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가 희미해지고 고립감이 깊어지는 시대, 우리는 여전히 함께일 수 있을까.
누군가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서로의 체온을 나누며 연대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마음을 데운다.
마리끌레르 피처 에디터 4인이 ‘곁’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책과 영화, 음악, 사진을 모았다.
우리의 겨울이 보다 따뜻하길 바라며.
백가경·황유지 <관내 여행자-되기>

“도시에는 목소리가 점점 희미해지는 이야기들이 마치 지하철 노선처럼 깔려 있다.” 인천, 의정부, 안산, 이태원, 광주. 두 작가는 도시를 여행하며 그 안에 스며든 고통, 상흔, 비참, 분노 등을 살핀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자신들의 삶터와 일터, 고향을 통과하는 삶을 고백한다. 그건 마치 다 지난 일이 아니냐, 그것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냐고 하는 이들에게 지금 우리는 과거의 상처들에서 단 한 발짝도 떨어져 있지 않다는 선언처럼 느껴졌다. 이토록 강인하고 분명한 연대를 전에 본 적이 있던가. “미약하게나마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기억하고, 기록하려” 하는, “함께 고민하고 배우며 계속 살아낼 것”이라 말하는 두 작가의 온기에 울컥하지 않을, 기꺼이 함께하지 않을 방도가 없었다.
크루앙빈, <The Universe Smiles Upon You ii>
명확하지 않은, 규정되지 않은 것에 더 마음이 간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잘 정돈된 정석의 음악은 분명 멋지지만, 오래 간직하기엔 어쩐지 내 것이 아닌 것만 같다. 미국 텍사스의 작은 마을에서 만난 세 친구가 1970~1980년대 태국 음악에 심취해 결성한 밴드 크루앙빈(Khruangbin)의 첫 앨범 <The Universe Smiles Upon You>를 듣던 순간 직감했다. 이 음악은 아주 오래 내 곁에 머물게 될 것임을. 사이키델릭부터 디스코, 펑크, 블루스, 소울 등 온갖 장르를 결합한 것 같기도, 해체한 것 같기도 한 음악은 모호하고 불분명해서 더 아름답게 느껴졌다. 태국어로 ‘하늘을 나는 엔진’, 즉 ‘비행기’를 뜻하는 이름에 걸맞게 미국, 태국, 터키, 스페인, 에티오피아 등 세계 곳곳의 리듬과 사운드를 앨범 안으로 불러들인 이들의 음악은 월드 뮤직을 넘어 (베이스 로라 리의 표현에 따르면) ‘어스 뮤직(Earth Music)’에 가깝다. 그 때문일까. 지구 반대편에 있는 나 역시 자연스레 이 음악에 동화될 수 있었다. 장르고, 국적이고, 언어고 다 떠나서 크루앙빈의 앨범은 내게 친구고, 연인이고, 때론 나 자신이었다. 얼마 전 그들이 처음 음악을 시작한 텍사스의 작은 창고에 다시 모여, 데뷔 곡을 재녹음해 리메이크 앨범 <The Universe Smiles Upon You ii>를 만들었다. 10년 전처럼 여전히 모호하고, 역시나 아름답다.
윤가은 <세계의 주인>


어른답게, 여성스럽게, 결혼을 해서 혹은 아직 못 해서, 몸이 아파서 혹은 건강하니까. 급기야 MBTI까지. 누군가를 규정하는 숱한 표현 사이에서 온전히 나답게 산 적이 있던가. 나를 그런 사람으로 보지 말라며 정면으로 부딪쳐본 적이 있던가. 영화 <세계의 주인>을 보며 서글펐고, 동시에 통쾌했다. 그리고 끝내 스스로에게 조금 더 솔직해지게 되었다. 친구, 동료, 가족을 더 넓게 바라보게 되었다. “자신의 진실을 용기 내어 발견하고 목소리를 낼 수 있다면, 누구도 절대 혼자가 아니며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리라 믿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영원히 남겨질 상처를 안고도, 자신의 모습을 지키며, 더 깊고 넓은 세계로 힘차게 나아갈 수 있습니다.” 윤가은 감독이 남긴 메시지처럼, 더 솔직하게 살아갈 힘이 생겼다. 영화 역시 기세 좋게 나아가는 중이다. 겨울 한파 속에서도 도무지 웅크리지 않을 기세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