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은 시간에 의해 만들어지고 대지의 힘을 담고 있습니다.
조용하고 느리게 살아 숨 쉬는 생물처럼
수천 년, 수백만 년 동안 공명하는 영혼을 갖고 있죠.
그 종류에 따라 각기 다른 정신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데,
제 직업은 이를 상기시키는 것입니다.
얼핏 보잘것없어 보이지만 실은 무게와 의미를 지닌 지상의 물건에
고귀함을 부여하는 일이죠.
재발견을 통해 작품을 더 나은 장소로 옮기는 것이 우리의 주요 업무 중 하나입니다.”

악셀 베르보르트

 

지금까지 직관이라는 단어를 여러 번 언급했는데, 당신에게 직관은 어떤 의미인가요?악셀 사전적 정의로 말하자면 직관은 증명이나 증거 없이 지식을 습득하는 능력입니다. 저는 평생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직관에 의존해왔어요. 왜 다른 것이 아닌 그것을 택했는지 설명할 수 없고요. 팔라초 포르투니(Palazzo Fortuny)와의 10년 파트너십 마지막 전시로 <인튜이션(Intuition)>을 정한 이유도 완전한 이해 없이 특정 방식으로 행동하는 그 느낌을 이해해보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어쩌면 예술은 이렇게 만들어지는 것이겠죠. 모든 위대한 발견은 직관에서 비롯된다고, 저는 믿습니다.

와비(Wabi)의 개념을 활용해 아트 딜러로, 나아가 유명 셀러브리티의 인테리어를 하면서 디자이너로도 성공을 거두었는데요. 와비는 여전히 악셀 컴퍼니와 갤러리의 중요한 지침 중 하나로 작용하나요? 보리스 와비는 회사의 개념이라기에는 너무 제한적이고 형식주의적입니다. 개념이라면 다양성, 자연, 그리고 진정성에 대한 존중이라고 봐야겠지요. 악셀 와비는 오브제를 바라보고, 그것을 곁에 두고 삶을 살아가는 영적인(spiritual) 태도에 가깝습니다. 성에 살든, 아파트에 살든 관계없이 그 안에 자신이 정해둔 교회에 가는 것과 같아요. 공간이 될 수도 있고, 오브제가 될 수도 있어요. 저라고 와비를 투영한 공간에만 살고, 그런 오브제만 곁에 두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앉아 있는 이 일상적이고 편안한 다이닝 공간도 아주 좋아하지만 제가 와비 룸이라 부르는 공간에는 그것을 이해할 만한 사람만을 들이는 편이죠. 그런 공간과 오브제에는 가격을 떠나 겸손하고 고요하지만 강력한 힘이 느껴진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보리스 또 와비를 이해하면 영혼의 순수함을 느낄 수 있고 결국 그동안 우리가 배운 것에 기반해서 가치를 평가할 수 없다는 생각에 이르게 됩니다. 이미 알고 있는 것도 마치 아이가 태어나 처음 대상을 보듯 바라보려 노력하는 거죠. 예술에는 위계가 없다는 전제로 일하는 것이 악셀 컴퍼니와 갤러리를 특별하게 만듭니다. 갤러리를 시작한 이유 중 하나는 작가들의 비전이 순수하게 표현될 수 있는 플랫폼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진정성이 담겨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높이 평가합니다.

아트 딜러, 인테리어 디자이너, 큐레이터 등 악셀 당신을 수식하는 많은 단어 중 무엇이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하나요? 악셀 항상 누군가 직업이 무어냐고 물어보면 한마디로 대답하기가 어렵습니다. 지금도 그렇네요. 보리스 아버지의 책 <Axel Vervoordt: Stories and Reflections>에 적힌 문구가 현재로서는 가장 적합해 보이네요. “나는 스스로를 더 나은 장소를 찾길 원하는 돌을 모으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I think of myself as a gatherer of stones who wants to find a better place for things).”

돌을 모으는 사람이라니 확실히 아트 딜러보다는 흥미를 자아내는 직업이네요.(웃음) 그런데 왜 하필 돌이었나요? 악셀 돌은 시간에 의해 만들어지고 대지의 힘을 담고 있습니다. 조용하고 느리게 살아 숨 쉬는 생물처럼 수천 년, 수백만 년 동안 공명하는 영혼을 갖고 있죠. 그 종류에 따라 각기 다른 정신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데, 제 직업은 이를 상기시키는 것입니다. 얼핏 보잘것없어 보이지만 실은 무게와 의미를 지닌 지상의 물건에 고귀함을 부여하는 일이죠. 재발견을 통해 작품을 더 나은 장소로 옮기는 것이 우리의 주요 업무 중 하나입니다. 우리가 예술에 위계질서가 없다고 말하며, 진정성이 담긴 작품을 찾아 고객들에게 전하는 사업을 하는 이유이기도 하죠.


한국, 서울에 관한 이야기를 해볼까요. 방문한 적이 있는지, 어떤 인상을 받으셨는지 궁금해요. 보리스 마침 2주 전에 다녀왔어요. 컬렉터 몇 분을 만나고 관계자들과 투어를 했죠. 리움 미술관에서 열린 <조선의 백자, 군자지향>전이 특히 인상 깊었는데, 조선 백자에 담긴 의미와 그 아름다움에 매료됐습니다. 중국 도자기만큼 형태 면에서 완벽하지는 않아도 그런 면이 오히려 더 예술적으로 다가왔어요. 누군가 만들었다는 느낌이 훨씬 강했거든요. 악셀 한국 도자기는 매우 지적(intelligent)입니다. 단순해 보이고 약간 거칠지만, 비율이 훌륭하거든요. 강하고 고요하지만 겸손함이 느껴져요. 달항아리는 말 그대로 불완전한 아름다움의 표본이죠.

앞서 언급한 와비의 특징과 맞닿아 있네요. 악셀 한국에는 선비 정신이 있죠. <Wabi Inspiration>을 집필하면서 한국과 일본의 전통 건축을 공부한 적이 있는데 그 이후 한국의 자연, 절, 도시 등을 방문해 관찰하면서 선비의 존재와 그 정신을 알게 됐어요. 선비는 유교적 이상을 바탕으로 개인의 이익보다 공동체를 우선시하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세련되고 품위 있으며 겸손한 삶을 추구했던 귀족계급이었죠. 선비 정신 역시 태도이기도 하고요. 아주 오래되었지만 현대적이고, 미래에도 유효할 보편적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몇 년 사이 글로벌 패션 하우스나 브랜드가 한국 시장을 급격히 주목하기 시작했어요. 글로벌 메가 갤러리들도 그렇고요. 이 현상을 어떻게 보십니까? 보리스 거칠게 말하자면 그걸 소비할 시장이 한국에 있기 때문이죠. 자본을 가진 컬렉터, 제품이 들어갈 여유 공간이 많다고 판단한 증거라 봅니다.

악셀 갤러리의 경우는 어떤가요? 한국 아트 마켓에 집중하고 있거나 그럴 계획이 있나요? 보리스 저희는 나라보다는 사람에 집중하는 편입니다.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경험을 제공하는 환경에서 비즈니스를 하기 때문에 지리적 개념과는 별개로 움직이죠. 악셀 하지만 아시아 작가나 작품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는 걸 느끼는 것도 사실입니다.

뛰어난 컬렉터의 핵심 자질은 무엇인가요? 악셀 자유로운 사고를 지니고 직관에 따라 빠른 결정을 내리는 것입니다. 컬렉션 큐레이팅은 사실 아주 주관적인 판단에 의한 것인데, 그때 저희는 해당 작품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 알 수 있게 돕습니다. 보리스 자유로운 동시에 집중력 또한 높아야 합니다. 세상에 얼마나 많은 작가가 있고, 또 작품은 얼마나 많습니까. 자신이 이 작품을 왜 수집하는지 분명한 이유와 기준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단순한 모음에 지나지 않습니다. 컬렉션의 테마를 정하고, 그와 관련된 작가의 가치 있는 작품을 수집해야 하죠.

악셀 컴퍼니와 갤러리는 아트, 앤티크 및 인테리어 디자인 등의 분야에서 다각도로 사업을 벌이고 있고 재단까지 운영하고 있죠. 고객들이 이곳의 문을 두드리는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세요? 보리스 그들의 비전을 열어줄 수 있고, 영감을 줄 수 있으며, 서로 배워가며 친구가 될 수 있기 때문이죠. 우정을 쌓아가는 과정과 같습니다. 또한 그 의사소통 방식이나 과정이 매우 개방적이고 다차원적으로 이루어지고요.

하지만 그런 방식으로 의사소통을 하는 것은 다른 갤러리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보리 비슷해 보일 수 있지만 그렇지 않아요. 저희는 저희를 찾는 고객이 흥미를 가질 만한 거의 모든 주제, 즉 회화, 오브제, 집, 디자인 등에 대해 아주 진정성 있고 솔직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그분들이 원하는 거의 모든 것을 주저하지 않고 함께 이뤄왔고, 또 항상 그럴 준비가 되어 있거든요. 악셀 고객들은 저희와 함께할 때 마치 가족과 편안한 시간을 보내는 기분을 느끼는 것 같아요. 가족들이 운영하는 회사이니 한편으로는 당연하기도 하지만요.

회사 운영의 핵심 가치가 품질(Quality), 내구성(Durability), 조화(Harmony)라고 언급한 적이 있죠? 여전히 유효한가요? 혹시 추가하거나 빼고 싶은 단어가 있을까요? 보리스 그대로입니다. 다만 조금 자세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겠네요. 품질은 매우 폭넓게 해석될 수 있는 단어입니다. 저희는 진정성 안에서의 품질을 논합니다. 값비싼 재료로 아주 정교하게 만들어진 장식적인 작품의 품질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두 오브제가 빚어내는 의도치 않은 여백이나 물에 씻겨 닳는 비누에서 발견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아름다움 같은 품질을 말하는 거죠. 내구성에 대해 말해볼까요. 저희는 애초에 생산되었을 때의 상태를 영원히 유지하는 형식적인 내구성보다 미래 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는 성질에 더 관심이 많습니다. 변화해도 괜찮다는 뜻입니다. 그조차 내구성의 한 형태이니까요. 조화는 말 그대로 조화입니다.(웃음) 조화는 끝내 존재하지 않아요. 차라리 살아 있는 에너지에 가깝기 때문에 특정 지점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 눈앞에 있는 촛불은 꺼져 있고 꽃병은 비어 있죠. 하지만 식사 시간이 되면 누군가 그에 어울리는 꽃을 꽂을 테고, 해가 지면 누군가 초에 불을 붙일 겁니다. 항상 변화하고 있고, 변화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만 비로소 조화가 존재할 수 있습니다.

악셀 당신에게는 세 명의 손주가 있죠. 이들이 언젠가 당신의 두 아들처럼 악셀 컴퍼니와 갤러리 사업에 함께하기를 바라나요? 악셀 저의 꿈일 뿐이죠. 절대 강요하지 않을 겁니다. 두 아들 모두가 가업을 이어가고 있어요. 인생에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을 저는 이미 얻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