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바람결에도 구겨지지 않을 기백을 지닌 채, 빼꼼 고개를 내미는 희망을 찾아 한 해를 살아내기 위해.
시작하는 마음을 충만하게 해줄 1월의 여행지.
대관령 선자령

눈 내리는 날을 그리 반기는 편은 아니지만, 눈이 동반하는 고요만큼은 좋아한다. 눈이 오면 왜 세상 모든 소음이 차단된 것처럼 사위가 고요해지는 걸까. 그런 게 궁금하던 차에, 마침 한강 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다가 그 해답을 찾았다. 눈은 자신을 이루는 결정들 사이사이 빈 공간으로 소리를 빨아들여 가두고, 그래서 실제로 주변을 고요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읽으며 생각했다. 새해 첫 일출을 바라보는 순간만큼은 그런 고요 속에 있어야 한다고. 눈을 보기 위해서는 산간 지방으로 가야겠지. 그러므로 새해 첫날 무거운 몸을 이끌고 당도해야 할 곳은 대관령이다. 대관령 길 입구에서 출발해 2시간가량 등산로를 따라 걸어 올라가면 선자령 정상에 닿는다. 거대한 풍력 발전기 너머로 탁 트인 하늘, 능선을 따라 펼쳐진 절경과 동해안을 한눈에 담아본다. 그 적막과 고요 속에서, 맑고 찬 공기를 한껏 들이쉬며 하루를 시작해본다.
낙산사

어릴 적 내게 1월 1일은 한 해 중 가장 특별한 날이었다. 취미로 사진을 찍던 아빠의 손을 잡고 매년 일출 명소에 가서 사진을 찍었기 때문이다. 아빠 옆에서 작은 디지털카메라로 찍는 흉내나 낼 뿐이고, 새벽녘에 눈을 뜨기란 쉽지 않았지만, 아빠와 함께하는 1월 1일이라면 금세 이불을 걷어차고 일어났다. 한겨울의 차가운 공기가 온몸을 스치고 어둑어둑했던 사위가 조금씩 밝아질 때, 태양이 머리를 빼꼼 내밀다 마침내 자신의 모습을 다 드러내는 순간이면 진정 새해임을 실감했다. 특히 양양에 위치한 낙산사에 갔던 날이 떠오른다. 고즈넉한 사찰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떠오를 해를 기다리는 게 좋았다. 하지만 날이 흐려 아무리 기다려도 해가 보이지 않았고, 포기하고 내려가던 중에 바다 위에 떠오른 동그란 태양을 보았다. 사실 다른 무엇보다 신나서 셔터를 누르던 아빠의 뒷모습이 생각난다. 터덜터덜 내려가던 아빠의 얼굴에 화색이 돌던 순간이. 그때 나는 타오르는 해 대신 아빠를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최근 통화 내역을 보니 아빠에게 전화를 건 지 오래다. 2025년에는 효도해야지, 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