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사진가 소피 그린은 현지 곳곳에 자리한 해변의 풍경을 포착하며 세 번의 여름을 보냈다. 휴양을 꿈꾸며 한데 어우러진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그려낸 장면 속에 우리가 의지하고 추구하는 사랑이 있다.

영국 해변의 풍경을 사진에 담아내는 ‘Beachology’ 프로젝트를 시작한 계기는 무엇인가?

4년 전, 영국 해변을 주제로 한 사진집을 출간할 계획을 세우며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당시 코로나19로 공공장소 접근이 제한되어 다큐멘터리 사진 작업을 하기가 어려웠는데, 그나마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곳 중 하나가 해변이었다. 그래서 영국에 자리한 아홉 곳의 해변을 찾아가 사진을 촬영하며 세 번의 여름을 보냈다.

‘Beachology’라는 제목이 인상적이다. 해변과 관련한 학문 또는 현상을 가리키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해변 특유의 분위기와 그곳에 있는 사람들의 심리적 경험을 재치 있게 표현하고 싶어 고심하다가 ‘Beachology’라는 제목을 떠올렸다. 자유, 향수, 기쁨 등 해변이 불러일으키는 감상을 사진에 담아내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목표다.

사진가로서 해변의 어떤 점에 매력을 느꼈나?

10년 가까이 카메라를 들며 영국 문화를 탐구해온 내게 해변은 중요한 대상이다. 영국은 섬나라고, 많은 사람이 바다에 매료되어 있기 때문에 해변을 찾아가면 현지 삶의 다양한 형상을 마주할 수 있다. 해변은 휴가를 즐기려는 이들이 모이는 사교의 장이자 지루한 일상의 탈출구 역할을 해왔다. 해변은 어느 지역에서든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각 해변이 지닌 고유의 개성이 있는 것 같다. 그렇다. 영국 해변의 특징은 주변에 매력적인 시설이 많다는 것이다. 알록달록한 놀이기구와 화려한 카지노, 피치앤칩스 가게, 아이스크림 상점 등이 피부가 그을린 사람들로 붐빈다. 어린이와 노인, 학생과 퇴직자, 관광객과 현지인 등이 함께 자리한 장면은 볼 때마다 생동감이 느껴진다.

해변에서 만난 사람 중 유난히 기억에 남는 이가 있다면?

서머싯주에 위치한 웨스턴 슈퍼메어(Weston-super-Mare) 비치의 산책로를 매일 걷는다던 95세 할머니가 떠오른다. 보라색 옷을 곱게 차려입은 그분이 내비친 삶에 대한 열정이 참 좋았다. 우리는 사랑과 슬픔, 외로움에 대해 멋진 대화를 나눴다.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충분히 가지는 것이 내가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중요하게 여긴 지점이다. 인물의 감정이 드러나는 사진을 찍으려면 신뢰와 존중이 전제되어야 하고, 친밀감을 쌓아가는 과정도 필요할 테니 말이다.

한데 이 프로젝트는 해변의 밝고 아름다운 면만 보여주진 않는 것 같다. 관광산업의 발달로 어려움에 처한 마을의 상황도 엿볼 수 있다.

해변 풍경은 현지에서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삶뿐만 아니라 최악의 삶도 대표할 수 있다는 걸 안다. 후자의 예로는 계층 분열과 불평등, 부의 불균형 등이 있다. 부유한 관광객이 해변으로 몰려들어 마을이 재구성되는 상황을 종종 목격했다. 바닷가에 레스토랑과 와인 바가 들어서며 외지 사람들을 많이 불러들였지만, 정작 현지인은 집값 급등으로 고충을 겪는 식이었다. 지역의 정체성을 지키는 동시에 모두를 포용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2024년 여름, 현재 영국 해변의 풍경은 어떤지 궁금하다.

영국 해변 마을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분명한 변화는 해외여행이 다시 활발해지면서 해변을 찾아오는 이들이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해변은 앞으로도 계속 현지의 삶을 대변하며 그 문화적 가치를 이어갈 거라고 생각한다.

해변과 인간의 삶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다고 보나?

우리는 해변에 가면 천진난만하게 뛰놀고, 시답잖은 장난도 치며 ‘쉼’을 만끽하지 않나. 여기에 바다 수영과 일광욕, 자연을 가까이하는 시간의 미덕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해변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곳에서 하는 경험이 일상과 뚜렷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차이와 변화의 감각을 느끼기 위해, 인간은 해변을 찾아가도록 타고난 게 아닐까 싶다.

해변이 선사하는 해방감은 모두에게 공평히 주어지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매해 여름, 무수하고 다양한 사람이 해변으로 모여들어 휴양을 누리지 않나.

동의한다. 해변은 서로 다른 이들이 그 어떤 조건이나 상황을 막론한 채 동등하게 존재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하나의 목적을 공유하며 어우러질 수 있다는 사실이 내게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흥미는 사진가에게 작업하는 동력이 되어주기도 하지 않나. 주로 어떤 장면을 마주했을 때 셔터를 누르게 되는 것 같나?

눈앞의 장면에 직관적으로 반응하는 편이다. 순수한 호기심을 따라 움직이며, 낯섦과 새로움에 마음이 이끌린다. 그렇게 꾸준히 카메라를 들다 보니, 공동체 안에서 교차하는 여러 정체성과 삶의 다양성이 결과물에 담기더라. 그 사진들이 우리 모두가 기릴 만한, 가치 있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믿는다.

당신의 사진이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기를 바라나?

전 세계적으로 암울한 뉴스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오늘날, 사진은 모든 존재를 하나로 이어줄 수 있는 힘을 지닌다고 생각한다. 인간과 문화의 면면을 폭넓게 펼쳐낸 사진은 우리가 서로를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그러니 내 사진에 담긴 다정하고 희망적인 메시지가 많은 이들에게 닿기를 바란다. 그러다 보면 우리가 궁극적으로 의지하고 추구하는 사랑이 더욱 선명히 느껴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