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9일부터 15일까지, 제네바에서 펼쳐진 ‘워치스 앤 원더스 2024’에 머문 시간의 흔적. 마리끌레르 에디터들의 오감을 사로잡은, 사사롭고 매혹적인 순간에 대하여.
발길을 끄는 히스토릭 워치 북|오메가의 역사적 문워치만을 집중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책에서부터 롤렉스와 까르띠에의 임파서블 컬렉션을 총망라한 책까지, 워치 히스토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워치 메종들의 대표적인 양장본을 한데 모은 이곳! 작지만 알찬 워치 북스토어가 팔렉스포를 오가는 이들의 발걸음을 붙잡았다.
특별하고도 슬픈 시간의 기록|워치스 앤 원더스의 메인 기지와도 같은 팔렉스포 현장. 이곳을 쉼 없이 돌아다니다 보니 한켠에 ‘TimeKeepers’라는 타이틀로 흥미로운 전시가 펼쳐지고 있었다. 겉보기에 아름다운 사진과 달리 세계적인 재난의 순간을 기록한 시계를 모아놓은 특별한 큐레이션의 사진전이었다. 이 중 가장 눈길을 끈 건 ‘Titanic, 15 April 1912, 6:08’. 그 유명한 타이타닉호의 침몰 현장에서 건져 올린, 6시 8분이라는 시각을 가리키는 포켓 워치를 보며 담담한 시선에서 더욱 묵직한 슬픔을 느낄 수 있었다.
소리로 듣는 시간의 매혹|팔렉스포를 벗어나 영화 속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드넓은 정원이 멋스러운 빌라에 당도하자 구찌 하이 워치 메이킹의 세계가 펼쳐졌다. 고풍스러운 방 안에 자리한 장인의 손길이 구찌의 새로운 미닛 리피터 워치로 향했다. 그러자 청아한 소리가 울려 퍼지는 게 아닌가. 이 아름다운 목소리의 주인공은 기계식 시계의 정수를 보여주며 클래식한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구찌 25H 미닛 리피터 워치’. “몇 시인지 다시 맞춰보시겠어요?” 두 귀를 쫑긋한 채 1시간, 15분, 1분 단위로 울리는 차임 소리의 횟수를 셌다. 하나, 둘… 지금도 그 아름다운 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
퐁뒤에 푹 빠져|제네바에 다시 오면 가려고 마음먹은 퐁뒤 레스토랑 리스트 중 두 곳을 섭렵했다. 바로 퐁뒤 전문 레스토랑 레 아르뮈르와 카페 뒤 솔레이. 우선 레 아르뮈르(Les Armures) 호텔의 레스토랑은 유서 깊은 제네바 구시가지에 위치해 있으며 옛 무기고 건물을 사용한 역사적인 공간이 특징. 벽면에는 각종 옛 무기와 함께 조니 클루니 등 이곳을 다녀간 수많은 셀러브리티의 사인을 담은 액자가 걸려 있어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한편 카페 뒤 솔레이(Café du Soleil)는 아름다운 야외 공간에서 청량한 날씨를 온전히 즐길 수 있는 것이 큰 장점. 레 아르뮈르에 비해 좀 덜 구릿한 치즈 퐁뒤를 가볍게 맛볼 수도 있다. 무엇보다 내가 퐁뒤에 빠진 결정적 이유인 ‘퐁뒤 누룽지’, 그러니까 바닥에 눌어 붙은 치즈를 긁어 먹을 때 느껴지는 고소한 맛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불가리 매뉴팩처의 장인정신|4월 11일, 불가리 파인 워치 메이킹의 정수를 살필 수 있는 불가리 르상티에 매뉴팩처(Le Sentier, Bvlgari Manufacture de la Haute Horlogerie) 투어에 참석했다. 제네바 시내를 벗어나 한적한 풍경을 따라 한 시간 남짓 시간이 흐른 뒤 당도한 이곳. 스위스의 워치메이킹과 이탈리아의 감각이 조화를 이루는 작업 현장에서 미닛 리피터의 차임 소리를 듣고, 장인들의 정교한 손길을 살펴보았다. 무브먼트 플레이트 커팅부터 광을 내는 베블링, 그리고 조합하는 어셈블링, 마지막으로 점검하는 피니싱 체크까지 일련의 워치메이킹 과정을 압축적으로 살필 수 있었다. 너무나도 작고 소중한 불가리의 피콜로시모 무브먼트를 비롯해 여러 작디작은 무브먼트 하나에 담긴 수백 개의 부품처럼 빼곡하게 자리한 시간과 노력을 오롯이 느끼며.
반클리프 아펠의 시적인 밤|지난해에 이어 제네바 공원의 밤을 더욱 아름답게 밝힌 반클리프 아펠의 워치스 앤 원더스 프레스 디너. CEO 니콜라 보스를 비롯해 전 세계의 반클리프 아펠 패밀리와 프레스가 자리한 공간에는 메종 특유의 시적인 서정성이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