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옷을 입는지가 한 사람의 정체성을, 삶의 배경을, 역사를 표현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 이 말을 이렇게 바꿔도 좋겠다.
‘어떻게 만든 옷을 입는지가 한 사람이 세계를, 인류를 대하는 방식이자 태도를 표현한다’고. 이 사실을 제냐로부터 배웠다.

“The second best thing we do is clothing. The first is Oasi Zegna.” 밀라노 제냐 본사 중정 벽 한 면을 크게 채운 문장이다. 옷 만드는 일을 최우선으로 꼽지 않는 패션 브랜드라니. 하지만 오직 제냐이기에 이 문장의 진의는 다르게 읽힌다. 지난 한 세기 동안 이들 스스로 진화를 거듭하며 이룩해낸 인류의 테일러 문화를 익히 알기에 이 문장은 오아시 제냐(Oasi Zegna, 이탈리아 북부 피에몬테의 비엘라 알프스에 위치한 100㎢ 면적의 자연 영토)가 이들의 근본적 가치라는 비전 선언임을 우리는 안다.

지속 가능성(sustainability)이 시대의 보편적 구호가 된 지금, 제냐는 미래를 위한 고민과 실천을 1백여 년 앞서 시작했다. 1910년, 브랜드를 설립하던 시작점부터 에르메네질도 제냐(Ermenegildo Zegna)는 양모 공장을 둘러싼 척박한 빈 산, 100㎢ 면적의 오아시 제냐에 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단순히 직물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와 주변 환경을 발전시키고 다음 세대가 이어갈 삶의 질까지 약속하겠다는 비전을 한 세기 이전부터 품어온 것이다. 1백여 년의 시간 동안 시도와 실패가 축적되며 이제는 50만 그루의 나무와 다양한 생물이 살아가는 터전이 됐다. 지역 마을과 빼어난 자연환경을 연결하기 위해 만든 파노라미카 제냐(Panoramica Zegna)라는 26km의 길은 오아시 제냐가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최적의 장소로 꼽히는 결정적 이유가 됐다.

지난 4월 14일, 밀라노 제냐 본사에서 첫선을 보인 오아시 제냐 북, <BORN IN OASI ZEGNA: THE BOOK>에는 지난 1백여 년 동안 무수히 시도하고 실험하며 밀도를 높여온 이들의 철학과 가치가 오롯이 담겨 있다. 옷 한 벌을 만들어온 신중하고 섬세한 방식과 브랜드를 이끌어온 철학과 태도는 책을 엮는 방식에도 동일하게 적용됐다. 간결하면서도 아름다운 디자인, 실험적이면서도 시각적 즐거움을 선사하는 안정적인 디자인 레이아웃은 제냐가 추구해온 디자인 방향과 일맥상통한다. 소재에 대한 자부심은 책의 물성에서도 고스란히 느껴진다. 나무의 질감을 표현한 하드 커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전해지는 묵직한 종이의 질감과 사람과 자연, 미래를 준비하는 오늘에 대한 메시지를 담은 삽화의 색감은 우리가 사랑해온 아날로그가 무엇이었는지 새삼 떠올리고 감탄하게 한다. 최대치로 세공한 마스터피스의 가치, 잘 다져진 제냐 수트 한 벌에서 느끼던 그 황홀감이 한 권의 책 안에 밀도 높게 구현돼 있다.

4월 16일부터 21일까지 이어진 밀라노 디자인 위크 기간 동안 ‘오아시 제냐 북’의 하이라이트를 오감으로 경험할 수 있는 전시가 제냐 본사에서 열렸다. 미디어 아트와 공간 연출 등 몰입감 높은 전시가 펼쳐졌다. 어떤 옷을 입는지가 한 사람의 정체성을, 삶의 배경을, 역사를 표현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 이 말을 이렇게 바꿔도 좋겠다. ‘어떻게 만든 옷을 입는지가 한 사람이 이 세계를, 인류를 대하는 방식이자 태도가 된다’고. 이 사실을 제냐로부터 배웠다. 오아시 제냐 북은 (중국 본토를 제외한) 전 세계 제냐 스토어와 제냐 공식 웹사이트에서 구입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