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사진가 마틸드 비에가스는 방과 후 프로그램에 참여해 함께 어울리는 여자아이들의 모습을 프레임에 담았다.
순수한 마음을 나누며 깊이 교감하는 유년 여성 공동체가 자아내는 온기 속에 변치 않는 동심의 가치가 스며 있다.

포르투의 한 자선 단체가 이끄는 방과 후 프로그램에 참여한 6~12세 여자아이들의 모습을 사진에 남겼다.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현장을 관찰하며 어떤 인상을 받았나?

방과 후 프로그램이 마치 여자아이들을 위한 안전망처럼 여겨졌다. 아 이들은 학교 수업을 마친 뒤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장소를 찾아와 숙제를 하거나 스포츠를 즐기고, 그림을 그리고, 연극 리허설에 참여하는 등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무엇보다 인상 깊은 건 한자리에 모인 아이들이 서로 감정을 나눈다는 것이었다. 안전한 공간에서 긴밀히 소통하는 그들이 가족 같은 공동체를 이뤘다고 느꼈다. 그 모습은 부모가 자녀를 돌보는 ‘기본적인’ 양육 방식에서 벗어난 상태를 보여준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프로젝트 제목으로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빌려 ‘자기만의 가족(A Family of One’s Own)’을 떠올렸다.

촬영을 시작하기 전, 아이들과 친밀해지는 시간이 필요했을 것 같은데 어땠나?

맞다. 촬영을 급하게 시작하면 사진가와 피사체 사이에 불균형한 관계가 형성되기 쉽고, 카메라가 대상을 왜곡하거나 잘못된 방식으로 묘사할 수 있는 강력한 도구임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초반 몇 주 동안은 카메라를 들지 않았다. 아이들과 최대한 협업하는 프로젝트가 되기를 원했기 때문에, 그들을 알아가는 시간을 충분히 가지려고 했다. 처음 만난 날에는 수학 숙제를 도와주었고, 이후 대화를 자주 나누고 함께 놀기도 하면서 각 아이의 성향과 주변 환경을 파악했다.

‘이제 카메라를 들어도 되겠다’는 확신은 언제 얻었나?

내 카메라를 아이들에게 건넸을 때. 아이들은 스마트폰이 아닌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일을 굉장히 흥미로워했다. 나는 아이들의 카메라 앞에서 기꺼이 모델이 되어주었다. 그들은 내 머리를 정돈해주고 포즈를 요청하는 등 열정 어린 태도로 촬영에 임했다. 이 경험은 아이들이 카메라의 작동 방식을 익히고, 뷰파인더를 통해 피사체를 마주하는 마음을 헤아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또한 우리가 다 같이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각자의 생각을 적극적으로 말하고, 모든 의견을 동등하게 중시해야 한다는 걸 다시금 일깨워주었다.

아이들을 위한 사진 워크숍도 진행했다고 들었다.

메라와 사진에 대한 아이들의 관심이 명확히 느껴졌기 때문에 워크숍을 마련했다. 방과 후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단체의 지원을 받아 디지털카메라 3개를 준비했고, 아이들과 동네 곳곳을 돌아다녔다. 그들은 각자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대상을 향해 셔터를 눌렀다. 일몰, 콘크리트 사이에 자라난 식물, 새로 산 흰 운동화, 친구와 낀 팔짱 등이 프레임에 담겼다. 저마다의 소중한 순간들을 물리적 형태로 만들어 간직하고자 하는 아이들의 열망을 느낄 수 있었다.

아이들과 여러 방면으로 소통하는 시간을 거치며 프로젝트 방향성에 변화가 생기기도 했나?

그렇다. 원래 차분한 분위기에서 정적인 포트레이트를 촬영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내가 ‘다큐멘터리 사진은 마땅히 이래야 한다’는 선입견을 갖고 있다는 걸 깨달았고,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프로젝트에서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지 고민한 끝에, 창작의 부담에서 벗어나 아이들과 어울리면서 자유롭게 카메라를 들었다. 그랬더니 소녀들이 보여주는 자연스러운 상호작용이 결과물에 담겼다.

소녀들이 이룬 공동체를 통해 “돌봄, 공감, 상상력을 비롯한 어린이의 본능이 드러나는 방식을 인지했다”라고 말했다.

아이들의 본능이 느껴지는 장면을 자주 목격했다. 예를 들어 럭비 연습을 하다가 한 명이 부상을 입었을 때, 근처에 있던 아이들이 달려와 의사를 자처하며 다친 친구를 돌보았다. 친구의 머리를 예쁘게 땋아주거나, 서로 도우면서 암벽을 오르던 모습도 진한 감동을 안겼다. 이처럼 아이들의 관계에서 느껴지는 온기를 사진으로 전하는 게 이 프로젝트의 목표였다.

당신이 포착한 아이들의 관계는 어떤 점에서 특별하다고 보나?

내가 만난 아이들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친구의 신체적, 정신적 요구를 예측할 수 있을 정도로 깊은 관계를 맺고 있었다. ‘언어 없는 경험’을 공유하며 단단히 쌓은 유대감은 그들이 서로를 더욱 배려하고 이해하게 했다. 내가 생각하는 가족의 개념은 단순한 ‘결속’을 넘어 다른 구성원을 돌보는 ‘능력’ 을 포함한다. 그 능력이 6~12세 소녀들에게서 발현될 수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이 프로젝트를 통해 깨달았다.

소녀들이 보여준 유대감은 여성의 연대와도 관련이 있을 것 같다. 당신의 생각은 어떤가?

완전히 동의한다. 인간의 성장 과정에서 여성 간 연대는 매우 중요하다. 여자아이들의 몸과 마음은 짧은 기간에 엄청난 변화를 겪지 않나. 그 시기의 경험과 감정을 솔직하게 나눌 수 있는 여성 공동체가 존재한다는 믿음이 성장기의 소녀들을 덜 외롭게 해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소녀들과 함께 완성한 이 프로젝트를 세상에 선보이는 일 또한 여성에게 힘을 실어주는 방법일 것이다. 사진을 본 아이들의 반응은 어땠나?

예전에 좋은 기회로 이 프로젝트를 도심의 지하철역에서 크게 전시한 적이 있는데, 개막 당일 아이들이 찾아왔다. 매일 수천 명의 사람이 오가는 장소에 2m 높이로 인쇄된 본인 사진이 걸려 있으니 무척 기뻐하더라.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하는 소녀들을 바라보는 것만큼 뜻깊은 일이 있을까 싶었다. 그 자부심이 성인이 된 이후에도 계속 이 어지기를 바란다.

어린이가 성인으로 성장할 때 몸담는 공동체는 궁극적으로 어떤 특성을 지녀야 한다고 생각하나?

주체성, 실험, 해방의 공간이어야 한다. 흥분과 고요가 공존하는 아이들의 다채로운 내면을 전부 품어줄 수 있는 공동체가 가장 이상적이라고 본다. 그 안에서 아이들이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주변과 안전하게 교감하면서 사회로부터 구조화되지 않은 ‘놀이’를 즐길 수 있기를 바란다. 그렇게 저마다의 삶을 마음껏 탐구하며 어른의 세계로 나아갔으면 한다.

유년의 강렬한 경험은 세월이 흐르더라도 머릿속에 선명히 남아 있지 않나. 당신의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았을 때 문득 떠오르는 기억이 있는지 궁금하다.

나는 어린 시절에 주변 환경의 영향으로 나이에 비해 일찍 성숙해져야 했지만, 자연 속에서 보낸 순간만큼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당시 집 근처의 숲을 찾아가고, 바위에 오르고, 작은 손으로 흙을 파헤치면서 느낀 ‘모험의 감각’을 오랫동안 사랑했다. 30대 중반이 된 지금도 그때의 감각을 매일의 삶에서 되살리기 위해 노력한다.

어린 시절에 느낀 감각과 당시의 시선이 삶에서 어떤 미덕을 지닐 수 있을까?

아이처럼 순수한 마음은 일상에서 놓치기 쉬운 작은 아름다움에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한다. 나는 눈에 띄지 않는 것에서 어떠한 가치를 찾아내는 일이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값진 보상을 가져온다고 믿는다. 삶의 시간이 쌓일수록 동심은 흐려지기 마련이지만, 다행히도 최근 영혼 속 순수와 다시 연결되기를 권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더 많은 사람이 어린 시절의 자신을 마음속에 되살릴 수 있었으면 한다. 수많은 질문을 만들어내는 호기심, 새로운 경험을 망설이지 않는 용기, 억제되지 않은 기쁨을 언제나 누리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