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이민아, 파니 무아장, 소피 에르상

 

<마리끌레르> 코리아 독자를 위해 각자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소피 에르상(Sophie Hersan, 이하 소피) 베스티에르 콜렉티브의 공동 창립자이자 패션 디렉터로 일하고 있다. 오랜시간 패션 산업을 경험하며 새로운 방식, 정확히는 지속 가능하고 유지 가능한 방식의 소비구조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플랫폼 론칭에 합류했다. 파니 무아장(Fanny Moizant, 이하 파니) 베스티에르 콜렉티브의 공동 창립자이자 대표를 맡고 있다. CEO와 함께 플랫폼을 이끈다. 이민아(Minah Lee, 이하 이민아) 베스티에르 콜렉티브의 한국 대표로, 플랫폼이 14년간 쌓아온 시스템을 현지화하는 중이며, 프랑스의 헤리티지를 한국에 전달하는 중간 다리 역할도 담당한다.

지금 패션 산업은 ‘지속 가능성’을 위한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브랜드의 생사, 향방, 성패가 모두 이 하나의 키워드에 달리지 않았나. 파니 우리가 이 사업을 시작하게 된 이유 역시 그 때문이다. ‘지속 가능성’이라는 단어 자체가 거의 쓰이지 않던 14년 전, 기업이 물건을 과도하게 만들면서 생기는 환경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버리는 대신 물려주거나 더 오래 쓰는 방법을 고민했고, 이후로도 꾸준히 지속 가능성에 천착하고 있다.

사회적 의무를 다하는 기업에 수여하는 비콥(B Corp) 인증 마크도 받았다. 파니 맞다. 베스티에르 콜렉티브의 모든 제품은 빈티지이기 때문에 새 상품을 생산할 때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 문제에서 자유롭다. 이 외에도 운송 시스템이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을 줄이고, 커뮤니티를 통해 환경에 대한 소비자의 인식을 제고하거나 소비 습관을 개선하는 일에도 관심을 기울이는 편이다. 이를테면 우리의 소비가 아프리카를 비롯한 전 세계 환경에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따져보고, 어떻게 해야 잘 사고 잘 팔 수 있는지 고민한다.

지속 가능성이라는 주제를 떠나 빈티지 제품 자체의 매력은 무언가? 어떤 이유로 빈티지를 사랑하게 됐는지도 궁금하다. 파니 엄마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어릴 적 엄마는 슈퍼우먼이었다. 어깨에 큼지막한 패드가 달린 알라이아의 재킷을 입고 다니셨지. 그 모습이 멋져서 특별하고 오래된 패션 아이템에 관심을 갖게 됐다. 당시 엄마가 입던 데님 소재의 알라이아 수트는 지금도 사무실 한쪽에 있다. 알라이아에 헌정하는 의미로 프레임을 씌워 보관 중이다. 소피 빈티지는 언제나 욕망의 대상이다. 요즘도 젊은 친구들이 어느 해에 나온 것인지도 모르는 1990년대 빈티지 아이템과 사랑에 빠져 있지 않나. 마찬가지다. 1970년대에 청춘을 보낸 사람은 아니지만, 그때의 제품에 열광한다. 이민아 엄마가 매일같이 들고 다니던 루이 비통의 스피디 백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예쁘게 태닝되던 걸 기억한다. 그때 세월의 흔적과 애정이 백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알게 됐다. 가장 처음 선물 받았던 오렌지색 바게트 백도 아직 옷장에 있다. 꽤 낡았지만 여전히 사랑스럽다.

마침 소피도 오늘 바게트 백을 들고 왔다. 소피 3년 전인가, 2백50유로가 채 안 되는 값을 주고 샀다. 지금은 아마 두 배 이상 할 거다. 물론 팔 생각은 없지만(웃음)! 펜디의 바게트 백이나 디올의 새들 백처럼 잘 만든 제품은 꾸준한 수요 덕에 수익성도 기대할 수 있다.

베스티에르 콜렉티브는 한국에도 검수 전문가를 두고 99.9%의 정확도로 가품을 선별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밝혔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을 거쳐 가능한지 듣고 싶다. 소피 먼저 패션 전문가로 이뤄진 베스티에르 콜렉티브 팀이 사진을 보고 상품을 꼼꼼하게 디지털 검수한다. 이후 상품이 판매되면 영국, 프랑스, 뉴욕, 홍콩, 서울에 있는 각 센터로 이동해 전문가의 검수를 한 번 더 거친다. 정품 판별 기술을 전문적으로 전수하는 인턴 아카데미도 운영하고 있다. 파니 협력 브랜드가 정품 여부를 구별할 수 있는 도구를 제공하기도 한다. 백에 내장된 칩 같은 것들을 읽어내는 툴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신뢰를 강조하는 베스티에르 콜렉티브의 광고 이미지

 

오랜 시간 플랫폼을 이끌어오며 어떤 성과를 얻었나? 파니 커뮤니티 활성화를 첫손에 꼽고 싶다. 베스티에르 콜렉티브는 패션을 사랑하는 사람들로 이뤄진 거대한 커뮤니티이기도 하다. 80여 개국에서 모인 수만 명의 사람들이 이곳에서 희귀한 제품을 찾고, 패션을 향한 순수한 애정을 얘기하고, 패션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지속 가능성을 타진한다. 이들의 소비 방식이 세상을 조금씩 바꿔왔다고 믿는다. 자랑스럽다. 이민아 개인적으로 앱을 성공적으로 현지화한 성과에 뿌듯함을 느낀다. 한국은 e-커머스 시장이 고도로 발달한 나라로, e-커머스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UI, UX를 비롯해 모든 과정에서 소비자가 불편을 느끼지 않도록 총력을 기울였다. 예를 들어 프랑스의 소비자가 페이스북 계정을 이용해 로그인한다면 한국에서는 네이버나 카카오를 통한다. 할부 기능에 대한 요구, 택배 트래킹도 한국에서는 중요한 문제고. 본사가 한국 시장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덕에 지원을 충분히 받아 성공적으로 현지화할 수 있었다.

주요 패션 도시에 이어 한국에 오피스를 둘 만큼 한국에 대한 애정이 큰 것 같다. 파니 사실 영어권 국가라 소통에 어려움이 적은 홍콩과 싱가포르에 먼저 오피스를 열긴 했다. 하지만 항상 한국에 진출하고 싶은 열망이 있었다. K-pop, K-culture가 세계적으로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기 때문이다. 또 한국은 패션에 대한 개개인의 관심도도 높다. 지난번에 서울에서 진행한 첫 행사에 수많은 패션 에디터와 인플루언서가 참석했는데, 그들의 스타일리시한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패션에 대한 영감을 얻을 수 있었다. 소피 K-culture를 얘기하니 말인데, K-beauty도 빼놓을 수 없다. 밤에 민아 대표와 뷰티 쇼핑에 나설 참이다. 인스타그램을 보며 얼마나 많이 캡처해놨는지 모른다.(웃음)

한국 고객의 가장 큰 특징은 무언가? 파니 홍콩에 5년 정도 거주한 적이 있기 때문에 아시아 시장에 대해서는 꽤 잘 아는 편이다. 한국 사람들은 그야말로 아시아의 패션 피플이다. 쿨하고 트렌디하다. 다른 아시아 국가의 소비자가 상대적으로 전통적이거나 귀여운 패션을 선호한다면, 한국 사람들은 대담하게 입는 편이다. 소피 수천 개에 이르는 브랜드를 살피다 보면 한국의 로컬 디자이너가 종종 눈에 띈다. 이들의 패션 취향이 한국 시장을 더욱 흥미롭게 만드는 것 같다.

최근 재미있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고 들었다. 소피 파코 라반과 손잡고 아이코닉한 ‘1969’ 백을 선별해 판매했다. 파코 라반은 나날이 점점 더 소장 욕구를 자극하는 브랜드가 되어가는 중이다. 이런 협업을 통해 특정 제품이나 브랜드에 대한 열망에 다시 불을 지피는 것 역시 베스티에르 콜렉티브의 힘이자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정확한 소통을 위해 ‘빈티지’나 ‘세컨드핸드’라고 표기하기는 했지만, ‘프리러브드(preloved)’라는 단어가 주는 매력이 상당하다. 다정하달까. 말 그대로 ‘사랑했던’ 옷을 떠나보내는 아쉬움은 없나? 파니 딸에게 물려주고 싶은 주얼리 몇 개를 제외하고 모든 걸 판다. 옷장도 아주 작다. 얼마나 가졌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뭘 가졌는지가 중요하다. 소피 파니는 원인, 원 아웃(One In, One Out) 마인드 세터다. 하나를 사면 하나를 판다. 파니 인터뷰 전 확인해봤는데, 플랫폼 론칭 이후 3백61개의 아이템을 팔았더라.(웃음) 이민아 이전에는 좋아하던 물건을 팔고 싶어도 판매할 경로가 없었다. 중고 거래 사이트가 대부분 너무 낮은 가격에 팔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베스티에르 콜렉티브를 접한 이후에는 그냥 물건을 싼값에 처분하는 게 아니라 대화를 통해 나보다 더 사랑해줄 사람을 찾고, 물건에 얽힌 스토리를 나눌 수 있어 좋다.

어떤 아이템을 주로 구매하나? 파니 사실 피비 필로의 열혈 팬이다. 내가 가진 거의 모든 아이템이 그가 디자인한 것일 정도로. 물론 꾸레쥬, 사카이, 더 로우, 루루 스튜디오, 에르메스, 파코 라반 같은 브랜드에도 관심을 둔다. 구매 철학을 밝히자면 더 적을수록 좋다(less is more)는 것. 소피 무조건 타임리스 제품을 산다. 컨템퍼러리 브랜드보다는 클래식한 아이템을 사서 오래도록 쓰는 편이 좋다. 이민아 샤넬의 패션 주얼리를 사랑한다. 클립 이어링, 브로치, 네크리스 같은 것 말이다. 요즘에는 특히 모든 아이템을 세컨드핸드로 골라 착용한다.

 

 

“특정 제품이나 브랜드에 대한 열망에 다시 불을 지피는 것 역시
베스티에르 콜렉티브의 힘이자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세계 최대 업사이클링 시장인 가나 칸타만토에 방문한 베스티에르 콜렉티브 팀

 

세 사람 모두 자신의 일을 성공적이고 진취적으로 이끌어가는 여성이라는 공통점을 지녔다. 각자의 분야에서 도약하고 싶어 하는 여성 독자들에게 조언을 부탁한다. 파니 책에서 읽은 후 늘 마음에 새기는 문장이 있다. ‘만약 두려움이 없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우리는 많은 순간 무언가 성취해야 한다는 조바심에, 또 뒷걸음질 쳐서는 안 된다는 강박에 자신을 몰아넣는다. 그럴 때 이 말을 떠올리라고 조언하고 싶다. 그리고 이 모든 두려움에서 자유롭다면 진짜 하고 싶은 일이 무언지 따져보라고. 소피 여성으로 살아가는 데 자부심을 느끼는 일, 다음 세대 여성들이 바람직한 사회인으로 성장하도록 이끄는 일, 그리고 파니의 말처럼 자기 믿음대로 밀고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민아 두 분의 의견에 동의한다. 오늘이 우리의 가장 젊은 날이지 않나. 특히 한국에서는 일과 삶의 밸런스를 지키기가 너무 어렵다. 제도적 장치도 미비하고. 이런 환경에서도 원하는 걸 계속해서 밀고 나간다면 얻을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패션을 통해 이루고 싶은 목표가 무언지 묻고 싶다. 파니 세상을 바꾸는 것, 덧붙여 패션을 통해 아이들에게 더 나은 세상을 남겨주는 것. 너무 큰 포부인가.(웃음) 소피 패션 산업의 구조를 바꾸고 싶다. 조금 더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서! 그리고 이 모든 가치를 베스티에르 콜렉티브라는 커뮤니티 안에서 나누는 지금이 좋다. 이민아 더 많은 사람들이 빈티지를 사랑하고 이해하게 되길, 또 그로 말미암아 패션의 소비 방식이 조금 더 환경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변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