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하게 빛나는 예술은 한 사람의 마음속 어둠을, 삶의 그늘을 밝혀주는 힘이 있다.
캔버스에 스며든 광채, 음악의 반짝이는 선율, 영화와 책에 담긴 눈부신 서사까지.
마리끌레르 피처 에디터 4인이 각자의 일상에서 그러모은 빛의 아름다운 면면.

김선오 산문집 <미지를 위한 루바토>

아침달

“우리가 여름이라고 말할 때 여름은 잠깐 우리에게 온다. 여름을 말하는 사람에게서 여름을 듣는 이에게로 여름이 부드럽게 이동한다.”

여름을 사랑한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여름의 빛을 사랑한다. 여름의 선명함, 강한 빛이 그려내는 또렷한 색채, 해 질 녘의 어스름까지. 겨울에 태어난 겨울 인간이지만, 여름의 빛이 만들어내는 하루 치의 경이로 1년을 살고 있다. 김선오 산문집 <미지를 위한 루바토> 속 ‘여름의 시퀀스’는 여름의 낭만, 여름의 기쁨과 슬픔으로 빼곡하다. 그 아름다운 빛을 옮겨둔 그의 문장이 한낮 여름의 명징한 빛처럼 번뜩인다. 유선애 피처 디렉터

박참새 산문집 <탁월하게 서글픈 자의식>

마음산책

“나는 슬픈 사람이다. 이유 없이 슬픈 사람이다. 그 어떤 시절도 사람도 내가 슬픈 이유가 될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모든 슬픔에 이유가 필요한 것은 아니며 아주 많은 슬픔이 이유 없는 채로 우리 사이를 배회하고 있다. 갈 곳 잃은 슬픔들이 매일매일 산책한다.”

슬프다. 모르겠다. 잘할 수 없다. 막막함, 고단함, 서글픔이 점철된 문장들이 이어짐에도 이상하게 그대로 침잠해버리진 않겠다, 놓아버리진 않겠다는 믿음이 생긴다. 자신의 낡아진 마음을 이토록 투명하고, 탁월하게 고백하는 이에게서 수면 위의 빛을 향해 올라가는 기운이 느껴진다. 어둠 속에서 빛이 가장 선명하게 보이듯, “넘실대는 서글픔” 안에 머무는 문장 속에서 외려 추동의 빛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강예솔 피처 수석 에디터

한강 산문집 <빛과 실>

문학과지성사

“그렇게 내 정원에는 빛이 있다. / 그 빛을 먹고 자라는 나무들이 있다. 잎들이 투명하게 반짝이고 꽃들이 서서히 열린다.”

고귀하고 아름다운 소설을 쓰는 사람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갈까. 한강 작가의 단상을 들여다보고 싶어 그의 새 산문집 <빛과 실>을 펼쳤다. 2024 노벨 문학상 수상 강연문, 미발표 시와 산문, 북향 집에 들인 식물을 가꾸며 쓴 일기, 직접 찍은 사진을 엮은 책. 소소한 일상을 담백하고 밀도 있게 적어낸 기록을 하나씩 천천히 곱씹었다. 행간에 깃든 생각과 감정, 마침표를 찍기 위해 사유해온 시간을 헤아리며 페이지를 넘겼다. 책의 끝자락에 이르러서야 그가 지닌 삶의 태도를 어렴풋이 짐작해볼 수 있었다. 내면 깊이 침잠하며 성찰해온 작가가 “(글쓰기로) 인생을 꽉 껴안아보겠”다고, “충실히 살아”내겠다고 전하는 순간. 일상의 눈부신 가치를, 삶의 빛나는 경이를 발견하자 나의 오늘을 잘 살아내야겠다는 다짐이 생겼다. “햇빛을 오래 바라봤어”라는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을 언젠가 내 입으로 말할 수 있도록. 김선희 피처 에디터

이제니 산문집 <새벽과 음악>

시간의 흐름

“빛들이 몰려온다. 붉은빛, 푸른빛 혹은 둥글고 각진 빛들이. 급박하고도 느린. 느리고도 급박한 호흡으로. 살아 있는 맥동처럼. (…) 의미의 세계를 초월하여 몸으로 바로 육박해 들어온다. 당신은 살아 있는 존재라고 말한다. 당신의 고유한 울림을 들으라고 말한다.”

이제니의 산문집 <새벽과 음악>에서 빛은 그 자리에 가만히 머무는 풍경이 아니라, 가까이 다가와 “무언가를 말하라고, 말해야만 한다고, 강요하고 재촉하고 독촉하”는 존재다. 빛의 부추김을 받은 그는 언어의 무게에 짓눌린 채로, 밀려오는 통증을 견디면서도 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읽는 내내 페이지 곳곳에 그가 남긴 빛의 단상들을 쓸어 담아 반짝이는 것들이 필요할 때마다 꺼내 읽고 싶었다. 젊은 날의 우리가 마음껏 낭비할 수 있었던 것. “오래전 사랑했던 사람의 기억을 가슴 아프게 감각하게” 하는 것. 삶의 저편으로 떠나간 이의 부재를 문득 실감하게 하는 것. 나의 자리에서 너의 자리로 건너가게 만드는 것. 빛이란 그 모든 걸 가능하게 하는 것이라고, 마지막 장을 넘기며 생각했다. 안유진 피처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