면서 살고 싶어요. ‘이 정도 했으니까 그만 됐다’가 아니라, 부단히 삶의 의미를 찾아나가면 좋겠어요. 지금을 함께 살아가는 모든 나이의 여성에게 이 말을 전하고 싶어요.”

 

 

70대 | 장필화

“슬픔보다는 감동을 안겨주는 것, 그게 나이 듦이 아닐까 생각해요.”

장필화

재킷과 니트 톱 모두 코스(COS), 팬츠 마시모 두띠(Massimo Dutti), 안에 입은 톱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딸들에게 희망을’. 여성들이 차별받지 않고 마음껏 잠재력을 펼칠 수 있는 세상을 지향하는 한국여성재단이 내건 슬로건이다. 이곳의 현 이사장은 국내 최초의 여성학과 교수로 알려진 장필화다. 1984년 교단에 오르기 시작하여 그는 5백여 명의 여성학자를 키워냈다. “가부장제의 역사는 수천 년간 이어져왔어요. 이 오랜 역사 속 여성에게는 여성이기에 공유하는 공통적인 경험이 있어요.” 가부장제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학회의 연구 주제로 ‘흔들리는 가부장제’가 떠오를 만큼 그 구조가 흔들리기는 했지만,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다. “인식의 변화로 역차별을 당한다고 느끼는 남성이 생겼고, 더 이상 여성가족부가 필요하지 않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어요. 제도적인 측면은 개선되었지만, 인식에는 여전히 변화가 필요해요. 여성학은 미래지향적 역사의식을 토대로 사회를 살피는 학문이에요.”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고령 여성의 수가 많아졌다. 장필화 이사장은 역사상 70대 여성의 수가 이렇게 많았던 적은 드물다고 설명한다. 그가 70대에 들어선 순간 느낀 감정은 해방감과 책임감.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왔으니까 앞으로는 그러지 않아도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와 동시에 제가 축적해온 지식과 경험을 어떻게 나눠야 할지 고민되었고요.” 장필화 이사장은 70대 여성을 ‘인간 도서관’이라고 설명한다. 이들은 분단, 독재, 민주화, 미투 운동을 모두 겪었다.

70대가 되면서 거리의 노인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노인이 지나갈 때 예전엔 부모님을 생각했지만, 이제는 나와 가까운 존재로 여긴다. “66세부터 79세까지를 중년으로 보기도 하더라고요. 70대가 모여 있는 카톡방에서 이 정보를 공유하면서 재미있다며 웃었어요.” 사회적 시선으로 보면 할머니는 그다지 매력적인 존재가 아니다. 하지만 장필화 이사장은 매력적인 할머니가 많다고 말한다. 그에게 인상 깊었던 할머니를 꼽아달라고 했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특정한 사람을 거론하고 싶지 않아요. 그 사람들만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을 테니까요. 모든 할머니가 각자의 주체적인 삶을 멋지게 살아가고 있어요.”

나이 들면 기력이 쇠잔해진다. 주위에 아픈 사람이 많아진다. 삶을 함께했던 친구들과 이별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슬프기만 한 일은 아니다. “가을이 지나면 그때까지 그토록 풍성하던 나뭇잎이 가지를 떠나요. 그런데 그 앙상한 나무가 너무나 아름답더라고요. 더 나아가 땅 위에 떨어진 열매가 거름이 되어 또다시 이파리를 틔우잖아요. 인간의 생애도 이와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슬픔보다는 감동을 안겨주는 것, 그게 나이 듦이 아닐까 생각해요.”

인간은 태어난 시대에 따라 다른 사회를 살아가고, 그 경험은 각자의 사고방식에 영향을 끼친다. 다를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는 것이 여러 세대를 이해하는 방법이다. 평가하거나 가치 판단을 하는 대신 관심을 갖는다면 세대 간 갈등을 극복할 수 있다. “서로의 차이에 흥미를 갖고 질문하고, 다른 세대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아주 재미있는 대화를 할 수 있어요.” 만약 젊은 세대에 질문할 기회가 주어지면, 장필화 이사장은 이렇게 묻고자 한다. “나에게 질문을 던져주면 안 될까요?”

 

80대 | 윤석남

“죽을 때 죽더라도 지금 가는 건 아니니까, 힘이 남아 있는 한 할 거예요.
안 하면 살 필요가 없어.”

윤석남

“’계속하실 겁니까?’ 이런 질문을 받을 때가 있어요. 그러면 ‘그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나는 그냥 할 거예요. 여자도 계속하려면 하는 거죠.’ 이렇게 답해요. 기분 상할 건 없어요. 일반적인 의식이 그런가 보다 해요. 그리고 실제로 70대 초반이면 다들 일을 놔요. 같이 작업하던 여성 작가들 중에 지금까지 붓 들고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어요. 의지가 없어서일까? 환경도 한몫을 할 거예요. 남성 작가들 작품은 40대 이후에도 팔려요. 팔린다는 게 무슨 뜻이냐면, 힘을 쥐는 거예요. 그런데 여성 작가들 건 안 팔려요. 손을 빨리 놓으니까, 미래가 없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반대로 안 팔리니까 계속하기 힘든 거고요. 팔린다는 건 내가 재료를 살 수 있는 능력이 생기고, 이 사회에서 나를 알아준다는 자존감을 만드는 일이에요. 그게 없어지면? 지속할 수 없는 거지. 그런 면에서 나는 참 운이 좋았어요. 그런데 운이 안 좋아도 했을 것 같아.”

가정주부가 아닌 나로서, 회화작가로 살기로 결심한 마흔부터 여든넷이 된 지금까지 윤석남 작가는 그림을 멈춘 적이 없다. 더 나이가 들어도, 나아가 생이 다하는 순간까지도 그림을 그리겠다는 생각은 작가에겐 어쩌면 결심이 아닌 당연한 순리와도 같다. “작업할 때는 내가 나이 들었음을 생각 안 하게 돼요. 이건 젊고 늙음과 상관이 없어요. 오로지 작업인 거죠. 내가 이 나이까지 그림 그리는 걸 욕심이라, 달관하지 못한 상태라 보기도 해요. 상관없어요. 나는 그냥 목숨이 붙어있는 한 뭔가를 해야 하는데, 그 뭔가가 그림일 뿐인 거예요. 그림이 위대해서 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내가 가장 하고 싶고 잘 할 수 있는 거니까. 난 요리보다 그림 그리는 게 더 쉬워요. 그럼 그걸 하는 거죠. 그게 남들에게 해로운 것도 아니잖아요. 물론 남편한테는 해로워요. (웃음) 왜냐하면 늙어서 같이 시간을 보내주지 못하니까요. 혼자서도 잘 지내는 독립적인 사람이라 다행이지, 뭐.”

3년 전부터 윤석남 작가는 새로운 작업을 시작했다. 여성 독립운동가 100인의 초상 시리즈다. 수십 권의 역사서를 뒤적이며 아주 작게나마 남은 여성 운동가들을 찾아내 공부하며 한명 한명의 그림을 남기는 중이다. “공부할 요량으로 조선시대 초상화 책을 샀는데, 그걸 보고선 엄청난 비애를 느꼈어요. 수백 명의 초상화 중에 여성은 한 명도 없었어요. 다른 책에서 겨우 찾아낸 게 일제 강점기 때 남겨진 딱 두 점. 누구의 초상이라는 말도, 작가 이름도 없어요. 울컥하더라고요. ‘그래 좋아. 나는 여성 초상화를 해볼 거야. 내가 여성 작가니까.’ 그렇게 시작했어요. 글 쓰는 작가님과 같이 어딘가 흐리게 남은 증명사진이라도 있으면, 한 줄이라도 적힌 설명이 있으면 찾아내 그려보는 거예요. 지금까지 서른아홉 분을 했어요.다 하려면 3년은 더 걸릴 것 같은데, 하다가 다 못해도 어쩔 수 없지만요. 생이라는 건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그래도 죽을 때 죽더라도 지금 가는 건 아니니까, 힘이 남아있는 한 할 거예요. 안 하면 살 필요가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