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동경한다. 유명한 셀럽을 향한 외적인 동경부터 가장 나다운 나를 향한 내적인 동경까지. 때론 과거의 영광을 그리워하며 그 시절을 동경하기도 한다. 이것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모두가 가지고 있는 인간 본연의 열망이다. 패션 산업이 움직이고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근래에 가장 힙하다고 정의 내려진 트렌드를 살펴보면 젠체하고 고고하던 트렌드와는 사뭇 결이 다르다. 방 한구석 어딘가에 있던 옷들을 괴짜같이 조합한 듯한 긱 시크부터 쉽게 입어서는 안 될 암묵적 금기처럼 느껴지던 러플과 리본, 핑크로 점철된 차일드후드 코어까지. 메가트렌드로 자리 잡은 뉴스탤지어(newstalgia)에서 파생된 트렌드지만 눈이 휘둥그래질 정도로 대담한 스타일을 남의 시선 신경 쓰지 않고 거리낌 없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한다. 좀 더 본능적으로 무엇을 입고 싶은지에 대한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이들이 늘어난 것은 이전과 확연히 다른 양상. 여기서 뉴스탤지어란 새로운(new)과 노스탤지어(nostalgia)의 합성어다. 과거를 그리는 향수를 현대에 불러와 재해석하는 것으로 사람들이 불확실한 미래 탓에 새로운 것보다 이미 수차례 검증받은 것을 선호하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2000년대를 휩쓴 보호 시크가 2024년에 새롭게 대두하는 것도 이러한 현상과 결을 같이한다고 할 수 있다. 혹자는 보헤미안 무드는 매 시즌 있었다고 항변할 수도 있지만 이번 시즌엔 그 조짐이 확연히 다르다.

그 포문을 연 것은 끌로에에 새롭게 부임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셰미나 카말리의 2024F/W 컬렉션. 바닥까지 휩쓰는 긴 러플을 휘날리며 첫 번째 보헤미안이 등장했을 때 우리 모두는 감지했다. 보헤미안 붐이 다시금 패션 월드의 문을 거세게 두드리고 있다는 것을! 그는 2000년대 초반부터 20년간 끌로에에 몸담으며 보호 시크의 전성기를 가장 가까이에서 실감한 디자이너 중 하나다. 카말리는 1970년대에 끌로에를 이끌던 칼 라거펠트가 설계한 스타일을 기반으로 가장 동시대적 보호 시크란 무엇인지에 골몰했다. 그가 제시한 보호 시크 룩은 언뜻 보면 보헤미안이 아닌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진부한 보헤미안적 클리셰 요소를 최대한 제외했다. 그리고 자연스러운 여성성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했다. 사랑스러운 색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시폰과 레이스, 레더, 러플 등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방식. 또한 시에나 밀러부터 알렉사 청 등 2000년대 보호 시크 전성기를 이끈 이들을 쇼장 첫 줄에 나란히 앉혀, 마치 그때로 돌아간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성공적으로 트렌드의 귀환을 알린 끌로에 외에도 보헤미안 바이브는 2024 F/W 컬렉션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먼저, 흔들림 없이 보호 시크 외길을 걸어온 이자벨 마랑을 빼놓을 수 없다. 마랑은 풍성하고 고급스러운 원단과 율동감 넘치는 프린지 장식으로 유려한 실루엣을 만드는 데 집중하며 트렌드의 귀환을 반겼다. 버버리와 알라이아는 두꺼운 털실을 사용해 블라우스나 소매 혹은, 원피스 밑단을 과감하게 장식하는 등 절제되고 모던하게 녹여내는 영리한 방식을 취했다. 보테가 베네타는 날염 프린트를, 페라가모는 프린지를 활용해 자유분방한 우아함을 가미하며 보헤미안 감성을 투영했다. 특히 유려한 컷아웃 드레스에 깃털과 프린지, 독특한 파이핑을 더한 디테일이 눈길을 사로잡는 루이 비통의 레이어드 드레스는 보호 시크 스타일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셰미나 카말리는 말했다. “이 옷을 입은 여성들이 진정한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를 바라요.” 이 말은 새로운 시대의 보호 시크 스타일을 대하는 마음가짐과 태도에 길잡이가 되어주지 않을까? 보헤미안 스타일이 오랫동안 견뎌온 소녀 같은 유약함, 자칫하면 스테레오타입의 여성미가 부각되거나 진부하다는 프레임과 작별을 고할 때다. 보호시크는 성숙한 여성성의 온전한 회복과 내면의 자유의지를 되살려내는 가장 동시대적 트렌드로 진화 중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