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는 번잡한 휴양지보다 자연 속에서 천천히 머무는 여행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빽빽한 일정 대신 몸과 마음의 속도를 늦추는 ‘소프트 트래블(soft travel)’이 하나의 흐름으로 떠오른 것도 이와 같은 이유인데요. 짙은 녹음과 선선한 바람, 안개 낀 아침과 조용한 카페가 있는 곳. 산속에 자리한 여행지는 여름을 조금 더 느리고 깊게 보내는 방법을 제안합니다.

가장 자유로운 여름, 태국 빠이

‘멀미를 견뎌낸 자에게만 허락되는 낙원’. 이보다 빠이를 잘 설명하는 말은 없을 거예요. 빠이는 치앙마이에서 북서쪽으로 약 130km 떨어진 산간 마을인데요. 거리만 보면 그리 멀지 않아 보이지만, 이곳에 닿기 위해서는 무려 762개의 커브가 이어지는 험난한 산악 도로를 지나야 합니다. 미니밴을 타고 약 3시간 동안 구불구불한 산길을 달리는 여정은 결코 쉽지 않죠. 그러나 고개를 넘어 마주하는 푸른 논밭과 평화로운 풍경은 그 고생을 단번에 잊게 만들어 줍니다.

빠이는 종종 ‘히피들의 마을’이라고도 불립니다. 오래전부터 배낭여행자와 장기 여행자들이 머물며 자유로운 분위기를 만들어 왔거든요. 대형 리조트나 화려한 관광지보다는 작은 카페와 게스트하우스, 로컬 마켓, 요가 스튜디오 등이 마을을 채우고 있죠. 대중교통이 거의 없는 빠이에서는 스쿠터를 주로 이용하게 될 텐데요. 하루 약 6천 원에서 1만 원 정도로 대여할 수 있어, 논밭 사이로 이어진 시골길과 작은 마을 곳곳을 자유롭게 드라이브하며 둘러보기 좋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카페에 누워 책을 읽거나 낮잠을 즐기는 시간마저 이곳에서는 여행이 될 거예요.

베트남에서 만나는 프랑스 문화, 달랏

국내에서는 MBC 예능 〈나 혼자 산다〉에 소개되며 주목받기 시작한 달랏은 베트남 남부 고원 지대에 자리한 도시입니다. 이곳은 20세기 초, 베트남이 프랑스 식민지였던 시절 유럽인들의 피서지로 개발되었는데요. 더운 호찌민을 피해 달랏에 머문 그들이 대규모 소나무 숲을 조성하고 유럽풍 건축물을 지어 올린 거죠. 덕분에 이 도시에 들어서면 동남아 특유의 야자수보다는 울창한 소나무 숲과 뾰족한 지붕의 빌라들이 먼저 눈길을 끕니다. 현지인들에게 ‘베트남의 작은 파리’로 불리며 오랫동안 사랑받아왔고, 최근에는 여름에 가기 좋은 베트남 여행지로 찾는 해외여행자들이 늘고 있습니다.

달랏의 매력은 계절의 온도에 있습니다. 한낮에도 비교적 부드러운 공기가 감돌고 이른 아침에는 호수와 언덕 위로 안개가 내려앉거든요. 도시 곳곳에 정원과 카페가 많아 특별한 관광지를 찾아다니지 않아도 산책 자체가 여행이 되고요. 쑤언흐엉 호수 주변을 걷거나 언덕 위 카페에서 베트남 커피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달랏의 분위기를 충분히 느낄 수 있습니다.

라오스의 옛 수도, 루앙프라방

라오스 북부에 위치한 루앙프라방은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문화적, 역사적 가치가 높습니다. 과거 란상 왕국의 수도였던 이곳은 불교문화와 19~20세기 프랑스 식민지 시절의 인도차이나풍 건축 양식이 공존하는 독특한 미감을 지니고 있습니다. 앞서 소개한 빠이와 달랏처럼 전형적인 고원 도시는 아니지만, 메콩강과 남칸강이 만나는 지점에 자리해 자연이 만들어내는 차분한 풍경 속에서 여유로운 여름을 보내기 좋은 여행지입니다.

루앙프라방에서 꼭 경험해 봐야 할 것은 다름 아닌 새벽 탁발(托鉢) 의식. 오전 5시에서 6시 사이, 주황색 가사(袈裟)를 입은 승려들이 줄지어 걸으며 현지인들이 바치는 공양을 받는데요. 오랜 시간 이어져 온 불교 전통이자 이 도시의 일상을 깊게 보여주는 순간이죠. 루앙프라방의 가장 큰 장점은 자연과 문화가 한곳에 모여 있다는 데 있는데요. 큰 이동 없이 강가 산책과 사원 투어, 야시장까지 한나절 안에 자연스럽게 이어갈 수 있거든요. 한낮에는 강가 카페나 숙소에서 잠시 쉬어가는 것을, 오후에는 푸씨 산에 올라 도시를 내려다보거나 에메랄드빛 계단식 폭포로 알려진 꽝시 폭포에서 수영을 즐겨보는 걸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