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에게 열려있는 자연 공간인 바다를 배경으로 조각부터 설치, 영상까지 다양한 형태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는 ‘2023바다미술제’가 11월 19일까지 부산 일광해수욕장 일원에서 진행됩니다. 2011년부터 격년마다 부산의 송도해수욕장, 다대포해수욕장 등지에서 개최된 바다미술제는 부산시와 부산비엔날레가 함께 주최하는 독자적인 해양미술축제입니다.

<깜빡이는 해안, 상상하는 바다>를 주제로 한 올해의 바다미술제는 바다와 해양 생물, 환경과 인류의 관계를 새롭게 상상해 볼 것을 제안합니다. ‘깜빡이는 해안’은 관광과 해운, 핵실험 등 인간의 활동으로 인해 해를 입은 해양 생태계의 현실, 불규칙하게 점멸하는 듯한 오늘날 바다의 모습을 담고 있죠. 전시 감독인 이리니 파파디미트리우(Irini Papadimitriou)는 전시의 목표이자 지향점을 두고 “우리가 거대한 물의 한 부분임을 일깨워 주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올해 바다미술제는 국내를 비롯해 영국과 브라질, 슬로베니아, 사우디아라비아 등 20개국의 작가가 참여해 전 세계 해안 공동체의 역할을 탐색하고 바다의 회복과 잠재력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합니다.

2023바다미술제는 부산 지역의 오랜 역사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장소에서 자연과 어우러지는 작품을 선보입니다. 일광해수욕장뿐만 아니라 옛 일광교회, 강송정 공원, 신당 옆 창고, 인근 주택 등 일광 마을 전체를 전시장으로 활용해 해안마을의 역사와 바다 생태계의 태초를 함께 생각해 보자는 취지인데요. 해변과 실내 공간을 오가며 감상할 수 있는 2023바다미술제의 작품 일부를 소개합니다.

 

<바다의 풍문>, 대나무, 대나무 피리, 나무 데크, 철골 구조물, 가변크기(직경 12센티미터, 3미터 길이의 150개의 대나무 피리). 2023바다미술제 커미션 설치작품, 2023.

 

펠릭스 블룸 <바다의 풍문>

일광해수욕장 중앙에는 프랑스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사운드 아티스트 겸 엔지니어 ‘펠릭스 블룸(Felix Blume)’의 <바다의 풍문>이 자리합니다. 2018년 태국 비엔날레에서 처음 선보인 이 작품은 해안 침식이 국가적 문제로 떠오른 태국에서 대나무를 활용해 방파제를 만드는 문화에 착안해 제작되었습니다. 대나무 기둥 백여 개로 이루어져 있어 기둥 상단의 구멍을 통해 바닷물이 드나들며 마치 피리처럼 소리가 나는 작품으로, 나무 데크를 따라 바다로 걸어 나가면 파도의 결과 방향, 속도에 따라 다양하게 변주하는 바다의 고유한 소리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바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바다는 우리에게 뭐라고 할까?’라는 질문에서부터 출발한 <바다의 풍문>은 바다가 들려주는 고요한 노래 같기도, 절규 같기도 합니다. 수면 위에서 공명하는 대나무 피리 연주에 귀를 기울이며 감상해볼 것을 권합니다.

 

<수생정원>, 연못 필터 브러쉬, 파이프, LED, 감지 센서, 300×250×1000cm. 2023바다미술제 커미션 작품, 2023.

스튜디오 1750 <수생정원>

해수욕장을 따라 걷다 보면 거꾸로 매달려 있는 산호초와 같은 기이한 구조물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조각과 건축, 디자인을 오가며 작업하는 김영현, 손진희 두 명의 작가가 함께 결성한 프로젝트 그룹 ‘스튜디오 1750’의 작품 <수생정원>인데요. 스튜디오 1750는 ‘혼종문화’를 주제 삼아 인간의 개입으로 변해버린 환경의 모습을 담아내는 작업을 지속해 온 프로젝트 그룹으로, 이들이 올해 바다미술제에서 선보인 <수생 정원> 역시 해수를 정화하는 수생식물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연못 정화 필터의 내부 소재와 파이프 등으로 만든 이 기이한 구조물은 유전적으로 변이된 해양 생태계를 상징합니다. 구조물 사이를 직접 거닐 수 있는 참여형 작품으로, 심해까지 침투한 플라스틱과 화학 물질로 인해 오염된 환경에서 살아남아야만 하는 생명체가 되어 보자는 메시지를 던집니다.

 

<바다에서의 달콤한 허우적거림>, 흰색 실, 가변크기. 2023바다미술제 커미션 작품, 2023.

무한나드 쇼노, <바다에서의 달콤한 허우적거림>

실내 전시장 중 한 곳인 옛 일광교회에서는 사우디아라비아의 대표적인 신진 예술가로 주목받고 있는 ‘무한나드 쇼노(Muhannad Shono)’의 작품 <바다에서의 달콤한 허우적거림>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기도를 위한 공간이자 선교 학교로 사용되어 온 옛 일광교회가 품어온 다양한 공동체와 사람, 그 속의 이야기를 표현한 작품으로 낚싯줄을 이어 만든 가느다란 실들이 공간 전체를 가로지르고 있는 형태입니다. 수평으로 뻗은 실들은 예배당 창문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을 시각화해 신성한 분위기를 더해주고, 시간대별로 변화하는 채광에 따라 다양한 감상을 자아냅니다. 공간 전체를 통과해 야외로 이어진 실을 따라 시선을 옮기면 그 끝에는 바다가 자리하고 있어 다시 한번 자연과 해양의 의미를 되새겨보게 됩니다.

 

<이것은 좋은 사인이 아니다>, 알루미늄, 고휘도 반사시트, 최대 350×180cm. 2023바다미술제 커미션 작품. 웹 기반 증강현실(AR) 애플리케이션. 2021-2023.

제이알 카펜터 & 토모 키하라, <이것은 좋은 사인이 아니다>

증강현실(AR)을 접목해 시를 제작하는 독특한 프로젝트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이주와 이민, 기후를 탐구하는 영국의 예술가 제이알 카펜터(J.R. Carpenter)와 실험적인 게임을 주제로 한 작품을 선보이는 토모 키하라(Tomo Kihara)의 합동 작업인데요. 올해 바다미술제에서 두 작가는 일광해수욕장의 환경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다섯 종류의 한글과 영어 사인을 제작했습니다. 이 사인들을 조합하면 ‘바다가 이르게 일어난다 / 공기가 내려앉는다 무겁게 / 여기 바람이 산다 / 급격한 땅의 변화 / 우리의 꿈에 짠 기가 밴다’와 같은 한 편의 시가 완성됩니다. 해당 작품은 과거와 현재의 기후 조건에 대한 묘사를 담고 있는 사인들을 통해 현재 벌어지고 있는 사소한 기후 변화 현상부터 다시금 생각해 보게 합니다.

 

다가오는 주말, 부산의 가을 바다와 기장 곳곳의 정취를 느끼며 2023바다미술제의 다양한 작품을 감상해 볼 것을 권합니다. 전시는 오는 19일까지 휴일 없이 진행됩니다. 참여 작가 인터뷰와 전시 가이드맵 등 전시에 대한 더 자세한 정보는 2023바다미술제 공식 홈페이지와 부산비엔날레조직위원회 인스타그램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깜빡이는 해안, 상상하는 바다》

기 간 : 2023. 10. 14 ~ 11. 19, 11:00 ~ 19:00
장 소 : 부산 기장군 일광해수욕장 일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