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기 10191년 세상의 종말을 앞두고 폐허가 된 지구의 건조한 사막 위, 거친 모래바람에 옷을 흩날리며 전사의 얼굴을 하고 있는 한 여자. 포스트 아포칼립스 룩의 판타지는 이렇게 시작된다. 이들의 룩은 기능성과 생존성, 날것의 미학이 깃든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이 중심이 되는 스타일로, 영화 <듄>이나 <매드맥스> 시리즈에 등장할 법한 역동적 서사를 가졌다. 하지만 바캉스를 위한 현실적 스타일링은 조금 더 페미닌하거나 로맨틱한 터치가 깃든 소프트 아포칼립스 룩으로 제안하고 싶다. 패션 월드에 막 당도한 포스트 아포칼립스 룩은 젠지 사이에서 사랑받는 Y2K와 보호 시크 룩의 매력을 모두 갖추 고, 한층 더 진화한 버전이니 말이다. 이자벨 마랑과 에르메스는 지구적 색감과 관능적 실루엣으로, 디젤은 블리치 효과나 디스트레스트 디테일을 가미한 디자인으로, 디아티코는 수공예적 특성과 실용성을 높인 룩으로 뜨거운 여름을 기다리 는 여전사들의 스타일에 힘을 보탰다. 얼마 전, 한 선배가 여행을 간 그랜드캐니언의 사진을 보고 이 비현실적이고 장엄한 절벽 끝에 포카혼타스처럼 홀로 서 있는 내 모습을 무심코 상상했다. 해진 프린지를 길게 휘날리며 포스트 아포칼립스적 인 결연한 마음가짐으로 말이다. 아무래도 이 룩의 미학은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이 자신의 스타일을 대담히 드러낼 줄 아는 강인함, 그 독보적 자유로움에 근간이 있다. 마치 사막 위에 우뚝 솟아난 선인장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