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 문화를 몸과 마음으로 느끼며 낯선 소도시의 삶 속에 잠시 스며드는 경험.
일본 야마구치현에서 한여름의 3일을 보냈다.

やまぐちけん 야마구치현
후쿠오카에서 신칸센으로 약 40분간 이동하면 야마구치현에 닿을 수 있다.

여행의 목적은 다양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고요의 시간’을 찾기 위해 떠날 때가 많다. 인파로 북적이지 않는 한적한 지역으로 숨어들어 소란한 일상을 머릿속에서 잠시 지워내는 것. 그 때문인지 ‘살면서 한 번은 꼭 가봐야 한다’는 관광지보다는 덜 알려진 나라, 여행객이 적은 도시로 혼자 훌쩍 떠나고는 했다. 올여름이 가기 전에 여유로운 해외여행을 하고 싶었지만, 일정이 녹록지 않아 아쉬워하던 참에 일본 야마구치현의 나가토(Nagato)에 대해 알게 되었다. 인천에서 후쿠오카까지 1시간에서 1시간 30분간 비행한 후 40분 정도 신칸센을 타면 당도할 수 있는 소도시. 단기간에 다녀오기 좋은 여행지인 것 같아 6월 말의 3일을 나가토에서 보내기로 했다. 이곳을 기점으로 삼아 현지 명소는 물론 수려한 자연경관, 미식과 휴식을 모두 만끽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기대가 더욱 커졌다.

やまぐちけん 야마구치현 모토노스미 신사 元乃隅稲成神社
1백23개의 도리이가 늘어선 모토노스미 신사의 풍경.
やまぐちけん 야마구치현 別府弁天池
에메랄드빛 물이 고여 있는 벳푸벤텐 연못.
やまぐちけん 야마구치현 Tsunoshima Bridge 角島大橋 つのおしまおおはし
드넓은 바다를 가로지르는 1.7km 길이의 쓰노시마 대교.

실제로 찾아간 나가토는 듣던 대로 다양한 명소가 다른 여행지 못지않게 자리하고 있었다. ‘일본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소 31선’에 꼽혔다는 모토노스미(Motonosumi) 신사는 명성에 걸맞게 경관이 빼어났다. 1백23개의 붉은 도리이(일본 신사 입구의 상징적인 문)가 해안가를 따라 줄지어 늘어서 있는데, 푸른 바다와 녹음 짙은 나무들이 어우러져 생경한 풍경을 빚어내고 있었다. 방문객에게 축복을 전해준다고 알려진 이곳 주변을 천천히 거닐면서 내면을 단정하게 가다듬는 시간을 보냈다. 한편, 벳푸이쓰쿠시마(Beppu Itsukushima) 신사 근처에 위치한 벳푸벤텐(Beppu Benten) 연못은 바닥이 훤히 보일 정도로 투명한 에메랄드빛 물이 감탄을 절로 자아냈다. 1년 내내 수온이 약 14℃를 유지한다는 이곳은 무더운 날이었는데도 주변 공기가 선선했다. 한결 산뜻한 기분으로 그림 같은 풍광 앞에 오래 머물렀고, 약수터에서 청명한 물을 마셔보기도 했다. 쓰노시마(Tsunoshima)라는 섬으로 이어지는 1.7km 길이의 쓰노시마 대교를 찾아가 탁 트인 바다를 마주했을 땐 복잡했던 마음이 시원하게 뚫리는 듯했다. 바다의 알프스라 불리는 오미지마(Omijima)섬 주변을 도는 크루즈에 올라 동해의 파도에 깎여 탄생한 바위와 절벽, 해식동굴이 어우러져 이룬 절경도 두 눈 가득 담아보았다.

가야마혼케 사케 브루어리는 근처의 논밭에서 사케를 빛어낼 쌀을 직접 수확한다.
나가야마혼케 사케 브루어리에서 빚은 사케.

나가토 여행에서 가장 인상 깊은 건 주민들이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 기업들을 찾아가 현지 전통과 문화를 몸소 체험한 시간이었다. 나가토에서 차로 약 한 시간 거리에 자리 잡고 1백30여 년간 운영 중인 나가야마혼케(Nagayama Honke) 사케 브루어리도 그중 하나였다. 맞은편에 드넓게 펼쳐진 논밭에서 ‘야마다니시키’를 비롯한 일본 쌀을 수확하고, 근처에 흐르는 강의 맑은 물을 활용해 사케를 만드는 곳. “유럽 와이너리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포도를 길러내는 토양이 와인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 착안해 사케용 쌀을 직접 재배하고 있죠.” 술을 단순한 공산품이 아닌 농업의 산물로 여기는 철학은 사케의 풍미에서도 오롯이 드러났다. 전통 발효 방식에 자체 개발한 단계를 더해 빚은 사케를 한 모금 머금은 순간, 쌀 본연의 감칠맛이 입안 가득 퍼지면서 부드럽게 넘어가 어느새 잔을 다시 채우게 되었다. 도정 과정에서 버려지는 부분을 줄이고, 주변 농가와 협업하는 등 지속 가능한 농업을 위해 힘쓰는 점도 이곳의 사케에 대한 애정을 키웠다.

해수를 대나무 위로 흘려 태양과 바람으로 천천히 증발시키며 생산되는 하쿠쇼안의 소금.
하쿠쇼안의 소금은 계절별로 맛이 조금씩 다르다.

유야만 근처에 위치한 소금 회사 하쿠쇼안(Hyakusho-an)에서는 현지 장인이 독자적인 기술로 작업하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었다. “유야만은 ‘물의 성’이라고 불려요. 울창한 숲에 둘러싸여 있고, 두 줄기 강이 흘러들거든요. 자연이 잘 보존되어 있어 미네랄이 풍부한 이 바닷물을 활용해 ‘태고의 상태’에 가까운 소금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해수를 대나무 위로 흘려 태양과 바람으로 천천히 증발시키고 가열과 숙성 등을 거치는 이곳의 소금은 흥미롭게도 계절에 따라 맛이 미묘하게 다르다. 여름에 생산한 소금은 맛이 한층 강렬하고, 겨울 소금은 보다 깔끔한 맛이 느껴지는 식이다. 오랜 경력과 풍부한 지식을 기반으로 ‘자연이 오롯이 깃든 소금’을 탄생시키고자 하는 열정과 정성이 마음 깊이 와닿았다.

지역 특산물을 활용한 미식도 놓칠 수 없는 경험이었다. 동해와 길게 맞닿아 있는 나가토에는 신선한 해산물이 풍부한데, 특히 복어가 큰 인기를 끈다. 1백30여 년 전 일본에서 복어 식용 금지령이 해제된 후, 야마구치현은 복어의 본고장으로서 명성을 쌓아왔다. 나가토의 한 복어 양식장에서 그 과정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는데, 지속 가능한 양식을 고민하는 점이 인상 깊었다. 양식장을 둘러본 다음, 근처 식당을 찾아가 복어 요리 면허를 받은 주방장이 정성껏 준비한 코스 요리를 맛보았다. 파와 폰즈 소스를 곁들여 내온 회는 부드러우면서도 아삭한 식감이 느껴졌고, 이 외에도 튀김과 만두 등 다양한 형태의 복어 요리를 맛보면서 풍성한 만찬을 즐겼다.

やまぐちけん 야마구치현 료칸 ryokan 旅館
일본 전통 방식으로 꾸민 숙소 ‘요키칸’의 객실.

이른 아침부터 부지런히 여정을 이어가다 해 질 무렵이 되면 료칸이 있는 지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가토에는 다섯 곳의 온천 마을이 있는데, 이 중 야마구치현에서 가장 긴 역사를 자랑하는 나가토 유모토(Nagato Yumoto)를 찾아갔다. 6백 년 넘는 세월을 지나왔지만, 5년 전 재정비를 거쳐 정갈하면서도 고즈넉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마을을 가로지르는 오토즈레가와(Otozuregawa) 강변을 따라 걷다 보면 일본 소도시 하면 떠오르는 풍경들을 자주 마주할 수 있었고, 그때마다 휴대폰 카메라를 켰다. 오랜 전통을 지닌 가게부터 새로 문을 연 카페, 식당, 술집, 수공예 상점까지 둘러보며 느긋하면서도 풍요로운 시간을 보냈다.

일본 료칸은 대부분 온천을 갖춰 여행 중 쌓인 피로를 말끔히 풀 수 있었다. 객실에 다다미 방을 마련하는 등 전통 방식에 따라 디자인한 곳이 많아 머무는 동안 잠시나마 현지 생활을 경험할 수 있어 더욱 만족스러웠다. 첫날 머문 숙소인 요키칸(Yokikan)은 해안가에 자리하고 있는데, 그 덕분에 객실의 통창 너머로 바다 마을의 아름다운 풍경을 언제든 바라볼 수 있었다. 프라이빗한 온천 역시 바다를 마주하고 있어 일몰을 감상하며 평온하게 심신을 휴식할 수 있다. 식당에서는 가재와 전복 등 재철 식재료를 활용한 13~15가지 요리를 코스로 맛보았고, 바에 들러 다양한 현지 사케도 즐기면서 하루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둘째 날 찾아간 교쿠센카쿠(Gyokusenkaku)는 전통식부터 현대식까지 여러 타입의 객실을 준비해두어 여행자의 편의를 배려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현지 고유의 매력을 갖춘 객실에서 쉬다가 양귀비의 목욕에서 영감 받아 만든 온천을 찾아가거나, 계절과 어울리는 음식을 맛볼 수도 있었다. 언젠가 선선한 날에 다시 찾아와 강가의 테라스에 앉아 자연과 함께하는 식사를 즐기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숙소를 나서 공항으로 향했다.

온천 마을 ‘나가토 유모토’ 전경.

매력적인 명소와 천혜의 자연, 특산물을 활용한 미식, 안온한 쉼을 선사하는 숙소까지. 야마구치현에서 보낸 3일은 일본 소도시의 생활을 몸과 마음으로 깊이 느낄 수 있는 기회였다. 낯선 지역의 고유한 분위기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그 시간이, 서울의 일상이 지닌 소중함을 다시 빛내줄 수 있을 것만 같다.

*온라인 여행 플랫폼 ‘부킹닷컴’은 세계 곳곳의 소도시를 비롯한 다양한 여행지를 보다 편하게 찾아갈 수 있는 서비스 ‘커넥티드 트립(Connected Trip)’을 제공한다. 숙소는 물론 항공권, 렌터카, 액티비티 등 여행에 필요한 모든 요소를 검색하고 예약과 결제까지 한 번에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