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키아프 서울(Kiaf SEOUL) 출범의 주역이시죠. 키아프 서울 20주년이던 지난해에는 9만여 명이 방문하며국내 아트 페어 최고 기록을 세웠습니다. 올해는 세계 3대 아트 페어로 불리는 프리즈와 협업하며 미술계 가장 뜨거운 이슈의 주인공이 되었고요. 첫 회를 시작하던 때에 이런 변화를 만들 거라고 기대하셨습니까? 2000년대 초반 아트 페어 하면 시카고, 바젤 아트 페어 정도가 있었고. 아시아에서는 일본의 니카프(NICAF, Nippon International Contemporary ArtFair) 정도가 상당한 수준을 갖춘, 미국과 유럽이 주목하는 아트 페어였죠. 일본이 경제 호황의 최고점에 있으면서 세계 각지의 작품을 구입하던 때였습니다. 그러다 어느 시점부터 니카프가 점점 쇠퇴하던 차에 당시 코엑스(COEX) 대표이던 안재학 사장이 코엑스를 일본, 홍콩, 싱가포르 등 경쟁국을 능가하는 세계적인 컨벤션 센터로 육성할 계획을 세우고 국제적 이벤트를 기획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어요. 코엑스와 힘을 합치면 니카프를 능가할 아트 페어가 되지않겠느냐는 믿음으로 시작했죠. ‘아시아의 제일이 되자’는 것이 목표였고, 충분히달성 가능할 것으로 봤습니다.
그 믿음은 어디에서 기인했습니까? 현대미술의 중심은 유럽과 미국이지만 곧 아시아 시대가 온다는 확신을 바탕으로 ‘아시아 시대를 열며’라는 타이틀의 전시가 많이 열리는 추세였어요. 게다가 우리 정부가 정책적으로 해외 아트 페어에 출전할 수 있도록 지원을 많이 했고, 무관세 정책을 잘 활용하면 아시아 나라 중에서도 희망적이라고 봤죠. 무엇보다 한국의 뛰어난 작가들과 수준 높은 작품을 믿었죠.
제20대 한국화랑협회 회장으로 나선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키아프 서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키아프 서울에 열성을 다하는 이유를한두 가지 요인으로 정리하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키아프 서울을 처음 개최하던 당시 한국화랑협회 국제이사를 맡고 있었어요. 이사회 때 한국화랑협회가 중심이 된 아트 페어를 기획해보자고 제안했는데 1:13으로 반대에 부딪혔어요. 그때 ‘당신이 장소와 예산을 구할 수 있다면 한번 해보자’ 하는 식의 결론이 났죠. 스폰서를 구하는 과정에서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당시 깨어 있던 사람들이 본인이 유학하던 시절에 이런 행를많이 접했다며 대한민국에도 대형 아트 페어 하나는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며 힘을 실어줬죠. 제1회 행사가 열리던 2002년 당시 아시안 게임 때문에 코엑스에는 자리가 없었어요. 그래서 첫 회는 부산 벡스코(BEXCO)에서 개최했는데 부산시립미술관에서 연간 예산의 절반에 해당하는 금액을 지원해 그림을 구입해줬어요. 장샤오강, 웨민준 등의 작품이 포함돼 있었는데, 지금은 10억원이 넘지만 당시에는 3천만원대에 구입할 수 있었죠. 그러다 보니 외국에 키아프에 참가했더니 미술관이 그림을 사준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2002~2005년에는 아시아 1위의 위치에 올랐죠. 이후 홍콩 아트 페어에 자리를 내주게 되면서 위기감에 회장직을 맡게 된 겁니다.
위기를 돌파하는 방법이자 변화의 일환으로 프리즈와의 협업을 기획한 거죠? 한국화랑협회가 2017년부터 세계적인 대형 아트 페어에 꾸준히 협업 제안을 했어요. 키아프 서울과 손을 잡게 된 건 관세가 없고, 지리적으로 입지가 뛰어난 공항이 있다는 것이 주요하지 않았나 싶어요. 코엑스라는 컨벤션이 갖춰져 있다는 요인도 중요하게 작용했을 테고요. 무엇보다 최근 홍콩 바젤에서 그림을 구입하는 사람들의 국적을 파악해보면 영국과 미국을 제외하고 한국이 3, 4위권이라고 들었어요. 최근 우리나라에 유수한 해외 화랑의 지점이 생긴 것도 한 요인이죠. 이와 동시에 우리 대기업이 미술 작품을 많이 구입하고, 테이트 모던 등의 갤러리와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한 것도 프리즈와 협업하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봅니다.
프리즈와 처음 협업하는 해인 만큼 갤러리 구성에 공을 들였다고 들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곤란한 일도 많으셨다고요. 한국화랑협회 회원 중 70여 곳의 갤러리가 참가 심사에서 탈락했습니다. 평소 가깝더라도 탈락하면 감정이 상할 수밖에 없죠.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엄중하고 철저하게 심사해야 했어요. 협회 내 인기를 위해서라면 국내 화랑만 페어에 포함하면 될 일이지만, 올해 처음 프리즈와 함께하는 절호의 기회를 만들지 않았습니까. 프리즈와 계약을 맺은 5년 동안 한국 미술과 미술 시장의 가능성을 전략적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봤습니다. 당장 올해 키아프 서울의 수준이 프리즈 서울을 넘어서기는 어려울 수 있어요. 하지만 차근차근 목표에 근접할 수는 있겠죠. 이를 위해서는 협회가 중심을 잡고 냉정하게 페어를 꾸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음 아픈 것과는 별개로요.
프리즈와의 협업은 고무적인 일이지만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협의 과정에서 양보할 것은 양보하되, 끝까지 놓지 않고 지켜야 하는 것도 있겠지요? 지켜야 하는 것이라면 키아프 서울의 공익적 성격이죠. 여타 대부분의 아트 페어가 개인의 비즈니스라면 키아프 서울은 협회가 진행하는 아트 페어입니다. 우리에게는 이윤 추구보다 더 중요한 목표가 있어요. 한국 미술의 세계화입니다. 그래서 이번 페어에 출전하지 못하는 화랑과 작가들을 위해 위성 페어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키아프 플러스를 시작으로 크라운해태홀딩스 윤영달 회장이 주도하는 조각전, 파주 헤이리 출판 단지와 함께하는 이벤트, 인사동 앤틱 & 아트 페어, 장애인창작아트페어 등 키아프 서울에 출전하지 못하는 신진 작가들을 위한 자리를 많이 만들려고 합니다. 페어 기간에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과 한국화랑협회가 업무 협약(MOU)을 맺고 인천국제공항에서도 전시를 열 계획입니다.
올해 키아프 서울의 중요한 이슈는 키아프 플러스 개최죠. 변화하는 미술 시장에 굉장히 유연하게 대처하는 자세 중 하나로 보입니다. 키아프 플러스는 신생 갤러리나 젊은 작가를 많이 보유한 갤러리가 주로 참가하는데, 성격상 NFT(대체 불가능 토큰), 메타버스 등 뉴미디어 작품으로 채워질 예정입니다. 패션에서 파리 컬렉션이나 뉴욕 컬렉션이 앞으로 유행할 디자인과 색깔, 패턴을 소개하는 자리라면 아트 페어의 진정한 기능은 새로운 작가를 찾고, 기성 작가의 신작을 볼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고 봅니다. 하지만 최근 대부분의 아트 페어가 이런 순기능을 조금씩 상실하고 있다고 느껴져요. 아무래도 부스 참가비가 높다 보니 수익을 생각하면 대형작가의 유명 작품을 판매하는 데 집중하게 되거든요. 하지만 우리는 (이런 분위기를 지양하고) 아트 페어의 본질에 접근하려고 합니다. 새로운 경향과 가능성을 보여주는 자리를 마련한 거죠. 이와 더불어 대한민국은 삼성, 현대, LG 등 기술력이 뛰어난 기업을 여럿 보유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 상징으로서 키아프 플러스를 론칭한 거죠.
미술 시장에 대한 관심이 최고조에 다다른 지금, 미술계 현장을 오랜 시간 지켜온 이로서 우려와 기대가 동시에 들 것 같습니다. 최근 한국 미술 시장이 사상 최고의 호황을 누리고 있다고들 하지 않습니까. 아트 페어가 최고가 수익을 기록했다고 발표하거나, 특정 작품의 최고가 갱신에 대한 뉴스도 많이 들려옵니다. 이 활기가 반가우면서도 호황의 기준이 자본과 수치만으로 평가되는 것은 우려스럽습니다. 미술 시장에 활기가 도는 만큼 좋은 전시와 좋은 작가들이 활동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면밀히 살펴 봐야 하겠죠. 동시에 대형 외국 갤러리에만 관심이 집중되는 현상 역시 걱정스럽고요. 하지만 우려보다 기대가 급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 한국을 찾은 외국인들이 서울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갖게 될거라고 확신합니다. 키아프 서울을 찾은 외국인들이 미술과 동시에 한국의 음악과 영화, 음식의 매력을 알고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낼 테니까요.아트 페어를 보기 위해 한국에 온 사람들에게 우리의 문화 예술이 얼마나 깊이 있고 다양한지 보여주려 합니다.
올해 키아프 서울을 상상하며 기대하는 풍경이 있나요? 앞서 언급하셨듯 키아프 서울의 성패는 단지 판매액이나 방문객 수로 갈릴 것 같지는 않습니다. 작품 판매를 떠나 키아프 서울을 찾은 외국인들이 서울이 아주 매력적인 도시라는 걸 느끼고 돌아가기를 바랍니다. 키아프, 프리즈 공동 주최는 결국 서울시 전체가 수혜자가 될 거예요. 올림픽이나 월드컵이 그랬듯 우리 국민이 어떤 일이든 적응력이 빠르지 않습니까. 시민들의 도움으로 잘 치뤄낼 거라고 생각합니다. 프리즈 서울과 함께 다양한 오프라인 행사도 진행할 예정입니다. 파리나 바젤, 마이애미 못지않은 매력적인 풍경이 펼쳐지리라 기대합니다. 5일 동안 코엑스부터 세텍(SETEC)까지 매일 밤, 강남 일대를 뜨겁게 달굴 행사들이 이어질 겁니다. 이로써 서울이 아시아 미술 시장의 중심이자 세계 미술 시장의 거점이 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