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듀로이 재킷 엔조블루스(Enzo Blues), 톱과 머플러 모두 포허(For her), 팬츠 코스(COS), 슈즈 마리암 나시르 자데(Maryam Nassir Zadeh), 이어링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네가 아니었더라도 그 정도 상은 받았을 거다. 그러니까 소화기는 학교에 기증해야 한다.” 손보미 작가가 초등학생 때 불조심을 주제로 한 글쓰기 대회에서 수상해 부상으로 소화기를 받자 담임선생님이 한 말이다. 작가는 마음에 깊이 각인된 그 경험을 지난 해 이상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단편소설 <불장난>에 담았다. 이처럼 작가가 어린 시절에 느낀 낭패감과 비정함을 바탕으로 쓴 여섯 편의 단편소설이 그의 신간 《사랑의 꿈》에 수록되어 있다. 가족의 분열, 친구를 향한 동경, 첫사랑의 등장은 책 속 여성들이 자신 주변의 세계를 날 선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성장통을 겪는 소녀들의 명확한 응시, 그 눈에 비친 불합리에 대하여.

 

 

“스스로 흥미를 느끼는 이야기를
글로 써나가는 과정이 재미있다.
이때 발생하는 에너지가 분명히 존재하고
그게 나를 고양시킨다.
내 작품 속 세계에 존재하는
사랑스러운 인물들을 만나며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깨닫기도 한다.”

 

신간 《사랑의 꿈》은 5년 만에 선보인 소설집이다. 여섯 편의 단편소설을 한 권으로 엮으며 어떤 생각을 했나? 지난해 상반기에 《사랑의 꿈》 교정지를 받았는데, 출간 일정이 밀리면서 수록작을 오래 들여다보게 됐다. 찬찬히 다시 읽다 보니 이런저런 생각이 머릿속에 스쳤다. 집필 당시의 기억이 떠오르곤 했고, 독자들이 어렵게 느끼지 않을까 싶은 작품도 있었고, ‘앞으로는 단편을 좀 더 짧게 써야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웃음) 오랜만에 출간하는 소설집이라 마음에 설렘과 긴장이 공존한다.

표지에 사진가 테레사 프레이타스의 작품을 담았다. 이 이미지를 보며 어떤 느낌이 들었나? 처음에는 굉장히 정적인 이미지라 느꼈는데, 오히려 그 고요로부터 촉발되는 소란스러운 감각이 있었다. 왠지 표지의 건물 안에 《사랑의 꿈》 속 등장인물들이 살고 있을 것 같기도 했다.

표지의 건물이 이번 소설집에서 자주 언급되는 ‘정우맨션’은 아닌 것 같다. 정우맨션은 3개 동이 하나의 원형 공간을 통해 연결된 독특한 구조의 건물이라고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정우맨션은 내가 실제로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약 6년간 살던 곳이다. 우리 가족은 정우맨션으로 이사하며 더 넓은 집을 얻었고, 보다 윤택한 삶을 살게 되었다. 하지만 그때 내게 이 건물은 예전의 친구들과 이웃이 없는 낯선 공간일 뿐이었다. 큰 상실을 경험하게 한 정우맨션이 마음속에 중요한 공간으로 남아 있었고, 그래서 소설집에 자주 등장한 것 같다.

어린 시절의 경험을 소설에 담아낸 이유는 무엇인가? 1990년대 초반 보수적인 도시에서 10대를 보내며 여러 제약을 받았다. 교칙에 따라 짧은 단발머리를 해야 했고, 불시에 가방 검사를 받았으며, 모의고사 점수가 떨어져 매를 맞을 때도 있었다. 요즘 학생들이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어떻게 학교를 다녔을까 싶겠지만, 돌이켜보면 그 와중에 재미있는 순간도 꽤 있었다. 부정적으로든 긍정적으로든, 그 당시의 경험이 현재의 나라는 사람 혹은 여성이 만들어지는 데 큰 역할을 한 것 같다. 그래서 소설을 쓰며 어른이 되어 느끼는 여러 감정의 근원을 찾아가보고 싶었다. 한 여성 독자가 《사랑의 꿈》을 읽으면서 학창 시절의 기억과 감정을 상기했다는 말을 한 것이 인상 깊었다. 다른 독자들도 이번 소설집에 공감할 수 있으면 좋겠다.

수록작 여섯 편 중 다섯 편이 일인칭시점으로 전개된다. 그래서 보다 쉽게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삼인칭소설은 마치 객관적 사실을 서술하듯 멀찍이 거리를 두고 쓰는 편인데, 일인칭으로 전개되는 작품은 화자 입장에서 좀 더 과장된 표현을 할 수 있다. 그게 일인칭소설의 장점일 것이다. 소설 쓰는 행위는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창조해내는 작업이라 생각해 나를 작품에 담아내는 걸 망설여왔는데, 《사랑의 꿈》에는 내 자잘한 경험이 많이 녹아 있다. 그래서 이번 소설집이 개인적으로 특별하게 느껴진다. 내 경험이 작품과 유기적 관련을 맺는다기보다 내가 겪은 일 중 소설로 다뤄보면 재미있을 만한 이야기를 인물에게 투영했다.

 

 

《사랑의 꿈》 속 일인칭소설의 화자는 전부 10대 여성이다. 여자아이를 화자로 내세울 때 중점을 둔 지점이 있다면? 내가 10대였을 때, 부당한 상황을 아무렇지 않게 여기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굉장히 많은 에너지를 쏟았던 것 같다. 나이가 어리더라도 세계를 명확히 인지할 수 있음을, 세계에 나있는 균열을 감각할 수 있음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수록작 <해변의 피크닉>을 읽고 ‘어린애가 어떻게 이토록 많이 알 수 있나’ 하며 의문을 품는 이들이 있는데, 화자의 말 중 “나는 커서 배신자가 될 것이다”라는 문장은 내 조카가 나한테 했던 말이기도 하다. 아이의 입에서 나온 말이 핵심을 찌를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불합리한 세계를 감지한 화자들은 말하기나 글쓰기에 욕망을 느낀다. 그 욕망은 어디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나? 《사랑의 꿈》 화자들의 글이나 말이 전부 사실은 아니다. 이를테면 <불장난>의 화자는 외톨이가 된 후 옥상에서 불장난을 반복한 경험에 관한 글을 썼고, 이를 반 아이들 앞에서 소리 내어 읽었지만 여기에는 그가 지어낸 부분이 덧붙어 있었다. 또 <해변의 피크닉>의 화자는 “이 글을 최대한 정직하게 적으려고 노력하는 중이다”라고 거듭 강조했지만, 이 말에는 “난 절대로 완벽하게 진실한 글을 쓸 수 없다”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화자들이 진실되지 않은 글과 말을 전하는 이유는 그게 그들이 불합리한 세계에 대응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을 완벽히 통제하는 건 불가능할 테니, 허구의 글쓰기와 말하기를 통해 어떤 통제력을 가하려 하는 것이다. 글과 말이 주체성을 획득하는 방법이라고 볼 수 있겠다.

주체적인 삶이란 어떤 삶이라고 생각하나? 주어진 삶 속에서 최대한 능동적으로 살기 위해 애쓰는 것. 살아가며 맞닥뜨리는 상황 자체를 바꾸는 건 어려운 일이지 않나. 어떤 상황에 처하든, 최선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게 주체적인 삶의 태도라고 본다.

이번 소설집에서 삼인칭시점으로 전개되는 유일한 작품인 <사랑의 꿈>의 주인공도 주체적 삶을 위해 행동한다. 그는 자녀를 중심에 둔 채 살아가는 여성들의 세계에서 벗어나려 하는 어머니다. <사랑의 꿈>의 주인공이 자녀 중심의 세계를 벗어나도록 내몬 건 “애들을 가끔씩은 버리고 싶은 기분이 들죠?”라던 직장 동료 ‘공주연’의 말 때문이다. 주인공이 딸을 떠나 도망치기 위해 차를 몰다가 친 고양이를 땅에 묻는 장면을 가장 신나게 썼다. 그 모습이 머릿속에 분명하게 그려졌고, 이를 글로 옮기며 서늘한 기운을 느꼈다.

‘사랑의 꿈’은 주인공이 차에 타기 직전에 주변 여성들과 모임 장소에서 들은 피아노곡의 제목이기도 하다. 소설을 쓸 때 각 작품의 분위기와 어울리는 음악을 찾아 듣는 편인데, <사랑의 꿈>을 집필하면서 계속 들은 음악이 프란츠 리스트의 ‘사랑의 꿈’이다. 그러다 보니 불현듯 작품 속 여성들의 과시적 세계에서도 ‘사랑의 꿈’이 흘러나온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널리 알려진 ‘사랑의 꿈’ 제3번의 제목은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랑하라’다. 소설집 곳곳에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사랑이란 단어가 본인에게 어떤 의미로 와닿는지 궁금하다. 어떤 대상을 사랑한다는 건 너무나 소중한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느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사랑하기를 멈추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마치 인간이 죽음의 두려움 속에서도 살아가듯이 말이다. 누군가를 좋아하면 순간순간 느껴지는 감정에 솔직히 반응하게 되고, 그러다가 나중에 후회하는 경우가 많지 않나. 한 중학생 언니에게 본인이 특별한 존재일 거란 환상을 품은 수록작 <이사>의 화자도 마찬가지일 테고. 그런데 난 후회의 감정을 중요하게 여긴다. 후회하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 될 가능성이 좀 더 크다고 보기 때문이다.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매해 내 신년 계획이었는데, 마음대로 되지는 않더라.(웃음)

하루 계획은 철저히 지키는 편일 것 같다. 매일 2천 자씩 꼬박꼬박 쓴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곧 마감해야 하는 원고가 있어 오늘은 1천 자 정도 쓰다가 왔다. 글 쓰는 일이 직업이다 보니 당연히 쓰기 싫은 날이 있다. ‘복권에 당첨되면 좋겠다’는 생각도 자주 한다.(웃음) 문제는 내가 직접 복권을 사러 간 적이 몇 번 없을 정도로 평소에 아주 게으르다. 그런데 소설을 쓸 때만 주말 아침 일찍 카페로 향해 일할 정도로 부지런해진다. 2009년에 데뷔했으니 꽤 오랜 시간 소설가로 활동 중인데, 앞으로도 별일이 없다면 계속 쓰고 싶다. 그럴 수 있다면 행복하지 않을까.

소설가의 삶을 이어가는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나? 지금의 내게는 글 쓰는 첫째 목표가 나를 표현하거나 내 욕망을 적극적으로 구현하는 건 아닌 듯하다. 하지만 스스로 흥미를 느끼는 이야기를 글로 써나가는 과정이 재미있다. 이때 발생하는 에너지가 분명히 존재하고 그게 나를 고양시킨다. 내 작품 속 세계에 존재하는 사랑스러운 인물들을 만나며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깨닫기도 한다. 그래서 계속 소설가로 사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