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대문호 알렉상드르 뒤마의 1844년작 소설 <몬테크리스토 백작>에는 이런 문장이 등장한다. “당글라르의 시계, 그러니까 전날 출발하기 전 정성스레 태엽을 감아 놓은 브레게의 걸작이 5시 30분을 가리켰다.” 그리고 2016년 발표 후 세계 전역에서 호평받은 <모스크바의 신사>에서 저자 에이모 토울스는 로스토프 백작의 캐릭터를 설 명하기 위해 그의 아버지가 브레게에 의뢰해 제작한 ‘하루에 두 번만 울리는 시계’를 중 요한 소재로 삼고 한 페이지에 걸쳐 부연한다. 이렇듯 시대와 세대를 뛰어넘는 여러 문 학작품에서 브레게는 ‘좋은 시계’의 상징으로 등장했다. 시계에 대해 깊이 알지 못함에 도 브레게라는 이름을 친숙하게 느낀다면, 이는 당신이 브레게를 소중히 다루거나 선물 받거나 가지고 싶어 하는 문학작품 속 여러 캐릭터를 과거 어느 시점에 접했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이러한 문학적 차용에서 알 수 있듯, 브레게는 오랜 세월에 걸쳐 좋은 시계 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해왔다. 메종의 창립자인 아브라함-루이 브레게는 투르비용을 비 롯해 미니트 리피터 워치의 소리를 더 아름답게 공명하도록 돕는 공 스프링, 밸런스 휠 을 보호해 내구성을 높이는 패러슈트 등을 발명하며 시계의 역사를 써온 인물. ‘투르비 용의 아버지’, ‘워치메이커들의 워치메이커’, ‘시계의 왕’과 같은 수식어만 보더라도 그가 시계에 공헌한 바를 짐작할 수 있다. 1999년 스와치 그룹의 창시자이자 이사회 의장이 며 대표이던 니콜라스 하이에크(Nicolas Hayek)는 이러한 브레게의 가치를 발굴하고 확장해 세계적인 최고급 시계 메종으로 각인하는 데 성공한다. 밸런스 휠의 축을 루비 로 고정하는 대신 자성으로 지지하는 자성 피봇(Magnetic Pivot)을 시계에 적용하거나, 예술 및 기술 분야의 장인들과 협력해 다양한 특허를 획득하는 등의 노력 또한 브레게 의 오늘을 만든 초석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작고 이후 메종은 그레고리 키슬링(Gregory Kissling)의 손에서 새로운 서사를 이어가는 중이다.

마리끌레르가 다녀온 몽트르 브레게(Montres Breguet) 매뉴팩처는 이러한 궤적이 고스란히 담긴 시간의 요새이자 시계 역사의 심장부다. 오래된 것의 가치를 수호하는 복원 워크숍부터 기요셰, 에나멜링, 인그레이빙으로 나뉘는 메티에 다르(Métiers d’Art, 수공 예술) 제작 부문, 그리고 트래디션, 레인 드 네이플, 헤리티지, 마린, 클래식, 타입 XX 등의 대표 컬렉션까지. 매뉴팩처에서 경험하고 감상한 모든 것을 이 지면을 통해 아낌없이 전한다. 시계 애호가에게는 꿈같은 공간을 직접 방문한 설렘이 닿기를, 입문자에게는 지금껏 알지 못하던 영감 가득한 우주가 펼쳐지기를 바라며.

RESTORATION WORKSHOP

브레게의 복원 워크숍은 하우스의 작품을 복각하는 팀으로, 여러 명의 복각 전문가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1783년, 마리 앙투아네트를 위해 제작했으나 끝내 그에게 헌사하지 못한 전설적 컴플리케이션 워치를 복각해 2008년 바젤 페어에서 공개하며 그 실력을 입증했다. 원본 드로잉, 브레게 뮤지엄의 아카이브, 파리 국립 기술공예 박물관(Musée des Arts et Métiers)의 여러 자료를 토대로 탄생한 워치는 점핑 아워, 미니트 리피터, 퍼페추얼 캘린더 등 복잡하고 정교한 여러 기능을 갖췄을 뿐만 아니라, 마리 앙투아네트가 사랑한 베르사유궁전의 오크나무 고목으로 제작한 케이스에 담겨 그 의미를 더한다.

GUILLOCHÉ

기하학 패턴을 금속 표면에 새겨 완성하는 기요셰는 원래 제복 버튼과 가구 등을 장식하던 기법으로, 아브라함-루이 브레게가 1786년 워치메이킹에 최초로 도입했다. 오늘날의 브레게 기요셰 워크숍은 숙련된 장인들이 그 명맥을 이어간다. 왼손으로는 도구를 사용하고, 오른손으로는 캐리지에 고정된 끌을 섬세하게 움직여 만들어내는 기요셰는 시계의 표면을 마모로부터 보호하고 다이얼의 가독성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하우스는 수년에 걸쳐 빈티지 엔진 터닝 도구를 사 모았을 뿐 아니라, 정밀성을 높이기 위해 기요셰 기계를 자체적으로 제작하며 기요셰를 향한 끝없는 경의와 애정을 표한다.

브레게 매뉴팩처 내 기요셰 공방의 전경.
시와 분, 낮과 밤 인디케이터를 탑재한 레인 드 네이플 데이/나이트 8998.
다이얼에 태양의 반짝임을 닮은 플레임 모티프의 기요셰 패턴을 새겼다.
새로운 물결 패턴의 기요셰를 새기는 마린 5517의 제작 과정.

ENGRAVING

브레게 매뉴팩처의 장인들은 수백 년 전의 것과 동일한 전통 도구를 이용해 인그레이빙 작업을 한다. 인그레이빙 디테일은 플레이트 표면을 깎아내 독특한 결과 질감을 입히거나, 여러 모티프를 그려내며 시계에 미학적 깊이를 더한다. 무브먼트 구성품에 수작업으로 새긴 ‘Breguet’ 로고 역시 인그레이빙으로 완성한 것.

전통 도구를 이용해 인그레이빙하는 작업 장면.
인그레이빙 기법으로 브레게의 로고를 새긴 트래디션 담므 7038의 케이스 백.

ENAMELING

에나멜링 공정을 위해서는 먼저 실리카와 으깬 산화물의 혼합물인 색색의 가루를 물에 용해한 후, 금속 표면을 파내 유약을 채워 넣는 샹르베(champlevé), 명도 차이를 통해 입체감을 표현하는 그리자유(grisaille) 등 다양한 기법을 적용하고, 마지막으로 굽는 과정이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건 구워내는 시간과 온도. 오로지 장인만이 컨트롤 가능하며 하나의 다이얼을 완성하기까지 몇 주가 소요되기도 한다.

블랙 그랑 푀 에나멜 다이얼이 특징인 클래식 5177.
에나멜링 작업 과정 중 오븐에서 구워지고 있는 다이얼.

THE ESSENCE OF 250 YEARS OF LEGACY


우리가 만나는 브레게의 시계는 이토록 복잡하고 정교한 과정과 기술, 장인정신, 그리고 무엇보다 브레게가 지나온 시간의 양분을 기반으로 한다. 특히 올해 브레게가 창립 250주년을 기념하며 선보인 타임피스는 이 모든 요소가 집약된 역사의 정수다. ‘클래식 서브스크립션 2025’라 명명된 이 워치는 1790년대에 첫선을 보인 ‘서브스크립션 포켓 워치’를 재해석한 모델로, 이제는 ‘브레게 핸즈’라는 이름으로 더 친숙한 블루 스틸 소재의 오픈 팁 핸드, 군더더기 없이 세련된 미감의 화이트 그랑 푀 에나멜 다이얼과 블랙 프티 푀 에나멜 미니트 마커, 그리고 새롭게 고안한 기요셰 패턴을 새긴 케이스 백 등 하우스의 고유한 요소를 올해 처음 공개하는 독자적인 브레게 골드 케이스에 담아냈다. 이토록 기념비적인 워치를 그랜드 컴플리케이션이 아닌 싱글 핸드 스타일의 단순하고 명료한 모델로 선정함으로써 하우스는 모든 사람을 위한 시계, 즉 구조가 간단하고 접근이 용이하며 더 많은 대중이 쉽게 시간을 확인할 수 있는 시계를 만들고자 한 아브라함-루이 브레게의 정신을 이어간다.

1790년대에 출시된 서브스크립션 포켓 워치.
브레게 창립 250주년을 기념하는 클래식 서브스크립션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