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은 수신(修身)을 위한
수행(修行)의 도구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서양에서는 작품의 질을 논하지만,
우리는 격을 말하지요.

 

박서보, ‘Ecriture (描法) No. 220223’, 2022 Acrylic on Ceramic, 91X72cm provided by GIZI foundation

 

베니스 비엔날레와 함께 시작한 퀘리니 스탐팔리아 재단(Fondazione Querini Stampalia) 미술관 전시가 호평 일색입니다. 베니스의 역사를 담은 전시에서 장르가 완전히 다른 세 작가 작품이 아름답게 어우러져 놀랐습니다.

퀘리니 스탐팔리아 재단 미술관에서 베트남계 덴마크인 얀보(Danh Vo)와 일본 조각가 이사무 노구치(Isamu Noguchi) 그리고 내 작품을 함께 큐레이션한 것이 재미있습니다. 퀘리니 가문이 수집한 책과 예술품이 베니스에 기증되어 세계인을 맞이해왔는데, 비엔날레를 맞아 장르가 완전히 다른 작가 셋의 작품이 관람객에게 이야기를 걸고 있지요. 수행과 반복에서 유래한 내 작품의 언어는 이사무 노구치의 종이 램프와 얀보의 꽃 사진과 공통된 정서를 가지고 있습니다. 비엔날레와 더불어 서구 관람객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는데, 조각가 심문섭 선생도 전시를 보고 와서 아름답다고 호평해주었습니다.

이 전시가 특별한 것은 도자로 만든 색채 묘법 작품을 처음으로 선보였다는 점입니다. 전시를 주관한 화이트큐브 갤러리에 작품 제작 과정을 담은 동영상을 보내주었더니 깜짝 놀라더라고요. 도자 작품은 크게 만들기 어려워 30호 크기인데, 발색이 기가 막힙니다. 전시는 오는 11월 27일까지 열립니다. 유럽에 가게 되면 한번 들러보길 권합니다. 팬데믹으로 인해 오프닝에는 참석하지 못했는데, 가을에는 가보려고 생각 중이에요.

 

키아프 서울과 프리즈 서울이 동시에 열리고, 미술 시장 규모가 1조원대에 이르는 호황기를 맞았습니다. 지난 시간 동안 미술계의 흐름을 지켜보신 작가님께서 감회가 새로우실 것 같습니다.

키아프 기간 동안 서울을 찾은 각국 미술관과 갤러리의 큐레이터와 관장들을 만나기로 했습니다. 나는 우리나라 미술계가 인정받는 시기가 반드시 올 것이라고 생각했고, 아직도 저평가되어 있다고 봅니다. 영국의 한 신문에서도 아시아 미술의 중심이 홍콩에서 서울로 이동하고 있다고 보도했더군요. 얼마 전 프랑스의 한 방송사에서 인터뷰를 요청해왔는데, 한국처럼 활기찬 나라는 처음 보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어디를 보아도 활력이 넘치는 것이 바로 한국의 기상이지요.

 

젊은 시절부터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않았지만, 큰 작품을 그리면서 미래를 준비했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특별한 계획이 있었던 것인가요?

큰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시간과 돈이 어마어마하게 든다는 의미입니다. 나는 당시 작품이 한 점도 안 팔릴 정도로 주목받지 못했지만, 대작만 고집했어요. 열심히 계속 하면 내 작품이 언젠가는 세계적으로 인정받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내가 나이가 들면 이렇게 큰 작품을 못할 테니 젊었을 때 많이 그려놓자는 생각도 있었지요. 아마도 내가 세계에서 대작을 가장 많은 그린 작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그 큰 그림들을 아래위층에 마치 책을 꽂듯 번호를 매겨서 착착 정리해두었는데, 국제갤러리 이현숙 회장이 많은 작가들 집에 가봤는데 이렇게 대작만 그리는 작가는 없다고 하더라고요. 2009년까지 하루에 꼬박 14시간씩 그림을 그렸어요. 그러다 뇌경색으로 쓰러져서 작업 시간을 줄였지요. 지금은 다리가 후들거려서 100호 작품을 혼자서는 들지 못하게 되어 아쉽습니다. 예전에 큰 작품을 많이 만들어놓은 것은 옳은 생각이었지요.

 

 

‘단색화’라는 이름으로 한국 추상미술에 큰 획을 그었습니다. 작가님이 생각하는 단색화란 무엇인가요?

서구에서는 모든 것을 인간 중심으로 해석합니다. 자연을 인간의 도전과 정복 대상으로 보면서 인간과 자연을 이원화합니다. 그래서 서구의 그림은 작가의 생각을 캔버스에 토해놓는 표현법을 사용합니다. 하지만 나는 사람은 자연의 한 부분이고 자연에서 살아야 한다고 봅니다. 자연을 거스르는 일은 하고 싶지 않고, 자연 속에서 살며 인간과 자연을 일원화합니다. 그러니 나를 비워내야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서구에서는 단색화 작품을 우리와 다르게 바라봅니다.

단색화라는 명칭은 색에서 비롯되었는데, 사실 색이 아니라 사상의 문제이지요. 서양에서는 ‘희다, 검다’로 단순하게 표현하는데, 우리는 ‘희끄무레하다’, 거무스레하다’도 있습니다. 내가 연필로 작업한 흰 그림은 마냥 하얗지 않고, 희끄무레합니다. 하지만 서양에서는 100% 하얀 작품을 만들지요. 나는 ‘희다’는 개념 자체를 중성화하고 무명화하여 드러나지 않게 만들고 싶어요. 그래서 나는 그림은 수신(修身)을 위한 수행(修行)의 도구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서양에서는 작품의 질을 논하지만, 우리는 격을 말하지요. 인격이 형성되지 않으면 예술을 할 수 없고, 그래서 예로부터 학자라면 수신을 위해 지필묵으로 매화를 비롯해 사군자를 그리고 글씨를 썼던 것입니다.

단색화의 가장 중요한 점으로 첫째, 행위의 무목적성을 꼽을 수 있습니다. 행위가 목적성을 갖지 않습니다. 둘째는 행위의 무한한 반복입니다. 그것은 스님이 종일 목탁을 두드리며 자신을 비워내는 참선과 같습니다. 셋째는 행위 과정에서 일어나는 물성입니다. 유화물감이 밀리고 찢기는 물성을 정신화하는 것이 내 작품이지요. 이 세 가지가 없으면 무늬만 단색화입니다. 요즘 단색화를 흉내 내는 이들이 있는데, 단색화 운동을 주도한 작가로서 안타까운 마음이 큽니다.

 

박서보, ‘Ecriture (描法) No.080608’, 2008 Mixed Media with Korean hanji paper on canvas, 162X130cm provided by GIZI foundation

 

항상 곁을 지키는 윤명숙 작가님께서 책 <나로 말할 것 같으면>도 내시고, 그림 전시도 하셨습니다. 따님 박승숙 미술 심리 치료사도 작가님의 작품 세계를 담은 책 <권태를 모르는 위대한 노동자>를 냈고요. 가족과 서로 영감을 주고받는지 여쭈어봐도 될는지요?

우리 집사람 윤명숙 작가가 유독 내성적이에요. 겉보기에는 안 그런 것 같은데 자신을 엄청 억제하는 사람이고, 나는 그냥 있는 대로 드러내는 사람이지요. 내가 그럴
때마다 집사람이 찰나를 꼭 짚어서 주저앉혀주니, 항상 고마운 마음이 있어요. 그리고 미안한 것은 스무 살에 나를 만나서 한 달 반 만에 학교를 그만두고 결혼한 일이지요. 그 당시 이화여자대학교는 기혼자라서 못 가니까, 조만간 숙명여자대학교를 가라고 거짓말로 위로했었지요. 하지만 내가 당시 집사람 대학 보낼 돈이 어디 있었겠습니까? 그림 그리고 먹고살기에도 빠듯했으니까요.

얼마 전 만년필 브랜드 몽블랑이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새로 건물을 지었는데, 세계 저명인사 30명의 손 글씨 편지를 전시하고 있어요. 아시아에서는 유일하게 집사람에게 쓴 내 편지가 전시 중입니다. 1961년에 파리에 있을 때 집사람에게 편지를 자주 하라고 보낸 거예요. 지금은 결혼하고 한집에 살다 보니 편지 쓸 일이 없어요. 이번이 마지막 편지가 될지도 모르니 ‘사랑해(Je t’aime)’라는 이름의 붉은색 잉크로 편지를 썼지요. 내 곁에 있어줘서 고맙다는 내용입니다.

작년에 집사람의 첫 책이 나왔습니다. 나에게 서문을 써달라고 하는데, 단짝 친구 김창열이 죽었을 때라 아무것도 하기가 싫었어요. 이 심정으로는 아무것도 못 하겠으니 그냥 비워놓으라고 말했지요. 그런데 시집와서 평생 내 곁에서 살아주었는데 이러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별안간 들더라고요. TV를 보다가 벌떡 일어나서 종이에다 생각나는 대로 썼는데, 쭉 읽어보니 재미가 있습디다. 집사람이 아침에 주방에 갔다가 내 글을 보고 씩 웃습디다. 마음에 들었다는 의미지요. 나는 가식이 싫어서 느끼는 대로 쓰고, 강하게 의견을 전달합니다. 그렇지 않은 글과 그림은 맛이 없지요.

 

 

장학재단을 만들어 홍익대학교 회화과와 예술학과 학생에게 장학금을 주고, 광주비엔날레 ‘박서보미술상’을 만들어 꾸준히 작업한 작가에게 1억원의 상금을 주신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오랜 계획이 드디어 실현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광주비엔날레를 통해 한 해에 상금 5천만원씩을 주려고 했는데, 세계적인 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적어도 10만 달러를 주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유명한 베니스 비엔날레도 상금은 없지 않습니까! 대형 미술 행사나 스타 미술가들이 돈을 쓰지 않는 세태를 보며 속이 상합니다. 그래서 국가의 위상을 높이고 후배 미술가를 격려하기 위해서 내가 나서서 1억원은 줘야 되겠다 싶어서, 밥 먹다 말고 그렇게 결정하게 되었지요. 앞으로 10회에 걸쳐 상금을 주고, 그 후에는 내가 세상에 없겠지만 기지재단이 내 그림을 팔아서 계속 상금을 낼 수 있게 했습니다. 달러 환율에 변동이 있으니, 은행 통장을 개설하고 1백만 달러를 넣어서 환율에 신경 쓰지 않고 편안하게 사용할 수 있게 했지요. 내년에 처음으로 수여하는데, 어떤 작가가 받을지 나도 궁금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미술상이 될 것입니다.

 

서울, 예천, 제주에 3개의 박서보 미술관을 준비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주실 수 있을지요?

통인화랑에 걸린 조선시대 그림을 60년간 지켜보았는데, 그간 팔지 않는다고 해서 기다리다가 이제야 손에 넣게 되었습니다. 대나무 그림으로 유명한 유덕장의 그림이지요. 서울 연희동 내 작업실 건물 바로 옆의 땅을 사서 박서보 기념관을 만드는데, 여기에는 이렇게 수집해온 내 컬렉션과 작품을 전시하려고 합니다. 도자기와 벼루, 그림도 그간 열심히 수집해두었습니다. 서울의 박서보 기념관에는 내가 쓰던 모든 것을 전시하려고 합니다. 신용카드, 전시 입장권, 심지어 빠진 치아도 모아두었습니다. 건축가는 대구 간송미술관을 설계한 최문규 교수입니다. 내 고향 예천에 지어질 박서보 미술관에서는 초기부터 후기까지 내 모든 작품을 연대기별로 감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제주도 미술관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곧 알게 되실 겁니다.

 

경북 예천 미술관 개관이 확정되었다니 반가운 소식입니다.

예천 미술관의 공식 명칭은 아마도 ‘예천군립 박서보 미술관’이 될 테지요. 2020년에 건립 신청서를 냈는데, 바로 며칠 전에 승인을 받았습니다. 예천에 있는 단 하나의 미술관이니 멋지게 만들어야 합니다. 인구 5만 명의 작은 도시 예천이 미술관을 통해 발전하기를 기대합니다. 가물어도 마르지 않는 개울로 둘러싸인 남산이 있는데, 그 골짜기를 문화 벨트로 조성해 미술관을 건립합니다. 박서보 미술관에 어울리는 세계 최고의 건축가에게 설계를 맡기고 싶어요. 단색화를 주도한 작가의 미술관은 그런 엄숙함과 절제미를 갖춘 건축가가 지어야 합니다. 예천군립 박서보 미술관이 국제적으로 선전하면, 스페인 빌바보의 구겐하임 미술관 못지않은 명소가 될 것입니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점쟁이가 셋째 아들이 세계적인 위인이 될 것이라 예언했다고 해요. 그래서 법조계에서 일하던 아버지는 내가 미술대학에 가겠다고 하니, 14일간 단식을 하며 반대하셨습니다. 고향에 미술관이 지어진다니 그 점쟁이가 용한 분이었던 것이 확실하네요.(웃음)

 

박서보, ‘Ecriture (描法) No.120115’, 2012 Mixed Media with Korean hanji paper on canvas, 180X260cm provided by GIZI foundation

 

대중은 연필 묘법과 색채 묘법, 자연으로부터 온 아름다운 색깔이라는 키워드로 작가님의 작품을 이해합니다. 이에 대한 작가님의 의견은 어떠신지요?

연필 묘법은 무목적성으로 무한 반복하며 나를 비우는 작업입니다. 한지를 이용한 색채 묘법은 자연관을 바탕으로 합니다. 서양 종이는 모든 것을 내뱉는데, 한지는 인간의 생각을 받아들입니다. 이미 1970년대에 내가 강조했던 말이 있어요. 2018년인가 뉴욕의 티나김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할때 워싱턴 국립 허시혼 미술관 관장과 대담하며 그 이야기를 꺼내서 박수를 받았습니다. 서양 예술은 인간의 생각을 극대화시키는 쪽으로 가는데,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습니다. 피아노와 바이올린은 손가락을 떼면 연주가 끝나지만, 우리의 종과 가야금은 딱 때릴 때가 아니라 뒤로 물러서야 비로소 아름답게 울립니다. 서양 춤은 멈추면 끝나지만, 승무와 농악은 동작을 멈추어도 그 옷자락이 공간을 휘젓습니다. 이것이 한국 여운의 세계이지요. 우리는 예로부터 이러한 아름다움을 즐겼고, 나도 바로 이런 예술을 하고 싶습니다. 이러한 희망이 실현됐을 때 세계는 또 하나의 객관 세계에 부딪히게 될 것입니다.

 

작업실이 있는 연희동 기지재단에서 젊은 작가의 전시가 이어지고, 대중을 위한 도슨트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미술 작품을 가까이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재능 있는 젊은이들에게 전시 기회를 주고 싶어요. 그래서 젊은 작가 전시를 위주로 하고, 내 작품까지 볼 수 있는 도슨트 투어를 일주일에 두 번 하는데 예약 경쟁이 치열합니다. 1분이면 예약이 끝나요. 내 담당 의사도 예약을 못 했다고 하길래 따로 초대했지요. 언젠가 영국 화이트큐브 갤러리 전시 관련 라이브 화상 인터뷰를 했는데, 그림은 대중의 번뇌를 치유해주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프랜시스 베이컨 같은 서양 유명 화가는 자신의 감정을 작품에 토해놓으니 관람객 마음이 그 이미지로부터 폭력을 당하게 되는 것이지요. 21세기 디지털 시대를 대중이 따라가기 버거워 지구가 스트레스 병동이 될 판국이니, 사람들이 내 그림을 보고 치유받기를 희망합니다. 마음의 안정감을 찾고 행복을 느껴야 합니다.

내가 색채 묘법 작품을 즐겨 그리는 것도 이와 연결됩니다. 진달래와 단풍의 붉은색, 유채꽃과 개나리의 노란색을 그림 속으로 유인합니다. 자연 속에서 느낀 감동을 그림 속으로 가지고 와야 보는 이의 가슴을 파고들게 됩니다. 자연의 색으로 아름다운 세상을 알리는 중이고, 이 점이 내가 미술계에 공헌한 것이지요. 작년부터 시작한 도자 색채 묘법은 발색이 좋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인기가 높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많은 이들이 보지 못했는데,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우아함이 매혹적이지요. 내년에 우리나라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예정하고 있고, 해외에서도 의미 있는 전시가 이어지니 곧 보실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