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이 단지 새로운 것을 향해 나아가는 속도전이라고 생각했다면, 이번 시즌 코펜하겐 패션위크는 그 반대를 증명해 보입니다. 10주년을 맞아 아카이브를 다시 꺼낸 ‘세실리아 반센’부터 긴 공백을 끝내고 돌아온 ‘앤 소피 매드슨’, 추억 속 어머니의 멀버리 백을 되살린 ‘카로 에디션’까지. 2026 봄-여름 코펜하겐 패션위크에서 주목해야할 세 가지 이슈를 소개합니다.
세실리아 반센의 10주년 쇼




2025년은 세실리아 반센(Cecilie Bahnsen)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집니다. 브랜드 탄생 1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기 때문이죠. 이번 컬렉션은 일본어로 ‘불꽃놀이’를 뜻하는 ‘하나비(Hana-bi)’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는데요. 이름처럼 쇼는 축제의 한 장면 같았습니다. 늘 그렇듯 컬렉션은 올 화이트 룩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이어 은빛과 연보랏빛으로 서서히 변주되었죠. 실루엣과 소재는 10주년 기념 쇼답게 아카이브 피스들과 닮아있었습니다. 영국 스타일의 자수와 퀼팅 실크를 결합하거나, 투명한 스커트 아래 시퀸 브리프를 입힌 것처럼요. 특히 초대받은 게스트이 브랜드의 아카이브 룩을 직접 착용하고 등장해 지난 10년을 되돌아보는 살아있는 전시처럼 느껴졌습니다.
앤 소피 매드슨, 예술가 에스벤 바일레 키예르와의 협업




알렉산더 맥퀸과 존 갈리아노 밑에서 커리어를 시작한 앤 소피 매드슨(Anne Sofie Madsen)이 오랜 휴식 끝에 패션계로 돌아왔습니다. 복귀와 함께 덴마크 출신 작가 에스벤 바일레 키예르(esben weile kjær)와 협업을 공개했는데요. 쥐를 형상화한 조각 작품으로 유명한 그는 2024 광주비엔날레 참여로 국내 관객들에게도 강한 인상을 남겼었죠. 파인 아트라는 공통된 취향을 가진 두 사람은 쥐 모양의 새로운 백, ‘글램 랫(Glam Rat)’ 클러치를 선보였습니다. 도시의 생존자이자 혐오와 강인함이라는 이미지를 동시에 지닌 쥐를 부드러운 촉감과 화려한 컬러로 재해석한 것이죠. 우아하고 세련된 룩들과 쥐의 형상이 대비되어 더욱 강렬한 여운을 주었습니다. 초라한 쥐를 단번에 화려한 존재로 신분 상승시킨 것. 이야말로 단순히 패션을 넘어 시대를 향한 유쾌한 메시지 아닐까요?
카로 에디션이 재해석한 멀버리 빈티지 백




모델 출신 캐롤라인 빌레 브라헤(Caroline Bille Brahe)가 2022년에 론칭한 카로 에디션(Caro Editions)은 장난기 가득한 색감과 패턴으로 빠르게 주목받고 있는 브랜드입니다. 코펜하겐 패션위크에서 공개한 2026 봄-여름 컬렉션, ‘언더 더 브리지(Under the Bridge)’는 2018년 디자이너 자신의 결혼식에서 영감받아 완성되었습니다. 도트나 체크 같은 패턴과 레이스 장식이 어우러지며, 런웨이는 마치 고전 할리우드 영화 속 한 장면을 보는 듯했죠. 특히 모델들의 손에 들린 백이 눈에 띄었는데요. ‘앰벌리’, ‘안토니’, ‘메디슨’ 등 빈티지 멀버리(Mulberry) 백에 카고 에디션 특유의 장식을 더했습니다. 과감한 컬러와 커다란 리본, 그리고 주얼 장식까지 화려하지만 여전히 사랑스럽게 말이죠. 캐롤라인은 브랜드 공식 소셜 계정을 통해 “우리 세대에서는 엄마가 멀버리 백을 가지고 있으면 행운이었다. 엄마의 가방을 빌려서 들고 다닐 때 정말 멋지다고 느꼈다. 이제는 카로(Caro)만의 멀버리 백을 만들었다.”라며 멀버리 백에 대한 향수와 애정을 전했습니다.