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아더스토리즈와의 콜라보레이션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우연히도 타이밍이 잘 맞았어요. 코로나가 잠잠해지고 다시 런던으로 돌아갔을 때, 앤아더스토리즈로부터 S/S 시즌 콜라보레이션 제안을 받았거든요. 봄과 여름은 우리 브랜드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기도 하고요. 가볍고 섬세한 작업을 많이 하는 브랜드의 정체성을 잘 드러낼 수 있는 계절이니까요. 수잔 팡의 시그니처나 미디어가 주목했던 피스 등을 좀 더 상업화 해보았어요. 일상에서 활용하기 좋게, 또 입었을 때 더 편안하게요. 동시에 독특함도 놓치지 않으려고 했어요. 수공예 요소도 곳곳에 넣었죠.
이번 콜라보레이션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순간이 있다면요?
사실 저희 프로덕션이 규모가 아주 크지는 않아서, 구현하고 싶은 것을 못 하는 경우도 있는데요. 앤아더스토리즈는 그런 면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더 많았죠. 이번에 옷에 달 비즈를 만들면서 “혹시 글리터를 넣을 수 있을까요?”라고 물어봤는데, 앤아더스토리즈가 제 판타지를 현실로 구현해 줬어요. (웃음) 좋은 서프라이즈가 되었습니다.
평소 개인 작업에서도, 이번 콜라보레이션에서도 꽃이나 빛 같은 자연 모티프가 계속 등장해요. 수잔 팡이라는 디자이너에게 자연은 어떻게 영감을 주나요?
제가 항상 고민해 온 것은 ‘과연 모두가 공통으로 느끼는 아름다움이라는 게 있나? 그게 가능한가?’예요. 언젠가 스페인 그라나다에 가서 알함브라 궁전에 들른 적이 있는데요. 커다란 플라타너스 나무 아래에 있다가 문득 겹친 잎사귀 사이로 정오의 햇살이 비치는 모습을 봤어요. 잎들이 부딪히며 사그락거리는 소리도 들었죠. 그 순간 ‘아름답고 평화롭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자연의 리듬 속에서 저도 모르게 명상하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이런 자연의 패턴이 모든 사람을 연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누구나 꽃을 아름답다고 여기는구나!’ 싶었죠. 물론 딱 보기에 예뻐서이기도 하지만, 꽃은 우리 삶 속 성장의 패턴을 보여주잖아요. 그래서 저는 꽃을 추상적으로 만들어서 활용하기도 해요. 그러면 꽃을 볼 때 우리가 느끼는 감정과 더 가까워질 수 있거든요. 자연과 함께 한 기억, 자연의 이미지를 더 가져오는 거죠.
환상적이고 몽환적인 인상을 남기는 작업을 많이 하는데요. 이런 느낌을 좋아하는 이유가 있나요?
제가 어렸을 때는 디즈니, 만화, 바비 인형 같은 것이 한창 유행했어요. 덕분에 부모님이 바빠서 같이 시간을 못 보내줘도 저는 늘 즐거웠어요. 상상 속에서요. 전 이게 인간으로 사는 것의 아름다운 부분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도 상상을 통해서 더 행복해질 수 있다면, 그걸 제한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제가 브랜드를 통해서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바로 이것이에요. 쇼를 만들 때도 음악, 무대 디자인 등을 통해 여러 가능성을 품은 동화적인 세계를 그리려고 해요.
3D 프린팅이나 비즈 같은 입체적인 재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런 재료만의 매력이 궁금해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예술가 둘을 꼽자면, 한 명은 로댕이고 다른 한 명은 알렉산더 콜더예요. 모두 조각가예요. 로댕의 조각은 모든 앵글에서 새롭고 아름다운 그림처럼 보여요. 콜더는 (저처럼) 자연의 조화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는데요. 충돌하지 않고 아름답게 움직이는 것들이나 균형 등에 관심이 많았죠. 콜더의 작품은 볼 때마다 변화하는 듯해요. 이런 작품은 보는 사람에게도 재미를 주잖아요.
입체적인 요소를 통해 3차원을 넘어서 다른 감각을 자극하는 게 재밌어요. 비즈가 부딪치면서 나는 소리, 움직임, 흐름 같은 것을 생각하는 게요. 마치 아이들이 인형을 가지고 노는 것처럼 상상하고, 그것을 현실로 불러오죠. 옷으로 실험하는 게 마치 아이디어를 조각하는 과정처럼 느껴져요.
콜라보레이션 컬렉션을 보면서 ‘연결’이라는 키워드가 계속 떠올랐어요. 이번 컬렉션은 수잔 팡과 앤아더스토리즈를 연결로 탄생했죠. 또 수잔 팡은 패션이 내면과 세상, 그리고 자연과 사람을 연결하는 수단이라고 말하기도 했고요. 당신에게 ‘연결’은 어떤 의미인가요?
저는 시즌마다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질문에 답을 찾으려고 해요. 지금은 세계적으로 특수한 시기잖아요. 코로나 이후에 연결은 더 중요한 화두가 된 것 같아요. 계속 희망을 품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에서요. 더 어릴 때였다면 저도 분명 클리셰라고 생각했겠지만요. (웃음) 그럼에도 더 좋은 일이 있을 거라는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 필요하다고 봐요. 설령 100%의 확신이 아니라고 하더라도요. 그게 앞으로 더 많은 희망을 가져오지 않을까요?
특히 비즈로 장식한 크로셰 의상을 보면 불교에서 말하는 ‘인드라망’이 떠오르기도 해요. 이 역시 연결에 관한 개념인데요. 혹시 작업하실 때 실제로 인드라망을 생각하셨나요?
그렇게 해석해주시다니 영광인데요. 불교 철학에서 편안함을 느끼긴 하지만, 그건 너무나 맑고 아름다워서 제가 아직 절대 도달하지 못한 경지예요. 비즈는 제게 정화의 의미로 다가와요. 아침마다 햇빛을 받으며 명상하는 것을 좋아하는데요. 나뭇잎에 맺힌 물방울을 보면 ‘와, 너무 예쁘다!’ 싶죠. 아주 작고 단순한 것이지만, 그렇게 빛이 반사되는 모습에서 에너지와 정화의 감각을 느껴요.
말씀하신 크로셰 의상은 제 메인 컬렉션에서 영감을 받은 것인데요. 크로셰로 우리의 몸을 옭아매는 밧줄을 형상화했고, 거기에 비즈를 달아 사람들을 정화하고 해방하고자 했어요. 앤아더스토리즈와의 협업 컬렉션에서는 S/S 시즌을 기념해 가볍고,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겠네요. 아, 인드라망은 제가 꼭 다시 찾아볼게요.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