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ire Choisne

당신에게 자연이라는 주제는 늘 영감의 원천인 것 같다. 지난 시즌 아이슬란드와 그곳의 물을 조명한 ‘오어 블루(Or Bleu)’ 컬렉션도 매우 인상적이었는데, 이번에는 ‘길들여지지 않은 자연’을 주제로 매우 정교하고 서정적인 주얼리를 탄생시켰다. 2025 ‘이스뚜아 드 스틸’ 하이 주얼리 컬렉션에 대해 설명해주기 바란다. 부쉐론은 자연을 사랑해요. 저 역시 그렇죠. 질문에서 언급한 지난 시즌 오어 블루 컬렉션도 그렇고, 우리는 자연을 모티프로 한 환상적인 주얼리 아카이브를 많이 보유하고 있어요. 그래서 올해 첫 번째 챕터인 이스뚜아 드 스틸 컬렉션 역시 자연을 조명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오는 7월에 다시 한번 자연을 주제로 한 두 번째 챕터를 선보일 거예요. 이번 컬렉션에서는 프레데릭 부쉐론이 자연을 모티프로 작업할 때 어떤 방식으로 접근했는지 보여주고 싶었어요. 저는 여러 주얼리 하우스를 경험했기 때문에 메종 부쉐론, 특히 프레데릭 부쉐론의 작업 방식과 차이점을 명확히 이해하고 있어요. 프레데릭 부쉐론은 특정한 한 가지 식물만을 고집하지 않았어요. 우리가 쉽게 알아볼 수 있는 갈대나 아이비 같은 식물부터 인내와 회복력을 상징하는 링곤베리, 절제와 고독을 나타내는 엉겅퀴 등 수많은 식물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했죠. 저는 이런 점에 매료됐어요. 그는 꽃보다 잎에 주목하기도 했는데, 이런 방식은 매우 강렬한 메시지를 담고 있어요. 볼륨감과 움직임 등을 고려하면 매우 현실적인 접근이죠. 그의 작품은 다이아몬드를 더한 자연이라고 할 만큼 생생하고 아름다워요. 또 몇몇 곤충도 작품에 포함되어 있죠. 실제 자연 생태계를 보여주는 듯한 동식물의 조화. 저는 그가 자신의 작품에 더 많은 생명력을 불어넣고 싶어 했다고 느껴요. 이것이 바로 프레데릭 부쉐론의 레시피죠. 저는 그가 추구한 방식을 따르며, 마치 자연이 몸을 감싸는 듯한 느낌으로 착용하는 주얼리를 구현하고 싶었어요. 완전히 새로운 방식이죠. 이를 통해 컬렉션의 주제인 길들여지지 않은 느낌을 더욱 강조하려고 했어요.

인위적인 장식이나 꾸밈 없이 자연의 모습을 매우 섬세하게 균형 잡힌 디자인으로 구현했다. 심지어 나방조차 아름다워 보이는 이번 컬렉션에서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무엇인가? 나방과 파리 같은 벌레나 곤충 등을 표현한 것은 결론적으로 좋은 선택이었어요. 사실 처음 이 아이디어를 떠올렸을 때,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확신할 수 없었죠. 하지만 저는 프레데릭 부쉐론을 떠올렸어요. 그에게 나비와 나방이라는 선택지가 주어졌다면 그 역시 나방이라는 존재에 주목하지 않았을까요? 파리도 마찬가지예요. 개인적으로 파리에 특별히 애착이 있는 건 아니지만, 이 선택 또한 옳았다고 생각해요. 자연 속 모든 것이 중요하고 아름답다는 이번 컬렉션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선택이죠. 저는 이번 컬렉션에서 나방과 파리가 아주 멋진 존재로 보이길 원했어요. 특히 나방은 굉장히 어려운 작업을 거쳐 완성했어요. 선호하는 방식은 아니지만 이번 컬렉션 중 딱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나방을 구현한 ‘빠삐용 드 뉘(Papillon de Nuit)’ 주얼리를 고를 것 같아요. 브로치이자 헤어 피스로 연출할 수 있는 작품이죠. 나방은 빛나지 않는 존재 중 하나예요. 불쌍하고 못생긴, 사람들이 싫어하는 곤충이니까요. 하지만 저는 그것이 아주 멋지다고 생각해요. 미적으로나 기술적으로도 완벽하게 구현했죠. 제작 팀이 훌륭한 작업을 해냈어요. 그래서 이 나방 모티프의 빠삐용 드 뉘 주얼리가 이번 컬렉션을 가장 잘 대표한다고 생각해요. 이 점을 알아보고 언급해줘 고마워요.(웃음)

지난 2011년에 메종 부쉐론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합류했다. 오랜 시간 이곳에서 쌓은 경험과 노하우가 큰 자산일 것 같다. 업무 중 가장 집중하는 부분은 무엇인가? 저는 완벽주의자에 가까워요. 창작부터 제작 단계, 마무리 과정까지 모든 부분을 통제하길 원하죠. 주얼리를 만드는 전 과정을 알길 원해요. 그래서 장인들과 가급적 오래 시간을 보내고, 디자이너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모든 것이 확실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제 역할을 하고 있어요. 개인적으로는 이 과정에서 자신감을 많이 얻었어요. 저는 14년 가까이 메종 부쉐론과 함께했어요. 지금은 더 자신감이 생기고 편안해졌죠. 오랜 시간을 함께한 동료에게 내 의견을 더 진실하고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달까요? 다른 사람들은 이런 방식으로 작업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저는 주얼리의 모든 분야에 걸쳐 인간관계를 넓혀가면서 진실하고 솔직하게 소통하는 지금의 방식이 퍽 괜찮은 것 같아요.

당신을 이토록 사로잡은 메종 부쉐론의 매력은 무엇인가? 자유!(웃음) 디자이너에게 자유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어마어마한 차이예요. 헤리티지를 바탕으로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하고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과 분위기! 이는 매우 중요한 가치죠.

늘 탁월하고 대담하며 모험적인 디자인으로 놀라움을 안겨준다. 자연 외에는 주로 어디에서 영감을 받고, 어떻게 주얼리에 적용하나? 시각적인 것들에서 영감을 많이 받아요. 음악도 아니고, 독서도 아니죠. 오로지 제가 직접 보고 경험하는 것들에서 길을 찾아요. 그래서 여행을 참 좋아하고, 여행에 꽤 많은 시간을 할애하죠. 그곳에서 자연을 즐기고, 건축도 감상해요. 저는 끊임없이 움직여야 해요. 파리도 아름답고, 부쉐론도 멋지지만, 새로운 것들을 보며 느끼는 것들로 나 자신을 채우는 거죠.

주얼리 디자이너인 당신의 애착 주얼리는 무엇인가? 이 질문이 아주 마음에 드는군요. 주얼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조각과 연결되는 경험, 감정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제가 가장 사랑하는 작품이 하나 있어요. 2018년 하이 주얼리 ‘까르뜨 블랑슈(Carte Blanche)’의 일환으로 ‘네이처 트리옹팡(Nature Triomphante)’ 컬렉션을 준비할 때였어요. 그 당시 꿈이 하나 있었는데, 다행히 완벽하게 실현할 수 있었죠. 바로 꽃 혹은 자연에 영원한 생명을 불어넣는 것이었어요. 그때 반지를 몇 개 만들었는데, 그중에 제가 특히 애정을 가진 작품이 하나 있어요. 진짜 수국(블루 하이드레인저) 꽃잎을 활용한 반지로, 아주 소박한 디자인이죠. 심지어 빛나지도 않아요. 반지 중앙에는 작은 노란 다이아몬드를 세팅하고, 주변을 진짜 파란 수국 꽃잎으로 감쌌어요. 제작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는데, 그 당시 가장 힘들게 작업한 걸로 기억해요. 그 덕분에 진짜 꽃처럼 보였고, 결국 우리는 성공했죠.
이 작품이 특별한 이유는 바로 제 딸 때문이에요. 지금은 다 커서 스물일곱 살 아가씨가 되었지만, 아이가 아주 어릴 때 어머니의 날에 처음으로 제게 꽃을 선물했어요. 같이 꽃집에 가서 직접 골라준 꽃이 바로 수국이었죠. 그 기억이 아주 소중해서 이 꽃을 반지로 재현하자고 제안했고, 결국 제 손에도 하나를 끼게 되었어요. 이 반지는 화려하지도 않고 빛나지도 않아요. 하지만 제게는 아주 큰 의미를 담은 작품이에요. 누군가에게는 크고 화려하고 값비싼 주얼리보다 이런 감정, 기쁨이 넘치는 순간을 간직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잖아요.

당신은 많은 시간을 자연 속에서 보내기 위해 주기적으로 포르투갈에 머문다고 했다. 내게 포르투갈은 포르투와 리스본이라는 관광지로 기억 되는데, 당신이 향하는 포르투갈 도시들이 궁금하다. 가장 좋아하는 곳 이나 음식 등을 <마리끌레르> 코리아 독자들에게 알려줄 수 있나? 제가 포르투갈을 참 좋아해요. 부쉐론에 합류하기 전부터 땅을 사고 집을 지 을 정도였죠. 제가 머무는 집은 콤포르타(Comporta)에 있어요. 리스본 에서 남쪽으로 차로 약 15분 정도 떨어진 곳이죠. 우리 집은 숲 한가운데 에 있고, 바다와도 가까워요. 고요한 숲과 호젓한 바다를 즐길 수 있는, 소박하지만 더없이 아름다운 곳이죠. 제가 집을 지을 당시에는 조용하고 알려지지 않은 곳이었는데, 지금은 많은 사람이 이곳의 매력을 알아차 린 것 같아요. 소박하고 여유로운 사람들, 훌륭한 음식, 조용히 쉴 수 있 는 아름다운 자연환경…. 저는 이곳을 깊이 사랑해요.

‘아트 파리 2025’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올해 4월에 그랑 팔레에서 열리는 권위 있는 아트 페어인 아트 파리 2025에서 마리끌레르와 부쉐론이 협력해 뛰어난 여성 아티스트를 조명하는 새로운 상 ‘여성 예술가 상(Her Art Prize)’을 선보인다. 여성의 동시대적 목소리에 집중하는 마리끌레르와 부쉐론의 의미 있는 만남은 어떻게 이루어졌나? 이 상은 창의적 분야, 특히 예술계에서 능력이 출중한 여성 아티스트들이 충분히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어요. 마리끌레르, 부쉐론의 CEO 엘렌 풀리 뒤켄(Hélène Poulit-Duquesne) 그리고 저는 이 점을 충분히 인지하고 뜻을 모았죠. 여성 예술가상은 여성의 창의적인 예술적 표현을 지지하겠다는 우리의 뜻을 전달하는 특별한 기회가 될 거예요.

마지막 질문이다. 새해가 되면서 올해는 개인적으로 몸과 마음의 체력을 길러야겠다고 다짐했다. 체력이 있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 원동력이 생기니까. 당신이 이토록 오랜 시간 주얼리 디자이너로 활약할 수 있는 힘의 근원, 원동력은 무엇인지 묻고 싶다. 아주 좋은 질문이네요.(웃음) 누군가가 제게 이런 질문을 한 건 처음인 것 같아요. 사실 약 4년 전부터, 그러니까 코로나19 이후에 개인적으로 무척 힘든 시간을 보냈어요. 왜 이렇게 힘이 드는지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했죠. 이 기간 동안 저는 하이 주얼리 까르뜨 블랑슈 컬렉션 네 개, 이스뚜아 드 스틸 컬렉션 서너 개, 총 일곱 개나 여덟 개의 컬렉션을 동시다발적으로, 각기 다른 단계에서 작업했어요. 물리적으로 엄청난 양이죠. 하지만 저는 이 일을 무척 좋아했고 또 잘해내고 싶었어요. 그래서 포르투갈에서 생활하는 걸 신중하게 관리하기 시작했어요. 앞서 말했듯이 훌쩍 떠나서 여행을 하고 한곳에 머물기보다는 새로운 무언가를 보고 경험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하니까요. 저는 때론 일상적 흐름에서 벗어나 에너지를 얻고, 새로운 시각적 영감을 받은 후 다시 일로 돌아가야 하죠. 그게 제게는 일과 개인적인 삶의 균형을 찾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자신이 하는 일을 사랑하고 열정을 갖고 있으면 스스로에게 너무 많은 걸 요구하기 쉬워요. 그래서 지금은 그 부분을 경계하고, 나 자신과 내면을 돌보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들이고 있어요.

마치 하이 주얼리로 만든 식물도감을 보는 듯한 ‘길들여지지 않은 자연’을 테마로 한 2025 이스뚜아 드 스틸 하이 주얼리 컬렉션.
프레데릭 부쉐론이 남긴 유산을 깊이 들여다보고, 새로운 방식의 착용법을 고안해 우아하고 섬세한 디자인으로 완성했다.
이번 컬렉션은 식물 외에 호박벌과 딱정벌레, 나방과 파리 등 자연에서 살아가는 곤충 모티프의 하이 주얼리도 함께 만날 수 있다.
부쉐론 장인들의 섬세한 기술력을 더해 생생하게 구현한 모습이 인상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