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때보다 이 환대가 고무적인 건
그들이 찬미하는 ‘K’가 단지 ‘한국 문화 예술’
이라는 타이틀 아래 한데 묶기는 어려울만큼
저마다 다채로운 개성과 차이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간 거칠게 요약되고 총칭되던 K-컬처의
가장 예리하고 진취적인 조각들을 이 자리에 모았다.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던 질문과 새로운 발견으로
한국 문화 예술의 지평을 넓히고 있는
4인의 예술가들이다.
소설가 이민진
소설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 <파친코>
소설을 쓰고 그에 필요한 연구와
경험을 하면서 인간이 끔찍한 행동을
저지를 수 있는 존재임을 깨달았지만,
동시에 인간이 얼마나 자비롭고
유머러스하며 사랑스러울 수 있는지
또한 알게 되었습니다.
이민진이라는 이름은 K-컬처 부흥의 기세를 더하는 상호 보완적이면서도 시의적절한 등장이었다. 그를 세상에 알린 소설 <파친코>는 <뉴욕타임스>, BBC, 아마존 등 세계 75개 이상의 매체와 플랫폼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됐으며, 전미도서상 최종 후보에 오르고, 전 세계 33개국 언어로 번역돼 수출되며 한국이라는 키워드의 스펙트럼과 깊이를 확장했다. 4대에 걸친 재일 교포의 삶을 다룬 대하 서사극 <파친코>, 재미 교포 1.5세대 여성이 백인 중심의 미국 사회에서 생존하는 과정을 그린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에는 현시대의 첨예한 화두가 된 인종과 계급, 차별과 혐오를 선명한 언어와 집요한 자료 조사, 차가운 사유와 논리가 담겨 있다. 대하소설 특유의 방대한 스케일과 이를 이끌어가는 작가의 담력과 배포, 집요한 조사와 연구에 감탄하다가도 찬사를 넘어 그의 이야기를 끝내 사랑하게 되는 건 작가가 창조한 인물 때문이다. 그의 이야기에는 사랑할 수밖에 없는 한국인들이 존재한다. 이민진 작가가 그리는 인물은 자기 앞에 놓인 삶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돌파한다. 비극적 역사 속에서도 훼손되길 거부하는, 훼손되어도 끝내 회복하고야 마는, 오직 자신으로 살아가고자 한 존엄한 이들이 그의 이야기 속에서 살아 숨 쉰다. 이민진 작가는 현재 ‘한국인 디아스포라’(타국에서 살아가는 공동체집단)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이 될 소설 <아메리칸 학원> 집필을 위해 다시 길고 지난한 길 위에 올랐다. 서울과 뉴욕의 시차를 건너 그와 긴 이야기를 나눴다.
특별하지 않은 사람들이
특별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특별한 사람들이
특별하지 않은 삶을
살 수 있다는 것도 배웠죠.
한국 독자를 만나는 자리에서 본인을 향한 요즘의 뜨거운 관심에 대해 ‘긴 시간 한국을 향해 써온 러브레터의 답장을 받는 것 같다’고 말했죠. 한국에서 자신의 소설이 읽힌다는 것, 나아가 한국 독자들과 소통하는 최근의 경험이 어떤 변화를 만들고 있습니까? 서울에서 태어나 일곱 살 때 미국으로 왔기 때문에 서교동에서 보낸 어린 시절의 기억이 남아 있어요. 태어난 나라에 대한 깊은 애정을 차치하더라도 나라는 사람을 구성하는 영혼과 상상력에 한국이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한국 독자들이 내 소설을 읽는다는 사실은 저에게 의미가 큽니다. 고향을 찾은 기분이에요. 세계 곳곳에 자리 잡은 한국인 이민자들에 대한 애착이 크고, 한국인과 한국의 역사에 책임감을 느끼고 있어요. 작가로서 한국인을 만나는 일은 제 안의 유대를 더욱 공고히 하는 경험이죠.
작가가 품는 한국인으로서의 책임감은 작품 안에서 드러나죠. 작품 속에서 그리는 한국인은 오랜 시간 미국 사회에서 고정돼왔던 한국인에 대한 전형적인 이미지를 깨는 역할도 하고 있습니다. 소설을 통해 다양한 결의 한국인을 보여줌으로써 느끼는 즐거움과 보람이 있을 것 같습니다. 한국인을 대표하는 이야기를 가장 진실된 시각으로 쓰는 것은 곧 내 본질, 인간다움을 주장하는 방법입니다. 누군가 우리의 복잡하고 풍부한 인간성을 인정하지 않으려 할 때 우리는 진실을 주장할 권리가 있죠.
동시에 소설 <파친코>의 미덕 중 하나는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인에 대한 개별적이고도 다채로운 묘사죠. 한 인간을 특정 ‘국민성’으로만 이해하는 것도, ‘국민성’의 뿌리가 되는 역사적 배경을 완전히 배제하고 접근하는 것도 모두 불완전한 방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인물을 묘사하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무엇인가요? 눈앞의 사람을 되도록 세밀히, 주의 깊게 바라보려고 합니다. 인종과 민족, 계급과 성별, 종교를 떠나 공정하고 진실되게 묘사하고 싶고요. 인물의 행동에 대해, 내 성향이나 철학과 반대되는 행동이라 할지라도 그 이유를 이해하려고 심사숙고합니다. 그 이해의 바탕에는 연구와 조사가 있죠. 직접 현장을 찾아가고, 다양한 인물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민진 작가는 소설 <파친코> 집필 과정 중 일본에서 4년간 체류하며 수많은 재일 교포를 인터뷰하고, 자료조사를 진행했다.) 인간은 모순으로 가득 찬 존재임을 자주 깨닫습니다. 동시에 이 깨달음은 내가 표현하는 인물 역시 이런 인간의 다면성을 존중받아야 한다는 인식으로 확장됩니다. 역사는 지금까지 인간이 해온 수많은 행동과 결정, 그로 인해 느낀 감정의 기록입니다. 인간은 비난받아 마땅한 일을 저지르고도 스스로는 도덕적으로 정당하다고 믿기도 하잖아요. 저마다의 다양한 동기를 이해하고,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의미 있게 서술하는 것이 곧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과 <파친코>에는 공통적으로 불평등과 억압, 외압으로 인한 좌절이 존재합니다. 이는 작가가 현실을 냉정하게 인식한다는 인상을 줍니다. 하지만 오프라인 강연 등 작품 밖에서 보이는 작가는 건강한 낙관을 지닌 사람 같아요. 비관과 낙관을 모두 끌어안는 힘은 어디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하시나요? 소설을 쓰고 그에 필요한 연구와 경험을 하면서 인간이 끔찍한 행동을 저지를 수 있는 존재임을 깨달았지만, 동시에 인간이 얼마나 자비롭고 유머러스하며 사랑스러울 수 있는지 또한 알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모든 인간은 살아가기 위해, 살아 남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걸 배웠어요. 다만 저마다 생존 철학과 윤리관의 차이가 있는 거죠. 분명한 건 있습니다. 시종일관 냉소와 자기중심적 태도로 살아간다면 보잘것없는 삶으로 귀결될 것이라 확신해요. 제가 사랑스러워 보이지 않는 사람들까지도 사랑과 포용으로 감싸려고 하는 이유입니다. 제가 올해 쉰네 살인데, 지난 50여 년의 시간 동안 사람들한테 배신당하고 실망한 적도 있습니다. 내게 상처를 준 이들 또한 저마다 정당성과 복잡한 이유가 있었겠죠. 그들이 자신의 부도덕성을 변호하는 논리와 그들의 냉혹성에만 연연하다 보면 결국 그게 내 감옥이 될 거예요. 저는 보다 자유롭고 창의적으로 살아가길 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희망과 용서가 필요하죠.
역사와 사회, 세대와 계급 등 사회적 사실주의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 방대하고 집요하게 자료 조사를 하는 집필 방식은 독자만큼이나 작가 자신을 변화시킬 것 같습니다. 오랜 시간 소설을 써온 행위가 작가를 성장시키고 변화시켰다면, 어떤 점에서 자신이 확장되었다고 느끼는지요? 특별하지 않은 사람들이 특별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특별한 사람들이 특별하지 않은 삶을 살 수 있다는 것도 배웠죠. 저는 영리하지도, 전략적이지도 않습니다. 재능 있는 사람은 더더욱 아니고요. 하지만 책과 에세이를 쓰고 강연을 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만족할 만한 작품을 완성할 수 있는 사람이며, 어려운 일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습니다. 제가 체득한 이 믿음 아래 소설가로서 작품성과 진실성에 모든 관심과 에너지를 집중합니다. 작품과 삶에 완전히 몰두하죠.
‘지금, 이 작업이 왜 중요하지?’
이런 질문을 자주 합니다.
동시에 ‘누가 관심을 갖겠어?’라는
의심은 최선을 다해 거두려 합니다.
집필 과정에서 스스로에게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은 무엇인가요? ‘지금, 이 작업이 왜 중요하지?’ 이런 질문을 자주합니다. 동시에 ‘누가 관심을 갖겠어?’라는 의심은 최선을 다해 거두려 합니다.
소설가로서 스스로 가장 염려하고 경계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산만함과 거짓을 경계합니다. 이 세계에는 지나치게 많은 거짓이 산재하고, 이 사실은 저를 자주 아프게 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소설가인 저는 두 손과 온 마음과 정신을 다해 창조한 허구의 인물을 통해 진실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결코 쉽지 않은 이 과업이 저를 겸손하게 만들어요. 스스로 나의 한계를 가늠하고, 최대한 진실된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소망의 크기를 재단하려는 것을 경계합니다.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 <파친코>에는 삶을 정면으로 돌파하는 여성들이 등장합니다. 작가가 이들을 사랑한다는 느낌을 받고요. ‘케이시’와 ‘엘라’, ‘선자’와 ‘경희’ 등 투쟁하는 여성을 그릴 때의 쾌감을 묘사한다면요? 다른 여성을 사랑할 힘을 지닌 강인한 여성을 창조할 때 희열을 느낍니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살다 보면 여성은 남성의 관심과 인정을 얻기 위해 서로 싸워야 한다고 믿게 되죠. 하지만 진정한 힘은 (권력을 덜 가진) 여성들이 경쟁에서 서로를 끌어내리고 좁은 자리를 차지하려 애쓰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힘을 보태는 과정에서 발현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다른 여성 혹은 남성과 싸울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억압하는 시스템과 싸워야 하죠. 제가 그린 케이시, 엘라, 선자, 경희는 용기와 타인과 세상을 대하는 진정성, 성실과 충실로 정의되는 인물입니다. 이들은 개별적인 존재지만 공통된 윤리 기준을 공유하고 있어요. 저는 미학에 있어서도 윤리 없는 아름다움이란 있을 수 없다고 믿습니다.
작가가 창조한 인물에게 배우는 면도 있지요? 두 작품의 주인공 선자와 케이시에게 어떤 점을 배우고 깨달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선자는 저에게 혁신과 유연함, 용기를 갖고 어려운 도전에 맞서라고 가르쳤습니다. 또한 그녀는 자신의 가치를 존중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세상은 그녀를 그다지 가치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여겼을지 몰라도 그녀는 자신이 가치 있는 사람임을 알고 있었어요. 선자를, 선자의 삶을 그려가는 과정에서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법을 배웠습니다. 케이시는 일반적인 생애 주기와 다른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동년배들과 다른 사람이 되고자 했던 제 바람을 스스로 존중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선택 속에는 크고 정직한 삶을 살고자 하는 나의 바람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어요. 케이시를 그리면서 단기적으로는 경솔해 보일지라도, 장기적으로는 나에게 필요할 수 있는 위험을 무릅쓰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위 여성 캐릭터들을 설명하는 중요한 단어 중 하나가 ‘회복 탄력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운동으로 근육을 강화하듯 회복 탄력성 또한 강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회복 탄력성을 지닌 사람들의 공통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회복은 실망스러움을 인지하고 그로 인해 생기는 원치 않는 감정을 경험하며, 자신의 바람을 재구성할 것을 요구하죠. 우리는 때로 그 상황을 인내하거나 돌파하기 위해 사실과 감정을 애써 외면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실패와 받아들이기 어려운 감정을 회피해서는 결코 회복 탄력성을 얻을 수 없을 겁니다.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의 케이시는 실제 집필한 해로 계산하면 지금쯤 중년 여성이 되었을 텐데요. 지금 케이시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혹은 바라십니까? 케이시는 창의적인 사업가가 되어 있을 거예요. 스스로의 힘으로 잘 이뤄냈을 테고요. 그녀의 30대는 투쟁으로 점철되었을지 몰라도 저는 케이시가 자신의 욕망을 존중하고 이를 충족하기 위해 노력했을 거라 믿습니다. 관습에 얽매이지 않으며, 진실을 이야기하고, 성실하게 삶을 살아가는 이이기에 자랑스럽죠.
최근 북 토크에서 본인을 두고 ‘어떤 일이든 50개의 각주(근거)를 달 수 있는 사람이다. 누군가 51개의 각주(근거)를 달지 않는 이상 설득당하지 않는다’라고 했습니다. 자신에 대한 강한 믿음은 어디에서 비롯되고 발현되나요? 저는 지름길을 싫어하는 성향 때문에 오랜 시간 실패를 경험해야 했습니다. 무언가를 완전하게 알고 싶었기 때문에 돈을 많이 벌지 못하고, 지위가 낮고, 충분히 인정받지 못해도 삶을 견딜 수 있었고요. 결국 이 특이한 작업 방식(이민진 작가는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을 완성하는 데 11년, <파친코>를 완성하는 데 26년이 걸렸다.) 이 광기가 아닌 것으로 밝혀졌죠. 자칫 내 작업이 헛된 일이었다고 여겨질 수도 있었어요. 누군가에게는 내 방식이 어리석고 우둔해 보일 수 있지만 나만의 방법을 존중할 때 과정과 결과에 가장 만족감을 느끼는 사람이 곧 나 자신임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이는 재능과 비전에 대한 믿음을 주었고요. 작가의 삶은 참 기이해서 이런 작은 만족은 큰 자산으로 느껴집니다. 지금까지 추구해온 방식과 과정이 평범한 삶에 기쁨과 의미를 주기 때문에 스스로를 신뢰합니다.
소설가가 되기로 마음먹고, 오랜 시간 분투하셨습니다. 그사이 한국에 대한 세계의 관심이 높아지고 관련 콘텐츠도 풍부해졌지만 책이 출간되기 전, 수십 년간 긴 터널 안에 있을 때는 지금의 상황을 예측하지 못했겠지요. 과거의 작가 본인처럼 지금 막막한 채 터널 안에 있는 있는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당신이 현재 고군분투 중이라면 매일 하고 있는 일에서 빛과 목적을 발견하기를 바랍니다. 제 삶에는 제가 단 한 쪽의 책을 펴내지 못했더라도 변함없이 나를 아껴줄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사랑과 존중이 이 일을 지속할 수 있는 힘을 주었어요. 아무 조건이나 기대 없이 당신을 사랑해주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아껴주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타인에게 봉사하는 마음을 가지세요. 비록 전혀 알지 못하는 남일지라도요. 저는 때때로 의욕을 잃었을 때 힘이 닿는 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려고 노력했습니다. 내 도움을 필요로 하는 누군가에게 유익한 존재가 된다는 사실이 한층 더 큰 목적의식을 심어주었습니다. 타인을 위해 할 수 있는 작은 일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사소한 일일지라도 그러한 행동을 하는 사람만이 타인의 삶에 의미 있는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거라 봅니다.
차기작으로 <아메리칸 학원>을 집필 중이죠. 요즘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은 무엇입니까? 어떤 질문이 작가를 다시 책상 앞에 앉게 하는지 궁금합니다. <아메리칸 학원>을 쓰면서 어떻게 하면 수많은 아이들과 가정을 고통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교육의 가치를 중시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아이들의 어린 시절을 빼앗고 부모 자식의 관계를 파괴하는 현실에 큰 비애를 느낍니다. 교육이 인간을 해방시키고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습니다. 교육의 더 고귀한 목적을 살릴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메타코미디 CEO 정영준
<피식대학> <빵송국> <숏박스> 등
유튜브 채널 15개 운영
저희는 수많은 변주를 할 예정이고,
새로운 시도를 할 것입니다.
메타코미디는 코미디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기 위한
노력을 지향하는 회사 같아요.
‘이게 진짜야’ 하면서 마냥
똑같은 방망이만
깎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이게 이렇게 웃길 일인가?” 등산복을 입은 중년 아저씨들, 과하디과한 필터 뒤에서 활동하는 페이크 아이돌, 콩글리시와 영어, 한국어로 자연스럽게 대화가 되는 무국적 토크쇼 이야기다. 흡사 우리가 사는 세상과 닮은 평행 우주를 엿보는 것 같지만 저쪽 우주에선 피로보다 재미가 우세하다. <피식대학><숏박스> <빵송국> <엄지렐라> <장삐쭈> 등 유튜브를 강타한 코미디 채널에 날개를 달아준 대디, 메타코미디 정영준 대표와 만났다. 정영준 대표는 오하이오 주립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한 후 건축사 사무소 매스스터디스에서 경력을 쌓았다. 그러다 돌연 방향을 틀어 CJ ENM에 입사해 마케팅 능력과 광고 영업 기술을 두루 익히고 YG 엔터테인먼트로 이직해 <블랙코미디> <B의 농담> 등을 기획했다. 이후 MCN 플랫폼인 샌드박스 네트워크를 거쳐 2021년 7월, 국내 최초의 코미디 레이블 메타코미디를 설립했다. 메타코미디의 등장으로 한동안 주춤하던 한국 코미디계에 숨통이 트였다. 정 대표는 콘텐츠 제작, 매니지먼트, 비즈니스 등을 아우르며 더욱 원대한 야망을 실현하기 위한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 코미디를 대하는 진지한 태도, 풍부한 데이터를 갖춘 안목, 다채로운 경험이 그가 쥔 무기다. 코미디라는 주제로 긴 이야기를 주고받는 동안 정영준 대표는 어떤 질문에도 허투루 대답하지 않았다.
제프 베이조스(Jeff Bezos)가
한 말이 있어요.
아마존을 창업한 뒤 하루의 대부분을
책 포장을 하는 데 썼대요.
하루의 99%를 그 일을 하는 데 쓰고,
1%의 시간에만
자기가 나중에 무얼 할지 생각했대요.
그 1%의 유무가 결정적 차이를
낳는 것 같더라고요.
저도 매일매일 해야 할 일을 하되,
항상 1% 정도는
더 큰 그림을 계속 그렸던 것 같습니다.
설립한 지 2년이 채 되지 않은 메타코미디의 성장세가 대단합니다. 오늘까지 일궈온 일들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코미디가 사양산업이 아니다.’ 이 정도의 이야기는 할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코미디는 결코 사라질 수 없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도록 했다는 사실을 대단히 뿌듯하게 생각합니다.
여러 인터뷰에서 대표님의 독특한 이력이 공개되며 화제를 모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건축 전공자가 굵직한 엔터테인먼트 기업에서 이력을 쌓은 뒤 코미디를 전문으로 하는, 전에 본 적 없는 회사를 설립했으니까요. 건축 할 때는 건축을 무척 좋아했어요. 사실 건축을 잘할 자신도 있었고, 계속하고 싶었는데, 막상 일을 해보니 사람들이 전부 건축에 관심을 갖게 만들 자신이 생기지 않았어요. 해외와 달리 한국에서는 건축이나 건축가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는 느낌을 받았죠. 하지만 엔터테인먼트는 우리 삶 깊숙이 있잖아요. 일종의 상업 예술인데, 여기에서 발전시킬 수 있는 비즈니스의 가능성을 믿었어요.
모든 덕후에게는 입덕 포인트가 있기 마련이에요.(웃음) 대체 무엇이 자신을 코미디로 이끌었다고 생각하나요? 미국에서 대학교에 다닐 무렵, ‘매드TV(MADtv)’라는 코미디 시리즈에서 한국계 배우인 바비 리(Bobby Lee)가 연기하는 모습을 봤어요. <에버리지 아시안(Average Asian)>이라는 프로그램이었는데 미국에 사는 아시아인으로서 깊이 공감되고 재미있더군요. 친구들에게도 소개하고, 바비 리의 스탠드업 코미디를 보다가 다른 유명인의 작품까지 찾아서 보면서 코미디 사랑이 시작된 것 같아요. 일본 코미디에도 관심이 많았어요. 한국 아티스트가 일본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칠 때였죠. 그들을 인터뷰하는 일본인 진행자들이 너무 웃겼어요. 말을 참 재밌게 잘하길래 알아보니까 만담 듀오 출신이더군요. 이런 식으로 미국과 일본의 코미디를 마구 파고들다 보니 한국 코미디의 아쉬운 점이나 채워가고 싶은 방향 같은 것이 자연스럽게 보이더라고요.
그렇다고 진로를 완전히 바꾸겠다는 용기를 내는 건 쉽지 않은 일이죠. 때마침 건축을 그만두는 시점과 맞물리면서 본격적으로 코미디에 대해 생각해봤는데, 그때만 해도 막연한 꿈이어서 생각대로 흘러갈 줄은 몰랐어요. 고민 끝에 대학원에 원서를 쓰고, 여러 회사에 지원하기도 했거든요. 좋은 학교에 합격했지만, 결국 CJ ENM을 선택했죠. 사실 건축은 종합예술이에요. 디자인으로서 건축, 공학으로서 건축, 인문학으로서 건축, 세 가지를 두루 배우는 학문이거든요. 엔터테인먼트 역시 대표적인 종합예술이라고 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진로를 바꿀 때도 제가 배운 스킬이 의외로 많은 도움이 됐어요.
여러 옵션 가운데 선택할 때는 무엇을 우선순위에 두나요? 종합적으로 판단해요. 저는 고민할 때 딱 정해진 시간까지만 하고 결론을 내요. 그다음부터는 절대 뒤를 돌아보지 않죠. 듣기에는 쉽고 깔끔한데 사람이 정말로 후회하지 않기는 어렵잖아요. 힘들죠. 근데 한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결정한 일을 성공적으로 해내면 돼요. 내 선택이 옳았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미친 듯이 열심히 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회사에 다닐 때도 아주 열심히 일했어요. 성공하고 싶은 야망도 컸고요. 처음에 마케팅 팀에 들어가 열심히 해서 실력을 인정받으니 돈 쓰는 부서 말고 돈 버는 부서에서 배워야 할 것 같아서 팀도 옮기고, 이후 회사도 옮기게 되었죠.
성공하겠다는 야망의 구체적인 목표가 회사를 설립하는 일이었나요? 제프 베이조스(Jeff Bezos)가 한 말이 있어요. 아마존을 창업한 뒤 하루의 대부분을 책 포장을 하는 데 썼대요. 하루의 99%를 그 일을 하는 데 쓰고, 1%의 시간에만 자기가 나중에 무얼 할지 생각했대요. 그 1%의 유무가 결정적 차이를 낳는 것 같더라고요. 저도 매일매일 해야 할 일을 하되, 항상 1% 정도는 더 큰 그림을 계속 그렸던 것 같습니다.
예술에 필요한 것 중
하나가 훈련이에요.
자신이 가진 재능을 발견해
가다듬는 훈련을 한 다음에
어느 정도 수준에 오르면
결국 기존의 것을 어느 정도까지
비틀고 깨부수면서 자기 목소리를
내느냐 하는 싸움이잖아요.
최고 경지에 이른 축구 선수들 사이에서
아주 작은 차이로 승부가 갈리는 것처럼요.
한 분야의 판도를 뒤흔든 개척자로서 메타코미디가 가져다준 기회는 무엇이었고, 그 과정에서 어떤 어려움을 겪었나요? 여러 시도를 통해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는 자신감이 좀 있었어요. 사업 계획을 짤 때도 코미디로 할 수 있는 여러 가치 체인을 갖추면 실패하지 않을 거라는 복심이 있었고, 나름 계획대로 잘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다만 그 이상을 봤을 때, 저는 코미디가 하나의 문화가 되길 바라거든요. 마치 힙합처럼요. 코미디가 라이프스타일로 진화하는 건 그 어디서도 아직 성취하지 못한 일이에요. 이런 바람을 어떻게 시작해 완성할 것인가 하는 고민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그 안에서 대표의 역할은 구체적으로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요즘 예술병에 걸려서(웃음) 코미디가 예술이라는 사실을 널리 알리는 것이 제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크리에이터들이 스스로 예술가라고 말하기는 영 어색하잖아요. 음악 사업만 해도 프로듀서를 비롯해 사업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아주 많습니다. 그런데 코미디에서는 코미디언만 알려질 뿐 나머지 주요 인물이 드러나지 않는 판도가 기형적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이런 측면에서도 제가 새로운 역할을 만들어가려 합니다.
메타코미디가 운영하는 15개 채널을 일일이 챙겨 보세요? 최대한 다 보려고 합니다. 다만 숙제처럼 보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보게 돼요. 일하고 집에 가는 길에 보면 이미 피드에 다 떠 있거든요.(웃음)
채널의 면면을 보면 스탠드업, 스케치, 정치 풍자 등 색깔이 다양합니다. 코미디의 영역은 과연 어디까지일까요? 재미있는 통계가 있어요. 영화와 드라마를 포함하면 코미디의 미국 전체 시장 규모가 음악 시장보다 크다고 합니다. 그 반면 스탠드업처럼 전통적인 코미디 콘텐츠만으로 한정한 다른 통계에서는 시장이 아주 작더라고요. 이런 차이를 보며 결국 콘텐츠 회사로서 진화해 크리에이터, 한국 코미디언들에게 더 큰 기회의 물꼬를 터주어야 한다고 느꼈죠. 물론 작은 시장에서 강자로 남는 것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만요. 질문에 답하자면, 코미디와 관련한 모든 콘텐츠가 코미디가 아닐까 싶습니다.
요즘에는 재미있는 일반인도 많고, 여러 곳에서 웃음을 주는 예능인도 있어요. 코미디는 이런 활동과 어떤 면에서 다른가요? 일본에서는 코미디언을 게이닌(예인)이라고 불러요. 예술적으로 어느 정도 탐구한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예술에 필요한 것 중 하나가 훈련이에요. 자신이 가진 재능을 발견해 가다듬는 훈련을 한 다음에 어느정도 수준에 오르면 결국 기존의 것을 어느 정도까지 비틀고 깨부수면서 자기 목소리를 내느냐 하는 싸움이잖아요. 최고 경지에 이른 축구 선수들 사이에서 아주 작은 차이로 승부가 갈리는 것처럼요. 코미디언이라는 직업의 일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는 극단 형태로 이런 훈련이 이뤄졌고, 극을 짜거나 연기하는 방법이 구전으로 전해졌습니다. 코미디를 구성하는 공식이 분명 존재하고, 그것을 어떤 형태로 활용하는지에 따라 예술이 되느냐, 기술이 되느냐 하는 차이가 생기는데, 한국에는 그런 이론을 다루는 전문 서적도 거의 없고, 중요성을 경시하는 것 같아 조금 아쉽죠.
새로운 시대의 코미디언에겐 어떤 훈련이 더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코미디도 결국 일종의 극을 만들어가는 형태의 예술이에요. 어떻게 더 짜임새 있게 극을 만들고, 어떤 톤과 어떤 캐릭터를 통해 내용을 전달할 것인지를 항상 고민해야 합니다. 그 부분은 방금 말한 것처럼 연습과 배움과 경험을 통해 얻어야 하죠. 제가 공연장을 마련하고, 신인을 육성하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은 것이 바로 그 때문이에요. 현재 극단이 많이 없어져 코미디에 뜻을 품은 어린 친구들에게 배움의 기회가 사라진 상태이거든요. 유튜브나 소셜 미디어를 통해 스스로 발전하는 것이 거의 유일한 방법인 셈이에요. 이런 식으로 재미있는 것도 많이 나오고, 이는 분명 고무적으로 볼 수 있는 현상이지만, 재능 있는 사람이 제대로 된 트레이닝을 받으면 실력이 아주 빠르게 늘 수 있거든요. 원래 노래를 잘하는 사람도 보컬 훈련을 하면 금방 더 잘하게 되잖아요.
원석을 다듬어야 보석이 된다는 말이군요. 하긴 다양한 페르소나를 연기해서 웃음을 끌어낸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인 것 같아요. 코미디를 짤 때 대본보다 중요한 것은 캐릭터가 지녀야 할 지식이에요. <피식대학>의 한사랑 산악회, 신도시 아재들은 내부 회의뿐아니라 아주 오랜 시간을 들여 여러 곳에서 각자의 지식을 쌓아왔기 때문에 진짜 같은 모습을 보일 수 있죠. 한사랑 산악회만 해도 설이나 추석 연휴 끝나고 왔을 때 가장 좋은 에피소드가 나온 것 같아요. 집안 어르신들을 만나뵙고 재미있는 포인트를 관찰해서 기록했다가 적용하니까 내용이 풍성해졌거든요. 결국 사람에 대한 탐구가 필요하고, 잘 짜인 대본이 있다 하더라도 캐릭터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면 이렇게까지 하기 어려워요. 코미디언들도 순전히 연기력에 기대기보다 탐구의 과정을 충분히 갖는 등 노력을 아끼지 않습니다.
누군가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코미디와 아무도 웃기지 못하는 코미디 중 무엇이 더 나쁠까요? 불편은 요즘 많이 얘기하는 주제이기도 합니다. 제가 아주 중요하게 여기는 지점이 코미디는 태생적으로 불편한 데서 나온다는 사실입니다. 모두가 완벽한 세상에는 코미디가 있을 수 없어요. 뭔가 흠집이 있고 불완전한 사람과 세상을 비틀어 재미를 찾는 일이다 보니 누군가는 불편해질 수 있거든요. 그 불편함에서 나오는 것이 코미디죠. 코미디는 불편함에서 탄생해서 그걸 불편해하는 반응과 싸워야 하는 아주 이상한 딜레마를 안고 있습니다. 항상 불편함과 재미 사이의 갈등을 느낄 수밖에 없지만, 사실 재미의 요소가 굉장히 커지면 불편함이 묘하게 용인되는 부분이 생겨요. 그러니까 재미 요소를 더 키우는 데 초점을 맞추죠. 우리 아티스트에게도 이런 내용은 위험하니까 하지 말라는 식의 피드백은 하지 않습니다.
표현의 자유에 훨씬 관대한 미국에서도 그 유명한 데이브 샤펠(Dave Chappelle)조차 “예민한 귀로 가득한 나라를 웃기는 일은 너무 힘들다”며, 무슨 말을 하든 누군가 화를 낸다고 고충을 토로했잖아요. 미국 사회도 불편을 용인하는 정도가 많이 낮아졌죠. 그런데 최근에는 자신들이 깨어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표현을 제한하다 보니 삶 자체가 풍요롭지 못한 것 같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어요. 차라리 더 시원하게 이야기하자는 움직임이나 반발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죠. 그걸 선도하는 것도 코미디고요.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그 정도는 아니어도 비슷한 공감대는 형성돼 있는 것 같아요. 코미디는 연설이 아니에요. 누구의 생각을 바꾸려고 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코미디로서 좋은 구조를 갖고 사람들에게 재미와 웃음을 줄 수 있는 형태의 극예술입니다. 예술에서 소재의 선택과 표현의 자유는 허용해야죠. 법이 최소한의 도덕이잖아요. 법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표현의 자유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럼, 메타코미디 콘텐츠 중에 제일 위험을 무릅쓰는 채널은 무엇인가요? 대니초(@dannychocomedy)가 아닐까 싶네요. 대니는 수십 년 동안 웃음을 탐구한 친구예요. 그래서 코미디에 가장 깊숙하게 들어가 있는 사람이기도 하고요. 웃음을 주기 위한 코미디로서 구조가 적당한지에 대해 한없이 파고들어요. 단어 하나를 선택할 때도 여러 가지를 고심해서 만들기 때문에 항상 위험이 따르면 웃음 코드를 끌어올려서 그걸 희석하려고 하는 성향이 있죠.
가장 대중적이고 보편적인 웃음을 끌어낼 수 있는 채널은요? 현재로서는 스낵타운(@SNACKTOWN) 친구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맑고 바른 청년들이라 아주 밝은 코미디를 선보이고 귀여워요. 천부적 재능이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평소 회의나 리뷰 때 많이 웃어주시나요? 웃음이 그다지 많은 편은 아닌 것 같아요.(웃음) 사실 우리 크리에이터들이랑 있을 때는 많이 웃을 수밖에 없어요. 너무 웃기니까. 이렇게 주변에 사람을 웃기는 일에 정통한, 그런 고도의 훈련을 한 사람들이 산재하다 보니 다른 일을 하는 친구들을 만났을 때 재미없다고 느껴질 정도라 아주 죽겠습니다.(웃음)
최근 보면서 제일 많이 웃은 콘텐츠가 무언지도 궁금해요. <빵송국>에서 여친 시점으로 진정한 빌런 남자친구를 표현한 시리즈가 있는데, 너무 많이 웃었어요. 극을 징그럽게 잘 짜서 아주 재밌게 봤습니다.
인생은 언제나 불확실하지만, 무수한 변수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삶의 태도를 유지하는 비결을 묻고 싶습니다. 어릴 때 제 제일 큰 단점이 쉽게 질리는 거였어요. 어떤 일에 확 불붙었다가 금세 식어버리는 경향이 중학생 때까지도 밖으로 드러나는 아주 큰 단점이었던 것 같아요. 고등학생 때까지 그런 성향이 지속되다가 스무 살 무렵에 이런 점이 너무 싫어서 많이 힘들어했죠. 그때 앞으로 한번 결정한 일은 끝까지 가보기로 결심했고, 대학생이 된 후에 처음으로 ‘독한 놈’이라는 소리를 듣기 시작했어요. 그전에는 턱없이 무른 녀석이었거든요. 어떤 일을 독하게 하고, 그에 대한 신념을 바꾸지 않는 법을 조금씩 배운 것이 이제는 제 캐릭터가 된 것 같아요. 끈기는 제가 원해서, 힘들게 노력을 거듭해 후천적으로 얻은 자질인 만큼 이런 부분이 없어지진 않을 겁니다. 저는 굉장히 독하게 일하고,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평소 좋아하거나, 지금 떠오르는 문장이 있나요? ‘상상력이 권력을 쟁취한다.’ 무라카미 류의 소설 <69: 식스티나인>에 등장하는 말이에요. 소설 속 캐릭터가 고등학교 때 혼자 바리게이트를 친 다음에 현수막에 써놓은 문장입니다. 일단 제가 고등학교 시절 무르게 바보같이 산 데 대한 회환이 깊고요. <69: 식스티 나인>을 몇 번씩 탐독하면서, 제 내면에 반골 기질이 있는데도 어떤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반항이 되지 못하고 행동하지 못한 데 대한 아쉬움이 떠올랐어요. 이런 제 마음과 문구 자체가 지닌 이데올로기에 대한 존경이 합쳐져 아주 좋아하는 말이 되었죠.
메타코미디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계획인가요? 저희는 수많은 변주를 할 예정이고, 새로운 시도를 할 것입니다. 메타코미디는 코미디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기 위한 노력을 지향하는 회사 같아요. ‘이게 진짜야’ 하면서 마냥 똑같은 방망이만 깎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코미디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궁극적인 꿈은 무엇인지 듣고 싶습니다. 오사카에서 길을 가다가 ‘빵!’ 하고 총 쏘는 시늉을 하면 사람들이 전부 쓰러지는 연기를 한다는 오사카 밈이 있잖아요. 그 도시에서 코미디가 얼마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생각해요. 실제로 1백 년 전에 오사카에서 요시모토흥업이라는 코미디 기업이 생겨났고, 만담 극장을 운영하면서 붐을 일으켰다고 합니다. 오사카 사람들이 웃음에 대한 자부심도 있고, 같은 이야기도 오사카 사투리로 하면 더 웃긴다는 이야기까지 있을 정도이니, 어찌 보면 회사 하나가 한 일이라고도 볼 수 있어요. 저는 한국 전체가 그런 나라가 되면 엄청 재밌겠다 싶어요. 코미디에 미친 나라요.(웃음) 제가 사는 동안 달성할 수 있을지, 메타코미디가 해낼 수 있는 일인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굉장히 유쾌한 민족이니만큼 언젠가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거든요. 코미디 붐이 널리 일고, 잘 영위해서 1백 년 후에라도 그런 세상이 왔으면 좋겠어요. 제가 죽어도 회사는 남아서 계속 그 일을 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고, 메타코미디를 그런 일을 가능하게 하는 문화 기업으로 키우고 싶습니다.
돌고래유괴단 대표·
감독 신우석
광고시리즈 ‘압도적 쓱케일’ ‘연극의 왕’
웹 시리즈 ‘고래먼지’
뮤직비디오 뉴진스 ‘Ditto’ ‘OMG
그런데 확신이 중요한가요?
개인이 확신을 가지든 말든
어차피 상황은 불확실성의 연속입니다.
확신은 주관적 판단일 뿐이에요.
결국에는 결과로
이야기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건너뛰기 버튼을 누를 수 있음에도 결말이 궁금해 보게 되는 광고가 있다. 대중이 선택해서 ‘감상’하고, 알아서 ‘바이럴’ 하는 광고다. 딱 그런 광고를 만드는 사람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주목받는 광고 제작사로 소개되던 돌고래유괴단은 오늘날 한국 광고계에서 가장 독보적인 회사가 되었다. 이름부터 예사롭지 않은 창작 집단을 이끄는 CEO이자 우두머리 돌고래인 신우석 감독을 인터뷰했다. 그는 독립영화를 찍다가 군 제대 후인 2007년, 돌고래유괴단을 설립했다. 이들은 2015년과 2016년, 캐논 광고 시리즈인 ‘최현석의 포토킥’과 ‘안정환의 파워무비’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이후 브롤스타즈 ‘솔플보다 트리플’, SSG.COM ‘압도적 쓱케일’, 그랑사가 ‘연극의 왕’ 등 하나같이 독특하고 유머러스한 광고들을 세상에 내놓았다. 서울영상광고제, 대한민국광고대상, 뉴욕 페스티벌, 칸 국제광고제 등 국내외에서 수상하며 작품성도 증명했다. 다양한 배경에서 낯익은 인물이 낯선 역할로 등장해 이야기를 전개하다가 능수능란한 변주를 시작하며 끝내 허를 찌르는반전을 보여주는 특유의 작법으로 영상 콘텐츠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을 받는다. 신우석 감독과 돌고래유괴단은 광고를 넘어 더 넓은 바다로 나아가고 있다. 아니, 어쩌면 이제야 원래 가고자 했던 ‘영화’라는 꿈의 대양으로 데려다줄 파도와 순풍을 만났는지도 모르겠다. 꿈을 잊은 적이 없으므로 조짐은 있었다. 야심의 예고편처럼 웹 시리즈 ‘고래먼지’(2018)를 비롯해 이말년의 웹툰을 영상화한 ‘잠은행’(2019) 등을 제작했고, 급기야 뉴진스의 ‘Ditto’와 ‘OMG’ 뮤직비디오를 연출하기에 이르렀다. 오직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원하는 방식으로 내보이겠다는 뚝심과 단호함은 준비 중인 OTT 드라마와 영화로 조만간 새로운 결실을 맺을 것이다.
감독님의 인스타그램 계정과 이메일 주소에서 에르네스토(Ernesto)라는 단어가 왠지 눈에 들어왔습니다. 혹시 체 게바라의 이름에서 따왔나요? 에르네스토 게바라(Ernesto Guevara). 체 게바라의 본명입니다. 고등학교 때 도서관에서 무심코 집어 든 책을 통해 그를 알게 됐어요. 목숨을 걸고 자신의 신념대로 살다 간 그의 인생이 저를 형성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렇다고 그의 이름을 왜 아이디로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뭐 여기까지는 그럭저럭 봐줄 수 있다고 치죠. 그런데 랩 가사에서 자신의 출신지를 도시의 지역 번호로 표현하는 것이 멋있어 보였는지, 한국의 국가 번호와 서울의 지역 번호를 합친 822를 붙였습니다. 지금 와서 보면 무슨 ‘서울의 힙합체 게바라’도 아니고, 한심하네요.(웃음)
어린 시절, 남들과 다르기를 꿈꿨나요, 남들과 비슷하길 바랐나요? 어린 시절 갑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말 그대로 집안이 몰락했어요. 힘든 상황에서 ‘보통의 삶’이 너무나 부러웠고, 가지고 싶었죠. 하지만 상황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고 어느 순간 이를 포기해버렸습니다. 그때 안정된 삶에 대한 욕구 자체가 사라져버린 것 같아요. 가끔 돌이켜보면 그 분기점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고, 제가 만드는 작품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언젠가 교복 살 돈이 없어 혼자만 티셔츠를 입고 앉아 있던 교실 풍경이 많은 것을 말해주는 것 같아요. 그때의 기분은 처참했지만, 지금은 다행스럽게 여깁니다.
영상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는 욕망의 시발점을 기억하나요? 고등학교 때 극장에서 왕가위 감독의 <화양연화>를 보고 뭔가 제 안에서 물길이 달라지는 것 같은 느낌이 있었어요. 감독이 보여주고, 들려주는 그 세계의 공기가 너무나 매혹적이었거든요. 당시에는 소설가를 지망하고 있었는데 영화야말로 제가 만든 세계를 더 구체적으로, 고스란히 구현해 보여줄 수 있는 매체라고 생각했습니다. 근데 그게 생각처럼 잘 안 된다는 게 문제지만요.
창작자에게 꼭 필요한 기질로 호기심을 꼽는 이들이 많죠. 호기심이 많은 편인가요? 감독님의 호기심을 끝없이 자극하는 분야나 주제가 있다면요? 아무래도 창작자로서는 실격인 것 같습니다. 솔직히 호기심이 별로 없는 편이거든요. 그래서인지 어떤 이야기를 할 때 거리를 두고 접근하는 것 같아요. 제 작품에 나오는 캐릭터들은 제가 만든 인물이지만 항상 멀리 떨어져서 보게 돼요. 제가 만든 상황을 펼쳐놓고 그 안에 놓인 인물을 관찰하게 된다고 할까요. 어쩌면 인간에 대한 애정이 부족한가 싶기도 하고, 오히려 인간을 애처롭게 보는 것 같기도 하고요.
여러 자리에서 ‘이상한 것’에 대한 애정을 꾸준히 드러내셨습니다. 이상한 것이 그렇게 좋은 이유가 뭘까요? 이상하다는 것은 기존의 것과 다르다는 뜻입니다. 남들이 해온 것을 굳이 답습하고 싶지 않아요. 제가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어 무언가를 내놓았을 때 그 행위에 의미가 있었으면 하니까요. 어차피 세상에 내 목소리로 말을 거는데 굳이 돌려서 말할 필요가 있을까요? 잘 닦인 매끈한 무엇이기보다 거칠더라도 나다운 것이었으면 해요. 어차피 모두가 좋아하는 작품을 만들고 싶은 게 아니거든요.
현재 이룬 성취의 밑바탕이 되었거나 가장 도움이 된 지난 시간을 복기해볼까요?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언제로 가겠느냐는 질문을 많이들 하죠? 저는 과거의 그 어디로도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개인적으로 고난이 인간을 크게 성장시킨다고 봅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미래를 모르니까 닥친 상황에 대응하고 이겨낼 수 있었던 거지 그걸 알고도 다시 겪어낼 자신이 없어요.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아무도 자기를 믿어주지 않아도 단단한 자기 확신으로 돌파력을 갖는 창작자들을 보기도 합니다. 일과 관련해서 감독님의 가능성을 확인하는 계기가 있었나요? 인터뷰니까 뭔가 그럴싸하게 이야기하고 싶지만 확신이 생긴 계기 같은 것은 없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전 기본적으로 오만하고 경솔한 인간이에요. 어떤 계기나 경험이 있어서 확신을 가진 게 아니라는 이야기죠. 그런데 확신이 중요한가요? 개인이 확신을 가지든 말든 어차피 상황은 불확실성의 연속입니다. 확신은 주관적 판단일 뿐이에요. 결국에는 결과로 이야기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공식 직함이 돌고래유괴단 CEO입니다. CEO라는 호칭이 주는 무게와 부담도 느끼나요? 좋은 감독이 되고자 하는 욕망을 좋은 리더가 되고자 하는 욕망이 앞지른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팀을 제어하고 원하는 모습으로 만들려할수록 절망하게 되더군요. 요즘은 회사가 일종의 생물 같다고 느낍니다. 돌고래유괴단 구성원들의 개성과 재능, 욕망은 모두 다릅니다. 그 집합체가 스스로 성장해 나가는 것을 예측할 수 있을 리 없죠. 저는 나아가야 할 큰 방향을 제시할 뿐, 이 생물이 어떻게 자랄지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어요. 근데 약간 괴물이 되어가는 것 같기도 한데, 그러면 또 어떤가 싶기도 하고요.
서로 다르지만 하나로 묶인 돌고래유괴단이라는 팀이 공유하는 정서의 색깔이나 결을 어떻게 정의하나요? 이를테면 ‘돌고래유괴단다운 것’이요. 돌고래유괴단이라고 하면 흥행작의 파급력이 워낙 크다 보니 ‘B급 정서’나 ‘코미디’를 많이 떠올리는 것 같아요. 그런데 우리가 다른 방식으로 풀어낸 작품들이 해외 영화제나 해외 광고제에서 수상을 해도 아무도 관심이 없어요.(웃음) 어떤 특정한 장르가 돌고래유괴단의 색깔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굳이 표현해야 한다면 ‘도전자’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저희는 업계에 새로운 문법을 들고 나타나 고유의 영역을 만들었다고 자부합니다. 작품적으로도 사업적으로도, 기존의 체제에 순응하기보다는 우리 방식대로 풀어보려고 하거든요.
바람직한 형식,
금기시해야 할 것,
팔릴 수 있는 것,
욕먹지 않을 것,
그 외 모든 기준을 버리고
처음부터 시작해야만 합니다.
그 어디에도
바람직한 형식은 존재하지 않아요.
어떤 작가가 “가장 바람직한 형식이 가장 효율적인 형식은 아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돌고래유괴단의 광고를 보면 그 말이 떠오르더군요. 영상 광고를 위한 가장 바람직한 형식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나요? 그것이 모든 것을 망칩니다. 많은 사람이 머릿속에 경계를 두고 당연하다는 듯 거기서부터 출발하죠. 바람직한 형식, 금기시해야 할 것, 팔릴 수 있는 것, 욕먹지 않을 것, 그 외 모든 기준을 버리고 처음부터 시작해야만 합니다. 그 어디에도 바람직한 형식은 존재하지 않아요.
돌고래유괴단은 클리셰를 파괴합니다. 다르게 생각하면 클리셰에 빠삭하다는 뜻으로도 읽혀요. 잘 알아야 그걸 비틀 수도 있으니까요. 데이터를 쌓기 위해 노력하나요? 해당 분야에 대한 풍부한 지식은 창작자에게 독일까요, 약일까요? 사실 저는 영화를 많이 보는 편은 아니에요. 하지만 데이터를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은 분명히 자산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 대신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색깔과 자신의 색깔을 헷갈리지 않아야 해요. 돌고래유괴단에도 영화를 좋아하는 팀원들이 대부분인데 종종 그런 케이스를 발견해요. 자기 목소리로 자기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결국 흉내에 그치게 되고 더 나아가기 힘들죠.
감독님은 평소 스토리텔링의 중요성을 강조할 뿐 아니라 모든 작업물로 그 말을 입증했습니다. 영상에서 스토리텔링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결국 작품의 근간이 되는 것은 스토리니까요. 감독은 작품을 내놓았다면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자기 작업물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분명해야 한다는 거죠. 그런데 자기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도 모르고 헤매는 영상이 너무 많아요. 대충 힙스럽게 비벼놓고 예술인 척하는 사람들을 증오합니다.
짧은 시간에 이야기를 표현해야 하는 장르 특성상 이야기나 아이디어가 너무 길어지면 곤란할 텐데 이때 다시 핵심으로 돌아오는 비법이 있나요? 좋은 질문이네요. 이야기나 아이디어가 너무 커질 때면 짧은 시간에 이야기를 표현해야 하는 장르적 특성을 버립니다. 필요하다면 10분이 넘는 광고를 제작하기도 하고, 한 곡의 뮤직비디오를 이어진 두 편으로 만들기도 하죠. 결국은 매체나 장르적 특성이 핵심이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사람들의 통념이 결과를 끌어내는 데 제약이 될 수 있거든요.
영감의 원천은 데드라인이라는 말에 얼마나 공감했는지 모릅니다.(웃음) 여전히 마감 시한이 가장 확실한 영감의 원천인가요? 그렇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일을 무작정 미뤄놔도 사실 무의식적으로 끊임없이 고민하고 사고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속 편한 생각을 해봤어요. ‘나는 지금 놀고 있지만 일하고 있다’ 하는 개념이라고 할까요? 물론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걸 스스로도 알지만, 문제는 이런 핑계를 대가면서 점점 게을러진다는 겁니다. 언젠가 크게 후회할 날이 있으리라 봅니다. 그때까지는 저도 모르겠네요. “무의식의 나야, 힘내라.”
바탕이 되는 이야기, 감독의 의도, 표현하고자 하는 방향을 광고주에게 설득하면서 자연스럽게 설득의 기술도 생겼을 것 같습니다. 적중률이 높은 설득 노하우를 귀띔해주세요. 저희 팀 후배 감독이 인터뷰에서 한 이야기가 떠오르네요. ‘상대를 설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돌고래유괴단의 과거밖에 없다.’ 약간 멋 부려서 이야기한 게 마음에 들지 않지만, 이에 동감합니다. 설득의 기술만을 가지고 결과에 책임지지 않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나요. 그러나 정말 새롭고 도전적인 기획은 고작 세 치 혀로 설득할 수 없습니다.
도전해보고 싶은 브랜드나 광고 분야도 있는지요? 과거에는 작업해보고 싶은 브랜드가 있었는데 이제는 없어요. 실제로 그런 브랜드에서 제안이 와도 우리 목소리로 이야기할 수 없다면 거절하고 있습니다. 도전하고 싶은 분야는 많죠. 광고를 넘어 아예 영역 없이 움직이려 합니다. 최근작도 뮤직비디오였고, 지금은 영화와 OTT 시리즈를 준비하고 있어요.
한 분야의 프로와 아마추어를 가르는 기준은 무엇일까요? 저는 프로부터 시작해서 모르겠습니다. 사실 그것이 제 약점일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해요. 영상을 시작하면서부터 항상 결과를 얻어내야만 하는 작업을 해왔어요. 그를 통해 얻은 것도 크지만 어찌 보면 잘못된 시작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몇 년 전에 광고 촬영을 위해 지어놓은 세트를 부수기 아까워서 다음 날 아무 목적 없는 단편영화를 제작한 적이 있어요. 밤새 급조한 시나리오에다 현장에서 대사를 써가며 찍었죠. 그런데 작업을 하며 처음 느껴보는 즐거움이 있었어요. 어쩌면 남들이 학생 때 해봤어야 할 경험을 이제야 하는구나 싶더군요. 그 후로 진정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게 됐고, 지금도 답을 찾는 중입니다.
최근 일과 관련해 곤란한 경험이나 사건이 있었나요? 어떻게 해결하셨는지도 궁금해요. 최근 작업한 ‘OMG’ 뮤직비디오 편집 중에 코로나19에 걸렸어요. 그래도 반드시 정해진 일정에 맞춰 완성하고 싶었죠. 결국 회사 건물의 편집실이 있는 층 전체를 폐쇄하고 그 안에서 며칠 밤을 새워가며 작업했습니다. 정말 죽는 줄 알았어요. 그 작품이 유작이 될 뻔했습니다.
그렇게 의지와 상관없이 우발적으로 발생하는 사건 사고에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대처하나요? 개인적으로 촬영 현장에 가기 전의 모든 준비는 연습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계획을 철저히 하는 건 좋지만, 최선의 결과를 위해서는 그 계획을 부술 수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작업물을 공개한 뒤에는 시청자인 대중은 물론이고 업계, 동료 등 다양한 사람들의 평가가 뒤따르죠.
결과물에 대한 타인의 평가에 얼마나 영향을 받나요? 작품을 세상에 내놓는 순간 제 손을 떠났다고 생각합니다. 그 대신 저는 하고 싶은 것을 해요. ‘내가 맡은 것을 최선의 결과로 만든다.’ 이 생각뿐입니다.
최근에는 뉴진스의 ‘Ditto’ ‘OMG’ 뮤직비디오가 큰 화젯거리였습니다. 평소에 K-팝도 즐겨 듣나요? 평소 아이돌 음악을 즐겨 듣는 편은 아니에요. 뮤직비디오를 제작하게 된 목적과 이유는 따로 있지만, 결국 뉴진스의 음악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작업하지 않았을 겁니다. 노래가 좋으니 지금 인터뷰를 그만 읽고 뮤직비디오를 감상하시길 추천합니다.
감독님의 인생, 그리고 창작의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초등학생 때부터 어떤 불안감 같은 게 있었어요. 웃긴 이야기지만, 초등학생 주제에 ‘나는 재능이 있는 것 같다’고 느꼈죠. 그런데 책에서도, 어른들도 모두들 노력하지 않으면 그 무엇도 성취해낼 수 없다고 이야기하더군요. 그런데 도저히 노력이라는 것을 할 자신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나는 노력하지 않으니까 결국 실패할 거다’라는 불길한 예감 같은 게 쭉 있었습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애써 외면하고 있지만 해결되지 않는 막연한 불안감이 있어요. 그런데 어쩌다 보니 팀을 만들게 되었고 여기에 모든 것을 건 사람들을 만났어요. 어떻게든 책임을 져야만 하는 사람들이 생긴 거죠. 하지만 상황은 점점 좋지 않게 흘러갔고, 저는 어쩔 수 없이 노력‘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실 정말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그런 극한의 상황이 아니었다면 아직도 자라지 못한 어린이로 남아 있었을 테니까요.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그 책임감이 절 움직입니다. 정말 다행이에요.
잘할 수 있는 일과 잘하고 싶은 일, 어느 쪽에 열중하는 편인가요? 저희가 잘할 수 있는 일만 찾았다면 광고에서 뮤직비디오, 영화로 경계를 무너뜨리며 일하고 있지 않았을 겁니다.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주저하지 않으려 해요. 몇 년 전 어느 날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도전자입니다. 감독님 인생에서 벌인 가장 무모한 행동은 무엇인가요? 돌고래유괴단. 자본도, 경험도 없이 그냥 하고자 하는 열망만으로 뛰어들었거든요. 그 과정에서 우리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식대로 움직였고, 비굴하고 비겁한 짓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게 워낙 극적이라 좀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죠. 최근 집으로 향하는 도로 위에서 문득 재밌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빛은 보이지 않고 빚만 잔뜩 껴안고 있던 7년 전의 내가 괴로움을 못 이겨 현실도피를 한 것이 현재 아닐까? 지금의 내가 망상 아닐까? 정신을 차려보면 정신병원 병실에 앉아 있지 않을까?’ 그래서 이제 그만 깨어나보려고 1분간 정신을 집중해보기도 했죠.(웃음) 돌이켜보면 설명하기 힘들 만큼 무모한 행동이었습니다.
낮과 밤 중에 언제 더 강력한 창조력을 발휘하나요? 창조력이 생산성으로 직결되는 타입인가요? 밤이요. 아침에 만난 누군가에게 ‘나 밤새웠어’라고 말하면 어쩐지 열심히 산 기분이 들어요. 그리고 낮에 쭉 잡니다.(웃음) 낮에는 잠만 자서 창조력이 언제 더 발휘되는지는 잘 모르지만, 제 유일한 강점이라고 생각해요. 축구로 따지면 공격형 미드필더. 그런데 공격은 잘하지만, 수비를 하나도 안 해서 주변의 선수들이 더 뛰어주어야 하는 골치 아픈 선수 같네요.
창작자로서 꿈꾸는 최고의 판타지는 무엇인가요? 내 재능의 끝을 확인하는 것. 그게 어디까지인지는 몰라도 능력의 정점에 이른 작품을 완성하는 순간 은퇴하고 싶습니다. 부디 그것이 좋은 작품이기를 바라고요.
스스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해본 적이 있는지, 그 답을 찾았는지 궁금하네요. 어린 시절에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자문에 집착하고 고민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놓아버렸죠. 그 후로 ‘나는 누구인가’보다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더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고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가는 게 정답이라고 생각합니다.
원래 꿈이 소설가라고 했죠. 언젠가 소설가 신우석의 작품을 읽어볼 수 있을까요? 이미 몇몇 출판사에서 여러 번 제안을 받았지만, 모두 고사했습니다. 그동안 영상을 제작하기 위한 시나리오를 쓰다 보니 사고하는 방식이 달라졌다는 것을 느껴요. 정확한 시점을 짚어낼 수는 없지만, 텍스트가 아닌 이미지로 사고하기 시작한 지 10년은 지난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감독이라는 직업을 떠난 뒤에야 소설을 쓸 수 있지 않을까요?
영화감독 저스틴 전
영화 <국> <미쓰 퍼플> <푸른 호수>,
애플TV+ 시리즈 <파친코>
저는 영화를 통해 특정한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노력하지만,
보편적인 방법으로 풀어내려고 시도하고 있어요.
우리의 차이를 부각하기보다 삶이 얼마나
비슷한지 보여주는 것을 목표로 해요.
저스틴 전(Justin Chon)은 배우, 감독, 작가 등 경계 없이 여러 역할을 소화하며 뚜렷한 색깔을 보여주고 있는 전방위 영화인이다. 2005년 TV 드라마 <잭 앤 바비(Jack & Bobby)>로 배우 경력을 시작한 후 영화 <트와일라잇> 시리즈에 출연하며 본격적으로 얼굴을 알렸고, 2014년에 <맨 업(Man up)>을 통해 감독으로 데뷔했다. 미국계 한국인인 그는 LA 폭동을 배경으로 한 <국(Gook)>(2017), 코리아타운에서 노래방 도우미로 일하는 여성이 가족과 맺는 관계를 그린 <미쓰 퍼플(Ms. Purple)>(2018) 등을 연출하며 아시아계 미국인이 처한 현실과 정체성 문제, 차별과 불의 등에 대해 꾸준히 목소리를 내왔다. 최근에는 코고나다(Kogonada) 감독과 공동으로 애플 TV+에서 제작한 <파친코>의 연출을 맡았다. 전 감독의 영화는 뿌리를 찾는 추상적 탐구보다는 생각보다 많은 이에게 실제로 일어나는 일, 당장에 처한 현실을 다룸으로써 사회적 관심을 환기한다. 만날 기회가 없던 이들이 얼굴을 마주하게 하고, 대화를 시작하게 한다. 나와 다르고, 직접 경험하지 않아서 이해할 수 없다고 쉽게 치부해버리는 것들을 제대로 바라보라고 권하는 그의 영화는 진솔하고 그만큼 뼈저리게 통렬하다. 또한 인류 공통의 대의나 불굴의 신념에 의지하지 않으며 이 시대를 사는 조각난 삶이 과연 기꺼이 선택할 만한 것인지 집요하게 되묻는다.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단지 느낌을 나누는 것을 넘어 갖가지 차이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인간으로서 공유하는 가치에 호소한다. 영화 속 인물들과 우리는 다르지만 닮아 있고, 멀리 있지만 이내 가까워진다. 그럼으로써 세계와 우리가 연결되어 있을 뿐 아니라 사람들이 인종, 국적, 성별 등과 상관없이 서로 얼마나 내밀하게 얽혀 있는지 증명하고자 한다. ‘영화는 내 인생 그 자체’라고 말하는 그는 한정된 삶을 보다 가치 있게 만들기 위해 장밋빛 환상이 아니라 총천연색 현실을 산다. 저스틴 전 감독은 <국>으로 제33회 선댄스 영화제 관객상, <미쓰 퍼플>로 제13회 댈러스 국제 영화제 심사위원상을 거머쥐었고, <푸른 호수(Blue Bayou)>(2021)는 제74회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받는 등 유수의 영화제에서 주목받으며 화제를 모은 바 있다. 현재 뉴질랜드에 머물며 TV 시리즈 촬영에 매진하고 있는 전 감독이 서면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비록 제 영화에 때때로 정치적 이슈와
역사적 요소가 등장하긴 하지만,
제가집중하고 싶은 것은 인간성과
리를 비슷하게 만드는 측면입니다.
서로를 다르게 구분 짓기보다는
닮아 있는 삶의 모습이요.
이런 이야기를 통해
문화 전반에 걸쳐 우리는 모두
생각보다 더 많이 비슷하다는
점을 증명하고 싶어요.
얼마 전 <푸른 호수>를 다시 보면서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감독님은 느끼는 사람인가요, 생각하는 사람인가요? 전 완전히 느끼는 사람(feeler)이죠.
그럼 이야기는 어때요? 마음을 울리는 이야기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이야기 중에 무엇을 더 좋아하나요? 그것도 마찬가지로 뭔가 느끼게 하는 이야기를 선호해요.
배우로서 이야기를 표현하는 일과 감독으로서 전체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일의 차이가 있나요? 이야기에 접근할 때는 전적으로 감독의 입장을 취한다고 말씀드려야 할 것 같네요. 그리고 관객들이 느끼기를 원하는 이야기에 다가가죠. 예전 영화들에서 맡은 역할을 연기할 때는 그 배역을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고려했어요. 대본 작업을 하면서 등장인물에 관해 쓸 때는 온전히 스토리텔러로서 접근하고요.
각본과 감독을 맡아 지난 1월 제39회 선댄스 영화제에서 공개한 신작 <자모자야(Jamojaya)>가 화제입니다. 한국에서도 어서 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어떤 영화인지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자모자야>는 인도네시아 출신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헤어지는 이야기에 관한 영화예요. 래퍼 리치 브라이언(Rich Brian)이 맡은 아들은 야유 A.W. 운루(Yayu A.W. Unru)가 연기한 아버지이자 매니저를 해고해요. 영화 전반에 걸쳐 그들은 2014년 인도양으로 추락해 사라진 말레이시아 항공 370편과 함께 실종된 가족 구성원의 부재를 받아들이려고 애쓰죠. 영화의 절반 이상이 인도네시아어로 진행됩니다.
드라마 <파친코>의 4, 5, 6, 8화 연출도 맡았죠. 촬영하면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화는 없었나요? 5화에서 윤여정 선생님과 김영옥 선생님이 함께 등장하는 장면을 촬영할 때가 제일 좋았어요. (*인터뷰는 영어로 진행했지만, 전 감독은 두 배우의 이름만큼은 정확히 한글로 써서 보내왔다.) 두 분이 낮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앉아 대화를 나누시는 모습을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처음에 <파친코>에 참여하기로 결정한 건 우리 할머니를 떠올렸기 때문이었어요. 그 장면을 보니 정말이지 감정적으로 젖어들 수밖에 없더군요.
<국> <미쓰 퍼플> 등 연출작 외에도 각본, 연출 및 주연을 맡은 <푸른 호수>처럼 많은 경우 영화를 통해 자신의 실제 경험 너머의 것을 표현하고 추체험했습니다. 역사, 인종, 정치 문제 등 다양한 이슈가 뒤엉킨 이야기 속에서 어떤 것을 느끼나요? 비록 제 영화에 때때로 정치적 이슈와 역사적 요소가 등장하긴 하지만, 제가 집중하고 싶은 것은 인간성과 우리를 비슷하게 만드는 측면입니다. 서로를 다르게 구분 짓기보다는 닮아 있는 삶의 모습이요. 이런 이야기를 통해 문화 전반에 걸쳐 우리는 모두 생각보다 더 많이 비슷하다는 점을 증명하고 싶어요.
하지만 직접 겪어보지 않은 일을 표현해야 하는 입장에 놓일 때는 신중해질 수밖에 없잖아요. 어떤 부분을 특히 신경쓰나요? 중요한 것은 의도 같아요. 언제나 모든 것이 의도로 귀결된다고 생각해요. 저는 제가 하는 일에 항상 좋은 의도를 갖고 앞장서려고 하죠. 또한 직접 살아보지 않은 누군가의 경험에 대해 아는 척 굴지 않아요.
미국 영화계에서 지금까지 자신의 자리를 일구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아요. 가장 힘들고 어려웠던 순간을 꼽자면요? 영화를 만들기 위한 자금을 마련하는 일이 제일 힘들어요.(웃음) 또 다른 힘든 점은 창의적이지 않은 유형의 사람들에게 어떤 일이 특정한 방식으로 이뤄져야 하는 이유를 설득하는 거죠. 하지만 이건 이제 더 잘할 수 있어요.
그런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었나요? 아무래도 영화 제작 비용을 모으는 일은 영원히 어려울 것 같아요. 제가 만들고자 하는 영화들로 자금 마련이 수월해질 리 만무하거든요. 사람들에게 어떤 일이 특정한 방식으로 이뤄져야 하는 이유를 제대로 설득하기 위해서는 감정적으로 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배웠어요. 좀 더 논리적으로 제 관점을 설명하려고 노력합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화려함이나 관심, 스포트라이트 뒤에 가려진 영화의 진짜 즐거움, 진짜 매력은 무엇인가요? 화려함, 관심, 스포트라이트에 관해선 생각하지 않아요.(웃음) 제가 주로 초점을 맞추는 것은 예술가로서 품은 저의 목표이지요. 미국 관객들이 한국인과 한국계 미국인이 겪는 경험을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길 바라요. 진심으로요.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한국계 창작자로서 최근 들어 글로벌 신에서 한국을 주목하거나 한국의 문화적 결과물에 대한 반응이 달라지고 있음을 몸소 체감하나요? 체감하고말고요! 이제 세계가 한국 문화에 훨씬 더 개방적이고, 환영하며 반기고 있어요. 현재 시점에서는 세계의 많은 사람이 우리 문화를 찾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 분위기에서 개인의 목소리를 또렷하게 내는 것도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습니다.
감독님의 말하는 방식은 어떤가요? 저의 예술을 통해 말하죠. 영화를 통해 제시하는 관점으로 말하고요.
최근 관심을 갖는 주제, 말하고 싶은 내용은 무엇인가요? 제가 영화를 만드는 주된 목적은 아시아·태평양계 미국인(AAPI, Asian Americans and Pacific Islanders)에 대한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위함입니다. 최근에는 태평양계 커뮤니티에 좀 더 초점을 맞추고 있어요. 그런 이유로 하와이와 아오테아로아(Aotearoa, 마오리어로 뉴질랜드를 의미)에서 많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의도 같아요.
언제나 모든 것이
의도로 귀결된다고 생각해요.
저는 제가 하는 일에 항상
좋은 의도를 갖고 앞장서려고 하죠.
또한 직접 살아보지 않은 누군가의
경험에 대해 아는 척 굴지 않아요.
사람들이 잘 이해하지 못하는 이야기라 할지라도 꾸준히, 계속해서 드러내야 할 가치가 있다고 믿나요? 물론입니다! 특히 예술계와 관련해서는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이 그 중요성을 이해하기 시작한다고 믿어요. 또한 당장은 주목받지 못한다고 해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어떤 영화를 찾아야 할 필요가 있는 사람들이 결국 그 영화를 발견해낼 거예요.
그런 이유로 이 세상에 영화가 필요한 것일까요? 제 경우를 말씀드릴게요. 저는 영화를 통해 특정한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노력하지만, 보편적인 방법으로 풀어내려고 시도하고 있어요. 우리의 차이를 부각하기보다 삶이 얼마나 비슷한지를 보여주는 것을 목표로 해요.
만약 영화를 통해 세상의 일부를 바꿀 수 있다면, 어떤 점을 바꾸고 싶은가요? 사람들이 인간의 경험이 우리를 하나로 만든다는 사실을 이해하기를 간절히 바라요. 우리는 전부 각자의 여행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잖아요. 부디 예술을 통해 서로 공감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공감과 이해를 거듭 강조했습니다. 감독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도 이와 비슷한가요?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 모든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세상은 아름다워요.
보여주고자 하는 주제를 다루기 위해 첨예한 가치판단을 내려야 할 때도 있지요. 그럴 때는 어떤 점을 가장 먼저 고려하나요? 앞서 언급했듯 ‘의도’가 가장 중요해요. 만약 제 의도가 좋은 쪽이었다면 저는 편안합니다. 어떤 결정이든 그것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려고 노력해요. 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제가 진실하다는 점이고, 결국에는 그 사실이 스크린에도 반영됩니다.
창작의 불가항력적인 기쁨과 슬픔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저는 결과물보다는 과정 자체를 사랑해요. 과정에 중독되어 있다고 말해도 될 정도로요. 그 자체가 제겐 삶의 방식이기도 하죠. 의미와 창조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 말이에요.
이야기를 만드는 일이 왜 그토록 중요할까요? 영화나 드라마는 감정을 자극하는 매체예요. 저는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정서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라 생각해요. 이야기야말로 가장 기본적인 인간 수준에서 우리를 연결해주잖아요.
감독과 배우로서, 카메라의 앞과 뒤에서 언제나 같은 사람이라고 느끼세요? 접근 방식이나 태도에 차이가 있을 것 같아요. 연기와 연출 모두 예술가로서 만들어내는 창조물이에요. 두 분야 모두 창조물로 보고 접근해요. 연출을 맡을 때도 마치 직접 연기하는 것처럼 감정적으로 느껴요. 하지만 연출에는 엄청난 문제 해결 기술이 필요하죠. 세트와 한계에 대한 끝없는 문제 제기와 맞닥뜨리거든요. 연출에는 대단히 분석적인 요소가 분명 존재합니다.
영화 현장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변수에 대처하는 감독님만의 방식이 있나요? 있어요. 해결하기에 너무 큰 문제란 없습니다. 저는 희망을 찾으려 애쓰고, 부정적인 것을 긍정적으로 만들려고 노력해요. 때로 너무 많은 것을 가지면 그저 일반적인 예술을 창조할 수 있을 뿐이죠. 한계는 우리를 더욱 창조적으로 만듭니다. 모든 창작자는 세상의 평가에서 자유롭기 어렵습니다.
부정적인 비평이나 터무니없는 비난에는 어떻게 대처하세요? 영화를 만든 목적과 의도가 무엇이었는지에 집중해요. 다른 사람들이 저의 예술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지는 통제할 수 없는 일이죠.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긍정적으로 지내는 것, 나 자신이 선한 의도로 일했다는 사실을 명심하는 것이에요.
선택과 실행의 스타일에 대해 이야기해볼까요? 감독님은 잘못된 길로 접어들었을 때 어떻게 행동하나요? 뒤돌아서서 가던 길을 되짚어 다시 길을 찾아 나설 수도, 그 자리에서 멈추고 아예 목적지를 변경할 수도 있잖아요. 일을 계속 진행하기 위해서는 빠른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선택한 결정이 바람직한 결과를 이끌어낼 방법을 찾아야 하죠. 언제나요. 때때로 잘못된 결정을 내렸다면 그것이 나름대로 작동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잘못된 선택을 했다는 것, 틀렸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하고요. 저는 매일매일 그렇게 일하려고 노력합니다.
감독님의 인생에서 영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어느 정도나 되나요? 영화는 그야말로 제 인생이에요. 영화 속에 살고, 영화로 호흡합니다. 영화계는 저에게 정말 멋진 인생을 안겨줬어요.
미래 세대를 위해 단 한 편의 영화를 남길 수 있다면 무엇을 고르겠어요? 제발 다른 영화감독의 작품으로 남겨주세요.(웃음) 더 이상 제 영화를 볼 순 없어요.
마지막으로 묻고 싶습니다. 감독님은 스스로 운명을 개척했습니까, 운명이 감독님을 이끌었습니까? 와, 정말 쉽지 않은 질문이네요.(웃음) 얼마간은 둘 다라고 말해야 할 것 같아요. 분명히 행운의 도움을 받은 운명적인 사건들이 있었어요. 하지만 저는 가능한 한 의도적으로, 주도적으로 제 삶을 살려고 노력했다고 생각하고 싶어요. 그러니까 둘 다라고 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