왈츠를 예술의 정점으로 끌어올린 이,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탄생 200주년인 2025년. 비엔나는 어느 때보다 새롭고 다채롭다.

이제는 세상에 없는 사람의 음악을 뒤늦게 깊이 사랑하게 될 때가 있다. 선율이 시작되기 전 적막 속 지휘자가 크게 고르는 숨과 함께 아득히 먼 과거로 데려다주는 음악들을. 아름다운 음악은 우리를 어떻게 구원할까. 아름다움은 우리를 어디론가 데려가준다. 일상의 눅진한 피로와 환멸로부터 멀리. 예고 없는 타인의 침범으로부터 우리를 구한다. 들판의 평온함 위로, 숲의 깊은 고요 속으로 데려다 놓는다. 아름다움은 우리가 어디에서 온 사람인지, 어디에 있어야 하는 사람인지 알려준다.
지난 늦가을부터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음악에 자주 몸을 맡겼다. 요한 슈트라우스 2세가 촘촘하고 유려하게 직조한 ‘샴페인 폴카(Champagne Polka)’의 리듬과 선율은 가라 앉는 마음을 일으켜 세웠다. 어긋남 없는 4분의 3박자는 등을 두드리고 쓰다듬었다. 이토록 경쾌하고도 흥겨운 위로라니. 사람의 마음은 참 다르고 또 같아서 많은 사람이 이런 이유로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음악으로 새 힘을 얻는다.
무지크페라인 Musikverein
웹사이트: www.musikverein.at
주소: Musikvereinsplatz 1, 1010 Vienna


매년 1월 1일, 오스트리아 비엔나 무지크페라인 황금 홀(Musikverein, Golden Hall)에서는 새해의 시작을 알리는 빈 필하모닉 신년 음악회가 열린다. 클래식 애호가라면 이 공연을 직관하는 것이 버킷 리스트에 포함돼 있을 정도로 클래식계의 큰 행사 중 하나다. 신년 음악회의 주인공은 1939년부터 지금까지 쭉 요한 슈트라우스 2세다. 신년 음악회에서 빠지지 않는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An der schönen blauen Donau)’의 산뜻한 선율은 커튼을 활짝 열 때의 상쾌함이 있다. 이 무대에 지금까지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을 비롯해 마리스 얀손스, 다니엘 바렌보임, 구스타보 두다멜, 크리스티안 틸레만 등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벅차오르는 거장들이 올랐다. 2025년은 요한 슈트라우스 2세 탄생 200주년으로 어느 때보다 슈트라우스가의 음악으로 가득 채웠다. 올해 리카르도 무티가 지휘자로 나선다.
비엔나를 빛낸 음악가는 무수히 많다. 모차르트와 베토벤, 슈베르트가 이 도시에서 세기의 음악을 만들고 연주했으며 긴 삶을 영위했다. 오늘날의 헝가리, 체코, 루마니아, 슬로베니아 등 주변국이 오스트리아 제국의 땅이던 시절이다. 막강한 부와 권력은 예술을 꽃피웠으며 그 다채롭고 풍성한 예술 가운데서 왈츠를 예술로 승화한 이가 요한 슈트라우스 2세다. 비엔나를 대표하는 음악가는 많지만, 전 국민적 사랑을 받은 음악가는 오직 그뿐이다. 그가 왕성히 활동하던 당시 비엔나는 왈츠의 도시였다. 매일같이 50여 곳의 무도회장에서 왈츠 무도회가 열렸다. 그는 바이올린을 켜며 왈츠를 연주하는 오케스트라를 지휘했다. 그가 1899년 사망했을 때 비엔나 인구의 20분의 1인 10만 명의 인파가 모여 장례 행렬을 따랐을 정도다.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는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공식 국가인 ‘황제 찬가’에 이어 제2의 국가라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당시 엄청난 성공을 거뒀으며, 그 사랑은 오늘날까지도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요한 스트라우스 아파트먼트 Johann Strauss Apartment
웹사이트: www.wienmuseum.at/johann_strauss_wohnung
주소: Praterstraße 54, 1020 Vienna



요한 슈트라우스 2세 탄생 200주년을 맞아 비엔나는 다양한 이벤트와 새롭게 단장한 곳들을 오픈하며 기념비적 해를 채워가고자 한다. 이 말은 언제고 비엔나로 떠날 생각이라면 2025년이 가장 볼 것과 들을 것이 넘쳐날 것이라는 의미다. 그 시작은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를 작곡한 요한 슈트라우스 아파트먼트(Johann Strauss Apartment)다. 유려한 색감의 대리석, 세월을 아름답게 입은 나무 바닥과 찬장, 창틀이 어우러진 공간에 그가 연주하던 오르간과 바이올린, 책상, 그리고 무수한 초상화가 나열돼 있다. 화려하고 호사스러운 전시품 사이사이를 걷다 보면 아름다운 음악, 빛나는 천재성 뒤에 숨은 그의 인간적인 면을 발견할 수 있다. 사교의 정점인 왈츠 음악을 작곡하고, 모두가 왈츠를 출 수 있는 무도회를 열었지만 정작 자신은 왈츠를 잘 추지 못했다는 사실, 사교와는 거리가 멀었다는 점이 이상하게 마음을 위로한다.
비엔나 콘체르트하우스 Wiener Konzerthaus
웹사이트: konzerthaus.at
주소: Lothringerstraße 20·1030 Vienna


비엔나에서 가장 아름다운 콘서트를 마주할 수 있는 곳은 비엔나 콘체르트하우스(Wiener Konzerthaus)다. 클래식 애호가라면 단 한 번이라도 그 현장에 있고 싶은, 오랜 시간 회고될 최고의 공연이 열리는 곳이다. 1913년에 문을 열어 지금까지 세심하게 관리돼온 곳으로 공연장 로비에 들어서자마자 오랜 시간을 지켜온 것 특유의 아늑함이 전해졌다. 코트를 맡기는 데스크도, 간단한 샌드위치와 글라스 와인을 판매하는 매점도 한없이 편안하게 다가왔다. 이날의 공연은 말러의 교향곡 8번. “지금까지의 내 교향곡들은 이 작품을 위한 전주곡에 지나지 않는다. 다른 작품 속에서 모든 것이 주관적인 비극이었다면 이것은 엄청난 환희의 근원이다.” 말러가 생전에 이 곡을 두고 이렇게 말했을 정도로 말러 음악의 정수로 꼽히는 곡이다. 수백 명이 무대에 올라 ‘노래하는’ 순간 공연장은 환희로 가득 찼다. 비엔나에 머물고 있기에 만날 수 있는 어마어마한 행운이었다. 1월에는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라벨 독주회가 열릴 예정이다.
PALAIS COBURG

코부르크 공작의 비엔나 별궁을 개조한 팔레 코부르크(Palais Coburg) 호텔. 34개의 스위트 객실, 스파, 미쉐린 2스타 레스토랑, 6만 병의 와인을 보유한 6개의 와인 셀러까지 호텔 곳곳에 비엔나의 역사가 오롯이 숨 쉬고 있다. 특히 코부르크 공작의 응접실은 색색의 대리석과 다채로운 장식, 벽면을 가득 채운 가족 초상화로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비엔나의 가장 번성한 때를 하룻밤 동안 경험할 수 있다.
웹사이트: palais-coburg.com
주소: Coburgbastei 4 · 1010 Vienna
테아터 안 데어 빈 Theater an der Wien
웹사이트: www.theater-wien.at
주소: Linke Wienzeile 6, 1060 Vienna


테아터 안 데어 빈(Theater an der Wien)은 비엔나의 유서 깊은 극장으로 연극, 오페라, 교향곡 등 많은 유명한 작품이 이곳에서 초연됐을 정도로 비엔나 음악 역사의 주요한 시작을 지켜봐왔다. 1801년 모차르트의 대본 작가 에마누엘 쉬카네더(Emanuel Schikaneder)가 모차르트의 정신을 이어 지은 이 극장은 전성기의 베토벤이 이 극장에 상주하듯 지냈고, 베토벤의 유일한 오페라 <피델리오(Fidelio)>를 1805년 11월에 초연한 역사적인 곳이다. 요한 슈트라우스 2세와도 인연이 깊다. 1874년 오페레타(operetta, 작은 오페라) <박쥐(Die Fledermaus)>의 초연이 바로 이곳에서 열렸다. 그에게 큰 명성을 안겨준 오페레타 <집시 남작(Zigeunerbaron)> 역시 이 곳에서 1885년 10월에 초연되었다. 이후 요한 슈트라우스는 유럽 전역을 비롯해 미국에 이르기까지 명성을 떨치며 국제적 성공을 거두게 된다. 오페라를 향한 그의 열망이 바로 이곳, 테아터안 데어 빈에 축적돼 있다. 2022년 3월부터 대대적인 리노베이션을 거쳐 지난 10월 재개장한, 지금의 비엔나의 모습을 가장 선명히 상징하는 새 얼굴이다.
요한 슈트라우스 뮤지엄 비엔나 Johann Strauss Museum Vienna
웹사이트: www.johannstraussmuseum.at
주소: Friedrichstraße 7, 1010 Vienna


요한 슈트라우스 뮤지엄(Johann Strauss Museum)에서는 요한 슈트라우스를 가장 첨단의 방법으로 만날 수 있는 몰입형 전시가 열린다. 1923년 건축가 헤르만 아이칭거(Hermann Aichinger)와 하인리히 슈미트(Heinrich Schmid)가 지은 우아한 아르데코 양식의 건물 안을 들어서면 고아한 건물과 달리 최신 전시가 펼쳐진다. 이곳에 입장해 GPS 추적 기능을 갖춘 헤드폰을 쓰고 천천히 이동하면 요한 슈트라우스의 유년 시절을 시작으로 그의 전 생애를 가늠할 수 있다. 움직임에 따라 음악과 장면이 변화한다. 800m² 규모의 전시실에서 하나하나 음악을 듣고 영상을 감상하다 보면 한 시간은 순식간에 지난다. 특히 마지막 전시실에서 마주하는 온몸을 휘감는 듯한 음악과 빛은 새로운 시대의 예술적 황홀감이 무엇인지 알게 한다.
하우스 오브 스트라우스 House of Strauss
웹사이트: www.houseofstrauss.at
주소: Döblinger Hauptstraße 76, Casino Zögernitz · 1190 Vienna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증조카인 토마스 슈트라우스(Thomas Strauss)가 운영하는 하우스 오브 슈트라우스(House of Strauss)는 카지노 최게르니츠(Casino Zögernitz)에 세운 슈트라우스가의 박물관이다. 카지노 최게르니츠는 요한 슈트라우스 1세가 1837년에 문을 연 곳으로 당시 비엔나에서 큰 인기를 끌며 왈츠의 대대적인 상업적 성공을 이끌었다. 이후 요한 슈트라우스 2세가 형제들과 함께 무도회와 콘서트를 열며 그 인기를 이어간, 슈트라우스가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가장 중요하게 거론되는 곳이다. 최근 리모델링을 거쳐 산뜻한 내부 인테리어를 갖췄으며 특히 350m²의 홀은 천장 프레스코화와 크리스털 샹들리에로 장식해 화려하면서도 극도로 우아해 과거의 영광을 생생히 전한다.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흔적을 좇으며 사흘은 넉넉히 채울 수 있었던 비엔나. 음악은 듣는 행위지만, 때로 듣는 것을 넘어 직접 음악을 찾아 다닐 때 보다 가까이 느껴지는 희열이 있다. 천재적 음악가의 생애를 차분히 따라가며 한 인간을 이해하는 즐거움, 수백 명의 관중과 함께 웅장한 선율 속에 모든 감각을 풍덩 담글 때의 황홀감이 바로 지금 비엔나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