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바람결에도 구겨지지 않을 기백을 지닌 채, 빼꼼 고개를 내미는 희망을 찾아 한 해를 살아내기 위해.
시작하는 마음을 충만하게 해줄 1월의 술과 바.

러셀 리저브 15년

흔히 위스키를 느림의 미학이 담긴 술이라 말한다. 오크 통에서 오랜 시간을 견뎌야 깊은 향과 풍미가 우러나기 때문이다. 위스키를 음미하기 위해 미각에 온 신경을 집중하면, 그 술이 지나온 시간뿐만 아니라 내가 마주한 순간 또한 온전히 감각하고 있다고 느껴진다. 오래도록 나의 훌륭한 데일리 위스키로 자리매김해온 ‘러셀 리저브 10년’보다 오래 숙성된, ‘러셀 리저브 15년’이 최근 한정판으로 출시되었다. 버번위스키임에도 마치 간장처럼 짙은 색을 띠고 있어 그 자체로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처음에는 잘 익은 과일 향을 풍기다가 진득한 바닐라 맛이 가득 피어오르고, 토치로 구운 흑설탕 같은 달콤함이 오래 이어지며 마무리된다. 버번위스키의 정수라 할 수 있을 법한, 러셀 리저브 15년과 함께 2025년을 느리게 시작한다면 좋겠다.

포어포어포어

하루의 끝은 맛있는 술과 함께 마무리하고 싶다. 만리동 언덕길, 철물점과 금은방 사이에 덩그러니 자리한 와인 바 ‘포어포어포어’는 화이트 와인과 샴페인, 스페인 갈리시아(Galicia) 지역의 요리법을 활용한 메뉴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이곳을 처음 알게 된 건 바를 운영하는 서홍주 바텐더의 에세이 <위스키 위스키 간판이 없는 바의 새벽>을 읽고 나서다. 에세이에는 ‘간판이 없는 바’에서 위스키를 권하며 손님들과 나누던 대화와, 위스키 주종의 테이스팅 노트가 간결하면서도 재치 있게 담겼다. 포어포어포어에는 와인과 칵테일 리스트가 따로 없다는 점이 독특한데, 각자의 기호를 이야기하면 그에 맞는 주류를 제안해준다. 1월 1일에는 준마이 다이긴조에 은은한 차향이 더해진 사케 칵테일을 맛보고 싶다. 랍상소우총 특유의 부드럽고 따뜻한 훈연향이 긴 여운을 남기는 한잔으로, 저물어가는 밤의 아쉬움을 달래기에 적절한 선택이 될 것 같다.

add 서울시 용산구 만리재로 instagram 180-1 1층 @bar_pourpourpou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