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찌 2019F/W

Photo by Kevin Tachman @kevintachman    

지난 5월, 아시아의 새로운 패션 도시로 주목받는 방콕이 아시아 각국에서 온 패션 관계자들로 들썩였다. 구찌의 2019 F/W컬렉션을 공개하는 프레젠테이션이 열렸기 때문이다. 방콕의한 공원 속 햇볕이 잘 드는 아름다운 온실이 구찌 프레젠테이션을 위한 장소로 탈바꿈했다. 구찌의 2019 F/W 컬렉션의 테마는 ‘마스크’였는데, 높은 빌딩 숲 사이에 숨은 이 고즈넉한 공간은 보여주기와 감추기라는 모순적인 두 가지 의미의 테마를 설명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곳이었다.

직업상 매년 수많은 런웨이를 직접 보게 되지만, 찰나로 느껴지는 짧은 시간에 끝나버리는 쇼가 못내 아쉬워 더 자세히 보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컬렉션이 있다. 구찌가 바로 그중 하나다. 이번 프레젠테이션은 지난 밀라노 컬렉션에서 이미 공개한 옷을 다시 보는 이벤트임에도 눈앞을 스쳐 지나갈 때 언뜻 본 레이어드 스타일링이나 가까이에서 보지 않으면 도무지 알 수 없는 액세서리의 디테일 등 모든 쇼피스를 자세히 살펴볼 생각을 하니, 쇼를 관람하기 전보다 기대감이 차올랐다. 행사장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예상대로 한눈에 마음을 빼앗길 만큼 화려한 컬렉션이 반겼다. 하지만 이번 컬렉션의 진면모는 단지 화려함만은 아니다. 선택적으로 자신을 내보이거나 은폐하는 이중적 의미를 가지는 마스크라는 오브제를 미켈레의 감각으로 재해석한 결과, 숨은 매력을 가진 레디투웨어가 탄생한 것이다. 마스크를 컬렉션의 테마로 선정한 것은 상반되는 아이템을 위트 있게 매치하는 것이 주특기인 미켈레다운 결정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 뜨거운 여름이 아직 본격적으로 시작되지도 않았지만 올가을 입고 싶은 충동이 드는 ‘반전이 있는 젠더리스’ 컬렉션이 펼쳐졌다.

남성복의 목 부분에 레이스를 장식하거나 주얼리를 과감하게 매치하고, 채도 높은 컬러 팔레트로 기존보다 한층 더 여성복에 가깝게 완성했다. 반면 여성복은 극도로 러블리한 이너웨어를 오버사이즈 케이프나 투박한 재킷으로 가리거나 부분적으로 비닐 소재를 가미하는 등 반전을 이루는 디테일을 더했다. 옷만 얼핏 보고는 남성복인지 여성복인지 알 수 없도록 성별 구분을 파괴한 컬렉션이 탄생한 것이다. 실제로 여성인 내가 컬렉션을 둘러보며 당장 사 입고 싶다고 생각한 옷은 대부분 남성복이었다. 이뿐 아니다. 새롭게 선보이는 무아레 패턴의 소재나 퀼팅 기법 등 퀄리티 면에서도 유서 깊은 하우스 브랜드의 진면모를 느낄 수 있었다. 여기에 한 가지 더, 이번 컬렉션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소는 바로 액세서리다. 컬렉션의 메인 테마인 마스크는 물론 다채로운 컬러의 볼드한 주얼리, 발목을 묶는 새로운 디자인의 샌들,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새로운 실비 백과 GG 토르숑 로고가 돋보이는 백까지. 다양한 액세서리가 컬렉션을 한층 더 풍요롭게 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단 하나도 빼놓지 않고 ‘구찌스럽다’라고 평가하고 싶은 이번 컬렉션을 구입할 생각이 있다면 꼭 매장을 직접 찾아가 둘러보길 권한다. 화려한 첫인상에 가려져 알지 못했던 반전 매력을 느낄 수 있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