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리트 룩이 가득했던 런웨이에 새로운 바람이 불었다. 파격적인 유스 컬처를 추구하던 패션계에 새롭게 떠오르는 트렌드는 정반대의 매력을 지닌 일명 ‘부르주아 패션’. 자칫 고리타분해 보일 수 있는 옷이 패션 트렌드의 중심에 섰다.

1970년대 패션을 돌이켜보자. 디스코, 글램, 히피 등을 내세운 자유분방한 스타일이 패션계를 점령했던 시대지만, 한편에선 프랑스 중산층의 정갈한 패션 역시 대세였다. 1960년대부터 이어져오던 미니스커트 열풍을 서서히 지루하게 느끼던 이들은 점차 통 넓은 팬츠 수트와 미디스커트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곧 단정하면서도 어딘가 우아한 매력이 배어나는 부르주아 룩에 열광하게 되었다. 광택이 도는 실크 블라우스, 길게 늘어뜨린 얇은 스카프, 단정한 재킷, 클래식한 체크와 아가일 패턴 등이 바로 1970년대 부르주아 룩을 떠올리게 하는 요소들이다.

놀랍게도 당시의 프렌치 걸을 꼭 닮은 패션이 이번 시즌 런웨이에 등장했다. 무릎까지 내려오는 주름치마와 실크 셔츠에 스카프를 맨 버버리, 아가일 패턴 니트 조끼가 등장한 빅토리아 베컴 컬렉션은 자연스레 1970년대를 떠올리게 했다. 특히 주목할 컬렉션은 셀린느다. 셀린느를 이끄는 에디 슬리먼은 무릎 아래로 내려오는 스커트, 몸에 꼭 맞는 블레이저, 긴 가죽 부츠와 금장 액세서리 등으로 ‘1970 부르주아’라는 컬렉션의 주제를 확실하게 드러냈다. 스리피스를 갖춰 입고 보잉 선글라스를 낀 채 워킹하는 모델은 세련되고 당당했으며 노출 없이도 은근하게 섹시한 분위기를 풍겼다. 에디 슬리먼은 이번 컬렉션을 통해 브랜드의 새로운 수장으로 적임자인지를 의심하던 부정적 평가를 잠재울 만큼 호평을 얻어냈다.

고백하자면 최근까지 유행한 스트리트 룩과 거리가 먼 나 또한 이 트렌드가 반갑다. 부르주아 트렌드는 신선한 동시에 익숙하기 때문에 실생활에 적용하기가 어렵지 않고, 많은 TPO를 아우르는 실용적인 룩이기 때문이다. 클래식한 체크와 아가일 패턴, 벨트 등으로 단정하게 연출한 스타일이 모범생처럼 보일까 염려된다면 볼드한 액세서리나 레오퍼드 패턴을 추가해도 좋다. 찬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에 그래피티가 그려진 데님 재킷이나 항공 점퍼 대신 브라운 컬러 재킷을 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면? 당신도 이미 1970년대 프렌치 부르주아 트렌드에 동참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