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님 셔츠 포터리(Pottery), 모자는 본인 소장품

 

“어려운 장면이 한 군데도 없는데, 설명하자면 어렵다. 모든 인물은 예상에서 조금씩 비켜나 있다.”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뉴 커런츠상을 수상한 영화 <괴인>을 소개하는 프로그램 노트의 일부다. 명확하고 간결한 제목과 달리 <괴인>은 좀처럼 정의할 수 없는 영화다. 등장인물의 심리도, 이야기의 시작과 끝도 선명하지 않다. 소규모 인테리어 공사로 생계를 유지하는 목수 ‘기홍’에게 사소한 사건들이 생기고, 이 과정에서 어떤 사람들을 만나 관계가 만들어지기도, 어긋나기도 하는 식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대단한 폭발도, 반전도 없이 덤덤히 흐른다. 그래서 더욱 기이하다. ‘이쯤에서 본색이 드러나려나? 이제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가?’ 하며 러닝타임 내내 품었던 의심은 끝내 시원하게 해소되지 않은 채 영화는 끝을 맺는다. 이렇듯 낯설고 모호한 이 이야기는 관객에게 영화를 보는 관점과, 관계를 맺는 방식을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누가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르게 규정될 수 있다. 영화도, 관계도, 사람도.

 

영화 <괴인>의 줄거리를 설명하기 위해 한참 고민했는데 결국 답을 내리지 못했다. 어쩌면 이 답은 감독만이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를 어떻게 설명하나?

어떤 사건을 중심으로 이야기할 수도 있지만, 그런 식으로는 이 영화를 잘 설명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상한 듯 그렇지 않은 것 같은, 그래서 이상한 기홍이라는 인물이 역시나 그와 유사한 이상한 듯하면서도 이상하지 않은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위로받고, 미움받고, 그래서 슬프기도, 기쁘기도 한 과정을 담은 이야기라 말하고 싶다.

 

꽤 많은 인물이 등장하는데, 이 중 감독과 가장 밀접하게 닿아 있는 인물은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기홍’이 아닐까 싶다. 우선 수염을 기른 외모부터가….(웃음)  

수염은 의도한 게 아니다.(웃음) 사실 기홍 역의 배우는 나의 오랜 친구다. 수년 전, 이 친구의 성격이나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를 보며 복합적인 감정이 생긴 적이 있다. 아주 가까운 사이라 다 알 것 같으면서도, 일견 알 수 없는 부분을 마주한 느낌이랄까.이런 친구의 이야기에 나를 투영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런데 시나리오를 완성해가면서 결국 기홍 쪽에 가까이 가게 되었고,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되어서 다행이라 생각한다. 나보다는 기홍이가 훨씬 다채롭고 재미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웃음)

 

친구 박기홍을 영화 안으로 들여와 하나의 캐릭터로 구축한 과정을 더 구체적으로 들려줄 수 있나?

초반부에 친구이자 동료 경준이 “니 요새 소리를 와 그리 버럭버럭 지르노?”하고 묻는 장면이 나온다. 나는 이게 이 영화를 작동하는 첫 번째 질문이자 기홍이라는 인물을 구축하는 출발점이라 생각했다. 기홍은 타인과 관계를 맺는 방식이 어딘가 이상한 사람이다. 가깝게 지내고 싶은 사람에게는 오히려 존댓말을 쓰면서 멀리하고, 또 반대로 누군가에겐 느닷없이 반말을 하면서 성큼 다가가버리기도 한다. 이런 점이 좋아 보이거나 나빠 보이는 걸 떠나서 ‘쟤는 왜 저러지. 이상하네.’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들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 그게 영화적으로 주목할 인물의 특성이 되겠다 싶었다. 그렇게 타인과 거리를 만드는 방식에 집중하며 기홍이라는 캐릭터를 만들어 갔다.

 

그래서 제목이 <괴인>이 된 걸까? 기홍을 비롯해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이 대부분 괴이하고 이상한 듯하면서도 그렇지 않은 것 같은 면을 지니고 있다.

마지막까지 제목을 두고 우려가 컸다. 좀 그로테스크하게 느낄 수도 있는 단어인데, 나는 그런 영화를 찍고 싶은 건 아니었기 때문에 찍는 내내 다른 제목을 생각해보려 했다. 그러다 편집 과정에서 그냥 원래대로 가기로 결심했다. 영화 속 인물들은 사실 괴인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런데 괴인으로 취급받거나, 스스로 괴인처럼 행동하게 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러니까 관계 속에서 다른 이의 시선이 부여됨으로써 괴인이 되기도 하고, 범인이 될 때도 있는 거다. 그렇게 관객에게 해석의 여지를 남길 수 있겠다 싶어 제목을 바꾸지 않았다.

 

영화 속 인물들만큼이나 이야기 역시 모호하고 어딘가 의뭉스럽다. 그래서 시작부터 끝까지 어떤 사건이 일어날 것만 같은 긴장감을 내려놓을 수가 없다.

묘하게 스릴러의 기운이 있다고 말하는 분이 많은데, 의도한 건 아니다. 그런데 왜 스릴러처럼 다가가는지 생각해보면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인간관계라는 게 소통을 잘하면서 잘 가꿔가는 사람에게는 즐거운 드라마일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매 순간이 좀 조마조마하지 않을까? 나는 후자인 미숙한 관계에 집중했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영화에 긴장감이 생성된 것 같다. 한편으론 촬영 방식의 영향도 있을 거라 생각한다. 촬영감독님이 나는 카메라가 멀리서 관조하듯이 바라보는 것도, 아주 가까이에서 무언가를 강요하는 듯한 느낌도 좋아하지 않으며 중간 선에서 긴장을 일으키는 거리를 추구하는 것 같다고 얘기해준 적이 있는데, 그 점도 한몫했을 거라 본다.

 

그 말을 듣고 보니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에서 카메라가 인물을 지그시 바라보듯 담아낸 몇몇 장면이 떠오른다.

가능한 정적으로 단순하게 인물을 찍는 방식을 추구한다. 표정이나 동작의 작은 변화를 클로즈업으로 잘 보여주려 하기보다 최대한 창작자의 개입이 느껴지지 않도록 영화 속 인물을 일정 거리에서 관찰하듯이 보여주고 싶었다.

 

이 영화가 남기는 가장 큰 모호함은 인물이나 이야기가 아니라 끝맺음이라 말하는 관객도 있다. 나 역시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 ‘아, 끝난 거구나’라고 인식했다.

<괴인>의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한 시기인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무렵, 살면서 처음으로 ‘사람 사이의 소통이라는 것이 불가능의 영역인가?’ 하는 절망감이 들었다. 다르게 얘기하면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인가 싶었고, 아니길 바라는 마음으로 소통의 가능성을 붙잡고자 이 영화를 만들어나갔다. 그래서 ‘단절된 세상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마음과 태도를 갖고 살아가야 하나?’ 하는 질문을 영화 안에 담으며 어떤 답을 얻고 싶었는데,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고민으로 남게 되었다. 그게 분명하지 않은 엔딩으로 이어지지 않았나 싶다. 아니면 내가 아직 미숙해서 그런 미완의 엔딩을 찍게 된 것 같기도 하고. 한동안은 이 부분에 대한 고민이 있었는데 최근에야 어떻게 비치든 괜찮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이 영화가 지닌 낯선 느낌은 배우들에게서 나오기도 한다. 기홍을 비롯해 주요 인물 모두 연기 경험이 전무한 이들을 캐스팅했는데, 어떤 의미의 선택이었나?

처음에는 배우를 섭외하려 했는데, 끝내 적당한 인물을 찾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이야기의 모티프가 되는 기홍이 지닌 고유하고 독특한 에너지가 다른 사람이 연기했을 때 잘 작동될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고, 기홍을 설득하게 됐다.

 

선뜻 응했나?

당연히 절대로 안 한다,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냐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래서 테스트 촬영만 해달라는 식으로 선회했다.(웃음) 어쨌든 오랫동안 시나리오를 정성스럽게 써온 나의 마음과 상황은 알고 있으니, 그건 응해준 거다. 그런데 막상 해보니 꽤 재미있었는지 결국에는 “에이, 몰라. 네가 뭐 생각이 있겠지” 하면서 승낙했다. 그렇게 기홍을 캐스팅하고 나니 다른 역할에 안정되고 정교한 연기를 하는 전문 배우가 들어올 여지가 줄어드는 느낌이 들었다. 연기를 해본 적이 없는 사람과 배우의 조화가 쉽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졌고, 그러면서 점점 비전문 배우를 우선으로 찾게 되었다. 결국은 일이 커져서 비전문 배우만 지원할 수 있는 오디션을 아주 크게 진행했다. ‘이런 분의 연락을 기다립니다’라는 내용의 전단지를 여기저기에 뿌리고 두 달간 5백여 명을 만났다.

 

캐스팅 과정도 쉽지 않았겠지만, 그보다 더 큰 난관은 현장에서 디렉팅하는 과정이었을 것 같다.

고통의 근원이었던것 같다.(웃음) 오디션을 3차까지 보면서 단계별로 나름대로 검증하긴 했지만 전문 배우가 아니기 때문에 기술적으로 정교한 연기를 이끌어낼 순 없었다. 한다고 해도 조금 이질적일 것 같았고. 그래서 최대한 실제라고 믿을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주려 했다. 뭔가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 없이 그 상황에 빠져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말과 움직임을 담아내려 했는데, 역시 쉽지 않았다. 한 사람이 잘 나오면 옆 사람이 안 되고. 어쩔 수 없이 테이크를 여러 번 갈 수밖에 없었다.최소한의 가이드를 마련해두고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식이었다.

 

만들어진 이야기지만, 작업 방식에서는 다큐멘터리와 닮은 부분도 있었던 듯하다.

매 순간 ‘제발, 제발’ 하고 속으로 외치며 무언가를 포착하길 간절히 바라긴 했다.(웃음)

 

그만큼 포착했을 때의 즐거움이나 희열도 컸으리라 짐작한다.

분명 고통스러웠지만 그걸 뚫고 엄청난 감동을 느끼는 순간도 꽤 있었다. 특히 기홍은 좀 신비로웠다고 할까? ‘어떻게 저렇게 연기하지?’ 싶어 놀랄 때가 많았다.

 

데뷔한 김에 계속 연기해도 괜찮지 않을까.(웃음) 한 작품으로 끝내기엔 아쉬운 배우다.

연기를 계속 할 생각은 없는데 은퇴하진 않았다고 하더라.(웃음)

 

아주 오래 고민하고 의심하며 만든 영화가 드디어 관객에게 전해졌다. 고통과 감동의 순간을 지나 지금은 어떤 마음이 남았나?

우선 시나리오를 쓰는 과정은 되게 즐거웠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누가 시켜서 한 게 아니고, 내가 좋아하
고 찍고 싶은 영화를 될 때까지 해보겠다는 목표 하나를 두고 이렇게 저렇게 헤매는 과정이 꽤 좋았다. 하지만 촬영하는 과정에선 상상 이상의 고통이 따랐다. 영화라는 게 감독이 모든 걸 통제하는 듯하지만 사실은 수없이 많은 요소가 끼어들면서 처음 의도와 완전히 다른 재창조 과정을 겪는데, 그 단계가 좀 고통스러웠던 것 같다. 끝내 편집 과정에서도 미처 소화하지 못한 채로 끌고 오면서 위축되는 시간도 있었고, 그렇게 완성하고도 약 1년이 지난 시점에 약간 안도하며 이 영화를 소화하게 됐다. 최근에야 비로소 ‘이제 이 영화는 향후 5년은 안 봐도 되겠어’라며 나름대로 정리했고, 그래서 지금은 마음이 후련하다.

 

좋아하는 영화를 찍겠다는 목표는 이 영화의 완성으로 이뤘다고 봐도 될까?

어느 정도는. ‘남에게 중요할 것 같은 이야기가 아니라, 나에게 정말로 중요한 이야기를 하자. 그리고 그에 대해 어느 정도 공감을 이끌어내보자.’ 이런 마음으로 영화를 찍었는데, 그런 면에서 나름의 성취를 이뤘다고생각한다. 여전히 부족하고 비어 있는 부분은 많지만.

 

마지막 질문은 다시 영화 제목으로 돌아가보겠다. 스스로 괴인이라 생각하나, 범인이라 생각하나?

캐릭터가 분명한 사람도 있겠지만 대체로 많은 사람이 이랬다저랬다 하지 않나. 사람이 원래 일관적이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그런 면에서 나는 괴인 같은 면도 있고, 어떨 때는 보편적인 사람이기도 한데 실은 여전히 나를 잘 모르겠다. 한편으로는 이런 의문이 생기기도 한다. 스스로의 의지에 따라 자신을 만들 수 있을까? 이렇게 사람의 특성을 어떤 좌표로 규정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이런 질문을 하면서 다음 작품을 준비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