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가 더 쉬운 선택지일 때, 우리는 여전히 누군가와 함께일 수 있을까. 여기, 5명의 젊은 여성 소설가가 ‘함께함’에 대한 짧은 소설을 보내왔다. 나라는 공고한 벽을 허물 때 우연히 마주하는 장면, 누군가를 떠올릴 때 느껴지는 온기, 서로를 돌보며 확장되는 삶. 이제 우리는 안다. 함께함이 동반하는 수고로움이 때때로 우리를 살게 한다는 것을. 나를 구원하는 건 결국 우리라는 것을.

<희몽인생>

성해나

201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소설 <오즈>가 당선되며 등단했다. 장편소설 <두고 온 여름>, 소설집 《빛을 걷으면 빛》 등이 있다. 제15회 젊은작가상, 제25회 이효석문학상을 수상했다.

음새 씨는 가림막을 친 병상에 앉아 분장을 하고 있다. 주삿바늘이 박힌 손을 떨며 그녀는 분칠을 하고, 콧날에 짙은 음영을 준다. 합병증으로 온 수전증이 아니었다면 더 완벽한 분장이 가능했을 거라고 음새 씨는 말하지만, 이 정도로도 그녀는 충분히 눈부시다.

“이제 나가봐도 좋아요.”

음새 씨가 분첩으로 콧등을 두들기며 말한다. 공들여 남장을 하는 음새 씨, 나와 같은 암 병동에서 지내는 할머니를 보다 가림막을 열고 병상 밖으로 나간다. 세 명의 노부인이 병실에 조르르 모여 앉아 음새 씨를 기다리고 있다. 음새 씨를 ‘장군님’이라고 부르는 그들 곁에 어정쩡하게 앉는다. 넓지 않은 4인실 병동에서 음새 씨는 그들을 위한 마지막 공연을 준비 중이다.

음새 씨와는 지난봄 병실에서 처음 만났다. 그해 4월은 내 인생을 통틀어 가장 비참했다. 시나리오만 5년을 써온 영화의 투자가 무산되고, 입봉도 못한 채 서른다섯에 덜컥 암 진단을 받았으니 그럴 만도 했다. 담당의는 그나마 초기에 발견되어 다행이라고 했지만,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초라한 인생에 누더기 한 장을 덧대는 것 같아 괴로울 뿐이었다. 음새 씨는 나보다 먼저 암센터에 입원한 췌장암 환자였다. 원래 음새 씨와 나 말고도 두 명의 환자가 함께 병실을 썼는데, 벚꽃이 지기 전에 두 사람이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겨지고 병실엔 나와 음새 씨만 남았다. 부모님이나 영화를 같이 찍던 동료들이 종종 찾아오는 나와 달리 음새 씨는 늘 홀로 병상을 지켰다. 옛날 시트콤을 보며 웃거나 창밖을 내다보며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을 때를 제하곤 그녀는 시종일관 무표정으로 누워 있었다. 그녀가 올해 여든을 넘겼고, 이름이 ‘이음새’라는 건 병상에 붙어 있는 네임 카드 때문에 알았지 전해 들어 안 것은 아니다.

병원 앞엔 작은 호두과자 가게가 있어 문병 오는 사람마다 그것을 사 들고 왔다. 처음에는 맛있게 먹었으나 나중에는 팥앙금 냄새만 맡아도 물리는 지경에 이르렀고, 처치 곤란인 호두과자를 나누며 음새 씨와 낯을 익혔다.

“정 없게 하나만 줘요? 세 개는 줘야지.”

음새 씨의 목소리는 예상외로 걸걸한 중저음 톤이었다. 변성기를 갓 지난 소년의 그것과 비슷해 조금 놀라기도 했다.

“할머니, 목소리가 정말… 독특하세요.”

“젊을 적부터 목을 이렇게 가꿔서 그래요.”

선뜻 다가가기 어려웠던 첫인상과 달리 음새 씨는 시원시원하고 사교성도 좋았다. 내게 몇 살이냐고 물어본 뒤 학생 아니냐며 너스레를 떨었다.

“나는 몇 살로 보여요?”

그녀가 몇 살인지는 알고 있었지만 나 역시 넉살 좋게 말했다.

“3학년 5반 아니세요?”

젊은 사람이 우리 식 유머를 아냐며 음새 씨는 호탕하게 웃었고, 앞으로 친구로 지내자는 농담까지 했다. 병실에 오랜만에 생기가 흘렀고 묘하게 기분이 좋아졌다.

“전부터 얘기하고 싶은 게 있었는데, 저 벽에 붙어 있는 건 애인 사진이에요? 외국 남자 같은데.”

음새 씨는 내 병상 벽면에 붙은 자비에 돌란의 사진을 보며 물었다.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좋아하는 영화감독이라고 설명했고 어쩌다 보니 입원하기 전 영화판에서 일한 과거까지 음새 씨에게 말하게 되었다. 그럼 영화감독이군요, 반색하는 음새 씨 때문에 잠시 부끄러워지기도 했고. 크랭크인 직전까지 갔지만 내 영화를 제작한 적은 없으니 나를 감독이라 칭하긴 어려웠다. 음새 씨는 호두과자 포장을 벗기며 자신도 영화는 아니지만 비슷한 업종에서 일한 적 있다고 했다.

“퇴원하면 박 감독님이 찍은 영화 보러 가야겠네.”

“아녜요, 그럴 일은 없을 거예요.”

우중충한 본심은 숨긴 채 속없이 말했다. 입원 날짜가 늘어날수록 비관만 품게 되었다. 퇴원하더라도 영화판으로 돌아가지 않기로 다짐하기도 했다. 나아질 것 없는 촬영 현장의 처우도, 미팅을 할 때마다 저자세를 취하며 내가 쓴 시나리오를 설득하는 일도 더 이상 자신이 없었다.

“이런 꼴인데 뭘요.”

항암 치료를 위해 삭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낯선 내 모습이 싫어 화장실 거울을 보는 것조차 어려울 때가 많았다.

음새 씨는 부드러운 과자를 오물오물 씹으며 말했다.

“이것도 전부터 얘기하고 싶었는데 뒤통수가 참 납작한 것이… 어릴 때 좋은 꿈을 많이 꾸었나 봐. 나도 봐봐, 뒤통수가 납작하거든.”

음새 씨는 자신의 민머리를 매만지며 말을 이었다.

“우리처럼 뒤통수가 납작한 사람들은 가발이 아주 멋스럽게 어울려요. 여기서 나가면 나랑 같이 통가발 맞추러 가. 내가 아는 데 소개해줄게.”

음새 씨의 다정한 농담에 돌연 웃음이 터졌다.

그 후부터 자주 음새 씨의 병상으로 가 대화를 나누었다. 주로 병원 음식에 대한 불평이나 시트콤 이야기를 나눴으나 간혹 내 이야기를 음새 씨에게 시시콜콜 털어놓을 때도 있었다. 음새 씨는 내 투정을 유심히 들어주며 사려 깊은 조언을 덧붙이곤 했다. 낮고 묵직한 음새 씨의 목소리를 들을 때면 이상하게 안도감이 들었다.

수다스럽게 떠드는 나와 달리 음새 씨는 말을 아꼈다. 원래 과묵한 편일 거라 가볍게 치부했으나 그녀가 항암 약물 투여실에 드나드는 횟수가 잦아지고, 혈관이 굳은 탓에 간호사가 그녀의 팔에 수 차례 주사기를 꽂으며 난처해하는 모습을 보며 암이 그녀의 생기를 서서히 무너트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음새 씨가 느닷없이 부탁을 건넨 것도 그 무렵이었다.

“저, 박 감독님 부탁이 있는데… 내 팬들 좀 불러줄 수 있어?”

뜻 모를 말에 의아해하는 내게 그녀는 낡은 수첩을 보여주었다. 수첩 두 페이지에 걸쳐 김이금, 손금향 같은 낯선 이름들과 전화번호가 큰 글씨로 적혀 있었다.

“이게 내 팬들 번호인데, 이이들한테 전화 좀 해줘요.”

음새 씨가 힘겹게 말을 이어갈 때마다 성대에 삽입한 흡입관에서 끓는 소리가 났다. 당황하는 나를 보며 그녀는 아무렇지 않은 듯 눈웃음을 지었다.

“내가 직접 전화를 해야 하는데 지금은 목소리도 잘 나오지 않잖아. 직접 걸기 남사스럽기도 하고. 연락처만 알고 서로 살기 바빠 얼굴 한 번 본 적이 없으니 몇 명이나 올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국극 배우였고, 그중에서도 장군 역을 주로 맡던 남장 배우였다. 화장기 없는 말간 얼굴과 환자복 위로 여실히 드러나는 앙상한 몸으론 그녀의 과거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그녀는 수첩에 적힌 이름들을 손으로 훑으며 자신이 은퇴할 때까지 자신에게 힘을 주었던 팬들이며 병세가 악화되기 전에 그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음새 씨의 병상을 넘겨다보았다. 음새 씨는 몇 시간 동안 항암제를 투여받고 있었다. 그녀의 투약 시간은 창밖 나뭇잎의 색이 짙어지는 동안 점점 늘어났다. 간호사들에게 얼핏 주워들은 말에 의하면 음새 씨가 다음 달에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겨질 예정이라고 했다. 항암제가 떨어질 때마다 그녀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부탁해요, 박 감독.”

고통을 감추는 음새 씨를 향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노부인들은 음새 씨가 분장을 마치기를 기다리며 모여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다. 부여잡은 손을 놓지 않은 채 정겹게 안부를 묻기도 하지만 음새 씨를 차지하려 다투던 지난날의 앙금이 남아 있는지 옛 기억을 들추며 티격태격하기도 한다.

“형님, 그땐 왜 나만 두고 장군님이랑 여행 갔어?”

“기억력 좋은 건 여전하이. 난 벌써 다 잊었네.”

그런 수런거림이 싫지 않다. 그들의 높고 낮은 목소리를 들으며 나도 음새 씨를 기다린다.

전화번호부에는 열 명 남짓 되는 팬들의 번호가 적혀 있었지만 그중 살아 있는 사람은 단 세 사람뿐이었다. 전화를 받은 이들은 한참 동안 음새 씨에 관해 물었다. 전화기 너머에서 환희와 서글픔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행여 빠뜨린 사람이 없는지 꼼꼼히 체크하며 전화를 이어갔다. 전원이 꺼져 있다는 알림이 나오면 그 번호는 체크해두었다가 후에 다시 전화를 걸었다. 음새 씨와의 기억을 소중히 간직한 오랜 팬들을 전부 불러 모으고 싶었다.

그렇게 모인, 한때 음새 씨를 열렬히 사모했다는 이들을 찬찬히 훑어본다. 중국 청두에서 왔다는 노부인도 있고, 병원과 가까운 곳에 살고 있지만 음새 씨가 그곳에 입원한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서럽게 우는 노부인도 있다. 그들은 이곳에 오지 못한 다른 이들의 행적을 묻기도 하고, 세상을 떠난 이들을 추억하기도 한다.

여성 배우와 무대 위에서 사랑을 나누던 마성의 남장 배우, 패물을 훔치고 부모에게 거짓말을 하며 공연을 보러 다니던 팬들. 요즘은 좀처럼 느낄 수 없는 그 시절 공연장의 희열을 되짚으며 그들은 마음껏 자랑한다.

“우리는 다 같이 좋은 꿈을 꿨어요. 영영 깨고 싶지 않을 정도로 좋은 꿈이요.”

곱게 화장을 했지만 그들의 얼굴에는 하나같이 고단한 세월의 흔적이 녹아 있다. 그들의 웃음소리가 포르말린 냄새가 나는 병실 안에 떠돈다.

가림막이 열린다. 분칠을 하고, 민머리에 근사한 가발을 쓴 음새 씨가 병상 위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다. 짙은 분장으로 병색을 감춘 음새 씨를 보며 노부인들은 눈시울을 붉힌다. 세월을 거슬러 한자리에 모인 이들을 앞에 두고서도 음새 씨의 표정은 담담하다. 매무새를 정리하고 목청을 가다듬으며 음새 씨는 노부인들을 찬찬히 살펴본다. 변해버린 이들의 얼굴을 새로 익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그들의 입가나 눈가에 새겨진 세월의 결을 바라보며 회상에 젖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소란스럽던 실내가 고요해진다.

“이 산 저 산 꽃이 피니 분명코 봄이로구나. 봄은 찾아왔건마는 세상사 쓸쓸허드라. 나도 어제 청춘일러니 오늘 백발 한심허구나.”

금식 푯말이 달린 병상을 무대 삼아 음새 씨는 공연을 시작한다. 코에 호스를 꽂은 채 음새 씨는 ‘사철가’의 한 대목을 열창하고, 노부인들은 그녀의 몸짓 하나하나를 새기듯 눈을 떼지 못한다. 고수도, 너른 무대도 없는 암 병동에서 음새 씨는 고독하지만 늠름한 장군처럼 보인다.

“얼씨구.”

가느다란 추임새가 들려온 것은 그때다. 음새 씨가 창을 할 때마다 노부인들이 나지막이 추임새를 넣기 시작한다. 얼씨구, 좋다. 그들의 추임새에 맞춰 음새 씨는 점차 목소리를 높인다.

“어화 세상 벗님네들 이내 한 말 들어보소. 인생이 모도가 팔십을 산다고 해도 병든 날과 잠든 날 걱정 근심 다 제하면 단 사십도 못 산 인생 아차 한번 죽어지면 북망산천의 흙이로구나.”

1절이 끝나고 2절로 넘어가는 구절에서 음새 씨는 노래를 멈추고 숨을 거칠게 몰아쉰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엉거주춤 일어나는 노부인들을 보며 음새 씨는 부드럽게 눈웃음을 짓는다. 잔뜩 쉰 그녀의 목소리 사이사이로 울음과 웃음이 섞인 노부인들의 추임새가 들려온다. 높낮이도, 음도 다르지만 그들의 추임새가 어설프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백발 된 나머지 벗님네들 서로 모아 앉아서 한 잔 더 먹고 덜 먹게 하면서 거드럭거리고 놀아보세.”

노부인들의 추임새에 맞춰 나 또한 입을 벙긋거린다. 얼씨구, 좋다. 추임새를 따라 하기는 하지만 입 밖으로 소리를 내지는 않는다. 그저 그들의 목소리만이 이 공연장에 온전히 어우러지기를 바란다.

음새 씨의 노래는 이어진다. 노부인들과 음새 씨의 얼굴엔 지나간 나날을 추억하는 듯 기쁨이 서려 있다. 손가락으로 사각의 틀을 만들어본다. 그 안에 그들을 살포시 집어넣는다. 지금처럼 사랑하고 꿈꾸었을 그들의 젊은 날을 상상하며 손가락으로 만든 프레임 안에 오래 그들을 담아본다. 아름다운 컷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