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ure editor 유선애
배우 김태리
“궁금증은 사랑의 한 가지라고 봐요. 세상과 인간을 궁금해하다 보면 결국 사랑하게 되거든요. 그 사랑은 이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하고 고민으로 뻗어나가죠. 그러다 보면 세상에 이해 못 할 일이 그렇게 많지 않고, 내가 보다 크게 느껴져요. 이 품으로 어떤 것이든 끌어안을 수 있겠다는 용기도 생겨요.”
<마리끌레르 BIFF 에디션> 중에서
배우 김태리의 이 말이 내게는 ‘올해의 대답’이다. 그는 인터뷰 중 불현듯 최근 삶을 통째로 흔들 만큼 큰 혼란을 겪었음을 고백했다. 그 시간을 지나며 무엇을 버리고, 얻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과정에서 목소리는 크게 떨리고, 말의 높낮이는 수시로 오르내렸으며 발성의 변화에 맞춰 얼굴 표정도 피었다가 지기를 반복했다. 인터뷰라는 소통이 얼마만큼 진실이고 거짓인지 나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배우 김태리가 온 힘을 써서 단어 하나하나를 세상으로 내려놓던 그 순간 만큼은 이 인터뷰의 참여자이자 가장 가까운 목격자로서 진실된 대화의 밀도를 경험할 수 있었다. 인터뷰가 그저 루틴한 일처럼 느껴질 때, 누군가를 향해 관습적으로 고개를 끄덕일 때 이날의 대화를 떠올리며 다시 자세를 바르게 고쳐 잡을 것만 같다.
영화 <너와 나>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으로 선보인 조현철 감독의 첫 장편영화 <너와 나>를 보고 일주일을 심히 앓았다. 영화는 시종일관 싱그럽게 빛남에도 그 아름다움 너머의 깊은 비탄을 알기에 영화 장면장면 나의 2014년 4월 16일이 겹쳐졌고, 마음이 주저앉았다. 내 삶이 누군가에게 크게 해롭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바라던 때에, 어쩌면 그렇게 살 수도 있을 것만 같다고 착각하던 때에 이 영화로 다시 그날을 만났다. 2019년에도 조현철 감독을 인터뷰 한 적이 있다. 영화 <너와 나>를 보고 나니 3년 전 그의 대답들이 모두 이 영화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이 아닐까 싶었다. 그때의 질문과 대답을 여기에 다시 옮겨둔다.
어떤 순간에 유독 더 이야기하고 싶고, 더 만들고 싶고, 더 쓰고 싶어요? 사랑하는 것이 생겼을 때. 예쁜 걸 보면 나누고 싶고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는 사랑이 작동하는 것 같아요. 내 안에 사랑이라는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존재들을 남들에게도 이야기해주고 싶고요. 또 죽음을 목격했을 때. 죽음이 어떤 의미이고, 그 사람이 살아 있을 때 무엇이었고, 어떤 내용을 담았는지,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지, 무엇을 기억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무엇이 사랑을 불러일으키나요? 대단히 아름답기보다는 사소한 것들인데, 길을 지나가다 제철 과일을 보고 돈이 넉넉하지 않은데도 누가 생각나서 사게 되는 것, 아침에 일어나서 하늘을 봤는데 날씨가 좋아 좋은 마음이 들면서 보고 싶은 사람이 생각나는 것도 사랑이겠죠. 그런 마음들을 예민하게 잘 써야 할 것 같아요. 모르고 지나치기 쉽잖아요. 누구나 다 알고 있고, 다 느낄 수 있는 건데 막상 보지 못하는 것들을 끄집어내서 보여주고 싶어요. 다들 사랑하고 있지만 사는 게 피곤해서 지나치는 것들이요.
시인 김현 ‘오늘의 시’
올해 나는 그 누구도 아닌 ‘내 행복’의 실체를 조금 알게 됐다. 적어도 내게 행복의 상태는 무음이다. 마음 안팎에서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 순간에 ‘행복하다’고 느끼던 차에 시인 김현의 ‘오늘의 시’(<다 먹을 때쯤 영원의 머리가 든 매운탕이 나온다>)를 만났다. 이 시는 내게 행복의 순간을 몇 개 더 가르쳐주었다.
‘의자의 그림자를 바라보고/ 오래 말하지 않아도 무섭지 않고’, ‘친구들과 작은 운동장에 모여 일광욕을 하’는 순간들이 많아지길, ‘알아서 자라는 사랑을 꿈꾸고/ 잠들기 전까진 알 수 없는 사랑을 가꾸’길, ‘비록/ 집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것이 여전히 암흑일지라도/ 걱정 말고/ 불을 밝히고 탁자 위에 놓아’ 둘 수 있는 마음이 자주 이어지길 소망한다. 긍지, 이해, 기쁨, 믿음처럼 결코 만져지지 않을, 내 것 같지 않은 거대한 말 앞에서 작아질 때, 시인이 그러했듯 작고 섬세한 정황들을 만들며 살고 싶어진다.
작가 박서보
지난여름, 박서보 작가를 그의 연희동 작업실에서 뵈었다. 첫 인사를 나누면서 일정을 일찍 마무리해야겠다고 번뜩 정신이 들 만큼 선생은 피로해 보였다. 민현우 사진가가 촬영 준비를 하는 사이 인터뷰가 시작되었고, 질문과 답을 오가다 어느 순간이었을까. 불현듯 대화가 궤도를 이탈했다. 궁핍한 가운데 오직 그림에 골몰했던 청년의 시간, 개명을 해야만 했던 이유(박서보 작가의 본명은 박재홍이다), 6·25전쟁 중 운 좋게 목숨을 지킨 이야기 등 선생의 지난 시간이 그날의 테이블 위로 불규칙하게 쏟아졌다. 어느 순간 촬영 준비를 마친 민현우 사진가를 비롯해 스태프들이 모여들어 선생님의 긴 이야기를 숨죽여 들었다. 그렇게 잠시 청년 시절에 다녀온 선생의 안색은 환해져 있었다. 대답을 이어갈 때의 형형한 눈빛, 낮은 목소리였지만 정확한 문장을 구사하던 분명한 어조, 문장과 문장 사이 골몰하던 표정, “살아서 금관문화훈장을 받은 사람은 이어령 선생과 나밖에 없잖아” 하시던 귀여운 면모까지. 그날 촬영장에 있던 어느 청년보다 푸르렀던 선생은 “오늘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돌아가세요” 하시고는 우리가 (감히) 선생의 정수리에 꽃을 올리고, 꽃 무더기로 얼굴을 감싸는 동안에도 그저 몸을 맡긴 채 두 눈을 반짝이셨다. 생물학적 성인과 인간으로서 어른은 별개의 존재임을, 어른은 자연히 성취될 수 없는 지위임을 박서보 선생을 뵈며 새삼 배운다. 과거의 애쓴 나를 후하게 대접하는 태도, 그와 동시에 후회와 미련을 회피하지 않는 용기, 엄격히 자신을 단련하면서도 타인에게는 드넓은 품으로 내어주는 너그러움, 새 세대를 기대하고 이들을 통해 사고를 확장하는 유연함, 허무를 이기고 기대로 내일을 맞이하는 천진함… ‘어른의 조건’에 대해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이제 박서보 선생을 묘사하게 될 것만 같다.
feature editor 유선애
덕구
임시보호 중인 개를 하루만 돌봐달라는 부탁을 받고 부암동으로 향했다. 설렘 반 걱정 반의 마음으로 도착한 그 집에 ‘덕구’가 있었다. 묵직하고 몰캉한 볼살, 분홍색 코, 나비처럼 팔락이는 귀, 왠지 억울하다는 듯한 표정의 눈, 느긋하고 점잖은 태도까지. 덕구는 근래에 본 중 가장 사랑스러운 존재였다. 이런 덕구가 성견인 데다 실외 배변을 해야 한다는 이유로 몇 달째 입양되지 못한다는 말을 듣고 한없이 속상했다. 덕구에게 좋은, 가능하면 부유한 가족을 만들어주고 싶었고 미끼를 던지듯 주변 사람들에게 홍보 활동을 벌였다. 그리고 세 달 뒤 친구에게서 덕구를 입양하고 싶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저 연락처를 넘겨주는 작은 다리 역할을 했을 뿐인데, 그 일은 여름 내내 내게 가장 행복한 기억으로 남았다. 모두에게 무해한 사랑을 전파하는 덕구가 더 건강하고, 행복하길 바라며.
작가 윤석남
1월에는 일민미술관 전시장에서, 2월에는 스튜디오 한편에서 윤석남 작가와 제법 긴 이야기를 나눴다. 나이 마흔에 전업주부에서 회화 작가가 되어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림을 그려온 그의 이야기는 이 일을 과연 몇 살까지 할 수 있을지 고민하던 나의 시간들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언제까지란 건 없어. 할 수 있으면 그냥 하는 거예요.” 두 번째 대화를 끝낸 뒤 귀하디귀한 당신의 말씀에 큰 용기를 얻었다고 말하자 작가는 허허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그와의 대화를 복기하며 ‘이 일을 하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감독 최동훈
자고로 버킷리스트란 이룰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래서 일부러 허무맹랑하게 리스트를 짜두는 편이다. 그런데 올가을, 느닷없이 최동훈 감독을 만났다. 2004년 영화 <범죄의 재구성>부터 한 편도 거르지 않고 그의 영화를 봤지만, 실제로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내게 그를 만나는 일은 쿠엔틴 타란티노나 스티븐 스필버그를 마주하는 일만큼이나 멀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올해 최고로 떨린 순간을 꼽으라면 주저 없이 그날을 들 것이다. 용기를 한껏 쥐어짜 인터뷰를 했지만, 차마 팬이라는 말도 같이 사진을 찍자는 말도 못 했다. 그건 그냥 버킷리스트로 남겨두고 싶었다.
내추럴 와인
겉만 보고 속을 알 수 없고, 철저하게 (만드는 사람이) 제멋대로 하는 데다 비싸다. 사람이라면 다신 안 만났을 것 같은데, 내추럴 와인은 그래서 마시고 또 마시게 된다. 늘 예상치 못한 맛이라 즐겁고, 비싸서 폭음을 막아준다(고는 했지만 취하면 장담 못 한다). 한 해를 보내며 좋아하는 사람들과 기분 좋게 먹고 마시며 즐거웠다고 기억하는 날에는 꼭 내추럴 와인이 있었다. “차라리 몰랐으면 돈을 얼마간은 모았겠다” 하며 친구와 한탄한 적도 있지만, 이 술이 알려준 즐거움만은 부정할 수 없다.
feature editor 김선희
소설가 천희란
인터뷰하는 시간이 내게 뜻깊은 이유는 누군가의 생각을 목소리로 직접 들을 수 있다는 점도 있지만, 말을 이어가는 얼굴에 스치는 여러 눈빛을 볼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인터뷰를 할 때 상대의 눈을 유심히 바라보는 편이다. 내가 시선으로 건넨 대화를 처음으로 알아봐준 사람이 지난 5월에 만난 소설가 천희란이다. 우리가 잃어버린, 우리 사회 이면에 있는 여성의 존재와 이를 다루는 소설이 지닌 가능성에 대해 그와 나눈 이야기는 한 시간 반 가까이 이어졌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인터뷰에 깊이 몰입되었고, 그 순간의 공기는 고요히 치열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에게서 이런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내내 편안하게 표정으로, 목소리로 화답해주어 감사합니다.’ 이 말을, 인터뷰를 앞두고 항상 마음에 새기고 있다.
(여자)아이들
누군가를 향한 마음을 드러내는 데 부끄러움을 느끼는 편이지만, (여자)아이들만큼은 예외다. 2018년, (여자)아이들이 ‘LATATA’로 데뷔했을 때부터 이 팀을 ‘우리 애들’이라고 불렀다. 컴백 때마다 모든 무대를 챙겨 보고, 앨범 수록곡을 빠짐없이 들으며 ‘네버랜드((여자)아이들의 팬)’의 일원으로서 내공을 쌓아왔다. (여자)아이들 음악의 도입부를 3초만 들어도 곡 제목을 맞힐 수 있다고 자신한다. 올해는 서른 살 나이에 아이돌 앨범을 사고 ‘최애 포토 카드’를 뽑는 행운도 누렸다. 이토록(여자)아이들을 아끼는 이유는 이들의 음악뿐 아니라 가치관도 멋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나일 뿐이니 그 무엇도 나를 맞출 수 없고(‘TOMBOY’), 내가 아닌 모습으로 사랑받을 바에는 나의 모습으로 미움받겠다(‘Nxde’)고 전하는 팀의 팬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럽다. 이달에 미연과 민니를 직접 만나 그들의 단단한 생각을 들으며 다시 한번 느꼈다. 역시 ‘덕질’ 하길 잘했다!
보리
혼자 떨어져 지내는 내 안부를 물을 때 우리 식구들은 항상 반려견 ‘보리’의 사진을 보내준다. 요즘 그 사진들을 보고 있으면 마음 한쪽이 아파온다. 보리는 내년이면 열네 살이 된다. 그동안 보리와 함께한 추억들을 떠올리면 ‘엊그제 같다’는 말의 의미를 실감한다. 교환학생으로 해외에 나갔다가 돌아온 나를 먼발치에서 알아보고 달려와준 날, 온 집 안을 어질러놓았다고 혼난 뒤 시무룩한 모습을 보고 미안했던 날, 내 기분이 좋지 않을 때 곁에서 체온을 나눠주던 날. 이제 보리는 귀가 나빠져 이름을 불러도 잘 돌아보지 못하고, 병원에서 몇 시간 동안 링거 주사를 맞기도 한다. 언젠가 다가올 이별을 마주할 용기가 아직은 없지만, 그때까지 줄 수 있는 가장 큰 애정을 주고 싶다. 이 원고를 쓰다가 마감 중인 사무실에서 눈물을 쏟을 뻔했다. 아무래도 난 올해 보리를 가장 사랑한 것 같다.
엔니오 모리코네 ‘Piano Solo’
겨울이면 혼자 꼭 찾아가는 한 뮤지션의 소극장 공연이 있다. 그곳에 가면 내게 슬픔이 많던 시절에 자주 꺼내 들은 노래들을 감상할 수 있는데, 과거의 나를 만나게 해주는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현재의 나를 돌아보곤 한다. 올해 1월 말에 열린 공연에서도 그랬다. 일찌감치 객석에 앉아 지난 1년의 시간을 돌아보며 공연이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마침내 암전이 되었을 때, 그가 처음으로 들려준 곡이 엔니오 모리코네의 ‘Piano Solo’였다. 피아노 연주와 허밍만으로 이뤄진 간결한 음악이 마음 가장 깊은 곳까지 들어와 자리했다. 그날 이후, 올해 내 플레이리스트에는 항상 ‘Piano Solo’가 있었다. 아주 슬플 때도, 벅차게 기쁠 때도 그 노래를 찾았다. 같은 음악을 매번 다른 감정으로 들을 수 있음을 이 곡을 통해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