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홍
피아니스트
2021년 스물두 살의 나이로 이탈리아의 페루초 부소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5개 부문을 석권한 피아니스트 박재홍. 일찌감치 클리블랜드 국제 영 아티스트 피아노 콩쿠르와 지나 바카우어 국제 영 아티스트 피아노 콩쿠르에서 입상하는 등 심상치 않은 행보를 이어왔다. 그를 우승으로 이끈 모리스 라벨의 협주곡 G장조, 클로드 드뷔시의 전주곡 ‘가라앉은 성당’ 은 꼭 들어보길. 경이로 기교로 무장한 작품으로 스스로 빛나기보다 작곡가가 만든 음악 그 자체가 들리는 연주라는 것이 어떠한지 알게 될 것이다.
유남권
공예 작가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13호 옻칠장 박강용 선생 이수자. 그의 작업은 굳건하면서도 단아한 구석이 있다. 의자 하나도, 그릇 하나도 아름답다. 작가의 성정이 그대로 형태와 질감으로 옮겨져 조용히 서 있는 것 같다.
이미상
소설가
어떤 강렬한 소설 체험은 그날 하루를 온전히 기억하게 만드는데, 이미상 작가의 데뷔작 <하긴>이 내겐 그랬다. 웹진에 쓴 데뷔작 한 편으로 젊은 작가상을 거머쥔 불가사의한 신예. 내가 지금 뭘 읽고 있는거지 하는 의문조차 갖지 못하게 고속으로 질주하는 이야기, 적중하는 문장…. 그는 지금 한국 문단에서 가장 날카롭게 벼려진 힘 좋은 도끼다.
살라만다
DJ
최소한의 악기로 간결하고 명징한 음악을 만드는 살라만다. 현대음악가 스티브 라히시(Steve Reich)의 미니멀리즘 음악이라는 공통분모로 만나 한국 디제잉 신에 앰비언트 뮤직을 주인공으로 세운 이들이다. 촘촘하게, 때로는 느슨하게 빚어내는 반복과 변주는 듣는 이를 숲 한가운데 평온 속으로 데려가기도 하고, 한낮의 기분 좋은 활기 속으로 이끌기도 한다.
김담비
허벌리스트
흡사 마녀의 수프 같은 비비드 컬러의 차 한 잔. 허벌리스트 김담비는 엄숙한 전통 다도(茶道)의 무게를 덜어내며 전통 다도가 쌓아 올린 단단한 울타리를 허물고 확장하는 이다. 그가 만들어낸 실험적인 차 한 잔에는 노르웨이 해초, 부채맨드라미 꽃이나 칡꽃 등 기이하고 낯선 재료들이 창의적으로 담긴다. 차와 향, 명상을 도구로 베를린 마르틴 그로피우스 바우(Martin- Gropius-Bau) 미술관, 베를린 아토날(Berlin Atonal) 등에서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등 유럽 도시에서 퍼포머로 활약 중이다.
차재민
영상 작가
진단받기 어려운 병을 앓았던 어머니의 경험에서 출발해 다른 아픈 여성들을 만나고, 나아가 더 넓은 이야기 속으로 이동한 영상 에세이 ‘네임리스 신드롬 (Nameless Syndrome)’으로 지난봄 리움미술관이 주최하는 아트스펙트럼 작가상을 수상한 차재민 작가. 노동, 임금, 돌봄, 도시 개발 등 오늘, 우리가 외면하지 말아야 할 문제에 의문을 제기하는 그의 날카로움이 무뎌지지 않기를, 닳지 않기를.
DQM
촬영감독
2022년 부산국제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 초청작 <너와 나>는 배우로도 활동하는 조현철 감독의 첫 장편영화다.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나기 전날 두 소녀의 하루를 차분히 따라가는 영화는 이들이 오가는 길과 들판, 집과 교실, 버스 안에서 오래 머물고 싶게 한다. 나무 사이로 빛이 쏟아지고 벚꽃이 흩날리는 아름다운 풍경 속에 빠져들다 돌연 참담해진다. 이토록 빛나는 계절에, 생의 눈부신 한때를 보내던 아이들이 떠났다는 사실에. 어떤 이들에게 아름다움이란 얼마나 가혹한 것인지. 그 가혹한 생의 눈부심을 담아낸 이가 DQM(정다운) 촬영감독이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너와 나>를 본 지 3개월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영화의 잔상이 남아 있다. 빈 복도와 초록 들판, 창가에 놓여 있던 화분까지. 계절의 변화와 일상의 풍경을 유심히 바라본 사람만이 담아낼 수 있는 장면이라고 느꼈다. <너와 나>를 촬영하기 전에는 사계절의 변화를 이렇게까지 주의 깊게 들여다본 적이 없다. 나무들이 잎을 떨구고 가지만 앙상히 남은 겨울에 감독님을 만났는데, 영화가 완성되기까지 잎이 조금씩 돋아나고, 꽃망울을 터뜨려 벚꽃이 떨어지는 때, 초록 잎으로 무성해졌다가 낙엽이 지고 다시 나목이 되기까지의 시간을 유심히 지켜봤다. 감독님이 이 변화들을 감지하는 것이 우리 영화를 만들어가는 데 매우 중요한 일임을 강조하기도 했고.
이 아름다움을 완성하는 데 빛이 큰 몫을 해낸다. 햇빛이 쏟아진다는 표현도 부족하다. 햇빛이 퍼붓는다. 빛에 집착했던 것 같다. 제작 단계에서부터 감독님과 빛의 중요성에 대해 누누이 이야기를 나눴다. 촬영장 아니어도 어디서든 빛만 보면 그 풍경을 찍어 감독님에게 보냈다. 빛이 닿아 있는 순간들이 아름다워 보이는 시기였다. 빛이 닿기까지의 시간, 빛이 닿아야만 살아갈 수 있는 생명들에 대해 생각했다. 촬영 중 잠시 쉬다가도 운동장 흙 위로 햇빛이 드리울 때, 화단에 빛이 스며들 때는 그 순간이 너무 소중해서 서둘러 카메라를 다시 잡기도 했다. 사실 나는 ‘아, 오늘 햇살이 좋다’라는 말조차 잘 하지 않는 건조한 사람이었는데(웃음), 뒤늦게 알게 된 아름다움이 크게 다가왔다.
두 소녀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는가는 이 영화의 가장 큰 숙제이기도 했다. 관점에 대한 고민도 있었을 것 같다. 세월호를 보러 진도에 간 적이 있다. 내가 운전을 하며 가는데 옆에 앉은 감독님이 ‘지금 네가 보고 있는 풍경이 아이들의 부모님이 보는 풍경이다’라는 말을 했다. 그 순간 어떤 각성이 있었다. 동시에 나는 그들이 봤을 법한 것을 절대 찍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건 가당찮은 일이지 않나. 그들에게 가까이 갈 수 있다? 그들이 느낄 법한 것을 내가 느낀다? 절대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카메라를 들 때마다 고민이 컸다. 내가 어떤 의미나 의도를 갖게 되는 것을 경계했다. 거기에는 내가 뭔가 대단한 일을 하고 있다는 자의식도 포함된다. 지금까지 DQM이 해온 작업이 그러하듯 기록하는 사람의 시선으로 다가가려 했다. 영상으로 내가 재주를 부릴수록 가짜가 된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며.
<너와 나>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느끼는 건 어떤 장면인가? 시기마다 바뀌는데 지금은 이 영화의 가장 어두운 순간을 꼽고 싶다. 강아지 ‘진식이’가 등장하는 장면이다. 밤이라 조도를 조절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강아지가 새하얗게 빛났으면 했다. 조명을 이렇게 저렇게 시도해보다 결국 모든 조명을 끄고 카메라 노출만으로 그 장면을 담았다. 가장 어두운 밤, 새하얗게 빛나는 강아지가 프레임으로 들어오던 순간, 문득 멈춰 렌즈를 보는데 감동적이었다. 요즘은 그 장면이 많이 떠오른다.
이미래
설치미술가
지난봄, 베니스 비엔날레 아르세날레 관에는 살아 있는 동물의 내장을 방금 꺼내 걸어놓은 듯한 5m 남짓한 ‘덩어리’가 매달려 있었다. 고무호스로 친친감겨있고,여기저기 뚫려있는 구멍에서는 점액질 물체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미래 작가의 ‘엔드리스 하우스 (Endless House: Holds and Drips)’다. 그가 공들여 빚어낸 도발은 아트 바젤로까지 이어졌다. 정제되고 번듯한 미에 숨이 막힐 때는 언제고, 이미래의 박력 있는 작업을 떠올리게 될 것 같다.
김동해
공예 작가
돌멩이에 가느다란 황동 선을 매달아 만든 ‘풍경’이라는 제목의 작품을 본 적 있다. 소재는 금속이 분명한데 바람에 서서히 흩날리는 모습이 기다란 들풀 같았다. 차갑고 단단한 물성의 재료로 시적인 순간을 만들어 내는 이다.
최재원
시인
최재원 시인의 첫 시집 <나랑 하고 시픈게 뭐에여?>는 ‘나랑 하고 싶은 게 뭐예요?’로는 전달되지 않는 정서와 에너지가 있음을 아는 이의 실험으로 가득하다. 욕설과 사투리, 온라인 대화 메시지등 경계를 가르지 않고 시 안으로 끌어들인 시어에는 힘이 넘쳐 흐르고, 사유는 찐득하게 얽혀 있다.
말든
뮤지션
딘과 라드 뮤지엄이 만든 얼터너티브 레이블 소속의 싱어송라이터. 트릭 하나를 익히기 위해 수백, 수천 번 연습하고 그러다 다쳐도 다시 스케이트를 타며 느꼈던 마음으로 첫 앨범 <Boneless>를 만들었다. 꽤 독특한 방식으로 사운드를 전개하는데, 생소하거나 불편하게 들리지는 않는다. 생경하고 신선하지만 어쩐지 익숙하고 편안한 매력이 있다.
강아름 & 이정은
그래픽 디자이너 (체조스튜디오)
그래픽디자인 스튜디오 ‘체조스튜디오’와 매거진 <사물함>을 함께 만든다. 군더더기 없이 균형이 잘 잡힌 디자인을 선보이는 동시에 집안의 사소한 사물을 탐구하며 모두의 일상을 그리는 매거진을 선보인다. 두 디자이너가 만드는 것들에는 디자인이 품은 메시지가, 디자인 너머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유민예
텍스타일 작가
다양한 색과 굵기를 지닌 실을 사용해 잔디와 이끼, 넝쿨, 그리고 숲을 만드는 작가. 자연을 가까이하고 싶지만 시드는 것이, 결국 사라지는 것이 두려운 누군가를 위해 한 땀 한 땀 실을 꿰어 식물의 형태를 만들었다. 작은 오브제가 되기도, 거대한 군락을 이룰 수도 있는 그의 작업이 지닌 가장 큰 매력은 비정형성이다. 바람이 불면 흩날리고, 해가 들면 밝아지며 마치 살아있는 듯 보이는 그의 작품들은 프레임 안에 머물기를 거부하며 자유로이 생존한다.
노재원
배우
별거 아니라는 듯 말하는데 왠지 그 이야기를 듣고 싶은 사람이 있다. 목소리나 눈빛 때문인지, 그가 지닌 분위기에 끌리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배우 노재원이 그렇다. 영화 <한비>에서도, <윤시내가 사라졌다>에서도 그는 크게 내색하려 들지 않는 인물을 연기했다. 미묘하고 은근하게 감정을 드러낼 뿐이다. 그래서 그가 만들어내는 감정의 간극에 몰입하게 되었다. 이 몰입은 자연스레 배우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어졌다. 이토록 섬세하게 감정을 다루는 배우에게 또 어떤 얼굴이 존재할까? 궁금증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2023년에도 그의 영화를 볼 작정이다.
정우영
축구 선수 (SC 프라이부르크 소속)
공이 있을 때도 뛰고, 없을 땐 더 뛴다. 이렇듯 쉼 없는 움직임은 상대가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의외의 공간에서 기회를 만들어 낸다. 그러면 가장 간결한 방식으로 패스 혹은 슛을 시도한다. 골이나 어시스트 같은 기록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성실을 무기로 삼는 선수다. ‘최선을 다한다’는 상 투적인 말의 진가를 보여주는 그의 플레이는 계속해서 새로운 기회를 기대하게 만든다.
유지영
영화감독
자신의 20대를 투영해 영화 <수성못>을 만들고, 30대가 된 자신이 당면한 문제를 고민하며 영화 <Birth>를 만들었다. 유지영 감독은 언제나 자신이 경험한 것들을 통해 사유하고, 그 사유를 영화로 구현한다. 그래서 그의 영화는 솔직하고 내밀한 언어로 채워져 있다. 같은 시간을 보내는 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사유했을, 그래서 괴로웠을 무언가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감독.
이정현
농구 선수 (고양 캐롯 점퍼스 소속)
이번 시즌 성장을 언급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농구선수는 단연코 이정현이다. 프로로서 두 번째 시즌에 돌입한 그의 플레이는 이전과 완전히 다른 양상을 띤다. 무모한 시도나 주저하는 태도가 사라지고, 보다 빠르고 명확해졌다. 가장 놀라운 부분은 담대한 태도. 극적인 순간을 회피하지 않고, 일단 부딪치고 본다. 그리고 대부분의 시도는 해사한 웃음과 함께 성공으로 마무리된다. 상승의 에너지가 어디까지 오를지 가늠할 수 없는 상황이다.
1년 만의 가파른 성장세다. 가장 많이 달라진 점이 있다면? 출장 시간이 늘어났고, 팀 안에서 맡는 역할의 범주도 넓어졌다. 승패에 대한 책임감이 커진 것이 가장 큰 변화다. 플레이 하나하나에 신중하려고 주의하는 동시에 자신감 있게 하려는 마음도 있다.
가장 좋아하는 플레이의 형태는 무엇인가? 공격적인 형태. 속공이나 먼 거리에서 던지는 딥스리(3점슛) 같은 시원시원한 플레이를 팬들도 좋아하고, 나도 즐긴다.
시즌 전의 평가나 예상을 웃도는 플레이를 보여주고 있다. 스스로 기대한 부분은 무엇인가? 비시즌 기간에 감독님이 가장 먼저 해주신 말이 ‘네가 54경기(전 경기)에 선발로 뛸 거다’였다. 그 말을 듣고 어떤 식으로든 이전 시즌보다 성장하겠다는 확신이 들었고, 그래서 기대가 더 컸다. 지금까지는 기대한 만큼 나오는 것 같은데, 그 이상을 만들어내는 것이 목표다.
성장을 체감하는 순간은 언제인가? 나를 상대하는 수비의 압박 강도가 훨씬 거세졌다. 그만큼 나를 위협적인 존재로 인식한다는 반증이니까 기분이 좋으면서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고민이 많아졌다. 밸런스가 흐트러진 상태에서도 슛을 성공시키는 방법을 연구하는 중이다.
2023년의 목표는 뭔가? 숫자로 읽히는 기록을 얘기할 수도 있지만 그보다 부상 없이, 기복 없이 한 시즌을 마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경기가 잘 풀리지 않는 날이라고 해서 무너지지 않고, 잘되는 날이라고 들뜨지 않으면서 경기를 잘 이끌어가고 싶다. 다치지 않고.
해파리
뮤지션
이미 제19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최우수 일렉트로닉 음반과 노래 부문을 수상하며 음악 신에서 존재감을 발휘했음에도, 새해 다시금 해파리라는 이름을 언급할 수밖에 없다. 2023년에도 시류나 평판 따위는 저 멀리 두고 해파리 자체로 명징하게 존재하기를 바라고, 또 해파리와 같은 음악가가 더 많이 등장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테크노, 앰비언트, 아니면 국악 등 어떻게든 장르를 규정하려는 이들을 뒤로하고 해파리는 경기아트센터와 예술의전당, 클럽과 페스티벌을 오가며 자신들의 무대를 만들었다. 그렇게 해파리는 어디에서도 들은 적 없는 음악을 하는 이들에서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는 음악가가 되어가고 있다.
이유리
소설가
소설이 만든 허구와 상상을 최대치로, 제멋대로 활용한 것 같다고 할까. 이유리의 상상은 황당하고 어처구니없지만 한 번 발을 내디디면 그대로 빠져들게 된다. 남자친구의 오른손이 브로콜리가 된다 해도(<브로콜리 펀치>), 사람이 돌과 대화할 수 있다고 해도(<치즈 달과 비스코티>), 말하는 이구아나에게 수영을 가르치는 것도 (<이구아나와 나>) 그의 세계에서는 가능하다. 그렇게 자신의 세계관을 납득시킨 뒤 작은 위로를 꺼낸다. 그의 소설을 읽으며 속수무책으로 내 안의 괴로움을 마주하는 동시에 위로받았다. 마지막 장을 넘긴 후에는 그가 지금 어디서 어떤 상상을 하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최수진
공예 작가
‘여러 종류의 광물을 공간에 구축하거나 평면에 바르면서 사물의 존재 양상을 재현한다.’ 최수진은 자신의 작업을 이렇게 표현한다. 그의 작업은 구현하고자 하는 세계 혹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보다 시작이 되는 물질에 기반한다. 그렇기에 대개 도자 작업에서 미움받고 버려지는 곰팡이가 핀 흙조차도 그에겐 귀중한 감각의 대상이 된다. 물질은 존재 방식에 따라, 작가가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 작품이 될 수도, 상품이 될 수도, 물질 그 자체로 남을 수도 있다는 걸 그의 작업을 통해 알게 됐다.
박민하
미술가
한국 미술을 향한 세계의 관심이 뜨거웠던 최근 몇 년간 박민하는 ‘국내 젊은 작가’를 꼽을 때 자주 거론된 인물이다. 풍경을 통해 얻은 감각을 점, 선, 색과 도형 등으로 이뤄진 도상 언어로 묘사한 그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따뜻한 성정이 느껴진다. 그가 다양한 ‘빛’을 꾸준히 작품에 담아낸 것도 찰나를 감지하는 섬세한 마음을 지닌 덕분일 것이다. 반짝이는 속성을 가진 안료와 붓질로 그가 경험하고 탐구한 빛을 표현한 최근작은 2022년 마지막 날까지 개인전 <Tunnels>를 통해 관객을 만났다. 세상의 여러 얼굴을 면밀히 살피는 그의 시선은 2023년에도 캔버스 위에 아름답게 펼쳐질 것으로 기대한다.
작품을 통해 빛을 꾸준히 탐구해왔다. 빛의 어떤 점에 마음이 이끌렸나? 무형의 가변 소재인 빛은 풍경의 기본 요소다. 빛의 테두리, 빛과 빛의 경계, 빛과 어둠의 공존 등을 탐구하고 해석하는 작업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제시하기 때문에 나를 비롯한 미술가들이 작품의 주제로 빛에 관심을 가져온 것이 아닐까 싶다. 예전에는 빛이 남기는 잔상에 주목했다면 요즘은 자동차 헤드라이트, 네온사인이나 LED를 비롯한 인공적인 빛을 주의 깊게 보고 있다.
풍경을 이차원의 추상 작품으로 그려낼 때 무엇을 신경쓰며 작업하는 편인가? 장면을 이루는 여러 형태에 대해 고민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본질에 가까워지기를 기대하며 작업한다. 이 과정에는 오류나 새로운 발견이 있기 마련인데, 이를 기호화해 회화적 언어로 표현한다. 직관적 재현이 아닌 만큼 진정성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이를 획득하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독창적인 작품을 완성할 수 있는 것 같다.
예술 활동의 가장 큰 동력은 무엇인가?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 작품의 성과도 물론 중요하지만, 작가의 삶은 하루하루가 곧 과정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작품을 만들면서 수많은 결정을쌓아간다. 되돌릴 수 없는 선택 때문에 실패하고, 새로움을 포착하며 여러 경험을 겸허히 받아들이려고 노력한다.
작가로서 잃지 않으려는 태도가 있다면? 나만의 속도와 스타일을 유지하려 한다. 솔직하고 ‘파인(fine)’ 한 것을 알아보고, 파악하고, 그것들의 다름을 적극적으로 경험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2023년에도 별 탈 없이, 하던대로 작업해나가고 싶다. 어쩌면 그게 가장 큰 새해 소망이 아닐까.
문보영
시인
문보영은 내밀한 마음을 자신만의 언어로 행간에 녹여내는 시인이라는 존재가 생각보다 우리 가까이에 있음을 실감하게 한다. 2016년에 등단한 이후 1년 만에 첫 시집 <책기둥>을 선보이며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한 그는 30대 초반이 된 지금까지 자신의 문학이 닿을 수 있는 영역을 확장해왔다. 시뿐 아니라 소설과 에세이를 선보였고, 출판에서 더 나아가 다양한 방식으로 독자를 만나고 있다. 일기를 전하는 뉴스레터, 우편으로 보내주는 손편지, 시를 읽어주는 전화를 받아본 적이 있다면 문학을 향한 문보영의 사랑을 느꼈을 거라 짐작한다. 그의 일상을 엿볼 수 있던 유튜브 채널은 몇 달 전부터 시집 집필 작업에 집중하기 위해 잠시 중단했다. 그의 새 시집을 만날 수 있는 날이 머지 않은 것 같다.
양인모
바이올리니스트
2022년 제12회 장 시벨리우스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한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는 ‘혜성 처럼 등장한’ 신인이 아니다. 그는 7년 전 제54회 프레미오 파가니니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 1위에 오른 이력이 있다. 예술가로서 긴 정체기를 지나왔다는 그는 이번 콩쿠르를 통해 ‘현대 작품 최고 해석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함께 안았고, ‘인모리우스’라는 별명도 얻었다. 새로운 시작을 알린 그는 지금 국내외를 넘나들며 바이올린 특유의 마음을 울리는 선율을 선사하는 중이다.
김보람
영화감독
여성의 몸과 생리에 관한 <피의 연대기>(2017), 어머니의 기일을 맞아 한 집에 모인 다섯 자매의 이야기를 담은 <자매들의 밤>(2020), 만성비염 환자를 주인공으로 한 <내 코가 석 재>(2021). 김보람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관통하는 공통점은 일상과 아주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는 것이다. 그의 두 번째 장편 <두 사람을 위한 식탁>(2022)도 다르지 않았다. 식이 장애를 앓는 딸과 그의 병에 무력한 어머니의 관계를 파고든 이 다큐멘터리는 인간의 가장 깊은 내면에 조심스럽게 다가가고, 이를 투명한 시선으로 담아내며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마음의 근원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감독의 차기작을 손꼽아 기다리게 된다.
이연
배우
“모든 작품을 사랑으로 대하려 한다.” 2021년의 끝자락에 만난 배우 이연이 한 말이다. 사랑할 수 있는 작품이라면 형태를 가리지 않으며 참여하고 싶다던 그의 바람은 현실이 되었다. 그는 2022년에 <소년심판>의 13세 촉법 소년 ‘백성우’, <약한영웅 Class 1>의 가출 청소년 ‘영이’를 연기했다. 전주국제영화제 한국단편경쟁 부문에 선정된 영화 <오 즐거운 나의 집>의 주연도 맡았다. 다양한 작품 안에서 누구든 되는 그의 더 많은 얼굴을 보고 싶다.
김길리
쇼트트랙 선수
18세 쇼트트랙 선수 김길리에게 2022-2023 시즌은 대중에게 자신의 이름을 확실히 알리는 시간이 될 것이다. 김길리는 이번 시즌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종합 1위에 오르며 성공적으로 시니어 무대 데뷔전을 치렀다. 이어 쇼트트랙 월드컵 1차 대회 개인전에서 은메달과 동메달을 획득했고, 2차 대회에서는 1500m 개인전의 금메달을 목에 걸었을 뿐 아니라 여자 계주 3000m의 마지막 주자로서 ‘역전 레이스’를 펼쳐 팀의 1위에 기여했다. 2022년 12월에 진행한 3~4차 대회에서도 침착하게 빙판을 가른 그는 또래 선수 중 최강자이자 차세대 에이스임이 분명해 보인다.
이혜인
공간 디자이너
이혜인의 영감은 어릴 때 살았던 섬나라, 스리랑카의 건축물에서 비롯된다. 그 결과 대자연과 어우러진 건축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자연환경과 공간 본연의 아름다움을 디자인에 접목해왔다. 도시의 공간을 완성해가며 그는 열대의 원색처럼 강렬하게 대비되는 물성, 질감, 색의 재료로 빛과 그림자의 역할을 대신해 강조하는 작업을 즐긴다. 화이트와 블랙, 블루 컬러로 면을 채운 뒤 낙서 같은 그래픽을 더해 활기가 감도는 ‘콤포트 서울’ 등을 선보이며 색다른 공간 경험을 전하고 있다.
최유리
싱어송라이터
기타와 피아노 연주 등으로 이뤄진 담백한 사운드 위에 조근조근 이야기하는 듯한 노래를 얹어내는 싱어송라이터 최유리. 그의 음악을 집중해 듣고 있으면 가사를 찬찬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진심을 꾹꾹 눌러 담은 것 같은 표현들은 ‘음악의 가장 큰 힘은 공감’임을 새삼 느끼게 한다. 최유리는 지난 한 해 동안 2장의 EP를 냈고, 싱글 작업과 협업 그리고 OST에도 여러 차례 참여했다. 2023년에도 활발한 활동이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최근 그가 EP <여운>을 선보이며 직접 쓴 타이틀곡 ‘흔적’의 소개글을 옮긴다.
‘우리에게 어떻게 흔적이 없을 수 있을까. 매일 아침, 그리고 밤 하루만 놓고 보아도 넘쳐나는 흔적이 남아 있다. 나와 당신의 싱그러운 마음들이 오래도록 남아 있는 흔적이 되길 바라며.’
정그림
작가
정그림의 작품은 예술과 아트 퍼니처의 경계를 자유로이 넘나든다. 작가는 대학생 때 고무 튜브에서 영감을 얻어 구상한 ‘모노(Mono)’ 시리즈를 통해 역동적인 선으로 이뤄진 가구를 선보이며 주목받았다. 스틸로 모양을 잡고 실리콘으로 감싸 탄생시킨 이 시리즈는 다양하게 변주되며 전시장이나 일상 공간 등에 자리하고 있다. 선으로 공간을 채우며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그의 작품은 물체와 공간, 인간의 긴밀한 상호작용을 만들어낸다. ‘제대로 된 물건을 오래 쓰면 낭비할 일이 없다’는 작가의 생각을 알고 나니 그의 작품을 더더욱 내 공간에 들이고 싶다.
다민이
래퍼
최근 한국 힙합 신에서 돋보이는 여성 래퍼를 꼽으라면 다민이를 빼놓을 수 없다. 등장과 동시에 다수의 래퍼에게 샤랴웃(shout out)을 받은 그는 독특하고 거친 톤과 인상적인 라인으로 리스너에게 타격을 준다. 자신을 향한 피드백에 대해 ‘모두가 좋아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으면 힙합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당당히 밝히는 태도도 멋있다. <DOG OR CHICK> <혼자 (ALONE)> <잘 있지>를 비롯한 싱글을 공개해온 그가 앨범 단위의 작업에서는 어떤 음악을 들려줄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