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 젊음은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 (윤동주, ‘사랑스런 추억’)
청춘이란 찰나에 머물다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곁에서 매 순간 새롭게 태어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책, 영화, 음악, 우리가 주고받은 대화까지.
마리끌레르 피처 에디터 5인이 저마다의 생에서 건져 올린,
불완전하게 반짝이는 청춘의 조각들.

9와 숫자들 ‘창세기’

“그대는 내 초라한 들판 단 한 송이의 꽃 / 그대는 내 텅 빈 하늘 위 휘노는 단 한 마리의 신비로운 새”. 어떤 사랑은 한 세계를 피워낸다. 이 곡의 제목이 ‘창세기’인 이유도 그래서라 짐작한다. 한 인간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세계의 문을 여는 경험을 두고 단지 ‘사랑’이라고 부르자니 턱없이 부족하게 느껴진다. 당신의 세계를 사랑함으로써 나의 세계가 변화하는 경험. 나의 누추한 세계에 한 송이의 꽃이자 신비로운 새인 당신이라니. 나는 이보다 아름답게 고백할 수 있는 방법을 알지 못하기에 이 노래를 듣는다. 새로운 세계의 첫 문을 열 때의 떨림과 전율, 마침내 그 세계 안에서 느끼는 충만감과 안온함은 여전히 내게 청춘의 전유물로 느껴진다. 유선애 피처 디렉터

“그대는 내 초라한 들판 단 한 송이의 꽃
그대는 내 텅 빈 하늘 위 휘노는
단 한 마리의 신비로운 새.”
‘창세기’ 중에서

김애란의 모든 문장

“기념 세일, 감사 세일, 마지막 세일, 특별 세일. 세상은 언제나 축제 중이고 즐거워할 명분투성이인데. 자기 몸 하나 제대로 가눌 곳 없이 그 축제의 변두리에서, 하늘을 어깨로 받친 채 벌 받는 아틀라스처럼 맨손으로 그 축제를 받치고 있을, 누군가의 즐거움을 떠받치고 있을 많은 이들이, 도시의 안녕이, 떠올랐다.” <잊기 좋은 이름>의 ‘한여름 밤의 라디오’ 중에서

20대의 한 시절을 그의 문장 속에서 보냈다. 그의 세계 속 주인공들이 오가는 비탈길 위 자취방과 편의점, 지하철을 나란히 걸었다. 청춘이라 대충 묶여 호명당했고, 지금이 ‘새싹이 파랗게 돋아나는 봄’이라는 말에 마음이 자주 추워졌다.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시간’이라니 이렇게 잔인해도 되나 싶었다. 푸르지도, 빛나는지도 모르겠는 어리둥절한 청춘의 얼굴들이, 그저 삶이 벅차고 고단한 얼굴들이 그의 이야기 안에 있다. 그들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됐다. 피처 에디터가 되고 김애란 작가에게 메일을 보낸 적이 있다. 거절당할 것을 알면서도 원고 청탁을 앞세워 그에게 오래 미룬 인사를 하고 싶었다. 이후 작가의 다정한 음성이 지원되는 듯한 세심하고도 부드러운 거절 회신을 받았는데, 지금껏 지우지 않고 메일함 가장 밑바닥에 보관해두었다. 마음 가장 깊은 곳에 담아 두듯이 위로란 ‘너와 내가 다르지 않다고 말해주는 것임을’ 당신에게 배웠다고, 당신의 문장에 춥고 습한 시간을 위탁했었다고. 이 지면을 빌려 다시 고백한다.

배우 홍경

“의심과 불안, 불확실성 속에서도 나의 기저로, 기저로, 가장 아래로 내밀히 내려가다 보면 이상하게도 어떤 굳은 믿음 같은 게 있었어요.” 올해 스물아홉, 20대의 시간을 마무리하고 있는 배우 홍경과 마주 앉아 지난 시간을 회고하기로 했다.(이번 화보를 위해 그를 포함해 많은 스태프가 모여 만든 단체 대화창 이름도 ‘twenty’였다.) 우리는 20대의 시간을 여물게 하는, 불면의 밤을 화보의 배경으로 삼았다. 자정이 지나고 새벽이 올 때, 사위는 적막하고 의식은 더 명료해지는 시간을. 그 형형한 얼굴들을 담기로 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자신의 지난 밤들을 떠올리며 자주 불안하고 초조했음을 털어놓았다. 그가 삶을 이루며 보고 경험한 훌륭한 작품들처럼 그렇게 의미 있는 작업을 하고 싶어서, 본 만큼 자신도 해내고 싶어서, 자신의 상한선에 닿고 싶고, 자신을 다 써보고 싶어서 그는 자주 불안했다고 했다. ‘잘하고 싶은 마음’은 얼마나 귀하고 드높은가. 그 고군분투는 얼마나 찰나의 것이며 쉽게 깨어지는 것인가. 젊음의 광채를 만드는 것이 바로 그런 마음 아닐까 하고 그의 맑은 얼굴을 바라보며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