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전 홍콩에 다녀온 지인에게 볼드한 ‘시계 반지’를 선물 받았다. 너무 커서 엄지손가락에만 착용할 수 있다는 게 아쉬웠지만, 시계와 주얼리의 경계를 허무는 도발적 디자인이 단조로운 일상에 변화를 주는 듯해 애용하고 있다. 특히 테일러 스위프트가 손목시계를 초커로 스타일링한 모습을 본 후로는 이런 ‘당돌한 애티튜드’에 대한 망설임이 사라졌다. 시계를 독특하게 착용하는 스타일은 과거 다이애나 왕세자비도 시도한 적이 있다(시계 브레이슬릿을 초커로 활용했다). 하지만 현대 스타일의 새로운 시작점은 단연 리한나라고 할 수 있다. 그는 2023년 6월 퍼렐 윌리엄스의 루이 비통 데뷔 컬렉션에 참석할 때, 제이콥앤코의 47mm 화이트 골드 브릴리언트 플라잉 투르비용(Brilliant Flying Tourbillon)을 목 한가운데에 차고 등장했다. 총 3 백68개, 30캐럿의 다이아몬드를 세팅한 이 시계는 손목이 아닌 목에서 반짝이며 한눈에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는 시계 초커 아래로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레이어링해 ‘블링블링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몇 달 후 2023 F1 월드 챔피언십 라스베이거스 그랑프리에 참석한 리한나는 다이아몬드 시계를 발목에 착용해 럭셔리한 ‘워치 앵클릿’마저 선보였다. 발목을 감싸는 모던한 라인의 스트랩과 시계 페이스 전체에 장식된 총 70캐럿의 다이아몬드는 패션을 완성하는 최후의 한 방을 날렸다. 오드리 헵번이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발목에 시계를 착용하고 나온 장면을 오마주한 것이었을까? 어쨌든 이후 고가의 다이아몬드 시계를 ‘의외의’ 위치에 연출하는 스타일은 리한나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리한나가 열어젖힌 트렌드를 또 다른 차원으로 끌어올린 것은 테일러 스위프트다. 그는 제66회 그래미 어워드에서 빈티지 아르데코 시계를 초커로 리폼한 ‘스테이트먼트 주얼리’를 선보였다. 초커 아래로 4줄의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레이어드한 모습은 벨 에포크 시대 상류층 여인들이 겹겹이 두르던 초커를 떠올리게 했다. 리한나의 시계 초커와 다른 점이 있다면 시계도 초소형인 데다 블랙 다이아몬드를 메인 스톤으로 사용해 흑백의 대비를 강조한 점이다. 이 프로젝트를 위해 셀럽들의 주얼리 디자이너인 로레인 슈워츠(Lorraine Schwartz)는 다양한 컷의 블랙 다이아몬드 총 3백 캐럿을 스트랩에 장식해 화이트 다이얼과의 대비를 극대화한 현대적인 초커를 탄생시켰다. 테일러 스위프트는 이를 스키아파렐리의 화이트 코르셋 드레스에 블랙 오페라 장갑 차림과 완벽하게 조화시켜 21세기 버전의 벨 에포크 룩을 완성했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테일러 스위프트가 인스타그램 프로필 사진을 흑백으로 변경한 것과 열한 번째 앨범 커버를 흑백으로 디자인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가 부각하고 싶었던 건 ‘블랙 앤 화이트’ 룩인 것이다. 이와 더불어 시간을 자정으로 설정한 건 ‘올해의 앨범상’을 수상한 음반이 자정에 발매되었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이처럼 매우 전략적인 블랙 앤 화이트 초커 스타일링은 패션계와 주얼리계 양쪽에서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그나저나 그의 초커에 사용된 빈티지 시계의 정체가 너무 궁금해 사진을 확대해보니 콩코드(Concord)라는 작은 글씨가 보였다. 콩코드는 20세기 전반에 까르띠에, 티파니, 반클리프 아펠과 협력해 고급 시계를 제작한 회사다. 1942년 제 2차 세계대전 중에는 해리 트루먼 미국 대통령이 이오시프 스탈린과 윈스턴 처칠에게 선물한 적도 있다.
손목시계는 20세기 들어 주로 남성들이 착용하는 것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군인, 조종사, 잠수부, 우주 비행사처럼 시간의 중요성이 절대적으로 강조되는 특정 직업군을 위한 실용적 가치를 우선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초기의 손목시계는 귀부인들의 패셔너블한 액세서리였다. “손목시계를 차는 대신 치마를 입겠다”는 남자들이 있을 정도로 19세기까지만 해도 여성용 팔찌의 한 종류로 여겨졌다. 세계 최초로 ‘손목에 시계를 착용한’ 영예의 인물도 여성이었다. 여러 가설이 있지만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의 ‘팔 시계(arm watch)’가 최초라는 설이 유력하다(세계적인 워치 브랜드 브레게의 자료에는 1812년 나폴레옹 1세의 누이이자 나폴리 왕비였던 카롤린 뮈라를 위해 최초의 손목시계를 제작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어쨌든 여성이다). 여왕의 총애를 받은 후에 레스터 백작이 된 로버트 더들리가 1571년에 선물한 것인데, 보석이 장식되었다는 것 외에는 시계의 형태에 대해 알려진 바는 거의 없다. 아마도 시계보다는 팔찌가 본체인 ‘시계 달린 팔찌’였을 것으로 추측할 뿐이다. 하지만 이 시계 팔찌보다 여왕이 더 애용한 것은 시계가 달린 반지였다고 한다. 주로 알람을 위한 것으로, 설정된 시간에 작은 프롱이 여왕의 손가락을 가볍게 긁어 중요한 업무를 상기시켰다. 어쩌면 그 업무란 더들리와의 랑데부였을지도! 사실상 휴대용 시계의 유행은 회중시계에서 출발했다고 볼 수 있다. 한 예로 영국의 찰스 2세는 회중시계를 들고 다니면서 유럽과 북미의 상류층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다. 당시 회중시계는 현대의 손목시계와 같은 역할을 했는데 안전상의 이유로 주로 조끼 주머니에 넣어 착용했다. 하지만 이런 스타일은 상류층 남성들에게나 쓸모 있을 뿐 여성에게는 그다지 유용하지 않았다.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여성들은 주머니가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자기만의 시계가 필요했던 여성들은 회중시계를 목걸이, 팔찌, 브로치, 샤틀렌(허리 장신구) 등 다른 주얼리에 부착해 다양한 방식으로 즐겼다. 이런 역사적 맥락에서 보면 여성들이 시계 디자인과 스타일의 발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수세기에 걸쳐 다양한 위치에 시계를 착용하던 인류는 이제 또 다른 혁신적인 방식으로 시계를 즐기고 있다. 호주머니에서 은밀하게 꺼내 보던 시계가 손목을 넘어 어느덧 온몸으로 확장되어 새로운 스타일 트렌드를 제시하고 있는 것. 가수 올리비아 로드리고는 <롤링스톤> 화보에서 시계로 만든 스커트를 입고, 팔뚝과 허 벅지, 종아리, 발등에도 시계를 착용한 채 포즈를 취했다. 여성 래퍼 메건 더 스탤리언은 컬러풀한 다이얼의 시계 반지를 모든 손가락에 착용한 모습을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공개 했다. 한편 배우 줄리아 폭스는 브라톱과 미니스커트, 가방과 샌들에 수십 개의 시계를 부 착한 ‘하드코어’ 룩으로 시선을 집중시켰다. 한편 일상에서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착용법을 선보인 이도 있다. 에마 체임벌린은 미우미우 2024 S / S 쇼에서 까르띠에의 베누아 시계를 스트랩만 연장해 심플한 초커로 연출했다. 시계 케이스를 긴 벨벳이나 가죽 위에 고정해 길이만 연장하면 DIY로도 충분히 구현할 수 있는 스타일이다. 참고로 그는 넥타이 위에 시계를 꽂기도 했다! 최근에는 과거와 현대 감성을 조합한 시계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가슴께에 내려오는 소투아 목걸이 시계, 옷깃이나 소매에 꽂는 라펠 핀 시계, 심지어 드레스 숄더에 착용해 데콜테를 강조하는 숄더 브로치 시계도 만날 수 있다. 모두 역사 속에서 복각된 디자인이지만 동시대적 미감 덕분에 참신한 매력을 발산한다. 한마디로 ‘추억은 기본이고 세련은 옵션’인 스타일이다. 이처럼 실용의 세계에서 감성의 세계로 넘어간 21세기의 시계는 다양한 영감과 창의성이 넘치는 트렌드세터의 특별한 아이콘으로 낙점되어 자유를 맘껏 구가하고 있다. 기존의 관습과 차별화된 기준으로, 순응을 벗어나 개성을 표출하는 당당함은 전복적인 쾌감마저 안긴다. 주얼리 전문가로서는 시계의 영역을 확장하고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도전적 스타일링에 열렬한 지지를 보내고 싶다. 어제의 혁신이 곧 오늘의 클래식이 되는 것은 불변의 진리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