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리드 바이 더 씨>
파티판 분타릭 감독 Patiparn Boontarig

태국 감독. 조연출로 참여한 <만타 레이>(2018)가 베니스 국제영화제에 초청받았다.
올해 ‘뉴 커런츠’ 섹션에서 선보이는 <솔리드 바이 더 씨>(2023)가
감독 데뷔작이며 종교적 다양성과 성평등, 세대 간 갈등 등 태국 사회가 처한 현실을 조명했다.

한국에서 후반 작업을 진행하는 과정은 어땠나? 굉장히 값지고 흔치 않은 경험이었다. 태국을 떠나 한국에서 후반 작업을 진행하면서 이 프로젝트에 새로운 시각이 더해졌다. <솔리드 바이 더 씨>가 종교적 다양성과 성평등, 세대 간 차이 등의 주제를 탐구하는 영화이니만큼 한국의 사회적, 문화적 상황에 대한 이해가 균형 잡힌 이야기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됐다.

<솔리드 바이 더 씨>에 어떤 이야기를 담았나? 보수적인 무슬림 가정에서 자란 여성이 반체제 여성 예술가와 관계를 진전시키며 문화적, 종교적 장벽에 직면한다. 억압적인 환경에서 캐릭터가 겪는 내적 투쟁, 투쟁을 거쳐 스스로를 받아들이는 변화의 과정을 담았다.

태국 남부 마을의 침식되고 있는 해안가를 배경으로 했다. 특별한 촬영 에피소드가 있다면 전해주기 바란다. 송 클라(Songkhla)는 태국 정부가 해안침식을 막기 위해 다양한 구조물을 설치해둔 도시다. 촬영하는 도중에도 침 이 진행되며 계속 변화하는 해안선과 구조물의 위치에 맞추어 각본을 새롭게 조정하고 로케이션을 다시 찾아야 했다. 하지만 이 도전 과제 덕분에 결과적으로 영화에 담고자 했던 견고한 구조물의 모습을 포착할 수 있었다.

영화의 시작점이 된 사건이나 인물이 있나? 10년 전쯤 해안가에 설치된 다양한 구조물에 대한 짧은 다큐멘터리를 만들며 지역 시장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는 인공 구조물과 그로 인한 장기적 환경 파괴의 위험성을 알리는 환경 운동가였다. 비극적이게도 이 투쟁으로 인해 그가 암살당했고, 이 사건이 영화를 만드는 최초의 계기가 됐다.

동성애를 억압하는 태국의 사회적 배경이 주인공 ‘샤티’ 에게 위기로 작용한다. 사회적 억압으로 갈등을 겪는 인물을 조명한 이유는 무엇인가? 어린 시절 할머니 밑에서 자라며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인식과 여성주의적 시각을 자연스럽게 갖게 됐다. 가부장제, 사회적으로 고착화 된 남성적 규범, 태국 사회에 만연한 권위주의를 아울러 사회적 불평등이라는 큰 범주를 다루고자 했다. 동성애는 태국 사회에서도 이슬람 신앙과 소수민족 사회에서 여전히 충돌과 억압을 겪는다. 태국 사회의 복잡한 맥락과 그 안에 놓인 개인이 내적으로 갈등하고 타협하는 과정을 조명하고자 했다.

이 영화의 도전 과제는 무엇이었나? 캐릭터를 제시하며 종교와 성별에 대한 그 어떤 편견도 강화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였다. 영화제작 과정 전반에 걸쳐 균형 잡힌 관점을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았고, 남성으로서 두 여성의 삶을 그려내는 과정에 따르는 어려움도 있었다. 이를 위해 다양한 젠더와 종교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협력하며 이야기를 만들어가려 했다. 또 배우와 제작진이 편안한 분위기에서 서로의 비전을 자유롭게 공유할 수 있도록 했다.

당신이 영화를 만드는 동기는 무엇인가? 마음속 깊이 표현하고 싶은 이야기가 오랫동안 남아 있을 때 누군가에게 직접 털어놓기보다 영화로 풀어내는 일이 내게는 일종의 치유 과정과 같다. 이것이 내가 영화제작을 지속하는 동력이다.

영화감독으로서 품은 목표는 무엇인가? 전업 감독이 되는 것. 나를 포함한 많은 감독이 영화제작을 뒷받침하기 위해 다른 직업을 겸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사랑하는 이야기와 영화를 만들며 생계를 유지하는 것이 감독으로서 품은 가까운 목표다.

 

<딸에 대하여>
이미랑 감독 Lee Mirang

<베트남 처녀와 결혼하세요>(2005), <목욕>(2007), <춘정>(2013) 등의 단편으로
부산국제단편영화제 관객상을 비롯한 여러 상을 품에 안았다.
이창동 감독의 <시>(2010)와 장률 감독의 <춘몽>(2016) 현장에서 스크립터로 활동했으며
김혜진 작가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신작 <딸에 대하여>(2023)가 올해 ‘한국영화의 오늘 : 비전’ 섹션에 선정됐다.

 

부산국제영화제 ACF의 후반작업지원펀드 지원작으로 선정된 소감이 궁금하다. 부산국제영화제는 독립영화 감독들에게는 중요한 문고리 같은 역할을 한다. 국내 최대 규모의 영화제이니만큼 많은 관객과 만날 수 있는 출발선에 선 것 같아 기대되고 감사하다.

장편 데뷔작인 <딸에 대하여>의 제작 과정은 어땠나? 그간 해온 단편 작업과 어떻게 달랐나? 단편과는 비교할 수 없는 노동 강도를 경험했다.(웃음) 단편영화는 영화 학교의 시스템 안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데 집중 할 수 있었다면, 장편영화는 촬영 일정과 예산을 조율하는 것부터 능수능란한 배우들, 제작진과 끊임없이 소통 하는 일까지 완전히 다른 근육이 필요한 일이었다.

촬영 현장은 어땠나? 매 촬영이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독립영화의 제작 현장은 예산이나 상황적 제약 탓에 이상적으로 소통할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 따라서 배우들과 한정된 시간 안에 밀도 높게 작품과 캐릭터에 대한 이해도를 맞추는 데 집중했다. 영화에서 엄마를 연기 하는 배우 오민애와 가장 활발히 소통한 것 같다.

김혜진 작가의 장편소설 <딸에 대하여>가 원작이다. 이 소설을 영화화한 이유는 무엇인가? 무엇보다 엄마라는 인물에게 마음이 갔다. 30대 중반의 딸을 둔 중년 여성이지만 우리 모두의 보편적인 모습을 가진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런 인물이라면 내가 그려낼 수 있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싶었다. ‘다른 누군가를 이해하는 것이 가능한가’ 하는 의문을 품으며 소설을 집필했다는 작가의 말에 크게 공감하며 시나리오를 써나갔다.

소설과 영화라는 서로 다른 매체를 오가며 고민한 지점은 무엇이었나? 영화는 보고 듣는 시청각 매체이자 캐릭터의 행동으로 서사를 끌고 나가는 매체이기에, 엄마의 정서를 섬세하게 그린 이 소설을 영화화하기 위해서는 원작과 다른 접근법이 필요했다. 이 점을 빠르게 인정하고 시작부터 원작과 동일하게 가야 한다는 욕심을 버렸다. 그보다 원작의 주요한 사건을 가지고 와 영화적 문법을 적용해 관객을 몰입하게 할 이야기를 만들어내는데 더욱 집중했다.

각색 과정에서 원작과 가장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 나라는 사람을 만나 엄마 캐릭터가 더 고집스러워진 것 같기도 하다. 앞서 말했듯 원작의 엄마가 갈등을 받아들이고 분석하며 스스로 내면의 정리를 끝내는 인물이라면 영화 에서는 문제를 피하거나, 모른 척하거나, 받아들이거나, 맞서 싸우는 등 가시적인 행동을 취해야 했다. 그저 지켜 보거나 침묵하는 행위로 심정을 표현할 수 있을 뿐이니 원작의 엄마보다는 한층 고집스럽고 마음이 닫힌 인물로 보일 것이다.

극 중 엄마와 딸은 모두 ‘가족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품고 있지만 끝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완전한 타인인 ‘제희’를 가족으로 받아들이려 하는 엄마, 동성 연인과 가족으로서 법적 지위를 얻고자 하는 ‘그린’ 모두 각자 고집이 있고 그 면이 많이 닮았다. 가족은 공통의 기억을 공유한 사람이 모인 만큼 서로 더 미워할 수도, 더 이해해보려고 할 수도 있는 관계라 생각한다. 서로 눈감아주면 이해할 수 있는 사이지만 절대 그 눈을 감지 않으려 하는 관계, 그게 가족인 것 같다.

이 영화를 만들어가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점은 무엇인가? 엄마의 정서를 표현하는 것. 이 영화는 러닝타임 1 백6분 중 1백5분 동안 엄마가 등장하는 영화이기에 엄마라는 인물을 놓치면 기댈 곳이 없다. 엄마가 제희를 보며 느끼는 노년, 궁핍한 생활에 대한 불안은 본인을 통과해 그대로 딸에게 전해진다. 이 과정을 그리는 것이 이 영화의 목표였다.

엄마와 딸의 관계를 그리는 만큼 제작 과정에서 본인의 삶을 반추했을 듯하다. 편집이 끝나고 나니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의 면면에서 내 모습이 보였다. 그 사실에 때로는 괴롭다. 영화는 개인적인 체험을 서술하기 위한 매체가 아니기에 함께하는 창작자들과 이야기를 다채롭 게 변주하며 새로움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음 작품에서는 영화에서 나 자신을 지우는 작업을 계속 해보려 한다.

영화 공개를 앞둔 소회를 묻고 싶다. 보는 이들마다 마음 가는 인물이 모두 다를 거라고 본다. 영화에 던져놓은 여러 장면 안에서 관객 각자의 의미를 찾아가는 영화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