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속 한국 이번 출장 때는 집밥 생각이 전혀 나지 않았다. 매일 밤 수준 높은 한식당을 방문했기 때문이다. 파리는 갈 때마다 손맛 좋은 한식당이 생겨나고 있다. 막걸리와 김치전에 삼겹살과 곱창볶음까지 그야말로 한국의 맛을 그대로 옮겨왔다. 힘든 일정을 마치고 찾은 식당에 앉아 있으니 여기가 한국인가 싶을 지경이었다. 바쁜 일정 속 작은 위안이 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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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의 마지막 발자취를 따라 촬영에 필요한 풍경을 담기 위해 파리 근교 오베르쉬르우아즈로 떠났다. 이곳은 고흐가 죽기 전 70여 일 동안 머문 곳이다. 복잡하고 화려한 파리와 달리 한없이 고요한 정적이 흐르는 황야를 가로지르니 눈이 시릴 정도로 선명한 빛깔을 품은 밀밭이 펼쳐져 있었다. 사진 속 오목한 도랑은 고흐가 죽기 직전 거닐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 묘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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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스테이지의 순간들 화려한 런웨이 뒤의 백스테이지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 분주하다. 수십 명의 모델들이 동시에 헤어와 메이크업을 받고, 리허설 전후로 끊임없이 수정하는 등 수많은 일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 북새통 속에서 뜻밖에 반가운 얼굴들을 만났다. 특히 인상 깊었던 건 현재 가장 핫한 메이크업 아티스트 이사마야 프렌치! 이번 컬렉션 기간에만 두 번 만난 그는 에디터를 기억하며 따스하게 말을 건넸다. 이사마야 프렌치를 만났던 비비안 웨스트우드 쇼에는 팝 스타 샘 스미스가 등장해 두 눈을 의심하게 만들기도 했다. 이렇듯 쇼가 시작되기 전에 알게 되는 스포일러도 백스테이지의 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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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친구들 이번 출장은 좋아하는 동료들과 함께해 특별했다. 패션위크는 극도로 분주하고 바쁜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터라 나를 돌볼 시간 같은 건 바라지도 못하는데, 이번에는 달랐다. 일정을 마친 뒤 지친 몸을 이끌고 숙소로 돌아오면 친구들과 고생했다며 등을 토닥여주고 와인 한잔과 함께 마음을 나누는 밤을 날마다 보냈다. 그 덕분일까? 사진 속 우리는 지친 기색 하나 없이 내내 웃고있다. 마라톤처럼 기나긴 일정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던 건 다 이 친구들 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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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흐르는 시간 파리 일정은 그야말로 전쟁터였다. 매일 쉴 새 없이 패션위크 백스테이지 취재와 인터뷰를 마치고 숙소에 돌아오면 남은 촬영 준비로 마음 편히 잠잘 시간조차 없었다. 촬영 답사를 위해 우아즈강을 찾은 이날 역시 마찬가지였다. ‘빨리 찍고 가야지’ 마음먹고 도착했는데, 드넓은 강 위로 반짝이는 윤슬을 마주한 순간 그간 마음을 짓누르던 불안과 분주함이 모두 사라졌다. 우리는 그 윤슬을 사진으로 찍으면서 눈에도 많이 담자며 하염없이 바라봤다. 그날은 파리 패션위크 일정 중 처음으로 해가 뜬 날이었고, 그래서 바람이 한없이 포근했으며, 윤슬은 마치 보석 같았다. 몇 시간을 바라봐도 좋을 것만 같아서 노을이 지는 시간까지 기다리며 내내 친구들과 이야기했다. 오늘이 얼마나 행복하고 선물 같은 시간인지에 대해서. 파리에서 유일하게 시간이 느리게 흐르던 때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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