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사진가 아리엘 보브 윌리스는 선명한 색과 역동적 동작이 돋보이는 장면들을 포착해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세상을 다채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내면의 아이’를 지킬 때 비로소 다가오는 일상 속 행운에 대하여.





로스앤젤레스 기반으로 한 젊은 사진가로 활발히 활동 중이다. 처음 카메라를 들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
어린 시절에 우울증 진단을 받은 경험이 있다. 당시 일상의 행복한 순간들을 자주 놓쳤고, 주변의 많은 것을 미워했다. 삶의 모든 색을 빼앗긴 듯 온 세상이 칙칙하게 느껴지던 날들이었다. 어두운 마음에 비친 무채색 세상을 다채롭게 만들어준 게 바로 카메라였다. 선명한 색으로 담긴 사진 속 풍경이 슬픔에 빠져 있던 나를 치유해줬다. 이를 계기로 카메라는 내 삶의 필수적 존재가 되었고, 그 후 꾸준히 셔터를 누르며 경쾌한 색이 돋보이는 장면들을 사진으로 남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스무 살 때부터 서른 살이 된 최근까지 로스앤젤레스, 뉴올리언스, 뉴욕 등지에서 찍은 사진들을 모아 <Keep the Kid Alive>라는 제목의 책을 완성했다.
강렬한 색감이 사진에 생동감을 더해주는 것 같다. 각 사진에 활용할 색을 어떤 방식으로 선택했나?
슬프다는 이유로 파란색을, 화가 난다고 빨간색을 쓰는 식으로 의도적인 선택은 하지 않았다. 사진에 활용할 수 있는 모든 색을 고려하며, 오롯이 직감을 따라 골랐다. 촬영하는 날이면 큰 가방에 알록달록한 빈티지 의상을 잔뜩 챙겨 나갔고,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인물에게 입힐 옷을 정했다. 종이 조각이나 글러브, 컬러 렌즈를 비롯한 소품을 더하기도 했다.
카메라 앞에 설 인물들은 어떻게 섭외했나?
거리를 돌아다니거나 인스타그램을 살피면서 함께 작업할 사람들을 찾았다. 자기만의 매력을 가꾸고, 개성 있는 삶을 일궈가는 이들이 기꺼이 함께해주었다. 기준을 정하지 않은 채 열린 마음으로 섭외했기 때문에 누구와도 작업할 수 있었지만, 나처럼 어두운 피부색을 지닌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고려하긴 했다. ‘흑인의 표현력에는 한계가 있다’는 편견을 깨나가는 것이 내게는 중요했다. 그들이 고운 색과 빛 사이에 자리한 모습을 포착하는 건 아주 멋진 일이었다.
인물들의 역동적인 포즈도 돋보인다. 특정한 포즈를 취해달라고 요청한 적도 있나?
촬영할 때마다 많은 요청을 했다. 내가 먼저 시범을 보이면, 그들이 따라 하는 식으로 사진 속 포즈를 구현했다. 원하는 포즈가 구체적이었던 이유는 사진을 마치 화가의 회화처럼 대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프레임 왼쪽 상단을 빨간색으로 채우고 싶을 때, 붉은 셔츠를 입은 인물에게 팔을 들어달라고 부탁하는 거다. 내 작업에서는 색과 형태가 제일 중요하고, 그래서 피사체를 일종의 형태로 바라보며 그들이 이미지를 구성하는 요소가 되도록 했다.
“사진 속 인물들이 너무 멋져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한 게 떠오른다.
그 생각은 여전하다. 그런데 인물에도 점점 관심이 생겼고, 특히 얼굴에 주목하게 되었다. 뷰파인더를 통해 인물을 바라볼 때 눈동자가 어떤 색인지, 주근깨가 있는지, 눈썹은 어떤 모양인지 자세히 관찰하는 편이다. 그 과정을 거쳐 탄생한 결과물은 한층 다양하고 다채로운 형태들로 채워진다. 사진에 등장하는 인물들처럼, 모든 사람이 각자의 삶 속에서 형형히 존재하기를 바란다.



수많은 사람을 피사체로 마주하며 꾸준히 품은 질문이 있다면?
‘좋은 포트레이트란 무엇인가?’라는 점에 대해 항상 고민했다. 흔히 말하는 ‘잘 나온 사진’에는 대체로 사회가 규정한 아름다움에 부합하는 외형을 갖춘 인물이 등장하는 것 같다. 오늘날 사진에 대해 이야기할 때, 피사체의 몸에 지나치게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 여성 사진가로서 나는 피사체의 몸을 특정한 미의 기준에 맞추려 하지 않는다. 몸은 어떤 기준으로도 평가할 수 없으며, 삶을 충실히 경험하게 하는 매개체에 가깝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기조로 작업을 이어가며 무엇을 새롭게 얻고 있나?
언제 어디에 있든, 매번 나답게 작업하려 했다. 그러다 보니 사진을 통해 내 삶의 면면이 반영된 세상, 나만의 ‘아리엘 랜드’를 창조할 수 있었다. 촬영을 진행한 모든 도시가 그 세상에 편입되기 때문에, 각 사진의 장소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 경우가 많아 흥미롭기도 하다.
건강하고 순수한 마음을 가진 것 같다. ‘내면의 아이를 살아 있게 하자’는 사진집 제목의 의미도 당신과 잘 어울리는 듯하다.
예전에 뉴욕의 어느 건설 현장을 지나가다 누군가 한쪽 벽에 ‘Keep the Kid Alive’라는 문구를 스프레이로 적어놓은 걸 발견했다. 그게 내가 카메라를 들며 얻은 깨달음의 핵심이라고 느꼈다. 사진은 내게 호기심과 자신감, 자기애를 일깨워주었다. 그 덕분에 어른이 된 지금도 내면의 아이가 살아 숨 쉴 수 있는 게 아닐까 싶다.
내면의 아이를 계속 지키는 게 중요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창의적인 어른’이란 곧 ‘살아남은 아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진지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알게 되지 않나.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은행 계좌를 채우는 데만 몰두하게 되는 것 같다. 난 그런 삶을 거부한다. 나이에 관계없이, 모두가 각자의 영혼을 충만하게 만들어주는 일을 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종종 주변 사람들에게 이렇게 묻는다. “성공 여부를 떠나 무엇이든 할 수 있다면, 어떤 일을 하고 싶나요?” 돌아오는 답변은 “프로 게이머가 될 거예요”, “시인이 되고 싶어요”와 같은 말들이었다. 그것이야말로 그들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을 쉽게 적응시키는 사회의 영향에서 벗어나 나 스스로 원하는 사람이 되는 거다. 그게 궁극적으로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길이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개인이 온전한 행복을 누리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집단 간 차별과 혐오가 만연하고, 세계 곳곳에서 크고 작은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맞다.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는 고통을 알고 있고, 여러 상황을 매우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그런데 현실이 어려울수록, 각자 내면의 건강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많은 이들이 저마다의 삶이 지닌 가치를 찾고, 살고 싶은 세상을 마음껏 꿈꿀 수 있기를 바란다.
이 프로젝트가 그 마음을 일깨워주는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사진을 마주한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나?
삶은 영원하지 않고, 언제든 사라질 수 있지 않나. 그러니 잠시나마 시간을 내어 현재에 온전히 집중해보기를 권한다. 일상의 크고 작은 기쁨을 느껴보는 거다. 이를테면 푸른 풀과 만개한 꽃, 고소한 라테 향, 창문 너머로 불어오는 바람, 오후 6시의 햇살 같은 것들. 주변을 섬세하게 감각하며 많은 것을 사랑하다 보면, 모든 순간이 참 감사하게 느껴지더라. 문득 찾아온 행운처럼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