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의 흔적을 간직한 노포부터 떠오르는 신생 바, 세계 각지의 미식이 어우러진 축제까지.
서로 다른 시간과 문화가 교차하며 살아 숨 쉬는 홍콩 미식의 현재를 마주했다.



이른 추위가 내려앉기 시작하던 10월의 끝자락, 홍콩으로 향했다. 맛과 향이 짙어지는 계절에 미식의 도시를 찾는다는 건 여름 내내 시들었던 입맛을 질 좋은 재료와 철학이 깃든 음식으로 되살리는 일이다. 매년 10월마다 약 나흘간 열리는 홍콩의 대표적인 미식 축제인 홍콩 와인 앤 다인 페스티벌(Hong Kong Wine & Dine Festival)을 비롯해 도시 곳곳을 누비며 미식 여행을 이어갈 계획이었다. 어둠이 내려앉을 때쯤 공항에 도착하자 부드럽고 따뜻한 공기가 온몸을 감쌌다. 홍콩은 연중 덥고 습하지만 10월은 기온과 강수량이 안정되어 여행객이 가장 선호하는 시기다. 고속도로를 따라 30분쯤 달리자 빽빽하게 들어선 고층 빌딩과 오래된 건물들이 한데 얽힌 풍경이 창밖으로 스쳤다. 센트럴 지역에 자리한 숙소에 짐을 풀고 곧장 몽콕으로 향했다.
홍콩은 <미쉐린 가이드>에 오른 레스토랑이 즐비한 도시지만, 가장 먼저 현지인의 일상 가까이에 있는 요리로 여행의 시작을 열었다. 몽콕은 한국의 포장마차처럼 오랜 명맥을 이어온 노천 식당 문화인 ‘다이파이동(大牌檔)’이 여전히 남아 있는 지역이다. 1980년대부터 위생과 도시 정비를 이유로 정부에서 신규 허가를 중단한 뒤로 허가를 상속받은 소수만 남아 다이파이동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데, 레이디스 마켓 인근에 자리한 ‘레이디스 스트리트 식판 컴퍼니(Ladies Street Sik Faan Co.)’@ladies_street_sikfaan는 그 정서를 실내로 옮겨온 복고풍 레스토랑이다. 어둠을 밝히던 네온사인, 여러 사람이 둘러앉아 음식을 나누어 먹던 원형 테이블처럼 옛 홍콩 거리의 모습이 고스란히 구현돼 있었다. 해산물과 돼지고기를 강한 불로 볶아낸 요리와 먹기 좋게 자른 취두부튀김을 한 입 베어 물자 자극적인 풍미가 입안 가득 퍼졌다.

이튿날 와인 앤 다인 페스티벌 현장에 가기 위해 센트럴 하버프론트로 향했다. 공식 개막 첫 날의 현장은 이미 인파로 가득했다. 세계 각지의 와인과 미식을 한자리에 모아 소개한다는 취지로 2009년에 시작된 이 축제는 매년 외연을 넓혀온 끝에 올해는 30여 개국에서 3백 개 이상의 부스가 한자리에 모여 그 규모를 실감하게 했다. 입장과 동시에 지급된 유리잔과 토큰으로 각 부스를 오가며 자유롭게 시음과 시식을 이어갔다. 먼저 한국에서 접하기 어려운 중국 주류를 중심으로 둘러보기로 했다. 홍콩의 독립 셀렉트 숍 ‘마이 셀러(Myi Cellar)’@myicellar 부스에서는 윈난 지역 고지대에서 생산된 시라 와인을 맛봤다. 진한 블랙베리 향과 부드러운 탄닌감이 입안에 오래 맴돌았다. 이어서 방문한 홍콩 기반의 증류소 ‘N.I.P 디스틸링(N.I.P Distilling)’@nipdistilling 부스에서는 자스민과 백차, 그리고 광둥요리에 주로 쓰이는 진피를 조 합해 만든 로컬 진 칵테일을 시음했다. “N.I.P(Not Important Person)라는 이름에 우리가 굳게 믿는 가치를 담고자 했습니다. 특별한 배경이나 지위 없이도 의미 있는 성취에 다다를 수 있다는 신념, 그리고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술을 만들고자 하는 마음을 담았어요.” 공동 창업자 니컬러스 로의 설명처럼 편하게 즐길 수 있는 맛이면서도, 드라이한 진에 찻잎의 향긋함이 더해져 긴 여운을 남겼다.
페스티벌의 또 다른 즐거움은 홍콩을 대표하는 레스토랑의 주요 메뉴를 취향에 따라 고른 주류와 함께 자유롭게 페어링해볼 수 있다는 점이다. ‘고메 애비뉴’ 존에는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 ‘보 이노베이션(Bo Innovation)’@bo_innovation_central 과 중국 각지의 전통 요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차이니스 라이브러리(The Chinese Library)’@thechineselibrary 등 현재 홍콩에서 가장 주목받는 레스토랑 부스가 줄지어 있었다. 보 이노베이션을 이끄는 셰프 앨빈 렁이 분자 요리 기법으로 재해석한 샤오룽바오, 다진 와규를 얇은 페이스트리로 겹겹이 감싼 퍼프를 맛보는 동안 어느새 해가 저물었다. 단 몇 시간 만에 홍콩 주류 문화의 최신 경향과 떠오르는 로컬 바, 주요 레스토랑의 흐름을 한자리에서 체험한 셈이었다.
홍콩의 미식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건 바 문화다. 특히 소호 지역에는 영국, 이탈리아, 멕시코, 일본 등 각기 다른 문화적 배경을 지닌 바들이 좁은 골목 안에 빽빽이 들어서 있어 바 호핑을 즐기기에 제격이다. 그중 ‘소시오(Socio)’@socio.hk는 최근 홍콩 바 신에서 떠오르는 신생 업사이클링 바다. “영국에서 홍콩으로 이주한 뒤, 식당에서 일하면서 폐기물 문제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됐어요. 음식점이나 베이커리에서 매일 버려지는 식재료를 칵테일 재료로 활용하면 어떨까 싶었죠.” 공동 창업자 아미르의 말처럼, 소시오의 칵테일은 인근 식당이나 카페에서 제공받은 식재료를 독특한 방식으로 재사용해 완성된다. 굴 껍질을 식초와 함께 증류해 산미를 더하고, 아보카도 씨앗으로 기름진 텍스처를 더하는 식이다. “홍콩의 바들은 소호처럼 특정 구역에 밀집해 있기 때문에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강하게 느껴요.” 도보로 이동할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대부분의 바가 모여 있고, 그들이 서로의 자원을 순환하며 지역 커뮤니티를 이루는 방식이 인상적이었다.

소시오가 지역 공동체를 중심으로 서서히 인지도를 쌓은 경우라면, ‘바 레오네(Bar LEONE)’@barleonehk 는 등장과 동시에 홍콩 바 신의 정점에 선 이례적인 공간이다. 이탈리아 출신 믹솔로지스트 로렌조 안티노리가 고향 로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동네 바에서 영감을 받아 문을 연 이곳은 복잡한 제조 과정을 덜어내고 기본에 충실한 클래식 칵테일을 선보이며 올해 ‘월드 베스트 바 50’에서 아시아 바 최초로 1위를 차지했다. 벽면 곳곳에 적힌 “COCKTAIL POPOLARI(모두를 위한 칵테일)”라는 문구에서 알 수 있듯 맛은 직관적이면서도 깊었다. 칵테일과 함께 곁들인 훈제 올리브와 모르타델라 샌드위치는 이번 여행에서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옛 홍콩의 정취를 간직한 노포 식당부터 세계 각지의 주류가 모인 축제의 장, 각자의 고유한 철학을 담은 신생 바까지. 나흘간의 여정 동안 다채로운 문화적 배경과 철학이 한데 뒤섞이며 살아 움직이는 홍콩의 미식 문화를 온전히 경험했다. 식탁 위에서 마주한 한 그릇, 한 잔마다 도시가 품은 활력이 고스란히 스며 있었다.
* 홍콩관광청은 홍콩을 세계적인 여행지로 알리기 위해 항공사·여행사·현지 업계와 협력해 다양한 관광 캠페인을 전개한다. 미식과 예술, 문화가 어우러진 도시의 생동감을 새로운 시선으로 전하며, 홍콩의 지역별 여행 코스, 미식 축제, 문화 행사 등 자세한 여행 정보는 홍콩관광청 공식 웹사이트(www.discoverhongkong.com)에서 확인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