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나서 반갑다. 한국에서 단독 행사는 처음이라고 들었다. 북 사이닝 이벤트도 진행한다고 알고 있다. 한국은 예전에도 몇 차례 방문했는데, 시몬 로샤 단독 행사로 찾아온 건 처음이라 매우 설렌다. 이번에 10 꼬르소 꼬모 서울에서 2025 S/S 컬렉션을 전시하게 됐다. 그리고 처음으로 발간한 책을 소개하고 싶었다.
2025 S/S 컬렉션 전시와 당신의 책에 대해 설명해주기 바란다. 디자이너로서 첫 번째 10년을 돌아보는 일종의 모노그래프다. 단순히 컬렉션에 대한 정보뿐만 아니라, 각 컬렉션을 탄생시킨 영감과 스토리를 담고 있다. 협업했던 이들과 나눈 대화는 물론이고, 쇼 컬렉션을 넘어 그 이상의 깊이 있는 내용들. 시몬 로샤의 10년을 총망라했다고 보면 된다.(웃음) 뉴욕, 파리, 런던에서 북 사이닝 이벤트를 진행했고, 아시아에서는 서울이 처음이다.
시몬 로샤는 로맨티시즘을 트렌드의 반열에 오르게 한 브랜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패션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이후, 비슷한 감성을 지닌 다양한 브랜드가 등장했으니까. 시몬 로샤만의 로맨티시즘은 무엇이 다르고, 어떤 점에서 특별할까? 여성성을 이야기하지만, 그 여성성의 이면에 있는 여러 감정을 같이 보여주고자 한다. 그러다 보니 시몬 로샤의 여성성은 일차원적이지 않고, 다양한 면모를 가지고 있다는 점? 걸리시한데 그치지 않고 좀 더 깊은 감정을 담고 있는 것이 특징일 것 같다.
장미, 진주, 레이스, 리본. 당신의 시그니처 요소와 디자인은 언제나 로맨틱하지만 결코 순진하지 않다. 마치 꽃을 손에 쥐고 있지만, 그 줄기에 가시가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시몬 로샤의 컬렉션에서 ‘가장 날카로운 부분’은 어디에 있을까? 항상 고민하는 부분인데, 현실에서 오는 어떤 하나의 날카로움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아름다움이란 단순히 겉모습이 아니라, 그 아래 숨겨지거나 감춰진 감정들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여성성을 이야기할 때도, 그 표면을 넘어 이면에 있는 감정들과 서사를 드러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그것이 곧 시몬 로샤의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방식이라 할 수 있다.
2025 F/W 시즌 런웨이에 한국 배우 김민하를 모델로 세웠다. 비하인드 스토리가 궁금하다. 사실 김민하 배우가 이번 컬렉션 안에서 보여준 존 재감에 굉장히 놀랐다. 그가 평소 시몬 로샤의 옷을 즐겨 입는다고 들었고, 나 역시 그의 작품을 오랫동안 좋아해온 팬이다. <파친코>를 읽으면서 그가 얼마나 깊이 있는 방식으로 캐릭터를 표현하는지를 보고 연기에 큰 감동을 받은 기억이 있다. 2025 F/W 시즌 컬렉션을 준비하면서 ‘캐릭터가 살아 숨 쉬는 컬렉션을 만들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시몬 로샤의 친구들’, 다시 말해 우리의 옷을 입고, 사랑해주는 사람들과 함께 모여서 컬렉션을 만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자연스럽게 김민하 배우에게 연락하게 됐다.
몽클레르, 크록스 같은 스포츠 브랜드와의 협업이 인상 깊다. 다양한 브랜드와 협업을 진행하는데, 그중에서도 스포츠 브랜드와 여러 번 협업한 이유가 있나? 나와 다른 전문성, 미감을 가진 사람들에게 끌린다. 예측 불가능한 조합에서 오는 서프라이즈를 좋아하기도 하고. 그것이 몽클레르, 크록스 같은 스포츠 브랜드와의 협업을 선호하는 이유다. 나와 다른 분야의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생각지 못한 진짜 새로운 게 나오기도 한다. 각자 갖고 있는 아이디어가 다르기 때문에 그 차이가 ‘서프라이즈’한 결과로 이어지는 듯하다.
두 브랜드를 모두 돋보이게 하는 협업의 귀재로서 앞으로 협업해보고 싶은 브랜드가 있다면? 늘 다른 걸 해보고 싶다. 아이디어도 너무너무 많고. 지금까지 진행한 협업들, 크록스부터 장 폴 고티에까지. 서로 다른 것들을 조합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매우 흥미롭다. 다음에 콜라보레이션을 또 선보이게 된다면 그것 또한 굉장히 다를 거다.
시몬 로샤는 소녀들이 사랑하는, 소녀들의 로망이라 할 수 있는 브랜드다. 한국에도 당신의 옷을 사랑하는 소녀가 아주 많다. 당신의 옷을 입는 사람들이 어떤 감정을 느끼기를 바라나? 소녀들이 시몬 로샤 옷을 입었을 때 단순히 예쁘다는 감정보다 무언가로부터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안에서 스스로 조금 더 강인해졌다고 느낄 수 있었으면 하고. 주로 사용하는 실크나 오간자, 프릴 그리고 그 소재를 표현하는 방식은 그런 감정을 전달하기 위한 장치라 생각한다. 마치 교복처럼 시몬 로샤의 옷이 누군가에게는 작지만 확실한 정체성이 되어주기를 바란다.
당신의 아주 가까운 곳에도 소녀가 있다. 딸이라는 존재가 당신의 디자인 철학과 디자이너로서의 여정에 가져온 변화가 있을까? 굉장히 많은 영향을 준다.(웃음) 아직 어린아이들이라 정제되지 않고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넘친다. 이 생각들을 내 작업에 녹여내려 한다. 그리고 예전에는 스스로를 다그치는 스타일이었다면 지금은 훨씬 더 감각이 예민해진 것 같다. 여러 방면으로. 아이들 덕분에 좀 더 오픈 마인드를 갖게 되는 것도 같고.
디자인과 육아라는 두 가지 역할을 동시에 맡고 있을 때, 그 균형은 어떻게 맞추나? 육아와 디자인은 모두 하드코어 장르다. 두 가지 모두 감성적이고 감정 소모가 많은 일이라 주변의 도움 없이 혼자서는 다 할 수 없었을 거다. 다행히 육아는 가족들이 전폭적으로 지원해주고, 스튜디오에서는 팀원들이 도와주기 때문에 균형을 잘 맞춰가는 것 같다.
서울에 도착해서 가장 처음 먹은 음식은? 어제 서울에 도착한 뒤 팀원들끼리 모여 한남동의 한식당에서 한식을 먹었다. 막걸리를 처음 마셨는데 너무 좋았다.
인터뷰와 전시를 마치고 서울에서의 남은 일정은 어떻게 보낼 계획인가? 첫날 먹은 음식과 막걸리가 생각난다. 돌아가기 전에 한 번 더 먹고 싶을 정도다.(웃음).


장식한 스커트.

보여주는 실루엣의 대비가 인상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