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창업가를 발굴하고 후원하는 까르띠에의 사회 공헌 프로그램 ‘까르띠에 여성 창업 이니셔티브.’ 짙은 여운을 남긴 열일곱 번째 해의 어워드에 마리끌레르 코리아가 동행했다.

버지니아 울프는 1929년에 발표한 에세이 <자기만의 방>에서 이렇게 말한다. “각자가 연간 5백 파운드와 자기만의 방을 가진다면, 그리고 우리가 스스로 생각하는 것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용기와 자 유의 습성을 가진다면, 우리가 공동의 거실에서 탈출하여 인간을 서로에 대한 관계에서만이 아니라 리얼리티와 관련하여 본면, (중략) 그때에 그 기회가 도래하고 셰익스피어의 누이였던 그 죽은 시인이 종종 스스로 내던졌던 육체를 걸치게 될 것입니다.”1 여성이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갖춰야 할 필요조건을 나열한 이 문장은 1백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 곁에 형형하게 살아 있다. 누구나 알지만 손에 넣기 어려운 진리로, 시대와 여성을 관통하는 일종의 판타지로. 2006년 시작된 까르띠에의 사회 공헌 프로그램 ‘까르띠에 여성 창업 이니셔티브’의 취지와 역사를 마주하며 어쩐지 <자기만의 방>이 떠올랐다. 각자의 분야에서 정진하는 여성에게 자기만의 방으로 은유되는 더 나은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지 꾸준히 목소리를 내고 힘을 보태왔기 때문이다. 메종에서 발표한 다음의 서문(까르띠에 인터내셔널 회장 겸 CEO 시릴 비네론과 까르띠에 여성 창업 이니셔티브 프로그램 디렉터 윈지 신이 발표한 서문)이 이런 시각을 뒷받침한다. “여성 창업가들은 아주 오랫동안 성 편견, 사회적 기대, 롤 모델의 부재, 자금 지원 및 연관 네트워크의 부족에 직면해왔습니다. 프로그램은 변화를 주도하는 여성 창업가들의 잠재력 발휘를 돕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지속 가능한 사회적, 환경적 영향을 미치며 국제적 과제에 솔루션을 제안하는 모든 여성 창업자-울프의 말에 빗대면 생각하는 것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용기와 자유의 습성을 가졌으며 공동의 거실에서 탈출해 인간을 서로의 관계만이 아니라 리얼리티와 관련해 보는 여성-에게 열려 있는 프로그램은 총 9개 지역(라틴아메리카 및 카리브해·북미·유럽·프랑스어권 사하라 이남 아 프리카·앵글로폰 및 루소폰 아프리카·중동 및 북아프리카·동아시아· 남아시아 및 중앙아시아·오세아니아) 어워드와 두 개 분야(과학 및 기술 개척자, 다양성·형평성·포용성) 어워드로 구성된다. 에디션당 총 지원금은 2백만 달러에 달하며, 재정적 지원뿐 아니라 1년간의 펠로우십을 통한 인적 자본 지원, 미디어 노출 및 네트워킹 등 사회적 자본 지원이 뒤따른다. 자신이 만들어낸 것을 더 널리 알릴 기회와 세계에서 활약하는 동료들을 비롯해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무형의 가치 를 얻게 되는 셈이다.

모든 과정이 저마다 의미를 가지겠으나, 각국 프레스 앞에서 비전을 설명하고 상을 품에 안아 드는 어워드야말로 1년에 걸친 여정의 하이라이트일 것. 지난 5월 22일 중국 선전에서 열린 2024 어워드에는 여성, 그리고 연대라는 키워드를 공유하는 마리끌레르 코리아가 참석해 현장을 기록했다. 여성이 번영할 때 인류가 번영한다는 메종의 오랜 신념을 다시 한번 강조한 까르띠에 인터내셔널 회장 겸 CEO 시릴 비네론(Cyrille Vigneron), 불균형한 여성 창업자 비율에 문제를 제기하고 사회적 책임을 논한 까르띠에 여성 창업 이니셔티브 프로그램 디렉터 윈지 신(Wingee Sin), 1만 명 넘는 졸업생을 배출한 코딩 장학 프로그램 코드 위드 클로시(Kode With Klossy)의 설립자인 슈퍼모델 칼리 클로스(Karlie Kloss)까지. 까르띠에 여성 창업 이니셔티 브에 애정을 가진 여러 인물의 연설과 부문별 수상이 이어졌으며 동 아시아 부문에서는 한국 펨테크 기업인 세이브앤코의 박지원 대표가 1위로 선정되어 반가움을 더했다. 자신만의 방식과 속도로 더 나은 내일을 이끄는 33명의 펠로우, 그리고 현대판 버지니아 울프를 조력하기 위해 사회적 영향력을 아낌없이 발휘하는 까르띠에. 이들이 빛낸 건 하루의 밤이 아니라 어쩌면 나아가고자 하는 모두의 방이었는지도 모른다.

세이브앤코 박지원 대표 인터뷰

올해 제17회를 맞은 까르띠에 여성 창업 이니셔티브(이하 CWI)에서 동아시아 부문 수상자로 선정됐다. 지금까지 다양한 상을 받아왔을 텐데, 이번 자리가 갖는 특별한 의미가 있나? 모두가 아는 브랜드에서 상을 받았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 사실 섹슈얼 웰니스나 섹슈얼 헬스라는 부문을 낯설어하는 사람이 아직 많다. 역대 CWI 펠로우 중성 건강을 다룬 기업 역시 세이브앤코가 처음이고. 그럼에도 수상했다는 사실이 우리에게는 일종의 검증을 통과한 느낌을 준다. 영광스럽다.

동아시아에서 활약하는 여러 기업 가운데 세이브앤코가 돋보인 이유는 무얼까? 성장성이나 수익성을 보는 다른 창업 경진 대회와 다르게 CWI는 임팩트에 초점을 맞춘다. 왜 이러한 비즈니스를 시작하게 됐는지, 어떤 동기가 있었고 어떤 과정을 겪었는지, 어떤 변화를 만들고 있는지, 팀은 어떻게 구성했고 내부 문화는 어떠한지 등등. 사업성보다도 우리가 가진 취지에 공감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몇 년간 낙태율 최상위, 콘돔 사용률 최하위를 기록하며 성 문화 후진국이라는 오명을 얻었다. 여성이 성에 관해 발화하는 게 여전히 터부시되기도 하고. 직접 겪어본 다른 나라의 실정은 어떤가? 여성의 콘돔 구매 비율을 예로 들면, 한국은 겨우 10%밖에 되지 않는 반면 미국은 40~45%에 육박한다. 여성들이 자신을 위해 콘돔을 구입하는 게 자연스러운 문화다. 그러나 산업이나 제품을 들여다보면 비슷하다. 미국이나 유럽에도 여성의 몸을 고려하기보다 남성의 니즈에 맞춘 제품이 대부분이다.

이토록 보수적인 나라에서 성 관련 용품을 만들기까지 어려움도 꽤 겪었을 것 같다.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동력은 어디에서 얻었나? 쉽지 않은 과정이리라 각오하고 시작했다.(웃음) 심지어는 제조사에서조차 말릴 정도였으니까. 여성이 사지 않는데 여성을 대상으로 한다는 게 어불성설이라 여긴 거겠지. 그럼에도 이런 제품의 필요성을 느꼈고, 나와 같은 사람이 많을 거라 믿었다. 언젠가는 세상이 달라질 거라는 기대도 있었고. 무엇보다 이 제품을 판매하고 구매하는 행위 자체가 성 문화 개선에 보탬이 되리라는 희망으로 버텼다.

생산과정에서는 어땠나? 좋은 성분, 윤리적인 선택은 어렵고 비싸다. 경제적인 결정을 내릴 것이냐, 더 나은 제품을 고집할 것이냐를 두고 기로에 서는 순간이 종종 있었다. 그러나 처음부터 품질을 두고 타협하지 않기로 정해두었기 때문에 큰 갈등은 없었다.

상품과 더불어 가치를 파는 기업이기에 그 대표로서 감당하는 무게가 상당할 듯하다. 세상은 때로 어떤 목소리를 내는 사람에게, 그 자신의 관점까지 오점 없이 완벽하기를 요구하지 않나? 맞다. 사실 세이브앤코의 목표는 단순하다. 여성의 성 건강을 위하고, 사회적 편견을 깨뜨림으로써 건전한 성 문화를 만드는 것. 물론 임팩트 비즈니스이기 때문에 여러 결정을 내릴 때 좀 더 윤리적인 편을 택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럼에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 그럴 때 “좋은 일 한다더니 왜 이건 이렇게 했냐”라는 식의 질타가 쏟아지기도 한다. 그러나 모두에게 완벽한 걸 만들 수는 없지 않나. 작은 의견에 신경 쓰다 보면 핵심 가치를 좇기 어렵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자는 것이 지금의 결론이다.

세이브앤코의 기업 설명 중 ‘현대적 여성스러움’을 좇는다는 부분이 눈에 띈다. 사실 여성스러움이라는 단어가 지닌 부정적 스테레오타입이 먼저 떠오르거든. 19세기 미국에서 원하던, 가정성이라는 잣대에서 비롯된 어떤 뉘앙스 말이다. 세이브앤코가 규정한 현대적 여성스러움은 어떤 모습인가? 남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한다. 여성이니 어때야 한다기보다는 자신이 자신을 정의 내릴 수 있는 상태를 뜻한다. 스스로에게 만족하고, 스스로 어떤 결정을 내린다면 그게 뭐든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현대적 여성스러움이란 이런 사고방식을 가진 여성에 관한 이야기라고 말할 수 있겠다.

창업가에 관한 데이터는 아니지만, 조사 결과 한국 5백대 기업 중 여성 대표이사 비중이 2.4%에 불과하다고 한다. 제도적 차원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낀다. 외국에서 일하다 보면 한국의 저출산 문제에 대해 많은 질문을 받는다. 여성이 아이를 낳고 기르기 힘든 사회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일하는 여성들이 아이를 포기하는 경우가 잦은 것 같다. 정부 차원에서 이미 노력을 기울이고 있겠지만, 실질적인 해결책이 나오면 좋겠다. 기업마다 성평등이 잘 유지되고 있는지도 잘 살펴야 하고.

시대가 많이 변했다고 해도, 아직까지 아이를 두고 출근하며 죄책감을 느끼는 엄마가 많다. 맞다. 그래서 CWI 프로그램에 참가하며 굉장히 놀랐다. 창업을 하고 회사를 키워가는 와중에도 아이를 여럿 낳고 양육하는 사례를 쉽게 접했기 때문이다. 육아에 대한 주변과 사회의 분담이 잘 이루어지는 것 같다. CWI만 해도 여러 세션에 참여하는 동안 아이를 돌봐줄 사람을 구할 수 있도록 금전적으로 지원해준다. 까르띠에가 여성 펠로
우를 세심하게 배려하고 있다는 걸 느낀 지점이다. 이번 출장도 열흘에 걸친 일정인데, 아이가 있었다면 참석하기 결코 쉽지 않았을 거다.

세이브앤코에도 여성 직원이 많은가? 전원 여성이며 육아 중인 직원도, 육아 때문에 일을 그만두었다가 재취업한 직원도 있다. 작은 회사라 아직 완벽한 복지 제도를 갖추지 못했지만, 모두 유연근무를 하고 시간을 자유롭게 쓰도록 했다. 여성이 일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고 싶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려움을 딛고 목표를 향해 정진하는 여성들이 있다. 선배로서 한마디 남긴다면?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했으면 좋겠다. 시도하지 않으면 실패도 없지 않나. 용기를 가지고, 실패하더라도 배우고 성장하길 바란다.

브랜드를 통해 이루고 싶은 목표는? 사실 세이브(saib)는 편견이라는 뜻의 바이어스(bias)를 뒤집어 배열한 단어다. 여성의 생애 주기에는 늘 편견이 따른다. 피임, 섹스, 임신, 임신 실패, 신체적 변화, 출산, 출산 이후, 갱년기, 완경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이 모든 단계가 아직까지도 거론하기 창피한 주제로 여겨진다. 부정적 인식을 자연스럽고 긍정적인 톤으로 바꿔나가며 세상의 여성들과 함께 나이 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