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신 사진기자로 활동하다가 2009년부터 개인 작업을 시작했다. 계기가 있었나? 종군 사진기자의 꿈을 품고 외국 매체에서 활동하며 고민이 생겼다. 어떤 사건이 일어났을 때 사진가가 선악을 무책임하게 판단하지 않고, 사진이 ‘스펙터클’로 소비되지 않으면서 논의를 지속시킬 방법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사진가로서 할 수 있는 말과 할 수 없는 말, 사진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의 구분이 필요했다. 이 고민의 과정이 내 개인 작업에 담겨 있다. 용산 재개발 이후의 서울 풍경을 기록한 ‘임시풍경’, 4·3사건이 일어난 제주 등 비극의 장소에서 나무와 풀을 촬영해 엮은 ‘붉은, 초록’, 세월호 이후 전국의 고속도로 휴게소를 담은 ‘마지막 밤(들)’, 강제 철거된 지 30년이 지난 뒤 상계동 일대를 포착한 ‘워터-폴’ 등이 있다.

‘워터-폴’은 어떻게 시작된 작업인지 궁금하다. 2017년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 열린 전시 <서울 포커스: 25.7>의 기획자가 내게 아파트 준공 30주년을 맞은 상계동을 기록해보면 어떠냐며 제안했다. 한국에서 준공 30년은 재건축의 시작이라는 선언과 같은데, 실제로 그 동네를 찾아가보니 역시나 재건축이 이미 진행 중이었다. 곧 사라질 삶의 퇴적을 살피며, 한동안 카메라를 들고 상계동을 떠돌아다녔다. 그곳의 광경을 오래 바라보고 있으니 김동원 감독의 다큐멘터리영화 <상계동 올림픽>이 생각났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위해 진행한 달동네 재개발사업 때문에 하루아침에 집에서 쫓겨난 상계동 사람들의 투쟁을 기록한 이 작품을 떠올리며, 도대체 무엇을 꿈꿨길래 그토록 처참하게 주민들을 내쫓았는지 궁금해졌다. ‘워터-폴’은 ‘임시풍경’의 속편이자 <상계동 올림픽>에 대한 답장인 셈이다.

‘워터-폴’이란 제목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나? 상계동을 돌아다니던 당시 아파트보다 더 눈에 띈 것이 거대한 병풍처럼 서 있는 수락산이었다. 어느 날 수락산에 큰불이 났는데, 아파트 단지 사이로 검게 피어오르는 연기가 마치 이 동네에 대한 불길한 징후 같았다. 그때부터 ‘수락(水落)’이란 단어가 머릿속을 맴돌았고, 모든 것을 잠식시킬 듯이 쏟아지는 물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자연스레 폭포가 연상되었지만, 수락을 더 명확히 표현하기 위해 ‘워터폴(waterfall)’ 대신 ‘워터(water)-폴(fall)’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아파트를 철거할 때 연신 뿌려대거나, 용산 참사 당시 남일당 건물을 향해 밤새 쏘아대던 물줄기를 떠올리기도 했다.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만난 상계동 사람이 있었나? 원래 작업할 때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지 않으려 한다. 사람들의 이야기에 지나치게 깊이 빠지면 내가 그들을 대변할 수 있다고 착각하며 우위에 서서 작업하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워터-폴’을 진행하면서 제대로 대화해본 유일한 사람이 폐쇄된 8단지를 지키던 경비업체 직원이었다. 음식을 잔뜩 싸 들고 그를 찾아가 촬영을 허가해달라고 했다. 연신 설득한 끝에 겨우 단지 안으로 들어갔고, 철저하게 혼자 다녔다. 유독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면? 인상 깊은 장면을 만나면 음악을 들으며 작업하기도 하는데, 노을이 지는 하늘 아래 텅 비어 있는 8단지의 모습을 마주했을 때 내 귀에 들리는 음악이 데이비드 보위의 ‘Space Oddity’였다. 우주로 향한 메이저 톰(Major Tom)이 교신이 끊긴 상태로 푸른 지구에서 멀어지는 모습을 가사에 그려낸 그 곡이 마치 죽음을 앞둔 아파트에 바치는 레퀴엠처럼 느껴졌다.

상계동에서 벌어진 소멸과 탄생의 과정을 살피며 어떤 생각을 했나? 반복되는 무력과 패배에 대해 생각했다. 물론 어떤 이들은 상계동 재개발을 환영할 테고, 다른 누군가는 절망할 것이다. 하지만 재개발 때문에 금전적 이득을 얻는 사람과 쫓겨나는 사람이 존재하고, 이런 구조는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건 모두에게 절망스러운 일이다. 우리는 이 문제가 쉽게 해결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 비극에 가담하지 않은 사람은 과연 누구인가?’ 하는 질문 앞에 나 역시 결백하지 않다. 그럼에도 이 풍경에 대해 계속 말해야 한다고 본다. 아무리 목소리를 높이더라도 바뀌지 않을 수 있지만, 이야기를 멈추면 변화는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더 명백하니 말이다.

 

 

“우리가 늘 보아야 하는 이 도시를 혐오하기보다는 더 사랑할 수 있다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눈앞의 풍경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워터-폴’의 작가 노트에 ‘우리가 믿어 의심치 않은 미래’를 상상하며 상계동 주변을 어슬렁거렸다고 적었다. 그 미래는 어떤 모습이었다고 생각하나? 6·25전쟁 이후 사람들이 스스로를 갉아먹으며 이룩한 한강의 기적은 모두가 ‘믿어 의심치 않은 미래를 그렸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 미래가 어떤 모습일지 구체적으로알고 있지 않았다. 당시의 믿음은 가난에 대한 두려움이 만들어낸 일종의 판타지에 가까웠다고 생각한다. 30여 년 전, 서울올림픽 현장을 찾아온 외국인한테 가난의 풍경을 보여줄 수 없다며 상계동 주민들을 쫓아낸 것 역시 그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믿음은 공포를 전제로 성립하고, 지금도 우리는 수많은 공포에 노출되어 어떤 믿음을 계속 쌓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상계동 일대에는 최근까지도 재개발과 관련한 이야기가 오가고 있다. 소식을 일부러 찾아보지 않아도 재개발 관련 기사가 경제 신문에 쏟아져 내린다. 많은 사람이 축적된 세계가 특정 주기로 완전히 삭제되고 있다. 늘 임시 상태로만 드러나는 서울의 장면들을, 재개발로 인한 풍경 변화를 다룬 내 프로젝트 제목과 같은 ‘임시풍경’이라 부르기로 했다. 요즘 관심을 갖고 있는 서울의 풍경이 있나? 구로. 제4차 산업혁명을 외치며 초연결 시대에 대한 환상을 품은 사회의 시스템을 생산하고 유지하는 수많은 개발자들이 구로라는 세계에 갇혀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어쩌면 ‘상계동 올림픽’은 여전히 진행 중일지도 모른다.

당신이 생각하는 ‘서울의 아름다움’은 무엇인지 묻고 싶다. 서울의 정신없음과 소란스러움을 좋아한다. 수많은 갈등과 투쟁이 쉼 없이 벌어지며 의견과 이념이 무질서하게 요동치는 풍경을 마주할 때 서울에 남아 있는 희망을 발견하고, ‘서울은 아직 살아 있는 도시구나’ 싶다. 누군가 스스로를 시끄럽게 드러내는 모습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사진과 이미지를 둘러싼 권력관계를 관찰하고 이에 개입하는 일을 즐긴다고 들었다. 이데올로기가 서로 부딪는 지점에 서 있고 싶다는 생각을 항상 하고, 그래서 투쟁과 비극의 현장을 꾸준히 찾아다녔다. 이젠 시각과 관련한 권력이 충돌하는 자리가 주요 전장이 되었다고 본다. 볼 권리와 보여질 권리를 위한 투쟁이 여기저기서 끊이지 않고 있다. 노동자의 고공 농성이나 장애인의 지하철 시위도 스스로를 가시화할 방법을 찾는 행위가 아닐까 싶다. 또 요즘은 각종 SNS의 알고리즘이 접속 가능한 시각 세계를 통제하려 하고, 그로부터 벗어나려는 행동이 전 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기술에 역진(逆進)은 없다고 믿기에, 현재 상황에서 우리가 시각 권력을 되찾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며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에는 영화와 웹 프로그래밍 작업도 선보이고 있다. 앞으로 작업을 이어가며 지켜나가려 하는 기조는 무엇인가? ‘위험’을 생산해야 한다는 것이 현재 내 작업의 가장 큰 화두다. 시각예술이 동시대 주류의 시각적 관성을 극복해내는 일이라면, 관성에서 벗어나는 건 늘 일종의 불편과 위험을 만들어내며 이 과정에서 다양한 균열이 생긴다고 본다. 지금까지 수많은 비극을 지켜보며, 세상을 움직이는 힘은 승리가 아니라 패배에 있다는 것을 배웠다. 앞으로 어떤 작업을 하게 될지 잘은 모르지만, 패배의 언저리를 서성거리고 있을 거란 점만큼은 분명하지 않을까 싶다.

‘워터-폴’ 프로젝트를 마주한 서울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일상에서 보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보는 것을 닮아가고, 그것들이 결국 각자의 정체성 중 일부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가 늘 보아야 하는 이 도시를 혐오하기보다는 더 사랑할 수 있다면 좋겠다. 이를 위해서는 눈앞의 풍경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내게 더 좋은 풍경은 없는지 늘 고민하기를, 모두가 풍경을 의심하며 살아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