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래퍼 에이셉 라키가 올린 사진 한 장이 SNS를 뜨겁게 달궜다. 얼굴을 가린 손의 독특한 네일아트가 눈길을 끈 것이다. 유니언 잭과 캐릭터를 디자인한 그의 네일은 여성성과 남성성을 떠나 어딘지 쿨하고 묘하게 따라 하고 싶은 마음까지 들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여자 같다는 인식을 버리고 남자가 네일아트를 자유롭게 하기를 바란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남자가 메이크업을 하는 일이야 흔하지만(물론 여자의 메이크업과 다른 방식으로) 네일아트는 남자의 그루밍 범위에서 한참 벗어난 것으로 느껴진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남자들의 워너비로 추앙받는 에이셉 라키가 ‘무려’ 네일아트를 하고 등장하다니! 터프한 힙한 신이 술렁일 만한 일이었다.

되짚어보면, 우리가 사랑한 남자들이 언제나 남자다움을 내세운 것은 아니다. 일단 1970년대 브리티시 록을 주름잡은 데이비드 보위를 보라. 일본의 가부키 화장이 연상되는 새하얀 파운데이션을 바르고 짙은 스모키 메이크업을 한 그의 모습이 생경해 보이는 것도 잠시, 곧 스타일을 넘어 시대의 아이콘이 되었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현재에 와서 반추해보건대, 지금 남자들보다 훨씬 더 과감하고 도전적인 스타일임에 틀림없다. 데이비드 보위 이후로도 메이크업을 하는 남자들은 줄곧 존재했다. 하지만 피부 톤을 조금 정돈하고 눈썹을 다듬거나 약간의 셰이딩으로 얼굴 윤곽을 살리는 수준이었으며, 이마저도 남성적인 얼굴선을 부각하고 보완하는 데 목적을 뒀다. 하지만 제임스 찰스, 제프리 스타 등 남자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자신의 얼굴에 과감하게 메이크업을 터치한 튜토리얼을 업로드한 유튜브와 틱톡 등 온라인 플랫폼의 발달로 인식이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다. 주류를 이룬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미미하게나마 영역을 넓혀가는 남자들이 나타난 것이다. 2022 S/S 케네스 이제(Kenneth Ize) 컬렉션에서는 실버 네일 에나멜을 바른 남자 모델들이 대거 등장했고, 뮤지션 배드 버니, 코난 그레이는 멧 갈라 쇼에서 머리를 틀어 올리거나 블러셔를 짙게 바르는 등 한껏 치장한 모습으로 공식 석상에 나타났다. 도전적인 스타일과 음악으로 사랑받는 해리 스타일스는 지난해 젠더리스 뷰티 브랜드 ‘플리징(Pleasing)’을 론칭하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동안 남자가 꾸민다는 것은 ‘여자 같다’라는 말과 일맥상통했다. 이는 여자가 남자에 비해 열등하다는 인식이 저변에 깔린 비하의 의도를 드러내는 것으로 남녀를 모두 조롱하는 말이다. 그렇기에 동시대 스타들이 과감한 시도로 성역을 조금씩 무너뜨리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이 무척 반갑다. 머지않아 견고한 맨박스를 깨고, 남녀 모두 자유롭게 화장하고 네일 숍을 예약하는 일도 꽤 자연스러워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